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의 예술적 모색-실험적인 예술판 성주풀이-(글/권두현)지금 안동문화는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동지역에서 전개되는 문화예술활동에서 우리는 사실 과거 안동의 모습을 새로운 모습으로 생산하거나 운용하는 면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 문제에 공감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지금 대중들에게 품격 높은 안동문화를 공유하고 재창작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제향기능만이 살아있는 고건축>
구체적인 모습으로 들어가 보자. 안동문화의 유형적 기반을 꼽는다면 서원, 제실 등의 고건축들과 기타 불교와 유교문화유산들이다. 수량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최고의 문화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로 안동문화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안동의 고건축을 구분하자면 누정, 서원, 종가, 제실 등이다. 서원의 경우 안동에만 40여 곳 이상이 존재하는데 이들 건물 중 서원이 본래 기능을 다하는 곳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도산서원의 경우 최근 선비체험학교 등 단기적인 교육체험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거 서원의 기능을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향사만은 과거와 같이 치루어진다. 그러나 향사를 드린다고는 하지만 젊은 층은 참여하지 못한다. 대부분이 연세 60이 넘으신 어른들이다 -이점에서 제향을 드리는 어른들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 어쩌면 안동문화의 저력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도산서원은 평시에는 관광객이 이어지지만 기타 대부분의 서원은 제향을 드리지 않은 시간, 인적을 찾기란 어렵다.
비교적 자유스러운 공간인 누정 역시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정자는 사람이 기거하지 않은 빈 공간이다. 이름난 누정에는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만 나머지 대부분의누정은 주인없이 가끔씩 찾는 관광객의 성의없는 손길 혹은 접촉만이 있을 뿐이다.
종가는 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사정이 조금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일부 종가를 제외하고는 관리인들이 기거하면서 종가 관리만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제실은 제사를 위한 공간이므로 당연히 제사 이외의 시간에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공간으로 존재한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안동에 있는 고건축물은 제사기능만이 존재하고 나머지 시간에 인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대부분의 고건축물의 관리는 실제 안동시 행정정책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안동문화의 건강한 발돋움을 위하여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지금 안동의 고건축물의 이러한 현황을 한마디로 진단한다면 생활공간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래서 접근이 어렵다. 즉 과거 생활공간 안에 존재했던 서원, 누정, 제실, 종가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공간 바깥에 존재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연 접근성이 떨어져 별도의 의도를 가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고립공간으로 남게 된 것이다. 더욱 안동은 고건축물이 타지역보다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을 일일이 나누기가 어렵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안동문화 재창조 작업의 일환은 문제를 역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공간, 건축물에 의미를 파악하여야 한다.
현재 안동문화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은 굳이 나누자면 크게 세가지로 추진되고 있는 듯 하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문화관광이다. 관광객들에게 소외된 안동의 고건축의 의미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숙박 등 소위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로 고건축물의 의미를 담은 문화예술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중 문화예술 행사를 통하여 시민들에게 고건축이 가진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게 하는 방법은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산업사회 시민들에게 감응을 던져주는 행사이기에 주목을 요한다. 말하자면 문화예술이 가진 대중성과 안동 고건축의 미학이 만났을때 새로운 차원에서 안동문화가 조명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고건축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는 가치있는 예술적 생산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안동문화의 가치를 예술적 언어로 표현>
이러한 판을 실험한 것이 있다. 바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동지부(이하 민예총 안동지부-지부장 임재해)가 개최한 성주풀이 예술축제가 그것이다. 민예총 안동지부는 임동창씨가 개최한 성주풀이를 이어나가면서 위에서 제기한 두가지 목적을 공유하였는데 하나는 안동지역의 문화재의 현장, 즉 고건축의 아름다움과 문화예술을 결합시켜 안동 문화의 가치를 예술적 언어로 드러내겠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안동문화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안동만의 예술적 창작 혹은 안동만의 예술판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민예총 안동지부는 고건축물이 대체로 대중들에게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예술판을 계기로 고건축 문화에 담긴 가치를 대중적으로 공유하고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오천군자리에서 열린 두 번의 "성주풀이" 예술축제와 올해 안동웅부 관아터에서 열린 "성주풀이" 예술축제는 여러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판으로 다가갔다. 아직 일천한 단계에 있고 역사 또한 짧지만 성주풀이에 대하여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필자는 성주풀이 예술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함께 한 사람으로 특히 첫 번째 문제인 안동문화를 예술적 언어로 대중들과 만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진지한 모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동지역 문화재에 대한 안내 경험이 많은 필자는 전통적인 공감방식, 혹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지금의 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안동문화를 값싼 물건처럼 서비스 치장에만 신경쓰는 일도 반대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언어로 안동문화가 가진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절실하며 그 적절한 방법 중 하나로 문화예술적 언어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문화예술적 언어를 활용하여 안동문화를 드러내는 것은 예술창작의 계기로 조성될 수도 있다. 작년 작곡가 권정옥씨에 의하여 도산12곡 중 3곡이 합창곡으로 만들어져 안동시민합창단에 의하여 공연된 바 있다. 도산12곡의 합창곡 발표는 일견 일상적인 작곡활동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도산12곡에 담긴 철학성과 자연관을 음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방식의 도산12곡의 이해인 것이다. 물론 논문처럼 도산12곡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발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창작인 것이다.
이점에서 퇴계가 어부가와 도산12곡의 발문에서 한문시가가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로 부를 수 없고 국문시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안동문화의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예술축제 실험의 장>
민예총 안동지부는 성주풀이를 열면서 몇가지 점을 실험하였고 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먼저 예술생산자인 예술가가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살려주자는 것이다. 즉 고정된 프로그램 보다 대중적 호흡과 연행장소에서 예술가가 스스로 판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 저변에는 과거 공연판이 무대 위에서 짜여진 프로그램의 나열에 있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여 예술가를 위한 판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판이 열리는 무대 즉 성주풀이의 장소를 안동의 고건축물로 선정하여 고건축이 가지는 풍부한 아름다움을 예술가가 충분히 안고 판에 임해 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두 번째로 사회자가 판을 이끄는 방식을 탈피하였다. 사회자가 공연에 앞서 연행물을 설명한다면 언어적 구속에 빠져 느낌으로 예술과 만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회자가 없어 많은 사람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하였고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의도 자체는, 설명하는 예술판보다는 몸과 느낌으로 부딪히는 판이 되어야 한다는 고집때문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의도로 인하여 예술가는 판에서 즉 고건축물에서 자신이 가장 느낌이 좋은 곳을 선택하여 공연에 임한다. 이러한 관계로 공연하는 곳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관객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자유스러운 마당판의 분위기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관객은 주변에 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흥이 나면 공연판에 뛰어들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 공연을 외면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눌 수도 있는 편한 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공연자를 무시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판의 흐름을 축제로 끌고 가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술 향유자로서의 관객의 위상을 가지려는 의도이다.
마지막으로 높은 예술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공연장과 관객석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품격높은 예술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주변의 사람이 갑자기 공연자로 바뀌어 스스로의 기량을 보일 수도 있다. 정해진 프로그램으로, 정해진 공연장에서, 정해진 시간을, 고정된 관객과 어울리기보다는 예술가와 향유자가 함께 판을 만들고 그러한 예술의 세계에서 느낌을 교감함으로써 의미있는 판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그림이다. 한국 걸개문화에 새로움을 준 한국화 걸개는 성주풀이 판을 새롭게 만들었다. 설치만을 위한 미술이 아닌 화가의 화폭을 존중하는 걸개그림을 통해 또 다른 예술적 공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주풀이의 이러한 시도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분명 새로운 느낌의 판을 구성한 것은 신선한 시도였지만 참여한 관객들이 성주풀이가 가지는 이러한 판 지향의 이해가 낮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연장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공연에 익숙해져 있으며 성주풀이를 진행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직 미완성의 이러한 판구조에 대한 분명한 노선을 정리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나는 미완의 판>
안동문화의 화두는 안동문화가 가지는 본연의 가치를 21세기 새로운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하는가이다. 그 방법의 하나로 안동문화가 생산된 현장, 즉 고건축물에서 품격높은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과거 학문수양의 방식이 아닌 느낌을 가지는 예술적 언어로 과거 안동문화의 건강한 가치를 지금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서원의 글소리는 끊겼지만 서원의 의미를 담아온 서원건축의 미학적 성격을 바탕하여 예술적 언어로 새롭게 21세기 문화에 한 화살을 날린다면 분명 안동문화는 세계인들과 김동적으로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건축미학을 담은 연출과 함께 안동문화의 모습을 드러내는 예술창작이 계속 시도되어야 한다. 어부가나 도산12곡을 합창곡으로 다시 만들어 지금의 대중들과 호흡하고, 퇴계 철학을 쉬운 애니메이션이나 연극으로 만들어 관심있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점에서 성주풀이에서 보여준 것처럼 안동문화만의 특성을 담은 예술판의 마련은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아직 미완의 예술축제이지만 안동문화의 건강한 발돋음을 위하여 보다 건실한 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