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과 가송동, 그 육백년의 인연(글/조정현)
가송리, 그 맑고 푸른 마을의 정경
안동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다보면 오천군자리, 예안향교, 도산서원 등을 지나 청량산 가까이에 이르러 가송동 입구를 만나게 된다. 이 마을은 천옥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인 지형으로 형성되어 있고, 낙동강이 마을 가운데를 가르며 흘러간다. 가송동은 본래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사리, 소두들, 고리재, 골가사리, 올미재 등인데, 실제로 마을굿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가사리, 소두들, 올미재 주민들이다.
또한 마을굿과 관련해서는 다른 마을에서도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며, 특히 공민왕이 모셔져 있는 산성마을에는 친정마을에 간다, 혹은 세배 간다고 하여 매년 혹은 2년 내지 3년 터울로 인사를 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민왕의 부인이 모셔져 있는 북곡에는 평소 생활을 할 때에도 잘 가지 않는다. 과거 공민왕과 부인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청량산 인근의 경치는 거듭 얘기하지 않아도 수려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가송동의 풍광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야말로 넉넉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유유히 풍만하게 흐르는 낙동강 줄기, 그 양편에 마주보고 있는 고산과 독산의 깍아지른 듯한 벼랑, 고산의 옆구리에 소담하게 앉아있는 금난수가 지었다는 고산정(高山亭)등이 어울려 가송동의 멋진 경관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시는 신, 공민왕의 딸
1359년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 고장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송동 주변 지역에서는 공민왕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공민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신앙적 신념으로 전화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검토해 보면 공민왕이 이 곳에 실제로 왔던가는 불확실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신격으로까지 모셔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 시사해 준다.
산성마을에는 공민왕당이 있고, 북곡에는 공민왕의 부인당(왕대부인)이 있으며 신남동 고티미에는 공미왕의 둘째 달을 모신 애기당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북곡과 가송에서 부인과 공주가 애매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송동에서도 부인당이라고도 하며 북곡에서도 공주당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부인과 공주라는 개념보다는 어쨌든 공민왕 가계의 여성신격을 모신다는 점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설에 따르면 공민왕이 후손이 없었던 불운한 왕이었다면서 그러한 회한을 부인과 공주도 역시 함께 가지고 있었기에 신격이 되었다고도 한다.
공민왕 딸당은 오래된 예전부터 있어왔다고 하며, 그 옆에 있는 산신각은 최근 1992년에 안동시내의 남영주씨라는 분이 가송동 서낭당과 금화섭씨 개인당의 염험을 얻어 감사의 뜻으로 마을에 기증하는 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본래는 산신각이 없이 마을굿을 행할 때 제상만 하나 더 차려서 제사를 모시다가 산신각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단수치기와 진법치기 그리고 서낭대
대개의 서낭당들이 매년 정월 보름날에 한 차례씩만 제사를 올리는데, 이곳에서는 정월 보름과 단오, 두 차례 마을굿을 한다. 정월 보름 마을굿 때는 산성에 세배를 다녀오고 신내림을 받지만 단오 때에는 산성에 가는 일이 없고 신내림도 받지 않으며 간단히 지낸다.
약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가송동 사람들은 입칠봉을 넘어서 아주 옛날에는 매년, 다음에 2년 터울, 그리고 최근에는 3년마다 한번씩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흘 날에 산성마을로 세배(친정)를 갔었다. 초록저고리와 다홍치마의 서낭대를 모시고, 마을 사람들이 왕복 30리 길의 세배를 다녀왔던 것이다. 이렇게 세배를 다녀와서 당주(堂主)를 정하였다. 예전에는 이 때 신의 계시를 받아 신대가 멈춘 집 주인이 당주가 되었다고 한다. 신대가 자기집으로 들어오면 주인은 자리를 펴서 맞이하고 굿패는 축하하는 풍물을 쳤다. 간단한 잔치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산성으로 세배를 가지 않으며, 신내림도 받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그 해의 당주를 선출한다.
당주는 정월 보름과 단오의 마을굿을 주관하며, 굿에 필요한 제구(祭具)와 풍물을 일년동안 집안에 보관해둔다. 뿐만 아니라 당 앞으로 되어 있는 논과 밭을 관리하여 그해의 마을굿 비용을 마련한다. 당주가 마을굿의 주관자라면 제관(祭官)은 참례자(參禮者)가 된다. 제관들은 당주와 함께 마을굿의 진행을 맡는다. 이들은 다른 지역과 같이 깨끗한 사람들이며 일반적인 금기를 지킨다. 굿날이 되면 이른 저녁 때부터 당주집에 모여서 준비를 한다. 제물을 정성스럽게 한지에 싸고 당에 올릴 소지들을 챙기고 나면 풍물이 울리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마을굿에 들어가기 전에 가락을 맞추어 보는 것이자, 이제 곧 마을굿이 시작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때부터는 본격적인 비일상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채비를 마치면 풍물채를 앞세우고 길굿을 치면서 당으로 향한다. 가송동의 길굿에는 이 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잘 반영되어 있다. 보통 풍물패의 이동시에 치는 가락이 길굿인데, 가송동에서는 길을 가면서 계속 치는 것이 아니라 상쇠의 신호에 따라 치다가 걷다가 다시 치는 형태로 연행된다. 이것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좁고 비탈진 길을 이동해야 하는 가송동의 지리적 여건 속에서 생성된 형태로 보인다. 특히나 험산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산성마을로의 친정(세배)가기 때는 더욱더 길굿의 변형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또한 1985년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배를 타고 건너거나 영화나 고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출렁 다리로 건너야 했다. 따라서 이동시의 불안정성이 가송동만의 독특한 길굿을 형성시킨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길굿을 치면서 가는 도중에 행하는 가송동의 독특한 연행양식으로 단수치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언어를 형상화한 풍물가락을 통해 굿의 목적을 예술적으로 수행한다. 단수치기의 형태는 길굿을 치며 가다가 이전에 당이 있었던 자리 근처에 다달으면 모두가 일렬로 그쪽을 보고 멈추어 서서 다음과 같은 구음의 가락을 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성황당 성황당 성황성황 성황당
이러한 구음을 형상화한 가락을 3회 치면서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가는 형태로 세군데에 단수치기를 한다. 이는 나는 오늘 제사를 받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비슷한 예로 소산동 마을굿에서도 구체적인 가락은 없지만 12골마다에 제자리에 서서 인사를 드리는 양식이 전승되고 있어 안동지역의 독특한 연행형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일행이 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리고 아래 공터에 횃불을 피우고 당 앞에서 원을 그리며 풍물을 계속 울린다. 진설이 다 끝나면 부정치기를 한다. 부정치기는 금화섭씨가 솔잎뭉치로 바가지에 담겨진 물을 사방에 뿌리고 바가지를 엎어 칼로 친 다음 칼을 옆에다 두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읊은 사설이 있는데,
"오늘이 14일이올시다. 다 이 터진 이 명당에 다 서낭님 대주문전에 다 동방청제 부정신아, 남방적제 부정신아, 서방백제 부정신아, 중앙황제 부정신아 다 그 이름 다 이 터전이 명당에 각각 다 지금대로 다 좌정점지하옵소서...."
사설이 끝난 후에는 밥에 수저를 꽂아둔다. 간단히 부정치기가 끝나면 당주와 제관들이 잔을 올린다. 이 때에는 유교식의 초헌, 아헌, 종헌의 형식을 갖추어 진행한다. 이후 잠시 쉬었다가 풍물을 치면서 원진을 돌고,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 때 신대잡이가 신대를 들고 원의 중앙에 위치한다. 이렇게 흥을 돋구다가 진법치기가 시작된다. 신대잡이와 함께 제관들이 당을 등지고 일렬로 서서 풍물장단에 맞추어 아랫마당으로 내려가고 풍물잽이들은 제관들과 마주하여 일렬로 서서 아랫마당으로 뒷걸음쳐 내려간다. 아랫마당에 내려오면 신대잡이가 가운데 서고 함께 원진을 이룬다. 그리고 다시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렬로 마주보고 이번에는 제관들과 신대잡이가 뒷걸음쳐서 당으로 올라온다.
이렇게 미지기방식으로 반복되어 이루어지는 연행을 진법치기라 하고 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보통 아홉 번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를 일컬어 3*3진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고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틀에 걸쳐 계속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진법치기가 절정에 이르게 되면 신대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당쪽으로 기운다. 그러면 제관들과 풍물패들은 우루루 따라 올라가고 당주는 신대에 걸려 있는 치마와 저고리를 벗겨서 당안의 벽에 걸어둔다. 그러면 신대에는 꿩깃털과 속옥이 남게 되는데, 이후에 다시 한번 진법치기를 하고 다시 신대가 당쪽으로 기울면 속옷을 풀러서 당안에 걸고 제관들이 재배한다.
가송동 마을굿에서 중시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신대이다. 이 신대에 여성의 옷을 걸고 마을굿이 진행되며 이 신대에 내린 신을 다시 당에 모시는 방식인 것이다. 또한 신탁에 의지해서 굿을 진행해 나간다. 즉 신대가 당에 붙어야 확실히 신이 편안하게 좌정했다고 믿는 것이다.
가송동의 진법치기는 본래 12채에 맞추어 구성된 하려한 진법놀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가지의 진법만이 남아 있으며, 놀이적인 요소나 군사진법적인 요소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이러한 군사적인 용어인 진법치기가 가송동 마을굿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단어가 된 것은 공민왕의 몽진과 산성의 영향으로 보인다. 서낭당이 있는 계곡 서편쪽의 입칠봉 너머로 가면 산성이 있고 이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어 청량산 깊은 쪽으로는 외성의 자취가 남아있고 내성 쪽에 산성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왕의 임시 도성이 되었음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오마도(五馬道)라 해서 공민왕이 타고 온 다섯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어 이를 반증해 준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가송동제가 진법치기라는 12채의 진풀이가 전승되었다는 사실은 이곳을 중심으로 왕을 호위하기 위한 군사훈련이 거행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며, 그것을 기념하여 진법치기란 형태로 마을굿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12채의 가락은 제의의 맥락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본래는 당고사를 지내고 나서 음복을 하면서 뒷전같은 식으로 놀 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12채의 가락과 진법을 벌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가락만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본래는 마을굿의 마지막 절정으로 판굿의 현식이 12채의 진법을 중심으로 발달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그것이 퇴화되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얘쩐에 있었다는 잡색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사대부, 각시, 포수, 탈광대(바가지탈) 등이 연행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형태보다 더 발달된 양식의 판굿이 성행했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수동별신굿의 진법회에서도 나타나고 전라남도의 장좌리 풍물굿에서도 나타나는데, 장좌리에서는 12군고(軍鼓)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좌리에서 모시는 신은 청해진을 관장했던 장보고 장군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송동에서의 풍물과 진법치기 등은 공민왕과 관련되어 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서낭신의 새 옷을 당에 걸고 나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소지를 올린다. 먼저 각 가정의 소지를 올린 후 일동재배하고, 우마소지를 올린 후 역시 재배한다. 마지막으로 대동소지를 올리고 음복한다. 음복이 끝나면 다시 풍물이 시작되고 당에서 좀 떨어진 느티나무 옆 공터의 모닥불 주위를 돌다가 거리굿을 한다. 신대잡이가 주문을 외면서 칼을 던지는데, 칼끝이 바깥쪽(골짜기쪽)을 향할때까지 계속해서 던진다. 그리고는 각 골짜기의 이름을 부르며 떡조각을 던지고 술을 뿌리는 것으로 모든 절차는 끝난다.
다음날 오전 당주집에 모여 대동회를 연다. 대동회에서는 마을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제사비용을 책정하며 올해에 해야 할 마을공동의 일을 의논한다. 또한 그 해의 유사를 2명 선출하고 술자리를 통해 자연스러운 마을의 대소사를 얘기한다.
개인신앙과 공동체신앙의 결합과 조화
가송동에는 금도사라 불리는 비전업 무속인이 살고 있다. 금화섭씨는 가송동 마을굿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대잡이이다. 그의 나이 18세 때부터 신대를 잡아왔다고 한다. 신대잡이는 신의 의사를 마을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며, 마을굿의 총지휘자 역할을 한다. 그는 서낭당의 건너편 오미산 쪽에 개인당을 따로 모셔놓고 정성을 들인다.
1984년 공민왕의 공주가 현몽하여 약탕을 얻었다고 하며, 부덕암(婦德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당에는 서낭님과 칠성, 산신, 용왕을 모시고 있으며, 그는 거의 무속인과 유사한 직능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신자와 어려움에 닥친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소원을 빈다고 한다. 금도사의 현몽은 이러하다. 꿈에 공민왕 땅당의 서낭신이 나타나서는 산삼과 약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고, 금씨는 약수를 선택하여 지금의 약수탕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금씨는 임시 기도처를 만들고 정성을 들이다가 마침내 약탕으로 올라가는 길도 닦고 약수탕 근처 바위 옆 공터에 당까지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능력을 마을 사람들은 인정하면서 그가 마을굿을 주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가송동의 마을굿이 다른 마을보다 비교적 원형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도 실은 금화섭씨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가 공민왕 딸당의 유래를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꾸 왜곡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사실 가송동의 서낭당은 공민왕의 딸당임에도 불구하고 금화섭씨의역할이 커지면서 부인당으로 명명되기도 하고,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가송동에 오면 대부분 금화섭씨만을 만나고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가송동 마을굿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송동과 금화섭씨의 사례는, 개인의 신앙이 마을공동체 신앙과 일치되었을 때 마을사회에서 발휘되는 힘은 막강하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전통사회에서는 이러한 개인신앙과 공동체신앙의 일치가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신앙과 마을의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마을굿을 소멸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을굿으로 이어가는 각성받이 마을의 정체성
가송동은 주민들이 얘기하듯이 각성받이 마을이다. 따라서 크게 힘을 발휘하며 마을에 세거하던 세력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나마 마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성씨는 영양 남씨와 봉화 금씨이다. 옛날 마을굿 때 사설에는 송씨(宋氏)터전에 엄씨(嚴氏)가족에 금씨(琴氏)
공민왕은 이들이 안동이라는 지역적 권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중요한 방패막이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척박한 산간벽촌에서도 그들은 공민왕과의 인연을 600여년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것을 끈질기게 붙안아 마을굿이라는 전통으로 맥을 잇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도 예사인물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모시는 신이 그야말로 위대한 인물의 가족임이 강조된다. 본래 가송동에는 별신굿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회, 수동, 마령동 등과 함께 내륙 별신굿이 안동지역에서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송동에서는 안동지역의 다른 곳과 달리 정월 보름 외에 단오 때에도 마을굿이 벌어지는 것으로 봐서 단오를 기점으로 성대한 별신굿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이 별신굿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시는 분이 안 계셔서 아직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가송동 마을굿에서 상쇠를 맡아 풍물패를 이끌고 있는 이일영(65, 남)씨는 개인적인 정성이든 동신에 대한 믿음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는 동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또한 마을의 화합을 위해서 마을굿을 벌이고 쇠를 친다고 한다. 예전에 다리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격강천리(隔江千里)라는 말이 있었다. 강 하나가 천리와 같은 거리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를 극복하면서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던 때라도 마을굿을 행하던 가송동 주민들에게, 동제는 여러 자연마을들을 묶어낼 수 있는 가장 강위력한 문화적 장치였던 것이다.
이일영씨는 어렸을 때 풍물을 배우면서 익힌 입장단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장도 장도 육개장 재산장도 육개장
장도 장도 육개장 명태장수 눈깔빼자
수몰되기 전에는 재산장이 1일, 6일 장이었다는 데서 따온 삼채 장단의 입장단이라고 한다. 안동지역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풍물가락이 그나마 잘 전승되고 있는 곳이 바로 가송동이다. 따라서 가송동의 풍물굿을 단초로 하여 안동지역 풍물굿의 전형을 구성해 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학자들과 지역 풍물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