안동문화회관, 그 30여년의 발자취(글/임종교)"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위하여 안동문화회관은 2001년 2월 15일 30년 동안의 수많은 사랑에 감사드리며 마감인사를 드립니다"
A4 2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돌리며 안동문화회관은 2월 15일 셔터문을 내렸다. 30여년의 세월, 안동의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에게 차지했던 비중에 비하면 별다른 마감행사없이 너무나도 조용한 결별선언이었다.
그 이후 한달이 채 못되어 이제는 가톨릭회관이란 이름으로 바뀐 건물에서 이진구관장을 만났다. 아직은 정리가 되지 않아 이곳저곳 어수선한 모습이었고, 수녀님들이 자주 눈에 띄인다. 알고보니 수녀님 기숙사로 건물 일부가 이용되고 있었다.
나또한 그랬지만 일반시민들은 안동문화회관이 가톨릭 재단의 건물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익숙하지 못하다. 문을 내리면서 가톨릭회관이라는 간판을 올리자 많은 사람들의 반응들은 대체적으로 이랬다. 그만큼 종교적인 냄새를 덜어내고 종합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소임을 착실히 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30여년 동안 총 300여만명의 이용실적과 연평균 이용자 수가 무려 10만명을 자랑할 만큼 안동문화회관은 지역민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안동문화회관은 1973년 9월 16일에 준공되었다. 71년 지금의 터에 시민극장을 짓고 있었는데 중간에 골재공사가 중단된 것을 가톨릭 재단에서 인수하고, 3년 증축하여 완공한 것이다.
"준공전에 우리가 무슨 시설, 어떤 내용으로 이 건물을 사용할까 하는 여론 조사를 했는데 참고되었던 것이 그때만 해도 문화예술활동에 제공되는 필요공간이 전혀 없을 때예요. 그래서 그것이 가장 요긴하겠다 생각한 거지요. 모임이나 강연, 교육 뭐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지요."
70년대. 한참 경제개발을 위해 내달릴 때 이렇게 해선 인간본연의 심성이 깨질 것을 염려해 인간을 거룩하게 한다는 인간성화와 종교, 교육, 문화, 예술의 향상에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협동 봉사한다는 취지를 세우고 각종의 발표공연과 연주회, 제반 예술활동들에 공간들을 내어주었다. 지금의 하회별신굿보존회와 안동문화연구회, 안동예총 또한 그 시작의 기틀을 이곳에서 마련하였다.
안동문화회관이 걸어온 길
안동문화회관은 그 역할에 따라 3기로 나눠볼 수 있다. 73년부터 82년까지 초기 10년 동안은 극장 건물을 인수했기 때문에 불합리한 공간을 증축하는 시기였다. 그러면서 지역의 문화예술활동에 그 공간을 제공했다. 전시장이나 강당을 제공줌으로써 문화예술활동을 담아줄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한 것이다. 다방과 식당으로 전전하던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전시장을 열었을때 1년에 3건정도 밖에 전시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도 외지예술인 초대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0년도 되지 않아 3개의 전시장이 연 200회 이상의 전시를 할만큼 성행했다. 문화예술공간으로는 유일한 때였으니 그 필요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2기라 이름붙일 수 있는 83년부터 92년까지는 공간만 제공해주었던 수동적인 역할에서 좀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며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안동문화회관이 주최하는 행사가 많아진 것이다. 물론 경영면에서 임대만 하다보니 수익사업의 필요에도 있었을테지만 아마도 이 2기때가 문화회관의 전성기였었던 듯 하다.
신부대학을 비롯한 행복한 가정운동을 벌였는데 특히 신부대학은 10년동안 1,000명 이상을 양성했다. 또한 지역의 현안에 대한 공청회도 벌였고 유신반대운동, 개헌운동이며, 최근 도청유치운동까지 특히 80년대 초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 서울의 명동성당과 같은 역할도 담당했다. 이곳에서 만나 운동의 불을 지피고 항상 역광장으로 이동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여기가 모임 장소였거든요. 최루가스가 뒤덮여지고 전투경찰이 항상 이 주위를 에워쌌죠. 가톨릭 농민사건도 터지고, 그 현장의 일번지였지요."
3기인 93년도 이후로 문을 닫을 때까지는 초기 문화회관에서 시작한 단체들이 자생력을 키워 문화활동들을 해나가게 되고, 공간적으로도 시민종합회관이나 솔뫼문화회관, KBS홀 등 문화공간들이 생기면서 그 역할을 나눠가지게 된다. 주최행사도 줄어들고 자연 문화예술공간으로서도 그 필요성도 점점 약해지게 된 것이다. 1973년 설립당시의 안동문화회관이 가졌던 그 필요와 2001년의 필요는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안동문화회관 시절을 정리하고 또다른 필요를 찾아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지역민의 공간만들기
그러나 이러한 문화예술활동의 공간으로만 역할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안동문화회관이 가졌던 향수를 기억하고, 문을 닫은 것이 이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간직하는 것은 아마도 안동문화회관만이 가졌던 개방성과 도덕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전국의 도 단위마다 가톨릭 문화관이라든지, 문화센터라든지 하는 이름의 공간들이 있다. 그러나 안동문화회관이 이들과 다른 것은 가톨릭 공간임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역민의 공간임을 내세우고 모든 종교인들과 지역민들을 다 포용하고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것이 가장 뚜렷이 다른 곳과 구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30여년 전부터 가톨릭 회관이었죠. 그러나 지역민의 공간으로 선언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안동문화회관이라 이름 붙였고, 이 집의 활용도 종교구별이 없었어요. 심지어 이 집 안에 성당이 있었는데 성당표시조차도 삼갈 정도였거든요."
이관장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불교, 각종 종교단체들이 이곳을 내집같이 운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신연합이나 개신교파 중에서 사이비단체들또한 이곳을 넘나들었다. 물론 집의 실제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신부님들과 신자들에게는 지탄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회관의 설립취지는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자는 것인데 종교는 어떤 것이라도 이러한 것을 추구하고 있지요. 그것을 존중했고 어떤 특정 종교기관에서 만든 집에서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자부심이겠죠."
이용자뿐 아니라 안동문화회관이 주최했던 월요강좌에 초대된 강사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인간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최할 때였는데 경안노회장을 비롯해 신부님, 고운사 주지스님, 유림의 대표 등을 초대해 강의도 하고, 토론도 같이 벌이던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내집같이 이용해준 사람들
또 한가지 문화회관은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는 숙박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늬 숙박시설과는 달랐다. 상업성을 우선하지 않은 인간적인 집만들기에 봉사했다는 말이다. 처음에 이곳은 유스호스텔로 개업을 했다. 숙박업소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가장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앞에서 언급했던 도덕성이라 함은 문화회관의 고객선별책 때문이다. "부부이외의 남녀 입숙을 사절합니다"
이곳의 처음 투숙율은 95%이상이었는데 이 고객선별책 때문에 30-40%로 떨어졌다.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나그네들이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내집같이 편안한 집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일관된 그의 생각이었고, 안동을 답사하는 학생들의 경우 일반 업소는 환경적으로 걱정스러웠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당장 갈 곳이 없어졌다. 추석이나 설 때 휴관중일때도 영업을 안하는 냉방에서 여럿 기거할 정도로 아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집으로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집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항의도 받고, 아쉬움의 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문화회관은 지역민의 따뜻한 사랑속에서 있었다.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문화예술활동의 산실 역할을 하였으며, 나그네들에겐 집같이 아늑한 곳으로, 변혁의 시대에는 성지의 역할도 해왔다.
지역의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던 안동문화회관은 아쉬움의 소리를 뒤로 하고 이제 문을 닫았다. 새롭게 활용될 가톨릭 회관은 가톨릭 재단의 사목국과 교육국이 들어오고, 일반기숙사에서 머물 수 없는 수녀님들의 기숙사로, 그리고 상지대학의 특별한 공간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려갈 계획도 세우고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1년 새롭게 시작하는 가톨릭회관또한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안동>
안동문화회관 이진구 관장
초대관장이었던 류한상씨가 4년 반 정도를 한 것을 제외하면 안동문화회관에서의 이관장의 역할을 짐작할 만하다. 문화회관 시대를 마감하며 그의 지금의 심정을 물어봤다.
"식상한 말 같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후회없이 일했다. 보람이라면 어떤 마디가 있을때마다 감사답례품 으로 촛대를 선물해왔는데, 촛불이 문화예술인, 인간성화를 바라는 성직자라면 촛대처럼 뒷바라지 해주고 받쳐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돌아보면 30년동안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문화예술인, 종교인, 그 밖의 분들에게 편리공간으로 뒷바라지 공간으로 역할을 해왔고, 그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
이관장과 문화회관의 인연은 상지대학과 상지여자중고등학교 설립일에 관여하던 그가 문화회관 경영에 대해 연구해보라는 권유를 받으면서부터다. 그때는 예상치 못했던 23년을 문화회관에서 살았다. 그가 23년간 문화회관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지역민의 공을 우선적으로 쳤지만 무엇보다 드봉주교와의 약속이 있었다.
"드봉주교의 앞을 내다본 시대정신이 있어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설립 당초에 인간성화, 지역문화예술활동의 지원육성, 지역사회개발 발전에 기여되는 건물로 유지하는 것을 지속하고 경영은 자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자생적으로 운영할 것, 대신 운영전권을 재단에서 관여하지 않고, 나에게 일임해주었다."
그러나 문화회관또한 신자들의 집이었던 만큼 불만의 소리가 많았을 법하다. 신자들이라고 문화회관 이용에 대해서 특혜를 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사제단이 이용해도 돈을 받았고, 재단에서 주최하는 회의조차도 그랬다. 여타의 다른 종교들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서도 공격을 받았지만 그에게 유일한 방패막이는 오로지 설립정신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일이었던것 같다.
"설립정신을 구현하는데는 그 누구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거룩한 인간을 만드는데 필요공간이 되어야한다는 설립취지를 무기삼아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때로는 격려와 때로는 질책을 받으면서 꿋꿋하게 30여년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지역민들의 관심과 사랑속에 커온 문화회관, 이곳에 애정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 누구보다 이관장의 아쉬움또한 클 것이다. 그는 그동안 맘을 이 집을 아껴줬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대신하며 마감했다.
"지역민들이 아껴주는 공간에 책임자로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오늘의 문화회관이 있었던 것은 이곳을 아껴주고 필요로 했던 분들 덕분이다. 감사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지만 문을 닫는 마당에 그또한 적합치 않은 것 같아 제대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표시하지 못해 그것이 죄송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