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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농부의 일년 농사(글/권영도)

작년 들어 부쩍 호미질을 하고 싶어서 대전 근교를 찾아다니며 손쉽게 채소를 가꿀 수 있는 공간을 구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았으나 눈에 띄질 않아서 망설이던 중에 어느 분의 소개로 충북 청원군 부용면 소재의 공기를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꽤나 넓은 면적이었으나 시기적으로 늦어서 작물을 심고 키우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우선은 혼자 시작하는 것보다 같이 풀이라도 뽑을 수 있는 회원을 모집키고 하였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둔산에서 치과병원을 경영하시는 K원장님, 같은 직장의 K교수님, 모회사에 계시는 J이사님과 넷으로 회원을 구성키로 했다. 작물로는 고구마, 고추, 호박, 옥수수, 들깨, 상추, 파 등으로 선정하고 주말을 이용하여 시간활용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우선은 몇 년간 농사를 짓지 않던 땅이라서 잡초가 무성하여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땅을 소개하셨던 경주김씨 문중의 총무님과 상의한 결과 전체 면적 중 사용할 부분에 거름을 뿌리고 로터리를 한 후 일부는 채소를 위해 두고 나머지를 농기계를 빌려서 골을 만들어 고구마와 들깨를 모종을 구하여 심기로 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마을에서 이를 협조해 주실 분을 찾아서 부탁하고 아울러 발효된 계분(鷄糞)도 알맞게 구해서 뿌려주는 조건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급하였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종을 구하고 심는 작업이 문제가 되었다. 우선 고구마를 생각하고 가까운 시장에서 모종을 구해 보았으나 시원칠 않아서 유성장터에 가서 고추상회를 찾아 알아봤더니 겨우 구할 수 있다기에 부탁을 했는데, 정작 고추모종은 결국 구하질 못하였다. 이른 봄에 의성 단촌에 계시는 누님이 20포기를 일부러 갖다주시는 것을 두 포기를 제외하고는 심을 곳이 없어서 남에게 주었는데 그것조차도 후회가 되었다. '올해는 부득이 포기하자! 그러나 다음해에는 이른봄부터 필히 대비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첫모종

우선은 고구마 모종을 사서 정성껏 심었다. 회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루종일 심었으나 숙달되지 않은 일이라서 힘이 들었다. 비록 남들보다 한달 가량 늦었지만 잘 자라서 수확이 충실하기를 간절히 기대하였다.
다음은 들깨 모종을 구하여 몇 골 심어보고 한쪽에는 시내 종묘상에 가서 당근, 파, 열무, 배추, 상추씨앗 등을 사서 작게 골을 타고 뿌렸더니 예상보다 잘 올라왔다. 그러나 여름 초에 가뭄이 심해서 성장에 크게 어려움이 있었다.
또 하나 돈부(양대)씨를 뿌려보았더니 이놈은 힘이 좋아서 무엇보다 씩씩하게 싹이 올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돈부를 심어서 그 잎을 살짝 익혀 된장을 맛있게 끓여서 쌈을 싸서 먹으면 일미중의 일미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것이 호박잎보다 더 맛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게다가 그 열매는 따서 삶아 먹거나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 때 떡고물 먹는 등 활용가치가 높다.
그러나 작년에는 늦게 쓸모 없는 비가 많이 와서 특히 농사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장마가 오래 지속되니 잡초제거에 많은 힘을 쏟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고구마밭의 잡초는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자라서 이것이 고구마 밭인지 잡초를 전문으로 키우는 밭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만큼 되었다.
마을 어른께서 걱정하시길"아마 올해는 밭을 잡초로 인하여 묵힐 것이다"라고 하시기에 "그런 일 없을테니 안심하십시오"하고 말씀하셨다. 막상 대답을 했지만 약간은 부담이 되었다. 또한 처음부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아침저녁시간을 이용하여 김매기를 실천할 각오였으니 수확을 위해서라기보다 밭을 얻어준 분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고 남의 마을에 들어와서 농사랍시고 시작한 입장에서 밭에 풀이 그득하여 그린필드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땀 흘려서 나쁠 것은 없으니 솔밭에서 쉬어가면서라도 끈기있게 김을 매어보자고 다짐했다.

영락없는 새내기 농부

일을 하다가 땀이 많이 흐르고 힘들 때 솔밭 그늘에 올라가 땀을 식히면서 음악을 듣거나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는 즐거움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다가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이상으로 시원한 자연바람에 설핏 잠이 들기도 하고, 해가 기울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을 쯤이면 벌떡 일어나 다시 호미를 들고 밭고랑을 타고 앉으니 이는 영락없는 새내기농부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나 더운 날씨 밭고랑에 앉아서 호미자락을 잡고 잡초를 제거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라고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더위는 유별났고 비가 자주 와서 밭에 잡초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자랐다. 잡초의 종류는 바랭이, 참비름, 피 등이었는데 특히 피는 그 뿌리가 엄청나서 제거하려면 힘이 꽤 들었다. 심지어 호미가 뚝하고 부러져서 못쓰게 된 경우도 있었다. 아주 더울 때는 30분 가량만 호미질을 해도 런닝셔츠가 흠뻑 젖어서 오히려 목욕탕 사우나 보다 훨씬 땀흘리기에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쨌든 건강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고 마을 어른들이 "그 많은 풀을 깨끗이 제거하니 보기에도 좋구먼"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가 제일 흐뭇했다. 밭 주변에는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코스모스, 해바라기 같은 꽃을 심어 그야말로 야외화단을 꾸며볼 구상도 했으나 구상으로 끝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새벽같이 갈려가서 이슬을 맞으며 풀을 뽑은 후 해장국을 먹던 일, 학과의 교수님들이 밭 주변에 팽이와 삽을 동원해서 땅을 일구고 그 자리에 열무와 배추씨앗을 뿌리던 일, 저녁 늦게까지 풀을 뽑다가 아파트 대표자회의에 참석하려고 신탄진까지 와서 택시를 타고 열심히 달려와 얼굴을 내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쳐간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추수가 걱정되었다. 예상보다 약간 빠르게 무서리가 내려 고구마 잎이 삶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을 내어 그 열매를 캐어 마을 어른들과 여름내 풀을 뽑아주시고 걱정해주셨던 분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너무 늦게 심어서 뿌리식물인 고구마가 충분히 자랄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지난 여름 한철 땀 흘리며 건강관리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들판에 쓰러진 벼와 일그러진 농부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다.

특히 우리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큰 타격이 안되었지만 시골에서 한 여름 내내 김매고 거름주어 가꾼 곡식들이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하여 벼가 쓰러지고 채소 및 과일이 크나큰 피해를 입어 허탈해하는 농민들을 보노라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나 스스로가 농촌에서 자란 농부의 아들이고 고향 안동에 옛친구들은 아직도 시골에서 하루종일 논밭에서 허리를 굽혀 땀흘리며 숙심히 일하고 있기에 이 시간도 내 마음은 편하지가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올해는 농산물을 좋은 가격으로 팔아서 자녀들의 학비와 아들딸 결혼 준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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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도

47년 남선면 신석리 출생으로 남선초등학고, 경덕중학교, 안동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항공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대전산업대학교 정보통신·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