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자치와 문화민주화의 실현(글/임재해)문화민주화는 문화자치에서
문화면 그만이지 지역문화는 왜 필요한가. 지역감정이나 부추기고자 하는 엉뚱한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가.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서 누리는 서울문화가 곧 전국문화이자 한국문화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특히 지역문화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독재정권이 지방자치를 거부하며 중앙집권을 강화해 온 것이나 다름없는 독단이자 횡포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민족문화의 실체는 사실상 지역문화의 총체나 다름없으며, 이른바 중앙문화라 하는 서울문화도 알고 보면 우수한 지역문화의 진상으로 이루어진 지역문화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 지방자치에 있듯이, 진정한 문화민주화는 문화자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역 단위의 문화자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화민주화는 사실상 공여물이나 다름없다. 문화자치 없는 지역자치도 진정한 자치제 실시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지역문화 운동은 중앙 중심의 문화 종속에서 벗어나 각자 자기 지역문화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문화자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중앙의 유명한 문화인사들을 모셔와야 문화행사가 빛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뿐 아니라, 중앙문화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인정받고자 중앙문화에 영합하는 문화활동도 배격해야 한다. 오히려 지역끼리 문화적 연대를 꾸려서 중앙문화에 맞서는 가운데 개성있는 지역문화를 주체적으로 창출해나갈 필요가 있다.
문화자치는 중앙문화의 종속에서부터 벗어나야 할 뿐 아니라, 정치적 종속으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한다. 문화자치는 문화인이 문화정책의 주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문화의 경우도 문화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들이 문화정책을 좌우함으로써 문화단체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관변단체로 변질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정도에 따라 관변화의 정도도 결정된다. 전적으로 재정을 관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특정 정치 세력이 개입하여 재정을 확보하게 되는 경우 해당 정치 세력에 대하여 자기도 모르게 관대해질 수 밖에 없다. 객관성과 냉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재정적 자립이 중요하다.
권력과 금력에 비판적 거리 유지해야
정치적 입김이라는 것이 결국은 재정적 지원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인 못지 않게 경제인도 같은 영행을 미친다. 따라서 경제력을 갖춘 후원자들의 문화행사개입 역시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문화가 왜곡되거나 변질되게 하는 부정적 요인이 되게 마련이다. 정계나 관계, 재계 등 어느 경우나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아예 관변측 문화단체나 문화행사 외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진보적인 문화운동을 경계하는 행정기관이나 정치세력이 이를 주목하고 재정 지원자에게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거나 비판적인 단체에 경제인들이 지원을 하면 행정적 정치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문화단체의 활동을 막고 운동성 강한 문화행사를 통제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자금줄을 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간섭과 재정적 통제 경향은 지역토호들이 판을 치는 중소도시에서 더욱 심각하다.
재정적 자립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 단체든 재정 지원 세력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원자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배려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민예총의 활동도 정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인정받게 된 문민정부 이후부터 현실 비판적 개성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군부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우던 비판 세력이, 문민정부의 유화정책과 함께 비판적지지 세력 노릇을 하게 되면서 줄곧 지녀왔던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무디게 된 것이다.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도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정ㅇ권을 도우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정권을 안일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어 파탄의 길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문민정부는 비판정신이 이완된 틈에 독선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결국 정치적 경제적 파탄을 빚고 말았다.
따라서 비판적으로 지지하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든 또는 정권교체의 역사적 성취를 이루었든 문화운동의 비판정신은 굳건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비록 민주 세력이 집권을 할 때까지 적극 지지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지지세력이 집권을 하게 되면 그 뒤부터는 비판적 자세를 다시 회복하여 본디 비판정신을 곧고 굳게 견지해나가야 한다. 어떤 집단이 정권을 잡더라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비판 세력이 활기차게 비판을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하게 되고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부정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문화인들이 비판적 지성으로서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비판적 성찰없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을 온전하게 지켜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행사에 주인 노릇 하는 정치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간만에 지지 세력이 집권을 하고 또 정부 차원에서 지원까지 하게 되면, 그러한 관계가 고맙고 반가워서 알게 모르게 친정부적이 되기 쉽다. 자생력이 없고 독자성이 없는 지역문화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드세다. 가장 줏대가 있고 주체성이 강해야 할 문화인들이 권력과 금력에 휘둘러 정치인 앞에서 줏대를 꺾고 관권 앞에서 주눅이 들어 그들의 눈치보기에 분주하다.
정치인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경제인들의 횡포를 비판적으로 주목해야 할 문화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비위맞추기에 여념이 없다면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은커녕 사회적 부조리와 도덕적 부패가 만연하기 십상이다. 주체성 없는 문화인이 창조적이고 독창성이 있는 문화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며, 문화인들이 제 먼저 권력을 숭배하고 금력을 밝히게 되는데 지역사회의 부패지수가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문화인이 문화의 주인 노릇을 하는 진정한 문화자치야말로 정치적 지방자치 이상으로 민주사회를 이끌어가는 디딤돌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실상은 아직도 문화자치와 한참 빗나가 있다. 정치적 지방자치는 상당히 이루어져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율권이 크게 높아졌을 뿐 아니라, 이들 단체장들이 모여서 협의회를 만들고 중앙정부의 권력 이양을 촉구하고 있는 터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권리는 앞으로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지역사회문화인들은 아직 그러한 문화자치의 필요성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행사에 문화인은 항상 뒷전이고 정치인들이 드세게 나서서 생색내고 엉뚱한 낯내기 의식을 치르느라 법석인 데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지사로 알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지역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 또는 지역출신 인사들이 참여해서 인사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행사를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섭섭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이런 생각에 사무쳐 있는 사람들은 아예 행사의 초점을 그들의 참석 여부에 맞추기까지 한다. 그런 경우 정치인의 일정에 따라 지역문화 행사의 일정이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문화행사 때마다 정치인들이 단상에 올라가 장황한 인사말을 하여 김을 빼놓기 일쑤이다. 정치인들이 문화에도 전문가인 채 행세하며 해당 문화행사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대중없이 하는가 하면, 자신의 행적을 공치사 삼아 하는 겉치레 인사말을 유세하듯 길게 늘어놓아도 문화예술인들은 그를 우러러보면서 인사말을 경청하고 박수를 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이 단상에서 내려와 직접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면 고마워 굽실거린다.
하회탈춤 광대들의 예술정신 본받아야
이처럼 정치권력에 굽실거리는 문화인들일수록 후배들에게는 권위를 부리며 으스대기 예사이다. 권위에 비굴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권위주의적 행세를 하는 경향은 문화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정치꾼일수록 문화인들의 이런 비굴한 면모를 용케 포착한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아예 문화인들을 자기 수중에 거느리고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는 척하면서 사실상 행정적 경제적 지원을 미끼삼아 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비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문화행사를 벌이도록 참견을 한다. 때로는 지자제 단체의 문화행정을 자의적으로 주무르는 일도 예사로 한다. 결국 지역에서는 정치인이 정치, 문화, 행정 3권을 다 쥐고 있는 셈이어서 문화민주화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러한 폐단을 줄이려면, 지역문화 운동은 문화자치를 겨냥하며 문화인들이 문화행정과 문화활동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기 몫 찾기와 제 자리 지키기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문화자치뿐만 아니라 지역정치의 모순을 해결하는 변혁운동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때 더욱 생산적이다. 변혁적 문예활동이 새삼스러운 것이거나 대단한 모험도 아니다. 이름없는 우리 선조들도 봉건사회의 질곡 속에서 이러한 문예활동을 마음껏 벌이며 신명풀이를 즐겨왔다.
하회마을에서 탈춤을 전승해 온 탈광대들은 양반들의 일방적인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상민들이었다. 그들은 신분적으로 미천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있으면서 봉건적인 계급사회의 지배체제 아래 가혹한 핍박을 받아왔지만, 결코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금력을 누리는 양반댁들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체제를 비판하는 풍자적 탈춤을 보름 동안 거침없이 놀았다. 당시에 마을의 양반들은 탈광대들이 평소에 직접 받들어 섬겨야 하는 직계 상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별신굿을 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주는 경제적 후원자들이였다. 그러나 탈광대들은 자신을 종처럼 부리는 신분적 권위와 별신굿을 간으하게 하는 경제적 후원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탈광대로서 예술정신을 올곧게 발휘했던 것이다.
양반들도 탈광대들을 존중하며 양반탈과 선비탈을 쓴 광대들에게는 말도 높이며 인격적으로 존중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은 하되 탈춤활동에 간섭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회탈춤을 춘 상민 광대들이야말로 탈춤의 주인이 되는 문화자치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양반들도 경제적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문화민주화의 보기를 진작 실현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천년의 문화세기를 앞두고 민주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세기말의 문화지식인이 조선조의 배운 것 없는 무지렁이 탈광대들보다 현실인식이 무디고 비판정신이 죽어 있다면 스스로 문화인이기를 포기해야 마땅하다.
문화민주화 실현의 다섯 가지 길
결국 지역문화 문제는 문화민주화의 실현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럼 구체적으로 문화민주화는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지역의 문화민주화는크게 다섯가지 문제에 걸려 있다. 우선 중앙문화로부터 지역문화가 독립되어야 한다. 중앙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한 지역문화의 문화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중뿔나게 움직여 봐야 중앙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한 지역문화의 자주성 획득은 불가능하다. 자주성이 없는 데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 아예 중앙문화의 눈치나 보고 중앙문화의 추세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지역문화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문화 행사에 지역의 문화실정도 모르는 중앙문화인들이 나서서 간섭을 일삼고, 지역문화인들 또한 알아서 중앙의 명망있는 문화인들을 초빙해서 문화행사를 빛나게 한다는 관념은 지역문화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문화민주화는 첫째 지역문화의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문화정책에서부터 문화인, 문화내용, 문화수용에 이르기까지 중앙에 맞서는 지역의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문화의 지역화,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통한 문화자치가 문화민주주의의 주요 관건이다.
둘째는 문화적 권리의 확대이다. 국민들이 저마다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문화적 권리도 가지고 있다. 문화권리는 소극적으로 국민들의 문화 선택권과 향수권을 말하지만 적극적으로는 문화정책 결정권과 문화 생산권을 말한다. 지역의 경우 주민들이 문화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지역문화 정책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문화권리가 충족된다.
문화권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96년 문화복기기획단에서 개최한 21세기 문화복지 대토론회에서 헌법에 문화권을 새로운 기본권으로 제정하자는 주장과 함께, 가)소극적으로는 예술창작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을 자유권적 기본권, 나)누구든지 차별 받지 않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평등권적 기본권, 다)적극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국가에 법적 제도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적 기본권을 제안한 터이다.
1981년대 프랑스 문화정책의 중요 변화는 일부 특권층에 한정된 문화정책을 지양하고 모두를 위한 문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민주화의 기본이 여기에 있다. 문화인을 위한 문화 또는 예술가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해 열려 있는 문화예술 행정과 문예정책이 실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행정당국은 작가나 예술인 개인의 문예활동을 위한 지원보다 지역주민들에게 봉사하는 문예활동에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문화정의의 실현과 지역문화의 연대
셋째, 문화정책 결정의 민주화이다. 문화정책의 민주화는 곧 국민들 각자가 문화적 주권을 누리는 한층 적극적인 문화권리이다. 우선 문화의 자유를 오랫동안 억압했던 검열장치나 지배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관제문화행사들, 그리고 관료적 문화행정과 같은 국가의 지배문화정책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문화민주주의를 가로막아온 문화관련 악법과 관행들을 철폐하고 관변예술가 중심의 문화지원을 진보적인 신세대 문예단체로 확대시키며 문화정책 결정을 민주화해야 한다.
전문가의 참여를 배제해 온 행정공무원 주도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문화행정체계와 제도운영을 전문가와 민간 참여에 입각한 개방적인 문화행정 체계로 혁신해야 한다. 특히 공공분야의 문화정책은 전문가들이 입안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담당 공무원들은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자면 문화 전문가와, 시민사회,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위원회를 조직하고 정기적인 문화정책 논의와 집행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문화정의의 실현이다. 문화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삶의 문법이다. 이것이 국가권력에 의해 독점되고 정치 경제적 기득권자에 의하여 좌우되면 국민들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현재 각종 문예단체는 주로 행정기관으로부터 문예지원금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여러모로 머리를 굴렸을 뿐 시민들이 문화생활 향상을 위해 문화재정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점검하거나 문화정책을 민주적으로 수립하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제 시민들은 문화행정의 파행을 감시하고 문화사업을 이권화하는 관변측 문예단체와 문화인, 정치인, 기업인 등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문화정의실천연합과 같은 시민 조직이 필요하다. 문화정의의 실현을 통해 문화권리를 민주화하려면, 시민운동단체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문예단체와 문화기획자, 문화연구자 등 다양한 층위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 결합해서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개혁 못지 않게 문화복지를 추구하고 문화정의를 실현하는 문화개혁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비전문적인 문화행정가들이 지역문화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지역문화의 경우는 문화정의를 위한 문화감시 활동이 더욱 긴요하다.
다섯째, 지역문화의 주체적 연대이다. 지역문화가 중앙문화에 종속되어 있으며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 지역문화 단체의 힘으로 문화민주화를 성취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항력이다. 오히려 중앙 문화의 조작에 따라 지역끼리 아웅다웅 다툼을 벌이거나 정치권의 영향에 따라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지역주의에 동조하게 될 위험도 있다. 이 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가 위로부터 군림하는 중앙문화에 좇아갈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끼리 주체적으로 연대를 하고 상호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중앙문화에 맞설 필요가 있다. 개별 지역문화는 약세를 이루지만 지역끼리 연대를 이룬 지역문화는 중앙문화의 위세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다.
중앙문화도 한 지역문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지역문화와 대등한 관계를 맺어나가려면, 중앙문화를 일방적으로 떠받들거나 추종하지 말고 그와 다른 지역문화의 특수성과 독창성을 신장시키는 동시에 지역끼리 연대를 통하여 문화경험을 나누어 가지며 문화교류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의 연대를 위해서는 지역문화인들의 자각이 앞서야 한다. 모든 지역문화는 중앙문화에 대한 피해자이자 희생자라는 객관적 현실인식과 함께, 중앙문화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회복하는 것이자, 정치인들의 엉뚱한 조작에 따라 본의 아니게 소모적 지역갈등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