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의 희망을 보았습니다(글/이한용)

안동하면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는 시가 생각납니다. 안동을 떠나는 저의 심경입니다. 눈부신 하회마을, 화음이 가득한 봉정사, 지성의 성전 도산서원, 제비원 석불상 미소, 그리고 군자리의 그윽함, 장엄하게 흐르는 청정의 낙동강, 안동댐, 임하댐은 물론 큰산 자락 명당마다 자리잡은 천년의 고찰들과 들판 여기저기 산재해 가슴 아프게 풍상을 견디고 있는 고택들, 이육사, 석주 이상용, 일송 김동삼,  농암 이현보선생….


이제 여러분은 그곳에 살고 있고 저는 홀로 돌아가기 힘든 길을 떠나왔습니다. 인생은 유한하고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데 이렇게 한 번 떠나면 언제 또다시 만나 동고동락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3년전 IMF한파가 몰아치던 날 가방하나 들고 아무도 아는 이 없던 안동땅 버스터미널에 발을 디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회사생활 23년동안 여덟 번째의 이삿짐을 쌉니다. 


 


아무도 붙잡는 이 없는 줄 알면서도 누군가 아쉬워서 눈물 흘려줄 것 같고, 아무도 오라는 이 없는데도 누군가 나를 학수고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양 서둘러 떠나는 한심한 저의 모습은 지천명에 이른 이 나이에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 고장을 위하여 무언가 보람된 일을 하겠노라고 하였건만 결국에는 오로지 내 한몸 처자식 가누는 일도 버거워 고별인사 한번 제대로 못드리고 허둥지둥 떠나야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바보새"라는 조그마한 새는 새중에서 가장 높이 하늘을 날고, 가장 멀리 넓게 보며, 고상한데서만 살고 있는데, 배가 고플때면 땅에까지 내려와서 다른 새들이 먹고 배설한 똥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해외근무 10여년을 하고 지구를 몇바퀴 다 돌았으면서도 정작 한인간이 거처할 곳 하나 찾지 못하였고, 영어 잘 배워 국제신사 같이 행동하고, 선진국 사람 많이 사귀면 인생에 무슨 용빼는 재주가 생길 줄로 알았는데 마음은 고향 청도의 산골마을 성황당에 걸려있고, 수 천미터 태평양 상공이나, 장엄하게 태양이 기울어가는 대서양 바닷가에서도 30년전에 헤어진 순이 생각에 헤매고 있으니, 제 모습이 바보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에게 안동에서의 3년은 지나온 직장생활 20년과는 아주 다른 삶의 인식을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나 씨애틀의 4년과 뉴욕생활 3년 반 뿐만이 아니라, 서울과 부산의 생활도 안동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곳 토론토의 생활 또한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동에서 보낸 생활중에 참으로 지금까지의 인생에 미치지 못하였던 삶의 새로운 지평 하나를 더 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가 상당히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인식하게 되었고, 그러한 자연환경이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참으로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아무래도 한국인이 가장 좋으며 그 중에서도 안동 친구가 저의 말년을 가장 풍요롭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멀리서 단지 경상도 안동땅 낙후되고 뚜렷이 무엇하나 볼 것 없는 고루한 지방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지금은 그곳에서 우리의 여러 가지 유무형 문화재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 문화의 메카로서 나아갈 것 같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씨애틀이나 뉴욕에서 정든 지인들이 귀국하지 말고 함께 살자고 할 때에도 미국이 최상의 문명과 안전과 건강이 있는 곳임을 인정하면서도 떠나고 난 후에 별 미련이 없었는데, 이제는 안동이 언젠가 다시 가야할 곳이 되버렸습니다. 안동은 제가 지나온 그 어느 도시보다 낙후되어 있고 불편한 곳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안동은 이제 오랜세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굴절되고 상처받아왔던 자존심을 다시 추스려서 먼지 덮이고 흙속에 파묻혀 홀로 응어리졌던 문화가 담장을 헕고 새로운 모습으로 빛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문화재들은 생기를 찾아가고 거리는 깨끗하게 포장되고 사람들은 긍정적인 표정으로 밝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사람들이 안동을 찾아오는 것이 어찌 예삿일이라 하겠습니까.


제가 안동에 부임하여 경북북부지역 관광개발협의회를 발족하여 3차에 걸쳐 서울지역에 대단위 관광설명회를 개최하고 안동, 영주 역사기행 관광상품을 개발해서 '머무르다 가는 관광'의 모델을 실현시키고, 일본에서 3차례 관광설명회를 통하여 일본 대형 여행사의 안동방문 상품을 기반위에 올려놓았으며 후쿠오까-예천 공항간에 관광 전세기를 띄우는 무리한 일도 감행해 보였습니다.


또한 관광가이드 양성과정을 개설하여 60여명을 한 달 동안 교육하였으며 그때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금 하회마을과 민속촌 등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동의 국제탈춤페스티벌과 영주의 풍기인삼축제에는 직접 몸담고 함께 일하는 보람도 맛보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유지분들의 후원을 받아 직분 이상의 일들을 기획하고 감행하면서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안동이라는 역사와 풍토가 저같은 떠돌이를 포용해 주었고, 다가오는 한 시대가 이제 상실된 정신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 문화 관광의 시대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안동은 문화관광으로 발전하고 풍요롭게 살수 있는 시대를 맞이할 가장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시민의 뜻을 모으고 관광개발전문가를 확보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조상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현재 수많은 중견 문인들, 화가들, 사진작가들이 그처럼 자존심을 더 높이고 있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안동의 미래는 틀림없이 역사문화관광으로 빛나고 풍요롭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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