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참모습 찾기(글/이해영)안동향교의 의미있는 모색
8월 17일 이산가족들이 상봉을 하던 그 시간쯤 안동향교에서는 뜻 있는 한 모임이 있었다. 안동향교가 주관한 그 모임은 안동지역 향교 서원 관계자 간담회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인원은 30여명 정도로 향교나 서원의 관계자, 문중의 종손들이었다. 그분들은 대부분 6-70대의 어른들이었는데 간담회의 논의사항은 바로 전통문화를 어떻게 잘 보존하고 알리고 현대사회와 만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간담회의 주제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었다.
필자는 우선 이러한 논의가 안동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데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그 분들의 말씀은 서원관리의 문제, 문중유지의 문제, 도덕회복과 전통문화의 계승 문제 등이 주를 이루었다. 어떻게 전통의례를 뒷사람에게 전할 것인가. 그리고 외부세계에 안동의 진면목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논의되었다.
이미 그분들은 추로지향, 양반고을, 아직도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안동의 명성에 비하여 안동의 현실은 전통문화와 안동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들을 안동이지 볼 안동은 아니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렇다. 안동의 현실은 외지 사람들이 안동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지니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사실이다. 물론 속내를 잘 살피면 아직도 안동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하회마을에서 안동의 전통문화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안동의 전통문화는 전통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배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전통문화는 안동 사람들의 삶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안동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바뀌고 의식이 바뀌어가면서 그 전통문화도 정신세계도 상당부분 원형을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아직도 안동에는 미약하나마 전통의 숨결이 살아 움직인다. 필자는 안동의 전통문화와 정신세계를 몇 번에 걸쳐 엿볼 수가 있었다.
한 종가의 상례와 또 다른 한 종가의 불천위 제사와 또 다른 한 종가의 길제에서이다. 상례에서는 그 의례 절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경건성을 보았다. 불천위 제사에서는 축제처럼 조상을 기리는 수많은 자손들에게서 조상에 대한 숭모의 념을 느꼈다. 길제에서는 앞으로 종가를 유지해가야 하는 젊은 종손의 표정에서 큰 기와집 무게만큼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경건성과 숭모감과 젊은 종손의 고뇌는 현재 안동의 속내이다. 이는 안동 주변의 수많은 서원 건물이나 종가 건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동의 참모습은 안동 사람들의 삶에 배어 있는 속내인 것이다.
삶속에 녹아난 정신
경건성과 숭모감이 무너져가고 있다. 안동문화의 기반인 수많은 유교문화의 흔적은 경건성과 숭모감의 원천이지만 현실적 고뇌의 근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새로운 만남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물론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안동문화의 핵심은 바람직한 정신세계이어야 한다. 추로지향이라면 그 정신이 살아 있어야 추로지향이다. 퇴계가 남긴 유물이 아니라 전해 온 퇴계의 정신이 바로 안동의 참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정신이 안동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가 되었을 때 안동은 알려진 이름과 실상이 상부한 진정한 안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어떤 분들은 훌륭한 조상을 두었다는 것을, 훌륭한 가문이라는 문중의식을 안동의 정신으로 여기는 듯하였다. 물론 조상이 훌륭하다는 사실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조상을 기리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바로 내가 그 조상의 훌륭한 정신을 이어 내 삶속에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즉 올곧은 정신이 내 안에서 녹아져 내 삶 속에서 바르고 경건하게 행위로서 드러날 때 나는 진정 안동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안동의 진면목은 이렇게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세대간 의식의 골 메우기
그런 점에서 안동의 어른들이 향교에 모여 안동의 정신문화의 장래를 걱정하고 새로운 만남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어른들은 너무나 변해버린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아직은 정리를 못하고 있었다.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과 삶은 살아남기도 버거운 것이었다. 윗대로부터 이어 받은 것은 넉넉하지 못하였고 전할 대상인 아랫대는 이어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말로 도덕성 회복이니 전통문화의 계승이니 하고 외쳐도 숨만 가쁠 뿐,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향교에서 사회교육원을 설립하여 구체적인 행위로서 경서 의례 교양 교육을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교육의 장은 일방적인 도덕관의 강조이거나 지식이나 기능의 전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윗 세대와 아랫 세대 사이의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세대간에는 알게 모르게 문화적 갈등이 심각해지고 전통적 의식과 현대적 삶 사이에는 복잡한 긴장이 끼어 들었다. 헤어짐의 골이 깊은 경우에는 만남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이해와 상호 존중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그러므로 안동의 어른들은 안동의 젊은이들을 따뜻하게 사랑으로 품어주고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편안하게 받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호간에 믿음의 만남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안동의 정신문화가 배어있는 서원이나 종가 등은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한다. 흔적없는 곳에서 정신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다. 서원은 건물을 관리할 주사 자체가 많이 비어있어 잡풀이 무성하기 십상이고 큰 종가 건물도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비어있지 않아도 노인 한 분이 지키고 있는 일도 적지 않다. 서원의 주사가 비고 종가에 아무도 살지 않아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무랄 일도 못된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누구도 옛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지금와서 서원의 교육기능을 되살릴 방법은 전혀 없다. 종가에서 삶을 꾸려갈 방안이 없는데 종손이라고 종가만 지키고 있을 수도 없다.
제향 참여를 통한 참모습 찾기
구체적 방안이라도 종가의 일이야 종손과 문중 사람들이 알아서 할 노릇이다. 하지만 서원이나 사우의 경우는 이런 방안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원의 교육기능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존현을 위한 제향의 기능만은 이어나가야 한다면 문제는 참여자이다. 언제까지 나이든 어른들만 제행에 참여할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제향의 경우 안동의 젊은이들, 아이들이 참여하는 제향이 되었으면 한다. 이는 젊은이들이 옛 어른을 만나고 그 분들의 정신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내가 참여하는 제사만이 의미가 있다고 공자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단순한 제향 참여만으로는 어렵다. 옛 정신을 만나는 일이 일회성이고 귀찮은 행사에 지나지 않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단위나 직장 단위로 서원이나 정자 등을 맡아서 청소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었으면 싶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봉사도 수행평가의 대상이 아닌가. 문화에 관심을 갖는 몇몇 가족단위의 관리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에 청소하고 관리하던 서원의 제향에 참여한다면 저절로 경건함과 조상이나 선현에 대한 숭모의 느낌을 지니게 될 것 아닌가. 몸으로 다가서고 만나지 않으면 제대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것이므로 내 정신도 만나고 몸도 만나야 정말로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안동의 정신을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면 안동의 전통문화 안동의 정신은 저절로 되찾아진다. 떠난 고향은 어머니의 아련한 젖 냄새와 같은 향기로 기억된다. 안동에는 아직도 전통문화라는 어머니의 젖냄새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 그 젖냄새의 기억은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향교의 간담회장에 나오신 어른들 중 여러분이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 소리가 들렸다. 모시 두루마기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밖으로 나가서는 어른을 보면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삶의 편의성 아래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동시에 삶의 지향, 인간다운 삶이라든가 그것을 추구했던 안동의 선현들의 삶과 현재의 안동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안동의 젊은이들에게 안동은 없고 앞으로 안동에 안동의 정신과 향기는 없게 될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