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바로세우기에 평생을 건 권중희씨(글/김영희)

백범 김구선생, 그를 저격 암살한 안두희, 안두희의 백범암살 배후를 밝히고자 평생을 바친 권중희(1936년 출생)씨. 1987년 마포구청 대로에서 안두희를 몽둥이로 응징해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네티즌들이 모아 준 성금으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까지 가서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힐 기록을 찾고자 했던 사람.


그 권중희씨가 안동사람이라 한다. 만남을 약속하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부담이 얼마나 큰지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역사의식이 투철하고 강직한 사람을 그냥 현실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만나서 무슨 얘기가 될까 싶어서였다. 내가 백범 선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봤더니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부랴부랴 ‘백범일지’를 사서 다시 꼼꼼히 읽어나갔다. 혹 현재의 정치상황에 관해 질문을 할지도 몰라 신문도 자세히 읽고 중요한 부분은 메모도 했다. 탄핵정국에 관한 의견을 물어볼지도 모를 일이므로.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막막하고 두려운 기분으로 약속한 날짜에 일산으로 향했다. 일산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지하철역으로 직접 나와 주시기로 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면서 기다리는데 걸어오는 모습으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약간 마른 얼굴에 날카로운 듯한 인상하며 꼿꼿한 걸음걸이가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어릴 때부터 백범암살자를 내손으로 응징하리라 다짐

집이 바로 호수공원 옆이라 역에서 가까웠지만 오월의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한적한 곳을 찾아 공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시민들을 의식해서 조용조용 말을 하더니 안두희 얘기가 나오자 감정을 참지 못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어느 날 신문에 안두희 기사가 났어. 우리나라 여권은 나왔는데 미국 비자를 못 받아서 미국을 못 갔다고. 아 그래서 이제는 안 되겠구나,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밝혀내야겠구나 생각했지. 민족의 지도자를 죽인 반역범이 애국자인양 활개치며 살고 있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고, 또 그때 벌써 안두희는 나이가 들어 칠십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가 천수를 누리고 산다면 그건 칠천만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 생각했어.”


1981년 12월에 안두희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은밀히 이민을 가기위해 여권 발급을 받았는데 독립 운동 유관단체들이 그 사실을 알고 법무부와 미대사관에 항의하여 결국 안두희는 출국금지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독립운동 한 분들은 다 던지고 했지. 한 번 뿐인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부모처자 그런 미련, 그런 애착이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했는데 나는 목숨에 관련된 일도 아닌데 처자와 생활을 핑계 삼아 피한다면 안 되는 것이지. 어릴 때 백범 암살자를 내손으로 응징하리라 다짐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들 건사하느라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그 마음의 부채가 아주 심했다고. 우리 아이들이 어리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결심했지.”

1982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적

그는 신문에 보도된 안두희의 주소만 가지고 1982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다. 안두희의 집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집을 찾는데 만도 1년이 넘게 걸렸는데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거나 세대주를 처나 아들로 올려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잠실 가락아파트에 살고 있는 안두희를 찾아냈는데 처와 3남 2녀의 자녀는 이미 미국으로 건너가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안두희를 응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두희의 뒤를 캐내어 백범선생을 암살하도록 한 배후를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접근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죽으면 영영 알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안두희를 납치해서 자백을 받아내려면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어서 그때부터 동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함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계획대로 한다면 구속될 것이 뻔한 일이라 강요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사는 곳도 알아내고 뜻도 세웠으나 일을 실행하지 못하고 3,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안두희는 김포로 이사를 가 새 부인까지 얻어서 살고 있었다.


어렵게 동지를 모아 직장도 그만두고 일을 결행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실패로 끝나자, 그는 장기전으로 돌입해 안두희가 사는 마을에 방을 얻어놓고 빚쟁이에 쫒기는 사람 행세를 해가며 마을 사람들이나 안두희가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하면서 가까이 갈 구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안주머니에는 박달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 몽둥이 내려치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로 일보러 가는 안두희를 따라나선 권중희씨는 마포구청 앞 대로에서 몽둥이를 꺼내 ‘이 놈이 바로 38년 전 김구 선생을 죽인 반역자 안두희다’고 외치며 안두희를 응징하고 현장에 ‘반역자를 응징하면서’라는 성명서를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을미사변의 복수로 1896년 3월 용강군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이고 자신이 했다는 포고문을 붙이고 집으로 돌아간 일과 유사하다. 실제로 권중희씨는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이 부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 일로 권중희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35일 만에 풀려났다. 신문에 사건이 연일 대서특필 되면서 백범 암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안두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더 숨어버렸고, 단식농성도 해보고, 정치권에, 정부에 호소도 해보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지나간 일로 치부하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혼자만이라도 기어코 밝혀내야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그 후로도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여 백범묘소에서 안두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1991년 한 차례, 1992년 세 차례에 걸쳐 안두희를 응징하고 중요한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르기도 했다. 권중희씨는 12여년에 걸쳐 이루어낸 일을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돌베개, 1993)라는 제목으로 책을 묶어냈다. 이 책에는 그간의 일들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정신적 지주로 삼은 백범선생

권중희씨가 왜 백범선생에게 매료되어 백범주의자로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처음 백범을 알게 된 것은 중학시절 이었다. 안동의 경덕 중학교에 다닐 때 백범일지를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니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언제 독립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독립 후에 무슨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계산된 행동이나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수함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다. 꼭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안두희가 죽였다고는 하지만 동네어른들은 모두 분명 이승만이 죽였다고 하면서 수군거렸다. 그래서 그는  커서 꼭 안두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복수심을 갖게 되었고 그 진실도 캐고 말리라 다짐했다.


아무리 백범일지가 어린 중학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해도 평생 그 생각을 지키고 이루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권중희씨는 본인의 남다른 의식의 배경을 집안내력으로 설명했다. 그의 나이 4-5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른들이 하는 얘기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안동시내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였고 민족의식이 강하셨던 분으로 안동 주변에 동학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안동에 내려오면 할아버지는 치료도 해주고 한약이나 자금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아버지도 어린 그에게 지금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왜놈들은 금방 망하게 되어있다고 늘 말씀해 주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다른 집안과 달리 성 앞에 ‘영’자 하나만 덧붙여서 ‘영권’이라 했다고 한다. ‘영원히 우리는 권가다’해서 자신의 이름도 ‘영권중희’로 써서 해방이 되면 영자만 떼어내면 되도록 했단다. 당시 집안에 역사책이나 한자 책들이 많이 있었는데 책을 보면 역사의식이 생긴다고 해서 순사들이 와서 ‘순종국장록’등의 책을 함부로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가 중학교에 다닐 당시는 학교생활이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암울한 현실로 인해 걱정이 많던 시절이라 지금의 중학생들과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고 하면서 그런 시대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한다.


권중희씨에게는 부인과 2남 1녀의 자녀가 있다. 가족들이 그를 이해하는지 물으니 즉각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식구들의 도움 없이 오늘까지 올 수야 있었을까마는 부인의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큰 아들이 고대 법대를 다녔는데 법률서적들이 많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제때에 사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또한 자녀들에게 강하고 엄한 모습만 보여준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했다. 현재 딸은 결혼을 했고 아들 둘은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어려운 살림살이임을 알 수 있었는데 권중희씨는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들에 비하면 본인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았던 것이 생각났다. 안타까운 마음에 권중희씨에게 무슨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가 알면 화를 낼 일일 것 같지만.

의를 좇는 사람, 권중희씨

백범 암살 배후에 관한 무슨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지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까지 미국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관계 비밀문서 열람이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도 올 봄 이루었다. ‘오 마이뉴스’에 시민 기자 박도가 쓴 <의를 좇는 사람>이란 기사가 실리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권중희씨의 안두희 추적과정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박도 기자가 권중희씨를 미국에 보내기위해 독립자금 모집책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지지로 모금 13일 만에 3천여만원을 모아 1월 31일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46일간 미국에 머물면서 현지 유학생들과 관련 학자들의 도움으로 백범 암살 관련 자료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2월 2일부터 3월 10일까지 매일 7명의 인원이 출근해서 백범관련 문서를 찾아나갔다. 이 내용은 교육방송에서 3.1절 특집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자료들은 벌써 CIA나 국무성에서 이미 수거해 간 뒤라 정보가 될 만 한 건 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비록 큰 성과는 없었지만 백범 암살이후 제대로 된 조사 한번 없었던 점에 비춰볼 때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고, 현지 동포들 사이에서 ‘백범 선생 암살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기구’가 결성된 것도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범 암살 배후를 밝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권중희씨. 늘 그 움직임의 중심에 건강하게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또 그 열정과 수고가 속 시원한 해결로 보상받기를 기대해 본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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