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아내 배정희 할머니(글/이미홍)
얼핏 메말라 보이는 대지 위로 새순이 돋고, 겨우내 서걱거리던 뒷산의 검불들 사이로 진달래가 설핏 다가드는 3월이었다. 배정희 할머니를 찾아 개곡으로 가는 길가 야산에도 산수화의 노란 빛과 연분홍 진달래의 자취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시내에서 일직 방향으로 가다가 무릉을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틀어 산허리를 따라 들어가니 들은 대로 길가에서 보이는 곳에 마을회관이 있었다. 남후면 개곡리 마을회관 옆의 작은 구멍가게, 거기에 배정희 할머니(80)가 살고 있었다.
가게에 딸린 방안에서 인기척에 문을 열고 내다보고는 얼른 들어오라며 아랫목에 깔린 이불귀를 들어주시는 할머니의 손에는 삼 가닥이 들려 있었다. 삼을 삼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방안에는 우리가 할머니를 찾아온 이유인 독립운동가 고 박해옥 할아버지의 사진이랑 훈장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독립운동가 박해옥(朴海玉)의 아내로 불리는 배정희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래서 박해옥의 아내가 된 순간부터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기라도 한다는 듯 할머니의 이야기는 열 일곱 시집오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풍산이 고향인 할머니는 일제 시대 처녀 공출을 피해, 열아홉의 박해옥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박해옥 할아버지 역시 징용 문제로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집안에서는 혼례를 서둘렀고 그렇게 열아홉의 개곡리 밀양 박씨집 청년 박해옥과 풍산면의 흥해 배씨집 처녀 배정희는 부부가 되었다.
남후면 개곡리에 사시는 배정희 할머니(80). 독립운동가 고 박해옥 할아버지의 아내이다.
군위안부 모집과 징용이 시작되던 1940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때는 처녀들이 다 처녀 공출 피해 다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 신랑이야 그 때 장가가기에 알맞은 나이였지만 주인이 삼대 외동이었어. 그때는 남자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어른들이 결혼부터 시켰지.”
그러나 결혼을 하고 첫딸을 낳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박해옥 할아버지는 결국 1944년 징병 1기로 일본군 보국대 소속이 되어 중국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갓 태어난 딸을 안고 먼 중국전선으로 떠나던 남편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배정희 할머니는 그러나 그때는 모르고 있었었다. 일본군으로 중국전선으로 떠난 남편이 나라를 짓밟은 일본군의 앞잡이로 싸우기를 거부하고 일행 열 두 명과 함께 보국대를 탈출해 북풍한설 정월달 온 몸이 동상에 걸려가면서도 추운 강물을 건너 광복군을 찾아갈 만큼 심지가 굳고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후에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남편이 자랑스러웠다.
광복군으로 활동한 남편이 남들이 다 돌아올 때, 심지어 같이 보국대에 끌려갔던 인근 사람들이 다 돌아오고 전쟁이 끝나고 나머지 사람들도 돌아오거나 부고라도 왔을 때도 오지 않는 남편을 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주인이 안동에서 어물도가에서 어물 떼다가 팔아 살다가 그렇게 군대에 가 버리고 농사도 없고 재산도 없이 다섯 식구 먹고 사는 일이 막막했지. 그래 품앗이고 뭐고 이 일 저일 안 가리고 다 하고, 이 길쌈 삼아서 먹고 살았지. 땔감을 못해 냉방에서 자기도 숱했어. 그 때문에 바람이 들었는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신경이 돌아가더니 한쪽 눈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얼굴이 이렇게 됐어. 신경이 잘못돼서 그렇지 뭐. 그때부터 하도 지겹게 평생을 고생하며 삼을 삼았다고 몸서리나지도 않느냐고 이제는 아들딸들이 그만하라고 해도 이렇게 애들 안 보는 데서 재미삼아 놀며 이렇게 하지 뭐.”
그렇게 밤낮으로 온갖 품앗이에다 길쌈을 해서 시조모님과 시부모님 두 분과 어린 딸 하나에다 그녀 자신까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며 그녀는 그 시간들을 견뎠다.
“그때 죽었다고 날더러 시집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삼년 여 지나서 돌아오실 때까지 소식한 자 없었으니, 거기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왔는데, 해방이 되고도 일년이 넘어도 안 오시니 다들 죽었다고 그랬지. 그래 젊은 나이에 이 없는 집에 어린 딸 하나 보고 어떻게 사냐고 팔자 고치라고 사람들이 그래도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데. 늙어서 아무 것도 못하시는 시어른들 두고 그 어린 딸을 두고 내가 가기는 어디를 가. 그래 살다보니까 오시데.”
자랑스런 기억, 고이 간직한 모자
광복군이 되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남편 박해옥은 광복군이 해산되고 나서야 돌아오느라, 그것도 멀고도 먼 그 길을 각자 알아서 돌아오느라 해방이 되고도 1년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일본군 부대에서 도망친 열 세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건 세 사람, 남편 박해옥은 그렇게 사지를 넘고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같이 살아온 세 사람 중에 한 분이 일직에 살던 권준오씨라고 지금은 대구에 사시는데, 올 삼월 삼일절에 경주에서 행사를 하는데 초청을 받아 갔더니 거기에 오셨대. 강단에서 연설을 하시는 걸 멀리서 봤지. 한 분은 영양에 사시는 김칠랑 이라는 분이고.”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네는 비록 다 헤져가는 광복군 군복일망정 나라를 위해 싸운 남편의 광복군 군복이 내심 자랑스러웠고, 무사히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게 해 준 천지신명께 감사했다. 어렵던 시절 그때 입고 온 군복은 입고 생활하느라 결국 다 헤져 없어졌지만, 그네는 아버지의 자랑스런 기억을 아이들에게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광복군 모자만은 고이고이 간직했다.
그러다가 6.25때 피난을 가기 전, 그네는 그 모자를 돗가리 종이에 싸서 뒷마당에 땅을 파고 묻었다. 결국 그네가 현명했음이 드러났다. 어수선한 세상, 어지러운 피난길에 뭐가 어디로 갔는지 뭐가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피난생활이었다. 정작 그렇게 피난생활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모자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이 깜박 잊었다.
결코 쉽지 않은 세월
그러나 군에서 돌아온 남편은 다시 대한민국 국민으로 군대에 가야만 했다. 징집되었던 일본 보국대는 탈영한 상태였고 당시에는 광복군으로 활동한 건 인정이 되지 않았던 데다 삼대 외동 귀한 자식 출생 신고가 늦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제주도에 있는 교육대였다. 그곳에서 남편은 운전기술을 인정받아 운전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남편 박해옥은 뛰어난 운전 실력을 인정받은 건 좋은데 그 때문에 운전교관으로 7년이라는 만기를 다 채워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제대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내 배정희는 이럴 수는 없다 생각했다.
그 먼 중국 땅까지 가서 목숨을 걸고 탈출해 나라를 위해 싸우고도 다시 군대에 간 남편인데,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복무해야 한다는 건 너무 부당했다. 학교라고는 다니지도 않았고 배운 거라고는 훈장이었던 엄한 친정아버지 밑에서 오라비에게 도둑 공부로 배운 천자문 조금하고 언문이 다였지만 그네는 면사무소로 군부대로 쫓아다니며 편지도 쓰고 탄원서도 제출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모두 했다.
그렇게 온갖 수속들을 밟아 남편은 2년 반 만에 제대를 했다.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리고는 잠시 안온한 시간들이 있었다. 첫째 딸 아래로 동생들이 태어났고 본래 손재주가 뛰어난데다 운전기술까지 있던 남편은 기계를 고쳐주고 안동에서는 처음으로 경운기를 조립해서 파는 일도 하면서 제법 살림이 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남편의 다리는 오래전 일본군에서 도망쳐 그 추운 북쪽에서 그것도 정월달에 광복군을 찾아 헤매며 얼었다 터졌다를 반복했던 동상의 휴유증으로 인해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방에 불이라도 땔라치면 가렵다 못해 뼈 속까지 쑤시는 통증에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몸부림을 치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통증은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갔다. 울부짖다 두어 번 잠가진 후로는 고통이 심해지면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소리치는 남편이 행여나 딴 마음을 먹을까 잠시 들에 나가거나 시내 장에라도 가게 되는 날이면 집안에 약이란 약은 다 치우고 식구 중에 한 사람을 보초를 세우고 가야 했던 날들이었다.
몸이 안 아플 때는 남편이 일을 하기는 했지만 남편의 증상이 심해지면서부터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려웠고 먹고 사는 문제는 여전히 배정희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남편에 대한 원망을 해 본 적이 없는 할머니였다.
“원망을 어찌 해. 나라를 위해 싸우다 그리 되었는 걸, 그 못된 일본 놈들 몰아내고 내 나라 찾을라고 싸워 결국 이래 좋은 나라가 됐는데, 이래 할라고 애쓰다 몸이 아파 힘들어하는 걸 어찌 원망을 해. 아들 아버지이고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살아 돌아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내사 원망하는 마음을 우예 먹겠노? 내사 남편 보고 아들 보고 그래 살았지. 열녀상을 줘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말도 못 꺼내게 했지. 내 남편 내가 챙기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남들은 없는 살림에 애들 공부시킬려고 애쓰는 날 보고 뭐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죽어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지.”
나라위해 싸운 공덕이라 싶기도
첫째 딸은 특히 배정희 할머니에게 아픈 존재이면서 또한 자랑스러워 뿌듯한 존재다.
"첫애를 내가 그때 당시 국민학교엘 보내는데 동네 사람들이 없는 살림에 애를 남의 집에 남의 집살이를 보내면 입도 덜고 고생도 덜할 텐데 기집애를 학교에 보낸다고 다들 뭐라 그래. 그래도 내가 갸를 학교에 보냈어. 그거라도 내가 해주어야겠다 싶어서.
아를 굶기다시피 하면서 학교를 시켰어. 먹을 게 없어서 술막찌를 먹이고 피죽을 먹이고 굶기기도 하면서도 손바느질을 해서 기어이 학교를 보냈어. 그때만 해도 인근에서 여자애를 학교에 보내는 집이 거의 없었어. 그때 그렇게 힘들여 국민학교를 졸업한 큰 딸이 지금 시내에서 미용실을 크게 해.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거 하나만은 잘했다 싶지.
큰 딸이 어려운 살림에 고생을 제일 많이 했거든. 밑에 애들이야 힘들긴 해도 학교도 지 앞을 닦을 만큼씩은 했고, 큰 아들은 보훈청에 있고 둘째는 소방서에 근무하고 둘째 딸은 대구에서 슈퍼를 하고 막내딸은 식당을 하는데, 지금은 다들 제 앞가림들은 하고 사니까 든든해. 애들이 나름으로 다들 똑똑하기도 했지만 이게 다 주인이 나라 위해 싸운 공덕이라 싶기도하고. 손자 손녀들도 다들 똑똑해…."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80년대초 우리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고 정부에서 그동안 방치되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조사가 전국에 걸쳐 이루어졌을 때, 박해옥 할아버지의 집에도 보훈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다행히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1분대 대원들을 찍은 사진 속에 박해옥 할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군복이나 뭐 증거가 될만한 물건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뒷마당에 묻어두었던 모자를 생각해냈다. 그때는 모자를 파내어 흙 속에 묻혀있던 그대로 말려서 비닐에 고이 넣어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던 참이었다. 모자를 앞에 내놓았을 때 그 중 한 사람이 할머니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고 한다. 잘하셨다고, 장하시다고 툭툭 등을 두어 번 치던 그 손길에 할머니는 왠지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그 모자 덕분에 할아버지는 쉽게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박해옥 할아버지가 광복군을 찾아가면서부터 얻은 오랜 동상의 휴유증으로 조금씩 썩어 들어간 양쪽 다리를 끝내 절단하는 수술을 한 후였다. 다리를 잃은 박해옥 할아버지는 그러나 독립운동가, 독립유공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던 할아버지의 숱한 울부짖음과 그걸 지켜보며 살아온 할머니의 눈물이 있고 난 후에 얻은 이름이었다.
그 후 할아버지의 광복군 활동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들과 함께 공훈이 인정되어 1982년에 할아버지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뒤늦었지만,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할 일들이 이루어진 것뿐이지만 배정희 할머니는 감사했다. 지난날에 대한 보상 같은 건 아니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흘러간 것이었다. 단지 자식들 앞에, 손자 손녀들 앞에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로 기억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여서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
“이 가게야 그냥 저냥 하는 거지. 주인이 제대하기 전부터 조그맣게 시작했던 점방이 오늘까지 이렇게 하고 있는 거지. 애들이 자꾸 못하게 해서 이제 물건은 새로 안 해 넣어. 그저 있는 거나 팔고 하지. 들에 일하는 사람들 막걸리나 팔고 참거리나 팔까, 이걸로는 생계가 안되고 나야 독립유공자 가족한테 나오는 연금이 있으이 그걸로 생활하지.
그리고 삼이라도 이렇게 삼으면 생기는 돈은 손자 손녀들 오면 용돈도 주고 그러지. 그런 재미로 하지 뭐.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옛날 젊었을 때 만치 베를 곱게 짜지는 못해도 세가 쪼매 굵어도 그것대로 값을 쳐주니까 우리 같은 노인네들한테는 용돈벌이가 돼지. 아직도 이렇게라도 내 힘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아들은 자꾸 오라고 하지만 지금 내가 시내 아들집에 가서 뭐 해. 우두커니 앉아서 집이나 지키고 앉았지. 여기가 이래도 저녁이면 노인네들도 오고, 젊은 부인네들도 오고 놀러들 많이 와. 근력이 돌아가는 한 여서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
나이 들어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는 않아도 아직은 괜찮아. 눈이 안 좋아 옛날 인물이 하나도 안 나지만 힘닿는 대로 이래 삼도 삼고 친구들과 놀이도 하며 사니 좋아. 눈 수술을 한 지 한참 되는데 이 눈이 내 맘대로 안 돼 애들이 신경을 많이 쓰지만 어째. 그래 애들한테 내가 아프다는 소리 안 해. 아프다고 하면 한밤중이고 뭐고 달려오고 병원가자고 해서 아프다는 소리를 아예 안 해. 그냥 내 몸 건사할 수 있을 때까지 이렇게 주인 있는 데서 지내다 내 힘 없어지면 그때 가지.”
역사의 질곡 앞에서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판결이니 청산이니 하는 문제들로 시끄러웠던 게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배정희 할머니는 그때 할머니도 아들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기에도 바쁜데, 알아도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참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의 울분의 찌꺼기 같은 것이라도 어쩌면 기대했을까? 젊어 나라를 위해 싸웠던 대가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가신 고 박해옥 할아버지와 그 고통을 지켜보며 함께 그 세월을 감내한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그건 아무렇지 않게 던져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리를 절단한 후로는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한 할아버지였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이미 망
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동안의 치료로 오만 가지 약을 먹어 위를 버려 위장 수술을 해야 했고, 연이어 따라오는 휴유증으로 대장 수술도 해야 했다. 세 차례의 대수술을 하면서 그 수술비 대느라 자식들도 힘들었지만 박해옥 할아버지의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쳐갔던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고된 육신을 쉬게 하려는 듯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오륙년 남짓 지났을 때인 1988년 봄이었다. 박해옥 할아버지는 개곡리 집 뒤 야산에 묻혔다. 할아버지 묘에는 독립유공자 비석이 세워졌다. 1990년 박해옥 할아버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묘가 가까워 배정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나 큰 눈이나 비가 오고 난 뒤면 찾아가 무덤을 보고 온다. 배정희 할머니는 오늘도 낡은 구멍가게에서 삼을 삼으며 간간이 새참 막걸리를 팔며 개곡리 마을에 살고 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