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기사들의 임금이 없다?(글/이정희)
지난 겨울 초입, 수능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 대학의 입시 홍보전이 막 시작될 즈음.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한달 남짓 남겨두고 대학마다 학교홍보가 절정에 달했다.
그때 ‘입시철, 관광업계 때 아닌 특수’라는 기획 아이템으로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취재도중 만난 한 관광버스 기사는 “관광버스 업계가 말이 아니다.” “월급 없이 일하는 기사들이 많다.” 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지난 1월 말, 한 제보자가 찾아왔다.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구체적인 증거 자료를 가지고 와서 말이다. 그때 ‘설마’ 하면서도 그냥 덮어버리고 모른 척 했던 게 떠올랐다.
이번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감이 왔다. ‘말 된다!’
회사와 관광버스기사의 불평등한 이면계약
몇년 전부터 안동을 시작으로 경북 북부지역에 관광버스 기사들의 임금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월급을 안받고 어떻게 일을 할까?
회사는 관광버스 기사를 고용할 때 아주 불평등한 이면계약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체결한다. 체결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게 돼 있다.실업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조건으로도 일 할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안동과 같은 중소도시에는 50대가 넘어서면 마땅히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면계약서를 쓰고라도 일할 사람이 줄을 섰다는 말이 맞다.
주요 계약 내용은, 일단 급여는 무임금 100만원 이하 물피사고는 절반을 부담한다. 기사들이 차량 안에 설치한 기계(장착물)는 어떻게 처리한다. 등등…살펴보자면 사정은 이렇다.
첫째, 급여가 없는 대신 손님들에게 팁(봉사료)을 받아 쓴다.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손님들에게 팁을 강요할 수 밖에 없고 팁을 적게 주거나 주지 않으면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다. 기사들은 손님들에게 팁을 뜯어야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그게 임금이니까…
참고로 우리나라 법정 최저임금은 주 44시간, 월 226시간에 56만7천260원이다.
둘째, 사고가 나면 보험수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웬만한 사고는 기사가 부담한다. 관광버스 업체마다 전세버스 공제조합에 가입돼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있다. 사고가 나면 보험처리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업체는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알아서 처리한다. 기사들은 업체에 고용된 입장이지만 100만원 이하 물피사고는 처리비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 10만원 안팎의 잔 고장은 대부분 기사들 몫이다.
법적으로는 정비시설과 세차시설을 갖추게 돼 있지만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을 찾는 게 더 힘이 들 정도다. 회사는 나몰라라 하고 기사들은 생돈을 쓰지 않으려 하고 이러다 보니 자연히 안전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차량 내부의 시설물은 100% 기사가 설치하고 신규차량을 받으면 보증금을 건다. 지입을 하지 않더라도 관광버스 기사들은 업체에 고용되면 담당 차량을 한대씩 배정받는다. 퇴사할 때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차량 안에 TV나 냉장고, 노래방 기기, 좌석커버, 심지어 커텐까지 일체 장착물을 기사가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적게 해도 6-7백은 들어간다고 하는데 보통 천만원 상당이고 많게는 2천만원도 넘게 든다고 한다.
손님들이 시설이 잘 된 차량을 원하기 때문에 기사들은 차량에 돈을 투자해야만 벌이가 잘 된다. 어차피 월급이 없기 때문에 자주 자주 뛰어야 봉사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기사들은 새 차를 배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새 차를 배정받으면 보통 회사에 보증금으로 천 만원 정도를 걸어야 한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고처리를 거부하게 되면 이 보증금은 날아가게 된다. 그야말로 이면계약서는 기사들의 발목을 묶는 노비문서나 다름없다.
덧붙이자면 기사마다 계약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업주와의 관계에 따라 계약조건을 후하게, 빡빡하게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거부하면 쉽게 말해 그 길로 짤린다.
탈세의혹, 업계에선 관행처럼
탈세 의혹도 짙다. 한 관광버스 업체의 모기사가 회사와는 별도로 작성해둔 운행대장을 입수했다. 성수기엔 매일같이 장거리를 뛰었다. 이 기사는 팁을 제외하고 운송료는 고스란히 회사에 넣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매출액은 1년에 수억원, 그런데 소득세 격인 법인세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인건비다 운영비다 제하고 나니 소득이 없다는 뜻이다.
해당 기사는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자신이 벌어들인 매출과 다른 동료들이 뛴 매출을 얼추 계산해 봐도 신고금액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지도 않은 인건비를 어디에다 썼느냐는 것이다.
전직 관광버스 업체 대표의 말을 인용하자면 보통 세무신고는 매출액의 10분의 1정도만 한다고 한다. 업계에선 그게 관행처럼 돼 있다고 귀뜸했다.
관광업계 불탈법, 행정기관의 지도감독 촉구
회사측도 사정이 없는 건 아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지난해는 사스로, 올해는 조류독감으로 해외여행까지 완전히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농촌 사람들이 주 고객인데 농촌이 살기 어려우니까 이 사람들이 다니지를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적자행진이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요금 덤핑도 생겨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까지 요금이 40만원인데 지입차량은 35만원에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로 인해 관광버스 업계의 불합리한 관행이 용인될 수는 없다.
업계 스스로도 업체가 너무 많아 출혈경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임금을 주지 못하고 불법과 탈법을 양산하고 있다면 정리되는 게 맞다.
그러나 행정기관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 손님들의 안전을 담보로 한 불법과 탈법, 불합리한 관행을 외면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손님들을 위협하는 관광업계의 불,탈법에 대해 행정기관의 철저한 지도, 감독을 촉구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