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병수의 작업공간(글/박명옥)대학시절, 신문사에 갓 입사해 학보에 만화를 연재하던 김병수(31)씨를 만난 적이 있다. 신입생이었고, 졸업반이었던 탓에 그를 본 것은 두어 달 정도. 인터뷰를 앞두고 6년동안 바랜 그의 얼굴을 열심히 떠올려야 했지만 그래도 구면은 구면이었다.
김병수씨가 일러준 대로 명동의 '서울 애니메이션센터'를 찾았다. B동 204호.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우만연)' 문패가 달렸다. 우만연은 진보적 만화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NGO로 그는 3월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작업실도 이곳으로 옮겨와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정만화부터 코믹물까지, 구간부터 신간까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만화책들. 사무차장과 간사까지 세 사람이 함께 쓴다는 사무실에는 책상이 셋, 낮은 탁자 가장자리로 푹신한 의자 몇 개. 벽에는 습작생이 그린 듯한 그림 액자들이 여럿 걸려있다. 만화학교 수료생들이나 연대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 보이는 분위기다. 연대사람뿐 아니라 누구라도 편하게 찾으면 다 받아줄 것 같이 넉살좋아 보이는 김병수씨와 그런 우만연의 분위기는 닮아있다.
졸업 후 영덕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던 그가 상경한 것은 95년 6월. 그 사이 망원동에서 거주하기도 하고, 고향인 영덕 출신 유학생들이 기숙하는 영덕학사의 '사감'으로 있으면서는 사생관리와 만화 그리기를 병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감이 불규칙하게 생활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6개월만에 영덕학사를 나온 이후에는 2년 정도 '나락'이라는 작업실을 썼다. 우만연 사무실은 그의 네 번째 작업실인 셈이다.
만화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상경해 20대 중후반을 넘기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하고 작업공간도 여러번 바뀌었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 였었나보다. 만화를 그리는 데는 책상과 연필, 잉크, 음악만 있으면 된다는 신조(?)때문이기도 하지만, '만화학교 졸업생중 제일 극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력과 낙관적인 자세로 힘든 시절을 훌쩍 넘겼다. 그때는 지금처럼 '만화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인만화잡지 [미스터 블루]와 한겨레신문의 [만화초대석]에 만화를 게재한 이후 본격적인 만화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그는 어린이용 학습만화와 아동도서의 삽화를 주로 그렸다. [미스테리 공룡의 세계](웅진출판), [호기심 왕국 시리즈1-9](문공사), [뚝딱! 명심보감](문공사), [속담·명언 101가지 이야기](글송이) 등이 그런 책들이다. 안동대학교를 다니면서 안동과의 인연도 깊어 '안동'지에 삽화를 매번 그려오고 있으며 안동시의회 홍보만화도 여러차례 작업했다.
사무국장으로서 만화학교의 교재를 편찬하고, 또 모임 사람들을 만나는 등의 우만연 업무를 진행하는 요즘, 그는 새벽까지 남아서 작업하는 날이 많다. 과격하게 '까발리는' 개그·풍자만화를 하고 싶다는 그는 무엇보다 만화란 것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는 '삶의 활력소'여야 한다는 것. 번화가로 손꼽히는 명동의 한쪽 사무실에서 만화가 김병수씨는 오늘밤에도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