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유명의 안개에 가려 그것을 듣지 못할 뿐이다(글/이건협)
육사 탄생 100주년의 3.1절을 맞아 KBS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국내 방송사 최초의 해외 취재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미비한 기록들과 부족한 증언들로 인해 많은 부분이 방송에서 제외되었다. 이런 내용들을 함께 나눔으로써 앞으로 이 부분들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계속되었으면 한다.
1943～1944, 육사가 머물렀던 곳의 정확한 위치는?
본적지 제적등본에는 육사가 “중화민국 북경시 내구동창호동(內區同昌胡同) 1호”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지금까지는 이를 “내구동 창호동”으로 해석해왔으나 이번 취재 결과 1943, 44년 당시 이런 행정구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지 전문가는 이를 내구(內區, 북경성 안) 동창호동으로 해석했는데 문제는 동창호동(同昌胡同)이란 지명은 당시 있었던 수천개의 호동(胡同, 중국의 골목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단지 동창호동(東廠胡同)이라는 지명은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중국 발음으로는 거의 유사했다.
따라서 이런 발음을 한자로 옮길 때 착오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한 이 지역을 확인한바 당시 일본 영사관과 육사가 주로 다녔다던 북해공원의 중간 지역이라는 점 또한 이런 심증을 굳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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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의 이활(李活)은 육사인가?
취재진은 광동성당안관에서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중산대학동성학생명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926년 중산대학에 다녔던 “이활”은 과연 육사일까? 취재진은 이 논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를 찾아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던 “중산대학의학원 학적표(1925～1927)”였다.
이 자료에는 당시 학생들의 사진은 물론 출신, 주소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활”의 정체를 확인할 기대에 부풀었던 취재진은 잠시 후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활”의 학적표에는 이름만 나와 있을 뿐 모두 공란으로 남아있었다. 과연 “이활”은 육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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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933년? 육사의 행적을 확인하다.
육사는 노신추도문에서 1932년 6월 상해에서 노신을 만난 사실을 감격적으로 회고하고 있다. 이것을 기초로 당시 육사의 행적은 상해->북경->남경(군관학교 입교)로 정리돼왔는데 남경과 가까웠던 상해에서 굳이 북경으로 다시 갔다가 남경으로 간 이유는 그동안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의문이 상해 노신기념관에서 해결되었다.
육사가 노신을 만난 양행불의 장례식은 1932년이 아니라 1933년 6월 20일이었다. 즉 육사가 남경의 군사간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침투 전 상해에 머물렀던 시기였다. 노신추도문에 나오는 1932년이라는 기록은 육사의 착오 또는 고의, 아니면 인쇄 과정상의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미발표 친필 유고 및 엽서 발굴
방송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육사의 미발표 친필 유고(시조) 및 엽서도 발굴했다. 1942년 경주 옥룡암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석초에게 보낸 것으로서 시조는 모두 2연으로 된 한글 시조였으며, 엽서는 여행 중의 감회를 매우 소상하게 적고 있어 당시 육사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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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한 얼굴, 그는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
1940년 여름, 육사가 퇴계원역에서 찍은 사진도 찾아냈다. 육사의 사진 중 지팡이를 짚고 있는 유일한 사진이다. 얼마나 몸이 불편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할 것이다. 함께 사진에 등장한 조풍연씨는 당시 육사가 독립군에 입대할 생각으로 북경으로 떠나기 직전이라고 적고 있다. 군관학교 사건 이후 독립운동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그간의 평가와는 달리 육사는 계속 무언가를 모색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발굴해낸 것은 큰 수확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아직까지도 찾아내지 못한 많은 자료들이 있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육사는 한평생 꿈을 추구한 사람이다. 육사는 저 세상에서도 분명 미진한 꿈으로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단지 유명의 안개에 가려 우리가 그것을 듣지 못할 뿐이다.” 가려진 안개를 한 꺼풀씩 걷어내는 일, 앞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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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협 프로듀서는 현재 KBS대구방송총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PD현장보고’, ‘생방송 토요아침마당’, ‘6시내고향’, ‘대경패트롤’, ‘화요진단’ 등 로칼 및 특집/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연출하였다. 최근에는 지난 3월에 방영된 ‘육사탄생 100주년 기념 3ㆍ1절 특집다큐-초인이여 광야를 노래하라’를 연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