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관광지킴이 김영애씨(글/이미홍)맴맴 맴맴～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주차장에 들어서니 매미소리가 뜨거운 여름땡볕을 더 달궈놓으며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팔월 둘째 주가 시작되는 아침, 여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영애씨를 만났다. 하회마을 입구에 있는 전시실 밖에 있는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음료수 쟁반을 들고 보기에도 씩씩해 보이는 김영애(25)씨가 환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듣는 매미 소리의 운치야 운치지만 한여름 매의 넘치는 기운에 사람 말소리가 묻혀 저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진다. 잘됐다 싶어 하회마을 구경도 할 겸 마을 안 집들 중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나섰다.
하회마을과 함께 한지 5년째
올해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것저것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는 영애씨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조금도 조급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들어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겠다 싶게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본의 아니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아요. 낮에는 여기서 통역안내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 하고 그리고 지금은 방학이지만 사회복지사 공부 때문에 대학원에도 다녀야하고, 안동에 있는 문화단체에 계시는 선배님들 일도 틈나는 대로 도와드리고 하다 보니까 능력도 안 되면서 몸이 바빠요. 학비에 조금이라도 보탤까 싶어 제가 밤 시간에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신문을 뒤지면 엄마는 방학이라도 좀 쉬지 하고 안쓰러워하시죠. 그런데 저는 돈도 돈이지만 한 시라도 아까워서 뭐라도 해야 돼요. 그리고 놀 줄도 몰라서 노는 게 안 익숙해요.”
한다. 내 머리 속에 갇혀 있던 20대에 대한 편견 한 조각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하회마을 관광통역안내 경력이 5년째인 영애씨다.
“대학 1학년 때 자원봉사자 교육하고 뽑을 때 영어공부도 하고 좋은 경험도 되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된 건데 그게 하다보니 재미가 있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하게 됐어요. 물론 덕분에 영어도 늘었다면 늘었고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죠.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요. 특히 교포 2세들 같은 경우에는 하나라도 조상에 대해 더 알려하고 배우려고 하고 또 자기 선조 중에 훌륭한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할 수가 없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골목길을 따라 걷노라니 영애씨가 여기가 조용하고 좋을 거라며 주흘재 안으로 들어선다. 덕분에 나는 객으로서는 황송하게도 주흘재 툇마루에 앉아 트여 있는 담장 너머로 펼쳐진 여름 한 낮의 고즈넉한 하회의 풍광 한 쪽을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호강을 하게 되었다. 정오가 넘어가는 시각, 마당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매미 소리가 감나무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 사람들을 이끌고 안내를 하는 일은 어떨까 생각하니 나로서는 미리 숨부터 막히는 기분이다. 사람들이 아침 저녁 시원한 시간 가려서 구경오는 것도 아닐 텐데.
“더운 한낮에 오면 저도 솔직히 사람인데, ‘아, 또 왔어? 이 더운데 집에서 쉬지 왜 이런데 와서 고생하고 그러나. 또 어떻게 나가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사람들 앞에 서면 그런 생각이 없어져요. 그리고 내가 하나라도 설명을 더 잘해서 사람들한테 좋은 인상을 줘서 돌아가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그래서 정신없이 설명하고 대답하고 하면서 돌다보면 땀은 좀 나도 힘들다는 생각은 잊어버려요.
하회마을을 코스대로 한 바퀴 도는데 보통 문화해설사 같은 분들은 한 시간 정도면 끝나시는데 저는 한 두시간반 정도 들어요. 문화재에 대한 설명만 하면 너무 딱딱한 것 같아서 제가 답사가서 느꼈던 이야기, 우리 무속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다 보니 자꾸 시간이 길어지더라고요. 제가 생긴 것도 이렇고(?) 안동사람이라 말투가 안이뻐서 좀 무뚝뚝해 보인다고 그러시는데, 한참을 같이 설명하고 이야기 나누고 하면서 한바퀴 돌다보면 사람들이 그래요. 아 원래 그렇게 무뚝뚝한 인상은 아니구나 하고요. 말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얼굴에 나타나나 봐요.”
자신이 하는 일 이야기가 나오자 영애씨의 말문이 절로 열린다.
“외국분들에게 우리나라 옛날 선조님들은 집을 짓고 당호 하나를 지을 때도 후손에게 줄 교훈을 생각하며 짓고, 나무하나 풀 한 포기 심을 때도 당대 사람들이 아니라 삼사십 년 후에 후손들이 먹을 걸 생각하고 심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처음에는 왜 내가 먹지도 않을 감나무를 심느냐며 되묻다가도 ‘나는 더 예전 할아버지가 심어 놓으신 나무에서 이미 감을 따 먹었으니까 나도 내 손자들을 위해 감나무를 심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면 외국 사람들이 감탄을 해요. 이곳에 있는 집도 나무도 단순히 하나의 문화재, 유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숨쉬고 살았던 숨결을 말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으로 안내를 하고 이야기해 주려고 제 딴에는 노력을 많이 해요. 그런데 연륜이 부족한지 아직은 보람보다는 늘 하고 나면 부족하고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늘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서 실수도 많은데 더 배워야죠.”
어느새 5년, 매일 몇 번씩 둘러보는 사이에, 사람들한테 하회마을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사는 동안에 절로 하회마을에, 마을에 사는 주민들한테 정이 듬뿍 들어버린 영애씨, 주민등록상은 아니지만 마음은 하회마을의 주민이고도 남는 영애씨다 보니 이곳 사람들을 대신해 할 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관광지니까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되고, 당연히 참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만약에 누가 저보고 우리 집을 이렇게 항상 열어놓으라 하고 아무 때나 아무나 들어와서 여기저기 집안 아무데나 쓰레기 버려 놓고, 거기다가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 대부분이 육칠십 넘은 노인 분들이신데 젊은 사람들이 대문간에 서서 ‘이리 오너라!’ 소리치면 저라도 당장 달려 나와서 ‘니 몇 살인데 나이 많은 사람을 이리 오너라 저리 오너라 부르느냐, 니는 부모도 없냐’고 호통치고 싶을 것 같은데…, 다들 잘들 참으세요. 내 부모님 사시는 동네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신경 쓰고 조심하면 좋을텐데… 자기 집이라면 절대 안 그럴 텐데, 여기 와서 보니 우리나라 문화재는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많이 훼손해요. 기껏 새로 바른 창호지 찢는 것은 예사고 문짝도 뜯어가고, 기왓장도 들고 가고. 그 사람들 가고 난 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허리 구부리고 휴지 줍는 거 보면 속상하죠. 제가 같이 휴지 주으면 할머니들이 그래요. 처자는 휴지 줍지 말라고. 쓰레기 줍고 그러는 거 보이면 시집가기 힘들다고요. 저뿐이 아니고 휴지 줍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관광지 와서는 휴지 같은 거 막 버리고 그래도 된다고 누가 그래요?”
말을 하다 보니 영애씨는 속이 더 상하는 모양이다. 어디 하루 이틀 겪을까마는 영애씨를 손녀처럼 여기시며 보면 과일 한 쪽이라도 쥐어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생각에 더 속이 상하는 것일 게다.
“제가 여기 있으면서 많이 배우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외국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대부분 사전에 미리 공부를 많이 하고 와요. 그래서 궁금한 것도 묻고 자기네 문화와 다른 걸 알고 싶어서 배우는 자세로 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와요. 유명하다는 이유로, 가까이 있으니까, 아이들 숙제 때문에 무심코 왔다가 그냥 한 바퀴 휘 돌고는 볼 것도 없다만 뭐 어쩌고 하면서 휙 하고 가 버려요. 물론 꼼꼼히 살피시고 열심히 질문하고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 곳에 있으면서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는 영애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냐는 물음 앞에 영애씨는 생각이 많은 얼굴이다. 영애씨가 이 일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사실은 묻지 않아도 영애씨의 온 얼굴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런 물음을 던진 건 영애씨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만만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애씨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하고 있는 또 다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안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안동평통사)에서 제가 조그만 직책을 맡게 됐는데, 진보와 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안동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문화운동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은 어리고 많이 부족해서 일을 맡기가 부담스러운데 선배님들이 시켜주시니까 그냥 열심히 몸으로 뛰는 거 밖에 없어요. 대학원 공부 마치면 아무래도 사회복지 쪽으로도 일을 해 보고 싶고, 이 일도 가능하면 더 오래 하고 싶고요. 다 해 내겠느냐고 그러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나름대로 조절하면서 다 하고 싶어요. 물론 그때 상황이 허락되는 한도 내에서 해야겠지만요.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안정도 사실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일을 계속하려면 다른 일이랑 병행하면서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영애씨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방자치 단체에서 문화사업에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고 보면 영애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지금 이곳에 문화해설사 분들이 열여덟 분 정도 있는데 그분들이 자원봉사자 일까지 같이 하시는 편이예요. 아무래도 문화해설사 일만 해서는 수입이 안정적이지는 못한 면도 있고 그분들이 잘 아시는 일이니까 겸해서 같이들 하시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외국어통역안내원인데, 통역안내만 하는 경우는 저 한 사람 뿐 이예요. 그런데 사실 보수가 너무 작아서 이 일만 해서는 대학원 학비라든가 생활 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죠.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대학원 학비는 제가 벌어서 공부해야죠. 가끔 여기서 이렇게 통역안내 하면서 사람들 만나며 사는 것도 좋겠다 싶지만, 솔직히 일은 좋고 제 적성에도 맞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지는 모르겠어요. 그치만 아직은 제 힘이 닿으니까 그만두게 될 때까지는 더 열심히 배우고 더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사실 제일 힘들었던 건 사람들하고의 인간관계가 힘들죠.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제가 아직 사회생활에 서툴러서 융통성 없이 원리원칙에 따라 일을 하려고 해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하고 종종 부딪히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럴 때가 제일 힘들어요. 한 번은 한 달 전에 예약해 놓은 외국팀들이랑 급작스럽게 내려온 국회의원이 모시고 온 손님들이 있었는데 윗분들은 당연히(?) 그분들을 먼저 안내해 주길 바라셨고 저는 당연히(!) 예약팀이 먼저였기 때문에 부딪혔죠 뭐. 그럼 세상이 니 뜻대로 니 생각대로만 돌아간다더냐 하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거겠죠. 제가 어릴 때부터 융통성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거든요. 나이 드신 분들처럼 마음의 여유도 아직은 없고요.”
영애씨라고 예외일까? 사회생활에 적응해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그런 일이 아닐까.
요즘 영애씨는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마침 인근 구담에 있는 농은수련원에 계시는 안재모 목사님이랑 수녀님이 이번 여름 방학에는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고 해결하게 하는 문화체험학습을 한번 해보자 해서 계획을 세우시고 저에게도 도움을 청하셔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리기로 하고 같이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회마을 입구에서 아이들에게 전체적인 설명을 하고 각자 미션을 주고 그걸 해결하도록 아이들을 그야말로 방목을 했죠. 너희들의 눈으로 보고 묻고 나름대로 한 가지씩 알아오라고요. 은근히 걱정도 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힘은 들지만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미션 즉 임무가 있으니까 그걸 해결하려고 나름대로 조사도 하고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그걸 다 해결해 나가더라고요. 아이들 스스로 생각보다 많은 걸 찾아내고 얻어 가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역시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체험하는 게 좋다는 걸 확신하게 됐죠. 이런 건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이나 체험학습을 하시려는 선생님들이나 단체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문화재 견학 같은 것은 특히 단순히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직접 체험하면서 익히고 몸으로 체득하는 그런 답사 프로그램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삶과 정신이 배인 우리 문화를 느끼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정오 무렵의 툇마루 그늘은 자꾸 짧아지기만 해서 점점 햇볕이 위로 올라와 어느새 땀이 맺히는가 싶은데 마침 지나가는 관광객이 마당으로 들어서서는 뜨거운 여름날 주흘재 마루 위에 앉아 수다 떠는 여자들을 쳐다보다 간다. 그 순간 우리들은 어쩌면 문화재를 소중히 할 줄 모르는 경박한 여자들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애씨에게는 그 집 그 마루가 너무도 익숙한 일상 속의 한 곳이어서 그런지 그곳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이 그저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그 순간 우리는 하회마을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하회의 풍경 속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담장 너머로 길을 묻는 부부에게 특유의 그 씩씩한 목소리로 방향을 일러주며 영애씨는 하회의 모든 집들은 강을 향하고 있어서 골목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길을 잃기가 쉽다고 부부의 뒷모습에 잠시 눈을 두다가 거둔다.
하회는 언제가 좋으냐는 말에 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좋고 다 좋다는 영애씨.
“다 좋은데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솔직히 너무 더워요. 특히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는 말을 많이 하다보니 입술도 터지고 손발도 얼고 그래요. 말 많다 보니 편도도 붓고요. 제가 마이크 쓰는 걸 싫어하는데다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보니 일년 내내 후두염을 앓아요. 거기다 제가 좀 둔한 편인데, 지난번에 만대루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외국인을 잡아주다가 제가 덩치 큰 그분 밑에 깔려서 여기저기 멍투성이예요. 제가 다치면 다쳤지 외국인이 다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다 얼마 전엔 밤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많이 다쳤어요. 그런데 아프다고 아픈 표시하고 그러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니까 다쳤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하는 데서 아프다고 쉴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색 않고 사람들 오면 또 나가서 안내하고 계속 그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까 쉽게 낮지를 않네요. 그런데 사람들 안내하고 다니며 이야기하다 보면 또 아픈 걸 잊어버려요.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지도 모르죠.”
매일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는 영애씨는 그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매순간 뭔가를 한 가지씩 배우게 된다고 한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분들에게서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자신보다도 문화재에 대해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보는 시각도,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보는 눈높이도 알게 되고. 그래서 결론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서는 내가 더 배우고 나를 더 채워야 한다는 그런 다짐이란다.
“어렵게 순박하게 살아오신 부모님들한테서 제가 확실하게 물려받은 건 참는 거, 참고 열심히 하는 끈기 하나인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거든요.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가라. 죽더라도 학교 가서 죽어라 하시며 웬만큼 아파도 학교는 보내셨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아무리 아파도 대학원 수업을 안 빼먹어요.”
어쩌면 영애씨는 자신의 갈 길을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도 많은 영애씨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그 속에 항상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 장애인도 생존의 차원을 넘어 비장애인과 똑같이 자연스럽게 문화를 누리며 사는 세상,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운동을 꿈꾸는 영애씨. 천상 사람들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 만나는 게 일상인 영애씨는 아무래도 사람들하고 부닥치며 여러 사람을 아우르며 사는 그런 일을 하며 살 운명인 모양이다.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안동을 못 떠나요
“작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일을 못하시게 되어서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아서 제가 대학원 갈 때 등록금 마련하는 게 힘들었는데, 처음부터 제가 내 힘으로 하겠다고 하고 간 대학원이라 제가 어렵게나마 등록금을 마련해서 무사히 등록은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제가 자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술을 한 잔 하시고 제 방에 들어오셔서는 제 머리맡에 뭔가를 뿌리시는 거예요. 잠결에 더듬거려 보니까 만 원짜리 돈다발을 뿌리신 거예요. ‘이게 뭔데요?’ 하니까, ‘니 대학 등록금이다! 이것 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 이러시는 거예요. 속으로야 뭉클했죠. 아버지 마음을 아니까. 그치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줄려면 봉투에 넣어서 주지 왜 이렇게 던져 주는데요?’ 했어요.
선뜻 못 줍고 있으니까 엄마가 그래요. ‘니 그 돈 안할라만 내가 할란다.’고요. 그래서 제가 주섬주섬 주으면서 주신 거니 고맙게 잘 쓰겠다고 했죠. 주워서 세워보니까 백오십만원 이더라구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런 분이세요. 제가 이 일 하면서 대학원 다닌다고 일주일에 두세 번 버스타고 대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안돼 보이는지 먹는 거는 아끼지 말라고 입에 달고 사세요.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은 시간이 없어서 하회마을서 일 마치고 곧바로 터미널로 가서 대구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집에를 못 들르거든요. 게다가 제가 다녀보니까 차비는 아낄 수가 없고 아낄 데는 먹는 거 밖에 없더라고요. 그게 부모님 마음에 쓰이셨나 봐요.
어느 날 일 마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신시장 앞 버스 서는 곳에서 아버지가 손을 들고 차를 세우시더니 꺼먼 비닐봉지를 건네주시더라고요. 보니까 김밥 두 줄이 들어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그런 거 들고 다니시는 거 싫어하시는 분인데 그걸 들고 내내 기다리신 거예요. 그런데 그 담부터는 아예 제가 학교 가는 날이면 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워 주세요. 그럼 아버지가 제게 꺼먼 비닐봉지를 건네주시고 가세요. 지난 한 학기 내내 그러셨어요. 아주 가끔은 그 봉지 안에 신문지가 같이 접혀 있는데 펴보면 그 안에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기도 해요. 그건 정말 아주 가끔이예요. 지금은 방학이지만 아마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또 그러시지 싶어요.”
“저는 정말 안동이 좋고 안동 사람들이 좋아요. 남들이 들으면 뭐를 모른다, 주제넘다 할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도 좋고, 제가 안동에서 살면서 해야 할 일도 찾아보면 많다고 생각하고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안동을 못 떠나요.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투닥거리며 사는 게 좋아요. 서울에서 온 아이들이 저더러 사투리 한 번 써보라 그러면 제가 그래요. 저는 사투리 같은 거 잘 못 쓰는데요. 여기서는 안동말이 표준말이라 사투리 안 쓰거든요. 그럼 서울 사투리는 어떤 건데요? 하고요. 그럼 아이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해요.”
영애씨가 안동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것도 그런 마음일 터이다. 거기에는 별달리 거창하거나 유난스러운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안동 사람들 중의 하나로 살아가는 것일 뿐, 다르다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눠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걷고 있는 영애씨의 발걸음에 실린 꿈의 무게 정도가 아닐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