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만들면 어디 정성이 들어가나˝ 안동포짜기 대물림 우복인 할머니(글/조정숙)
3년마다 한번 오는 윤달이 낀 올해, 사람들은 수의를 만들면 무병장수한다는 윤달을 기다린다. 여기저기서 수의 만들 삼베 내놓으라는 통에 어느 때보다 금소마을은 분주하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안동삼베의 본고장 금소마을에는 80년을 삼베와 함께 하신 배분령 할머니(99)와 배할머니의 며느리로 길쌈의 맥을 이어하고 있는 우복인 할머니(74)가 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어느 햇살 좋은 주말, 금소리는 삼베의 주원료인 대마 파종에 한창이다. 대마는 4월 중순경에 심어서 6월말에서 7월 중순경까지 수확을 한다. 이때부터 삼베를 만드는 일은 시작된다. 수확한 대마를 가마에서 쪄낸 후 잘 말려 껍질을 벗긴 뒤 가늘게 찢어 한 올 한 올씩 실을 뽑아내야한다. 그리고 가늘게 뽑아낸 실을 올틀에서 풀을 먹인 뒤 그늘에 말린다. 이 실들을 베틀에 짜내면 안동포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기 까다로운 안동포 만드는 일을 평생을 해 오신 우복인 할머니를 만나러 금소마을로 가보자.
"에이 옛날이야기 하면 뭐해…. 내가 저짜 안동대학교 지나가 있는 임동이라는데서 살았는데 열아홉에 일루 시집을 왔지. 그때는 농사를 마이 지어서 일꾼이며, 집안사람이며 식구가 많았지. 한창일 때는 시누이도 여와서 살았는걸…. 남편은 군대 삼년 살고 와서는 바로 장사길로 나가부랬어. 그래서 숫제 식구 수발은 내 차지였지 뭐."
젊었을 때 이야기는 재미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할머니. 열아홉, 금소마을로 시집오면서 할머니의 안동포 만들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다 연수생이다 그랬지만 할머니가 시집올 당시 만 해도 온 동네 대마 안 심은 사람이 없고 길쌈 안 한 사람이 없었단다. 그때는 지금처럼 돈벌이라기보다 굵고 성글게 만들어 일꾼들이며 가족들 옷 만들기 위함이었다. 요즘이야 수의로 삼베를 많이 쓰지만 불과 30년 전 만해도 여름에는 잘살면 모시, 못살면 삼베옷을 입고 겨울에는 명주옷을 해 입었다. 우복인 할머니도 시어머니와 같이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밤이 되면 열심히 삼베를 짜고 길쌈을 했다. 그 많은 식구들의 옷을 해 입히려면 일년 밤을 다 모아도 모자란다고 그때를 회상하셨다.
"동네방네 신식베틀이 있으이 70대고 80대고 하지. 옛날 베틀? 하머 벌써 다 치워불고 없지…. 우리 집에야 사람들 구경오이 놔둔기고. 나도 베 짤 때는 신식 베틀로 짜지. 그기 얼마나 편한데. 발에 거는 것도 없지, 앉아서 해도 딱 고정이 되이 편하지. 그래 신식베틀도 내가 가지고 있은 지 15년이니 신식이라 할 수 있나만은"
신식베틀이 생긴지도 벌써 20년 전이다. 굳이 신식이라 붙일 것도 없는 오래되고 낡은 베틀이지만 우복인 할머니에게는 보물1호다. 그 신식베틀로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갈 때 침대커버며 사위도포까지 지어주셨으니 말이다.
"병 고친다고 대마 한 뿌리 얻을 수 없냐며 전화가 자주오는데… 대마 갈면 간다고 신고해야하고 안 갈면 안 간다고 신고해야하는데 우째 줄 수 있겠노. 그래서 난 딱 잘라서 거절하지. 그런데 대마가 담에 좋긴 좋은가봐"
마약으로 유명한 대마를 재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금소마을에서도 집 앞 텃밭이라고 해도 신고를 하지 않은 대마가 있으면 ‘지서’로 붙잡혀간다. 그렇기에 어르신들은 대마 달라고 부탁하는 전화에 참 난감해 하신다. 아픈 사람 모른 척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우복인 할머니가 젊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한번은 허리가 아프셨다. 그래서 대마 잎으로 전을 부쳐 드시고 싶어 하셨단다. 부침개 한쪽을 드리니 한 쪽 가지고 무슨 약이 되겠냐며 한쪽을 더 드셨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한 삼일을 앓으셨다. 할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앓고 나신 후 한번도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셨단다. 그래도 할머니는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신다. 대마나 마약 같은 것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
"아예 삼베입기를 길을 들이지 말아야지 한번 입었다하면 마구 고마 몸에 붙질 않으니 딴거는 답답해 못 입어. 잘 다려 놓으면 남보기 깨끗하이 신세 자랑하면서 나갈 수 있지. 요새는 안동포가 귀하니까 딸 시집보낸다 그러면 도포에 사우 남방도 해주지 그뿌이가 침대커버에 안동포로 별거 다해가 보낸다. 거다 사돈 갖다드리라고 따로 챙겨 넣기도 하고."
할머니의 장롱에는 그 동안 모아놓은 안동포며 할아버지 도포며 보물창고처럼 삼베들이 가득 있었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열세의 삼베든, 옛날에 일꾼들이 입던 거라며 내보이던 여섯세든 우복인 할머니가 삼베를 만지는 손길에는 정성이 묻어 나온다. 안동포는 사람 손이 안간 곳이 없다. 실을 꼴 때는 허벅지에 데고 문질러야 하고 잘 꼬이라고 침도 발라야한다. 길쌈 역시 수작업으로 다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삼베 한 필를 만들고 나면 어느새 허벅지와 입술에는 피가 고인다. 그런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안동포이다 보니 어디다 견주어 보아도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요즘 박물관이며 방송국이며 신문사며 안 불려 다니는 곳이 없다. 얼마 전에는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들이닥치는 바람에 새벽까지 인터뷰를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으셨단다. 그래서 우리가 방문하기 전날까지도 감기가 독하게 걸려서 고생을 했단다.
젊었을 때는 낮에는 들어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날이 밝도록 길쌈을 해도 팔팔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금만 일을 해도 힘들다는 할머니의 모습에 길쌈과 함께한 인고의 세월이 묻어 나온다. 안동포 자랑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의 모습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뵐 수 있기를 기대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