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처럼 푸근했던 추억의 안동문화회관(글/김영수)안동문화회관은 내 집 다음으로 푸근했던 곳이었다. 14년 동안 방학과 주말을 빼고는 줄곧 거기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그곳을 숙소로 정했던 교수들이 많을 때에는 열대여섯 분이나 되었는데 그것은 다른 곳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관이었지만 난잡한 손님들은 받지 않아 여관냄새가 적었고, 대중 식당이었지만 부드럽고 아늑한 조명으로 번잡스런 식당냄새가 비교적 적었다. 7층의 건물 안에는 성당이 있었고 문화행사를 위한 크고 작은 공간들이 있어서 세속의 시끄러움을 크게 덜어낼 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순박한 눈빛은 마치 고향을 느끼게도 하였었다.
내게 있어 문화회관에서의 가장 큰 사건은 1986년 크리스마스 때에 천주교신자가 된 것이었다.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영원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늘 막연히 지니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3층의 성당을 들러본 것이 나의 삶을 그리워하던 방향으로 정확히 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그곳에 숙소를 정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한 채 여전히 방황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또 직장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서는 이따금 열리는 일층 강당의 음악회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어린이들의 합창회, 대학생들의 음악발표회, 성당 성가대들의 합창회 등을 보면서 행복해 했었다. 마치 내 집 뜰에서 벌이는 잔치를 주인의 느긋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듯 했었다. 또 우연히 2층의 작은 강당에 들러서는 어느 선교회의 모임으로부터 사랑의 정의를 감명깊게 듣기도 하였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히 채우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넘칠 때에야 비로소 이웃에게로 건너가 사랑이 된다는 것이었다. 메마른 영혼의 상태에서는 이웃을 감동적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화회관에서 주관하는 신부대학에서 내가 '말과 삶'이라는 주제로 몇 차례의 강의를 했던 기억도 있다. 말은 단순한 의사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구조적인 전체임을 말하면서 밤 한 때를 깨웠던 기쁨이 여운으로 아직 남아 있다. 길에서 가끔 그 때의 수강자들로부터 인사를 받기도 한다.
이런 '추억들을 지닌 안동문화회관'이 없어지고 말았다. 건물이야 그대로 있지만, 그곳의 향기를 이제는 더 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로서는 서운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먼 훗날까지도 내 기억의 힘이 특별히 미약해지지 않는 한, 나는 '안동'하면 '안동대학'과 함께 '안동문화회관'을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될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