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보는 순간 외가댁이 생각났다-고랑골 외할머니(글/반윤희)

하루하루 흘러가는 날들이 야속하다. 아무리 붙잡아 보려 해도 어느 사이 바람결에 실려 온 세월은 저만치 달려만 가고 있다. 어머니는 어느 사이에 팔순을 두 해나 넘기셨다. 이젠 허리마저 굽으셨다. 구순이 훨씬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늘 소극적이었고 무엇인지 모르게 눈치를 보는 듯 하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별명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가엽고도 가여운 한 세상을 살다 가신 분이다.


가난한 양반 댁 규수로 곱게 자란 외할머니는 다실이란 곳에서 고랑골 박참봉댁 둘째 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이에 비해 큰 외할머니는 만석꾼의 외동딸로 바리바리 싣고 몸종까지 거느리고 시집을 왔다. 그러니 외할머니는 늘 기를 펴지 못하시고 궂은일도 마다하지를 못했다 한다.
외가댁은 하늘을 찌를 듯한 추녀가 높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아래채가 여럿이 죽 늘어서 있었다. 외가는 댓돌 마루턱이 높아 마루에 오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건너 방에는 베틀과 물레가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한량이신 외할아버지 뒷바라지에 정성을 기울이셨고 물레를 돌리고 늘 베틀에 올라서 베를 짜야 했다. 한번은 물레에 바쳐 놓았던 방치 돌을 마당 한쪽으로 던지려고 하는 순간 어린 남매가 앉아 놀고 있어서 돌을 안고 같이 떨어져서 손가락 두 개가 뭉개져 떨어져 나갔고. 허리를 다쳐서 젊은 날부터 허리가 굽었다.


외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늘 일만 하셨고 표정이 별로 없었기에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를 않았다. 외할머니는 학교 다니는 외사촌 셋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사셨다.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우리 집에 살면서 친손자들만 위하고 무엇이든 우리 형제들 몰래 외사촌들만 주고 문도 늘 잠그고 그랬다. 그 때엔 외할머니가 야속했지만 지금에 사 생각해 보니 너무도 철이 없었다. 만석꾼 집에 시집을 와 신혼 때 잠시 뿐 영화를 못 보고 늘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으며 사위마저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날아 왔다.
“할매, 할배가 돌아 가셨대” 달려가 전하였으나 하던 바느질만 계속 하고 있었다. 옆에 가서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나는 그런 외할머니가 이상했었고, 한번도 죽음을 대한 적이 없는 나로선 죽음이란 것이 별 것 아닌 거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겐 더 없이 좋았고 자상하며 늘 자애로웠다. 외할머니에겐 한(恨)을 심어준 사람이지만, 별로 말이 없던 외할머니는 다 자란 외손녀에게 살아 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는 옷 두 벌을 내일 아침까지 지어 놓아라 하여 외할머니는 밤을 하얗게 새워 바느질을 했다. 다음날 외할아버지는 내 큰아버지를 데리고 와서 옷을 입혀서 앞세우고는 만주로 하얼빈으로 북경으로 일본으로 천지를 유람하며 돈을 물 쓰듯 하였으며 일본에 가서는 생 이빨을 뽑고 금니를 하고 왔다고 한다.


엄마가 열 살 되던 해에 어린 애첩을 들이는데 집과 논밭을 수 십 마지기를 주고 데려 와서 온 동네잔치를 벌렸으며, 외할머니가 안아다가 신방을 꾸며 주었다 했다. 그 심정이 오죽하였을까, 첩실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겐 더없이 자상하고 후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았으며 나에게도 사랑이 넘쳤지만 외할머니에겐 차고 냉정하며 눈길 한번 주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어머니를 시집보낸 몇 년 후에 외할아버지는 읍내로 첩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의 논밭과 어린 사 남매를 남겨 둔 채로, 그 때부터 외할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본 외할머니는 늘 초라해 보였고 웃음이 없고 굽은 허리로 늘 일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며느리들에게도 숨 한번 크게 못 쉬는 듯 하였다. 팔십이 넘도록 큰손자네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았으며, 만년엔 눈도 귀도 어두워서 나도 못 알아보았다. 가끔 가보면 비 맞은 중처럼 늘 중얼중얼 하였으며 가만히 들어 보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한(恨) 의 소리인 듯 도 하였다. 사변 때 이북으로 갔는지 고등학교 때 없어진 막내아들을 평생토록 그리워하며, 고랑 골 떠나는 것을 그리도 안타까워했는데, 혹시 라도….


나의 외할머니 보다 더 처절하게 인내하며 투쟁하며 일생을 살아 온 여인이 또 있을까. 박씨 가문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더 깊게깊게 내린 외할머니, 누구도 외할머니를 이해해 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못 했던 것 같다. 나 또한 허리 굽은 내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바라만 볼 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인생이란 삶이란 모두가 자기 몫이고 자기만이 감내하고 가야할 뿐인 것 같다.
외롭고 외로웠던 외할머니는 새롭게 시작되던 날, 모든 가족이 다 모인 따뜻한 어느 설날 아침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먼 길을 떠났다


한(恨)많은 일생을 뒤로하고…<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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