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장에서 포목점하는 금광수, 남순교씨 부부(글/권태용)
소설가 박범신 선배 말에 따르면 중국 연변 땅에 가면 '첫날 이불' 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혼수품 가게가 있다고 합니다 그 집의 분홍이불 한 채 같이 덮고 자면 누구나 착한 짐승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찬란한 날이 올 때까지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눈비 오듯 해야겠지요．
-첫날 이불/안도현-
중앙시장 현대화 사업이 완공됐다더니 역시나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질척거리는 시장바닥 대신 산뜻한 타일들이 사뿐히 들어앉았다.
의류와 포목점에서 나는 나프탈렌 냄새 비슷한 낯익은 냄새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익숙한 냄새로 각인된 기억은 어느새 지난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두컴컴한 미로와 같은 좁은 시장골목을 누비며 새 옷을 고를 때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지. 단순히 새 옷을 산다는 흥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무언가 사랑받고 있다는,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기분 좋은 설레임. 그 유년시절의 어둑어둑했던 중앙시장의 골목어귀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달라진 환경만큼 나도 어느 새 나이를 먹었다.
귀하게 해서 만들어줘야 우리 마음도 편안하지
“약 30년 넘었나봐 처음 문을 연 게 한 72년 쯤 될 거예요. 원래 우리 시대는 전부 배고픈 시대였었는데 67년도에 제대를 해서 8월에 옷장사를 하러 다녔지. 옹천, 길안, 예안 장을 돌다가 경제가 조금 나아지니까 점포를 사서 들어오게 된거죠”
신시장 한 자리에서 중앙침구포목사를 운영한지 벌써 삼십년이 넘었다는 금광수(64), 남순교(63)씨 부부. 좁다란 시장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포목점. 한쪽은 이불점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금슬좋은 이들 부부를 보는 듯 했다.
“예전에 한창 잘 될 때보다 요즘은 반도 덜된다고 보면 돼. 우리는 장사를 오래했기 때문에 꾸준한 단골도 있지만 장사로 보자면 옛날의 3분의 1도 안돼. 규모가 적은 곳은 애를 먹지. 그래도 한복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지뭐. 신시장 안에 점포전체가 한 200개 가까이 되는데, 한복, 피복, 의류, 잡화.. 다 이런 거지. 원래 신시장이 안동에서 제일 컸어. 중앙시장이라고 불렀지”
원래 의복은 우리 일상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의관을 정제하지 않으면 외출을 삼갈 정도였고, 배를 곯더라도 옷을 기워 입더라도 법도에 맞춰 갖춰 입었던 그 시절. 불과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일일이 바늘 한땀 한땀 정성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었다.
“우리 시대는 살기가 어려웠지. 거의 다 한복을 많이 입었어. 월남치마라든가 요즘같이 이렇게 입는 옷은 못 입었고 거의가 한복입고 생활했지. 요즘은 결혼이나 회갑, 칠순때나 한복입을까…”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는 의복이지만,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변화의 폭이 큰 것이 또 의복이 아니겠는가. 한복 자체를 입는 일도 크게 줄었지만, 한복의 디자인이나 소재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다.
“한복도 소재가 자꾸 바뀌고 있지. 옛날에는 전부 면. 그 중간에는 공단, 물실크. 이제는 깨끼, 자연염색. 포도물 딸기물… 색깔이 아주 다양하게 나오지. 자연염색은 공도 들고, 그만큼 소재도 좋은 것으로 해야되고.”.
사실 자연염색 뿐만 아니라 한복이라는 옷 자체가 품과 공이 여간 들어가는 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색상 좋은 디자인을 골랐다고 해도 바느질 작업에서 어긋나버리면 모양새가 나지 않는 것이 한복의 특성. 그래서 이들 부부는 마진이 적고 값이 좀 비싸더라도 수공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한복을 만들어주니 칭찬이 입소문을 타고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한 몫이다.
“우리는 한복을 수없이 팔지만 손님 한 분 한 분은 자녀들 한둘 키워서 혼수품 할 때면 그게 얼마나 귀중한 일이겠어요. 그러니 솜이나 소재나 신중하게 해서 귀하게 해서 만들어줘야 우리 마음도 편안 하지. 옷도 키나 사람 얼굴이나 몸집에 따라 권해주는 것도 달라. 색상이나 문양이나 일일이 사람 따라 판단을 해서 권해주고 정성을 다해서 옷을 만들어 줬을 때. 사람들 많이 모였을 때 신중하게 만든 옷은 표가 난대요. 외국에서도 촬영을 그렇게 많이 한 대요. 신부 이쁘다는 소리보다 옷 이쁘다고 서로 찍을라고 하고…. 그래서 옷 해 간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런 이야기 해 줄 때. 그때가 제일 보람있고 좋지.”
외국사람들도 경탄을 하고 있듯이 한복의 아름다움은 섬세하면서 강렬하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맛에 있다.
특히 주단은 곡선미로 상징되는 한복의 선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옷감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옷감이 색의 대비에 따라, 수의 위치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한복에도, 우리 살아가는 일에도 음양조화가 다 있지
남치마에 옥색저고리. 홍치마에 노랑이나 연두 저고리. 자주치마에 분홍저고리가 기본이지만, 요즘은 이런 원칙보다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복도 유행을 타지. 해마다 수가 달라지고. 소재도 달라지고. 해 입는 벌 수도 달라. 옛날 같으면 신부 옷은 세벌 다섯벌.. 옛날에는 홀수로 했어. 지금도 기본은 그렇게 합니다. 원래 한복을 짝수로 안한다고 그래.
제사에 쓰는 과일도 홀수로 하고. 한복도 맹 그래. 옛날 그대로래. 음양조화로 하늘땅. 신부는 땅이니까 붉은 치마. 저고리는 하늘 높은 뜻이니까 초록이나 푸른빛. 홍실청실같이 한복에도 우리 살아가는 일에도 음양조화가 다 있지”
그 음양조화를 깨트리는 것이 바로 요즘 만연하고 있는 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이혼이라고 한다. 늘 아름답고 고운 것만 만지면서 살아와서 그런지 금술이 더 좋아 보인다는 필자의 말에 허허허 웃으시는데,
“남과 남이 모여 서로 고생하면서 함께 살아가는데 정분이 좋아야지 안 좋으면 어예노. 우리는 삼남매 있는데 다 결혼해서 잘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은 이혼하는 걸 보면 젤 안타깝지. 옛날에 우리 시대에는 결혼하면 끝까지 살아야한다는 집념이 있지만 지금은 기분이 안 맞아도 이혼한다 그러고… 안타까울 때가 많지. 동방예의지국이고 안동이 미풍양속이 다른 데보다 투철한데 그런 소리 들으면 끔찍하지. 안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되는데…. 안동이 영남선비고 양반의 고장이라고 그러는데 이혼이나 무슨 사건 있다 그러면 진짜 안타깝고 놀랠 때도 많고.”
살아가는 풍경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엊그제 세상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들은 오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하고, 당장 오늘 안보고는 못사는 사이 같아도 내일 남보다 못한 남이 될지는 모르는 일.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변해가는 시대이기에 더더욱 변하지 말아할 것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한번 만나는 게 영원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성이 다른데 자기마음에만 맞을 수가 없거든. 항상 양보하고 서로 생각하면서 이해하면서 산다면 이혼은 있을 수 없죠.
전부다 이기주의 때문에 이혼이 생기는 거야. 애들도 요즘 봐보세요. 태어나면서부터 메이커 옷이래야 되고 애들 좋다는 거 다 해 줘야 되고. 우리는 어른들한테 종아리도 맞고 말 안 들으면 대문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지금 애들은 어디 그래요. 부모도 못 말리는 거래. 그 애들이 크면 어떻게 될 거냐고.”
마음이 부자라야
살아온 연륜 때문인지, 아니면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이래저래 사람사이의 인연과 세상살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데, 사회전반에 불고 있는 웰빙바람은 생활방식마저 바꿔놓고 있지만, 정말 잘 산다는 것, 사람답게 잘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마음이예요. 마음이 잘살아야 잘사는 거지. 마음이 부자라야 돼. 돈만 생각하고 돈에만 집착하면 항상 돈에는 괴로움이 따르게 돼. 마음이 편해야 부자야. 부부간에도 암만 돈 잘 벌어봐요. 외도라도 하면 그 가정은 아주 불행하지. 마음의 부자가 제일 부자야.”
그렇게 늘 마음공부를 해서일까. 색색으로 늘어뜨린 주단만큼이나 곱게 늙어가고 있는 금광수 남순교씨 부부.
지금도 이 땅 어딘가 에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눈비 오듯 하겠지만, 삶의 진실은 어쩌면, 세상사를 뒤흔드는 위대함이 아니라 ‘낡아도 좋은’ 사랑에 있지 않을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