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추억 감자(글/김연숙)

“따르릉, 따르릉~”


일을 거의 끝내고 가게 문을 닫을 즈음 요란히 울리는 전화벨소리.


“네, 우물가입니다!”


“서울서 내려 온 000인데요. 우물가에 가면 냉수 한 그릇 주니껴?”


“그럼요. 어딘데요?”


“시간 여행 앞인데 문이 잠겨서 갈 곳도 없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여행에 지친 사람에게 무엇을 대접할까 머리를 굴려봅니다.


백담사에 다녀오면서 사온 황태 두어 마리, 도토리묵 두어 모.


눈에 보이는 대로 안주를 장만하면서 여기 저기 휴대폰으로 회원들을 부르는데, 한 사람이 지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반가워합니다.


“충주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고개만 넘으면 고향인데 싶어서 핸들을 돌려왔지요.”


“술은 무엇으로 한대요?”


“막걸리 있어요?”


“네, 사오면 되지요.”


투가리에 막걸리 붓고 조롱박 띄우고 황태찜, 묵무침, 맵싸한 전 한 장, 김치, 명아주 무침, 시원한 오이 미역 냉채로 얼른 상을 차려 놓고 이야기꽃을 피워갑니다.


회장도 없고, 회비도 없이 이십오년, 그 긴 세월을 꾸려 나가시는 순수하고 진실함이 가득한 모임. 그 회원들을 통해서 내가 가질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를 배웁니다.


남정네 틈에 끼어 앉아 주인 반, 객반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안주가 거의 비워지자 무엇을 준비할까 하다가 감자 생각이 났습니다. 몇 개 긁어서 단맛과 소금으로 간을 해서 압력솥에 딸딸딸. 금새 분나게 삶아 내어놓으니 너도나도 한 마디씩 풀어놓는 감자에 대한 추억이 웃음을 선사합니다.


이육사 선생님의 “칠월엔 청포도가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우물가에는 서리하고 감자 먹던 고향 추억”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술잔을 타고 흘러나옵니다.


내 고향 칠월의 풀베기도 어느새 내 속에서 나와 앉아 오고가는 추억이야기 한 켠에 자리를 잡습니다.


농사 밑천인 풀베기가 시작되면 이집 저집 돌아가며 품앗이를 합니다. 오전에 두 짐 오후에 두 짐, 그리고 큰 작두 대령시켜 풀을 작두에 한 사람 먹이고, 하나는 뒤에서 이어주고, 두 사람 작두 밟고, 나머지는 나르고 풀 산을 만들어 갑니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사람들 흥겨운 소리, 반딧불도 춤을 추고, 모기는 사람냄새 좋다하며 달려듭니다.


 


마당 한 켠에 모기 불을 피우고 등은 처마 끝에 달아 놓으니 환한 달빛에 온 동네 잔치하는 날 같습니다. 아낙들은 모여서 칼국수 밀고 애호박에 풋고추 전 부치고 옥수수 한 솥 앉히고 그 위에 감자 넣고 밀가루 반죽을 얹어서 푹 찌면 구수한 냄새 코끝을 벌름거리게 하지요. 시금털털한 막걸리에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벌떡 벌떡 들이키시던 동네 어르신들, 그 사이사이로 논두렁의 개구리들 목소리 모아 합창을 하면 야외음악회 마당에 구경꾼이 없어도 절로 신이 났습니다.


칼국수 밀고 있는 할머니 졸라 국시 꼬시랭이를 얻어서 동생들과 숯불에 구우며 서로 내 가마니 크다고 내기도 하고, 반딧불 잡아 망 속에 넣어 창가에 두면 반짝 반짝 작은 별빛이 되기도 했습니다. 태산 같아 보이던 풀 동산 하나 만들어 놓고 깊어 가는 밤 깊어 가는 웃음소리 삽짝문을 타넘어 밤하늘로 놀러 갑니다. 달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내려다봅니다. 별빛도 깊어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사람들은 내일은 누구네 집으로 모인다며 의논하시고 각자 집으로 흩어집니다.


부족함이 많아도 나눠 갖는 마음만은 늘 푸짐했던 옛날, 부족한 게 없어지고 대신 마음이 메말라 가는 현실 앞에서 고향은 늘 그렇게 내 기억을 흔들어 줍니다.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다가 우물가를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목마르면 생수처럼 시원하게, 때로는 쉬어가고 싶은 사람의 쉼터가 되어 누구나 고향 생각나면 우물가를 찾아오게 하고 싶고, 또 그렇게 찾아드는 손님들과 있는 정 없는 정 나눠가며 한 세상 꾸려가고 싶은 바람을 안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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