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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사는 삶과 살고 싶은 삶 사이에서(글/이은경)

이런 아침이 그립다. …먼동이 터 올 무렵 새가 우짖는 소리에 잠이 깬다. 잠시 기계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평온함에 흠뻑 젖었다가 서서히 일어나 이불을 갠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와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앉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얼 할 것인가? 두 시간쯤 채소밭에서 김을 매고 두 시간쯤은 집 지을 흙벽돌을 찍기로 한다. 오후엔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릴 계획을 세운다… 생각만 해도 벅차다.

이 책은 미국의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1932년∼1952년까지 20년 동안 버몬트 산골짝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쓴 것이다. 돈을 벌고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삶에 대응하여,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떠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인지를 목표로 하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아름다운 영혼들의 성장 기록이다. 두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삶은 이중인격을 만들어 낸다고 경고한다.

흙에 대한 그리움이 내 영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내 발은 여전히 시멘트 바닥 위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꿈을 현실로 옮긴 20여 년의 시골 생활을 더듬으며 그 원동력을 찾아,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가는 나침반으로 쓰려고 한다.

삶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두 사람은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사는데 필요한 물자를 사기 위한 돈을 버는데 보내야 하며, 소비하는 과정에선 돈이 힘이라는 사실 외엔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언제 일자리에서 쫓겨나 생계의 위협을 받을지 몰라 불안하며 온갖 서비스에 맡겨진 생활은 한 두 가지 문제만 생겨도 혼란에 빠지게 하므로 참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독극물이 첨가된 가공식품과 누가 무슨 약을 뿌려 길렀는지 확인할 길 없는 농산물에 몸을 내맡겨 사는 도시생활은 끝내 온갖 질병을 불러올 것이므로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시골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조화가 깨지고 수입 완전 개방으로 온갖 독극물에 무방비 상태인 우리나라 도시의 삶이 더 이상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우린 잘 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단순하고 평온하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찾아야 하는 의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은 우월감의 표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옷을 스스로 지어 입거나 꼭 필요한 옷만 구입해서 오래도록 입는다면(의생활), 몸에 필요한 영양을 온갖 열매로부터 그리고 건강한 흙에서 자란 채소로부터 얻는다면(식생활), 자신이 살아갈 집을 천연재료를 써서 스스로 짓는다면(주생활) 시장경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단순하고도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권위를 앞세우고 어느 한 쪽이 주입하기 일쑤인 교육 대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성장해 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아이들이 있는 가족도 얼마든지 시골에서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급자족 하는 삶을 꾸려가기 위해 밭을 일구고 양식을 가꾸며 먹을거리를 장만해 가는 과정에서 온갖 능력을 발휘한다. 건강에 필요한 영양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열매와 채소를 찾아 실험하는 과정과 일년 내내 채소를 신선하게 저장할 수 있는 창고를 개발하는 과정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집을 짓고 여러 가지 시설을 만들고 집을 고치고 도구와 장비를 만들고 고치는 일들을 하면서 말 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본다.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생각하고 계획하고 재료와 공구를 모았으며 기대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필요한 기술을 익혔다. 음식 한 가지만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먹어본 사람은 창조의 기쁨과 자립의 기쁨을 안다. 하물며 삶을 통째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은 얼마만한 기쁨일 것인가!

조화로운 삶을 실현시키기 위해 두 사람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하며 안 되는 것은 노동시간 교환이나 생산물 교환으로 해결한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오전과 오후 둘로 나누어, 빵을 벌기 위한 노동은 하루에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어떤 일을 하는 보람은 그 일이 성공할 수 있는가 어려운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그 일에 쏟아 붓는 노력에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가슴에 울려 퍼진다. 매순간, 모든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살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정해진 시간을 살다가는 우리, 어리석게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뒤로 미룬 채 눈앞의 모이나 쪼아대다 일생을 마치는 닭처럼 그럭저럭 시간을 쪼아먹다 가는 건 아닌지.

그들의 삶은 그들과 직접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씨앗으로 남아 곳곳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꽃피우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트피 꽃을 이웃에게, 남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아름씩 안겨주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시장경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꽃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설 때 그들은 가슴 가득 바람 없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안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영혼은 꽃향기처럼 퍼져나갔을 것이며 지금도 말없이 퍼져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 가슴에도 그들 영혼의 꽃향기 머물러 흙을 그리워하는 영혼을 살아 숨쉬게 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