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연주해가는 사랑의 세레나데, 김영규-오애은 새내기 부부(글/임종교)2000년 1월에 부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상큼한 신혼방을 구경해볼까 한다. 아직은 부부로써의 삶이 라고 이름 부치기에도 낯설지 모르는 김영규(30), 오애는(27)씨는 결혼 8개월된 새내기 부부다. 옛날처럼 문구멍을 뚫어보는 대신 밤 9시 방문이라는 견례를 무릅쓰고 이를 부부를 만나러 갔다. 눈치 없게, 신혼집에를, 밤에, 말이다.
김영규, 오애은 부부는 옥동 3아파트에 둘만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깨끗하게 정존된 집이며, 아내 애은씨의 손길이 닿은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신혼집은 신혼집만의 독특한 향이 있다. '음∼이 깨소금 냄새…' 늘씬하고 다소 왜소해보이는 아내 오애은씨는 밤에 침입한 객이 귀찮고 번거로울텐데도 살갑게 반겨준다. 그 뒤로 검게 그을르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영규씨가 눈인사를 건넨다. 얼핏보기엔 외적인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다. 그러나 막상 얘기를 하는 동안 너무도 비슷한 그들을 발견하는 솔솔한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연인에서 부부로
그들은 영남전문대 선후배 사이였다. 학교에 다닐 즈음만 해도 둘은 편안한 선배와 성격좋은 후배로 지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영규씨가 건설업쪽으로 직장을 구해 안도으로 내려오게 됐고, 애은씨는 그 즈음에 고향인 의성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영규씨는 일이 힘들 때마다 학교 때 절친한 후배를 만난다는 이유를 보태서 뻔질나게(?) 의성을 드나들었고, 그러면서 두 사람의 사랑을 키워갔다.
(애은)"신랑이 98년 6월에 공부를 할려고 준비를 하다가 취업을 결정했거든요. 여기에는 연고가 없었고, 의성 가까이에 제가 있었으니까 힘들 때 와서 술 한 잔씩 하고 그랬었지요. 아무래도 혼자 있으니까 마음도 빨리 다가서고 그랬던 것 같애요."
(영규)"저는 한 서른세살쯤 결혼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대개 이뻐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결혼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 길로 데려가서 반지를 사주면서 결혼하자 그랬죠."
이렇게 느닷없는 청혼을 받은 애은씨에게 그때의 심정이 어땠냐고 뻔한 질문을 던지자 바로 영규씨가 "안하면 자기가 손핸데"하면서 선수를 친다.
애은씨 또한 무척 기뻤다고 한다. 이사람 하고 결혼을 해야겠다고 맘에 결심을 한 건 아니지만 만남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싹텄던 것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인연이 이렇게 따로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학교 다닐 때 영규씨는 토목과를 다녔지만 교지편집실에 있었고, 애은씨는 의상과였지만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각기 대학에 들어왔으니 뭔가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러다 보니 과는 달랐지만 자연스런 만남이 가능했다. 학생운동이라는 것도 학생들 관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을 때 그 둘은 대학인의 삶이란 명제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교류하면서 지냈다. 이렇게 대학생활 또한 분명하고 소신있게 보낸 두 사람은 결혼생활도 마친가진 것 같다.
불어난 몸무게만큼의 사랑
결혼으로 인해 애은씨보다 영규씨가 더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순전히 필자가 여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은 외적으로도 영규씨에게 결혼은 15㎏나 불어난 몸무게를 선사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젠 일마치고 내집이라고 갈 곳이 있고, 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게 제일이죠."
결혼의 맛을 제일 먼저 이렇게 표현하는 영규씨. 어렸을때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늘 혼자 문을 따고 들어가야했고, 안동으로 직장을 오면서 근 5년동안 자취생활을 하는 바람에 컴컴한 방에 들어가고, 조미료 맛나는 음식 먹기가 싫증이 났을 법도 하다.
이런 영규씨에게 애은씨는 자신의 사랑을 한껏 선사했던 것 같다. 애은씨와 연애를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가은 애은씨가 직접 밥을 해준 적이었다고 한다. 영규씨는 애은씨가 요리책을 보고 정성스레 만들어줬던 그 음식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감동스러웠다나.
"난 장가가면 그런 거 맨날 얻어먹는 줄 알았다고요. 맨날 해주냐고 물으니까 그런다고 하드라고요.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다니까요"
하면서 농담을 한다. 남편 영규씨는 이야기하는 연신 위트있는 말로 어색할 법도 한 분위기를 리드해주었다. 둘만 있을 때도 영규씨의이런 위트가 많이 발휘될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새로생긴 가족들
결혼이 한 남자와 여자만의 결합은 아닐터, 서로의 가족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애은씨에겐 며느리라는 자리도 생기고, 영규씨에겐 사위라는 자리도 생긴다. 특히 영규씨는 부모님에게 딸과 같은 존재였다. 딸이 없는 집이라 영규씨가 딸 역할까지 다 해왔는데 한 3년쯤 있다가 결혼한다던 아들이 갑자기 결혼한다고 여잘 데리고 나타났으니 준비를 미처 못한 부모님은 많이 당황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첨엔 애은씨를 기껍게 맞아주시지는 않으셨던가 보다.
"처음에 시댁갈 땐 긴장하게 되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이름 부르시면서 딸처럼 대해주시고, 예쁜거 있으면 사두셨다가 주시고, 쇼핑도 같이 가면 우리 딸이라고 그러시고…좋아요."
이렇게 된데는 아무래도 계기가 있었을터, 결혼을 하고 바로 어머님 생신에다, 할아버지 제사에 설날 명절에, 할머니 제사까지 줄줄이 집안 행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집안 분위기도 익숙치 않은 애은씨가 겁없이 일을 잘하니까 그것이 시어머님한테는 고마우셨던가보다. 애은씨 입장에선 당연하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고마워해주시니 시어머님께 고맙고, 시어머니는 하나라도 더 할려고 애쓰는 며느리한테 고맙고…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가족이 되는건가 보다.
얼마전부터 애은씨는 남편을 위해 바둑 배우기를 시작했다. 부부간에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되겠다 싶어서 남편의 취미인 바둑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배울려고 책 사가지고 하고있는데 흥미가 썩 있는 건 아니라 좀 지루하지만, 남편이란 같이 할 수도 있고, 또 시아버님도 즐기시니까 빨리 친해질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어디 바둑을 배우고 안배우고가 중요할까. 상대방을 배려할려는 그맘이 이쁘기만 하다.
절제하면서 사는 법
연애하는 동안 둘은 재미난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영규씨가 건설업에 일하는 터라, 결혼준비도 거의 애은씨가 도맡아서 했다. 영규씨는 그게 못내 미안한가 보다. 그래서 결혼하면 못했던거 다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약속했는데 실상 결혼을 하고는 오히려 더 바빠지고 여유가 없다.
그렇지만 둘은 결혼에 대한 상을 머릿속에 다 그려두고 있었다. 신혼여행도 외국이 아닌 제주도로 다녀왔고, 둘이 살면서 마련하자고 꼭 필요한 것만 해가지고 왔다.
둘은 수입의 3분의 2이상을 저축한다. 결혼으로 두사람이 가장 변한 모습이기도 하다.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결혼하면 챙겨야 할 가족도 더 많고, 돈 쓸 데고 더 많아지는 법이다.
특히 애은씨가 더 많이 변했다. 영규씨조차 놀랄 정도다. 애은씨는 이제 아줌마들이 슈퍼아저씨랑 십원 더 깍을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는데 자판기 커피 뽑아먹는거며, 주차료 얼마까지 다 적는거예요. 안 적으면 그냥 다 없어진다나 하면서…"
둘다 손이 크고 돈 쓰는 걸 좋아해서 알뜰하게 못살 것 같았다고 한다. 오히려 남편의 그런 습관을 잘 알고 있던 애은씨가 맘을 더 독하게 먹은 것이다.
"사실 결혼전에 친정 아버지가 돈잡아먹는 기계라고 할 정도였는데 신랑이 저보다 더 하니까 저라도 정말 아껴서 살아야 할 것 같더라고요. 저희가 신혼이니까 지금 즐길려고 하면 끝이 없거든요. 근데 또 이때가 제일 적게 쓸 수 있으니까 애 놓기 전에 한번 빡빡하게 살아볼려고요."
다부진 애은씨다.
그렇다고 여느 신세대부부처럼 신혼의 재미나 삶의 이벤트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백일기념으로 100송이가 넘는 장미를 해주거나 받지는 않지만 한송이의 장미와 마음만을 받을 줄 아는 여유가 생겼고, 그들이 정한 기념의 날에는 둘만의 추억여행을 서슴없이 떠난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알콩달콩한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토닥토닥 싸움도 많이 했었고, 처음 몇 달 동안 애은씨는 우울증 증세를 앓았다. 친구도 없고 혼자 지내다 보니 생긴 병이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일자리를 찾았고, 현재는 임시지만 관공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생기도 있어지고 삶의 활기도 찾았다. 그런데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에 체력이 좀 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장여성들은 어떻게 사는지 대단하다면서 아줌마 선배들의 비법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애은씨는 친정부모님들의 고마움도 느낀다.
"지금도 이렇게 하는데 엄마가 도시락 싸주고 그랬을 때 왜 못했을까 싶더라고요. 그때는 내 치장하고 나가면 됐는데…그렇게 쉬웠던 것을 싶은거 있죠. 부모되면 부모맘 안다고 하는데 아직 부모도 안돼봤는데 이러니…"
준비된 엄마 아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언제 부모가 될꺼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단순히 신혼을 즐기자는 의미로만 아기 갖는 걸 늦추고 있는 건 아니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철저히 준비하는 아빠와 엄마가 되고 싶다.
(애은)"내년 초에 가져서 가을쯤에 놓는게 이상적인 것 같애요. 그럴 계획인데… 많이 낳고 싶어요. 전 삼형제였는데 크면서 적다고 생각안했는데 커서 각자 사니까 형제가 많으면 좋겠다 싶어요."
(영규)"아직 애기가 없지만 엄마 아빠가 됐을때를 대비해서 공부도 많이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안동에 살면서 안동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기도 하고…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으면 자상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아빠, 엄마가 되고 싶은거죠."
(애은)"아기를 만드는 과정부터 이젠 엄마, 아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로써 준비가 됐을 때 아이를 맞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말하고 싶죠.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이렇게 준비했노라고…"
그들은 아직 서로 맞추어가고 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신들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직 서로의 의지대로 할려고 다투는 경우도 있고, 싸움으로 며칠 말을 안할때도 있지만 그들은 서로 자신들의 가정을 아끼고 예쁘게 키울려고 노력한다.
(애은)"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노부부가 되어서도 손잡고 다닐 수 있는 예쁜 가정을 만들고 싶어요. 신랑도 그렇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애요."
(영규)" 5월에 봄햇살이 참 따뜻하잖아요. 근데 각자가 느끼는 따뜻함은 다 다르거든요. 서로가 다르니까 내가 애은이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애은이도 저를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그게 어쩌면 당연하고요. 평생 노력하는 거지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겠다고, 포즈를 요청했을 때 그들은 두 손을 맞잡았다. 이 마주잡으 두손으로 그들이 연주해나갈 건 강하고 예쁜 사랑의 세레나데는 계속될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