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두뇌를 움직이는 사람(글/박명옥)
김성동씨(31)는 안동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서른에 가까운 해를 안동에서 보낸 전형적인 안동사람이었다. 안동김씨 호장공파의 27대손으로 태어난 그는 태화동과 평화동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2001년 상경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어머니, 5살 터울인 남동생과 함께 가족이 모두 안동에서 살았다.
1974년생으로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그의 성장기는 그 시절 안동에서 자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방과후면 운동장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술래잡기와 축구, 손야구를 하며 놀았고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법흥교가 생기기 전에는 '하임하'라고 불리는 농고 근처의 강가로 나가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공부에 눈을 떴던 것은 안동중학교 시절이었다. 성적에 욕심이 생겨 공부에 매달리면서 전교 2등을 기록했을 만큼 향학열을 불태웠다. 안동고에 입학한 후에는 공부아닌 데로 눈을 돌렸다.
그의 말을 빌자면 '안동에서 안 가본 커피숍이 없었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소개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저 몇 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소개팅 경험은 결국 카사노바는 아니었다는 말로 들렸다. 맘에 드는 여학생을 만나도 손 한번 잡지 못했을 만큼 그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소년이었다.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가 교육공무원이셨던 그는 소도시였던 안동에서 '시골정서'라는 건 모르고 자랐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수록 '도시도, 시골도 아닌' 안동은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보았고 사회현상에 관심이 높았던 그는 신문이나 방송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알라딘 웹기획팀장이 되기까지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93학번으로 입학해 대학시절을 보내는 동안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은 김성동씨 자신에게나 주변에서 생각하는 당연한 진로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 인터넷서점인 알라딘의 웹기획팀장이 되어 있다. 여기에는 2학년 때부터 몸담은 단과대학 학생회 활동과 어린시절 신문방송 쪽에 관심을 두었던 그의 사회참여적인 성향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그는 사범대 통신동호회를 개설, 운영하기도 했고 안동대 PC통신 BBS를 통해 대학 내의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을 고민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한 2000년 4월 총선시민연대 안동대지구에 몸담은 그는 바보버스라는 시사토론모임을 꾸리고 안티조선운동을 벌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되었지요. 본부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께서는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면 하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제가 의식했던 것 같아요. 시위에 참여하는 식의 운동보다는 학생회 체계나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제안하는 쪽이었지요."
졸업 후 1년동안은 도서관에서 임용고사를 준비했지만 대학내의 활동에까지 손을 놓치는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학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정치웹진이나 정치커뮤니티 운영으로 관심이 쏠렸다.
그런 그가 인터넷 서점에 몸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001년 서울로 온 그는 웹기획 쪽의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6개월만에 알라딘에 입사했다. 책을 좋아했던 터라 알라딘을 애용했던 그는 사장에게 직접 메일을 띄웠고 어렵지 않게(?) 입사했다.
알라딘 웹기획팀장으로 일하면서
그러나 처음부터 웹기획 파트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인터넷 서점의 편집팀에서 책의 줄거리를 비롯한 내용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 사회, 인문, 컴퓨터, 경제, 경영 등의 분야별로 나눠진 편집팀에서 컴퓨터와 경제?경영 분야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웹기획팀으로 옮겨온 것은 입사한지 1년 후의 일이다.
총 100여명이 일하는 알라딘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파트는 배송을 담당하는 물류쪽이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물류파트에 있다면 나머지 50명이 기획과 편집, 마케팅, 개발, 구매 파트에 나뉘어져 있다. 기획파트에는 단 5명이 몸담고 있지만 실상은 알라딘의 전체적인 설계와 서비스를 책임지는 중요한 업무를 진행한다.
“원하는 부서로 옮겨온 만큼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12시가 되기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었을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살았죠. 알라딘에서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개발자가 있고 홈페이지를 디자인하는 웹디자이너가 있다면 저는 중간자적인 역할입니다. 건축 설계가가 건축물을 설계하듯 웹사이트를 설계한다고 볼 수 있죠.”
인터넷 서점에서 웹기획이라고 하면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고객별로 구입하고 싶어하는 책과 이미 구입한 책 등의 목록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 ?나의 서재?는 알라딘이 처음 도입한 아이템이다.
김성동씨는 알라딘이 인터넷 서점 중에서 ‘서점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곳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 쇼핑몰과 일반 서점이 결합한 형태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들에서 일반 쇼핑몰의 성격이 짙다면 알라딘은 쇼핑몰보다는 서점 자체에 더 비중을 두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알라딘도 쇼핑몰적인 비중을 더 높이고 있다. 배너광고와 이벤트, 할인쿠폰 발행 등 마케팅적인 요인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물론 ‘책의 향기가 나는’ 알라딘을 선호하는 기존 고객들이 있는 만큼 서점스타일에 대해서도 지켜나간다는 입장이다.
안동의 후배들에게
현재 웹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도 알라딘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고시촌을 옮겨 다니는 취업준비생 시절을 보냈다. 2001년 1월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에 거처를 정하고 반년동안은 구직활동을 벌였다. 그해 8월 알라딘에 입사했지만 입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요즘의 취업준비생과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고 한다.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안동에서는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지요. 그래서 안동에서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선생님이 되는 게 가장 큰 목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니 지역차별이나 학벌선호는 일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힘든 것은 명문대 출신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웬만한 중소기업이라면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좀더 시야를 넓히고 자신감을 가지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지방대 출신에게는 정보가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런 안동의 분위기에 익숙해져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라딘에 입사할 당시 본인이 먼저 “알라딘에서 일하고 싶다”고 사장에게 메일을 띄운 적극적인 모습으로 취업에 성공했던 것을 보면 후배들에게는 귀담아들을 만한 조언이 아닐까 싶었다.
서울에서도 부럽지 않은 마음의 부자
현재 그의 본가는 95년부터 태화동 우성아파트에 입주해있다. 베란다에 서면 낙동강이 내려다보이고 강변도로에서 조깅을 할 수 있는 주거환경은 서울로 치면 한강이 바라보이는 압구정의 수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 단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웬만한 부자동네가 부럽지 않다는 그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생각도 한다. 돌아가면 제대로 된 지역 커뮤니티 운영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
김성동씨는 곧 개통될 고속철도가 안동을 경유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산업적으로 발전이 더딘 안동이 소외받는 것 같아서다. 그렇긴 하지만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안동이 지금도 그리 멀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지방출신이 절반인 동료들 중에서 그는 고향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안동에 가면 예전보다 황량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터미널 건너편에서 집으로 가는 2번 버스를 타면 사람이나 차들이 예전보다 더 줄어든 것처럼 썰렁하다. 한참 늘어난 것 같은 버스배차시간도 그가 서울생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갖게 되는 상대적인 느낌이기만 할까.
김성동씨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서울에서도 전통의 거리라고 불리는 인사동에서였다. 우리는 탑골공원 앞에서 만나 인사동의 골목을 몇 번 꺾어들어간 추어탕집에 몇시간 앉아있었는데 들어간 길을 되돌아나올 때 그가 전통적인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는 ‘전통의 거리’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나 인사동으로 약속장소를 잡은 것도 그였던 것을 생각하면 예전같지 않은 안동을 못내 서운해하는 것도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시골정서는 잘 모른다고 해도 그 역시 안동에서 보고들은 전통의 냄새를 그리워하는 안동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