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피난민 신우선씨네의 인생 유전(글/이동백)25년 전 어느 겨울, 나는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고향을 떠나왔다. 만원 버스에 짐짝처럼 실린 이들 중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고향을 물에 묻고 쫓겨나듯 그 고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는 곳은 다 달랐다. 어떤 이는 서울행 기차를 타야 했고, 어떤 이는 대구행 기차를 타야 했으며, 어떤 이는 또 다른 농촌 마을을 찾아가야만 했다. 이렇게 떠난 사람들은 안동 버스 터미널에서 꼬투리에서 퉁겨 나가는 콩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잡은 손등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사이도 없이 그들은 기약 없는 이별을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수몰민이 되어 대구행 기차를 탔던가?
기구한 삶을 운명이라 부르며 산 세월
안동댐이 지어질 무렵, 이렇게 사람들은 누대(累代)를 이어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신우선(74)씨도 끼어 있었다. 그는 월곡 장터 사람이었으므로 이삿짐을 싸야 했다. 멀리 가진 못하고, 그는 인근 동네, 임동에다 집을 마련하여 자리를 잡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타고나는 법이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산다는 것은, 실은 이 운명이 정해진 바에 따라 움직이는데 불과한 것 같다. 신우선씨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삶은 간단(間斷)없는 피난살이로 전철(轉轍)되어 있다. 이렇듯 기구하게 살아낸 그의 삶을 운명으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운명은 첫돌 전부터 시작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첫돌 전에 강보에 싸인 채 부모의 고향인 예안면 도목동 절강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절강 마을은 평안도 백천에서 신우선씨의 13대조인 신경익(辛慶益)이 임란을 피해 입향한 이래 영월 신(辛)씨들이 살아온 400년 터전이었다. 부모 등에 업혀 고향이라고 찾아왔지만 그에게는 곧 어머니를 여의게 되는 비운이 찾아들고, 이어 가산이 기운다. 여기서부터 그의 삶은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어미 없는 아이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가난은 그를 굶주리게 했다.
쓸쓸하고 서글픈 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던 그는 일제에 의해 징용을 당하고 만다. 함경북도 장진 발전소 노무자로 징용살이를 하던 중 그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 그 길로 천 리 길을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삼척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그 후 그는 국군에 자원 입대하면서 6·25를 겪게 되고, 그 전쟁의 와중에 공비 토벌 작전과 양양, 단양 전투에 참전한다. 그는 이 전투에서 세 차례에 걸쳐 총상을 입는다. 이 총상이 생명에는 지장을 주진 않았지만, 일생을 두고 그를 고달프게 한 또 다른 이유가 된 것이다.
안동댐으로 시작된 피난살이
전상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는 자연히 혼인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혼기를 넘긴 29세의 나이에 18세의 어린 색시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가정을 이루면서 농사를 지었으나 전상의 후유증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자연히 농사는 아내의 몫이 되고 말았다.
"말도 마이소. 혼인하자부터 오늘까지 저 양반이 애를 멕이니더."
아내 정종임(64)씨의 넋두리이다.
농사를 포기하고 당시 월곡면 소재지인 미질 장터로 이사한 것이 혼인 후 10년이 되던 해였다. 미질에서의 생활은 아내의 행상으로 비롯된다. 아내는 갓난아기를 업고 고기 행상을 했다. 외관 멀쩡한 사람이 아내를 장삿길로 내모는 형국이 되고 보니, 남들은 그를 백수 건달로 손가락질을 했지만, 아내의 장사를 도와 줄 형편은 되지 못했다. 아기를 데리고 행상을 하기란 여자의 몸으로는 벅찼다. 아내는 전포를 내어서 들앉은 장사를 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떡장사, 옷장사, 유기 장사, 술장사를 바꿔가며 하기에 이르렀다. 10년을 이렇게 살았지만, 재산이라고 일궈놓은 것은 고작 초라한 오두막집 한 채뿐이었다.
1976년, 안동댐이 완공되는 해였고, 미질 장터가 물에 잠기게 되는 해였다. 신우선씨는 보상비 29만원을 싸들고, 수몰민들 틈에 끼어, 살 곳을 찾아 안계, 비안 등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형편이 닿지 않아 결국 그는 이웃 동네, 임동에서 이삿짐을 풀고 말았다. 신우선의 고달픈 피난살이 인생유전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사는게 말이 아니지요
신우선씨를 만나기 위해 성곡동 윗터골 마을을 찾아간 날은 볕이 유난히 고운 가을날이었다. 댐 민속촌 경관지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자, 좁직한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 북쪽 산발치를 따라 집들을 한창 짓고 있었다. 사극 왕건의 촬영 세트장 건설 현장이었다. 그럴싸한 모습들이었지만 무척이나 속성으로 지어지는 건물들이었다. 작년 10월 건축에 들어가 내년 봄 오픈을 목표로 진행중인 이 세트장은, 이 골짜기 4만 7천 평 부지에 동헌, 감옥 등 관아와 초가 20여 동등 민가가 들어서 드라마 촬영에 사용된다고 한다.
약간 휘어진 모롱이를 돌아 올라가니 꽤 넓은 개활지가 야트막한 산으로 사위가 둘러싸인 채 펼쳐져 있었다. 땅이 파헤쳐지고 뒤집어진 상태여서 어수선하게 보였으나.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상당히 안존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지닌 곳으로 짐작되었다. 남쪽으로는 집들이 몇 채 낮게 엎드려 있었고, 개활지 가장자리를 따라 선 감나무에선 붉은 감이 고즈넉하게 달려 있었다.
마을 사람 이필구씨를 만나 신우선씨를 찾으니, 와룡으로 이사 갔다면서, 간혹 들리는 수도 있으니, 혹시 골짜기로 올라가 보란다. 신우선의 집이 어디냐니까 바로 이것이다라고 한다. 그가 가리킨 것은 허름한 컨테이너였다. 신우선의 컨테이너는 굳게 잠겨 있었고, 살림살이는 컨테이너를 돌아가며 아무렇게나 쌓인 채 비닐 덮개에 덮여 있었다. 수도꼭지 하나가 컨테이너 곁에 쓸쓸하게 서서 길손을 주인대신 맞을 뿐이었다. 그의 생활 형편을 물으니,
"말이 아니지요."
했다. 골짜기로 올라가니, 그는 없고 김용구(61)씨가 볏짚 한 짐을 지게에다 지워 놓고 쉬고 있었다. 그는 신우선과 함께 왕건 세트장 부지 조성 공사에 집을 수용 당해 버린 사람이었다. 보상을 받았으니, 좋겠다고 하니, 그게 아니란다. 동악골의 경우는 현시세로 평당 지가가 3-40만원을 호가하는데, 평당 3만원 정도의 보상비로 만족해야 할 판이어서 막막하다는 것이다. 돈이 짧은 데다가 남은 토지가 있어서 이 골을 떠날 수도 없단다. 촬영장이 관광지로 개발될 경우, 상가 임대권이라도 받는 것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의 집은 헐리고 지금 그는 컨테이너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는 게 말이 아니지요."
이필구씨가 하던 말을 그도 고스란히 받아썼다. 그의 컨테이너는 공사판 한가운데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신우선의 컨테이너에서는 10여 미터 떨어진 자리였다.
신우선씨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길, 길섶에 핀 파란 잔대꽃 하나가 외롭게 피어 있었다. 그 예쁜 꽃의 고독 위로 신산(辛酸)스런 골짜기 사람들의 삶이 포개지고 있었다.
임동에서 살만하니 임하댐 들어서고
신우선은 와룡초등학교 건너편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를 찾아 들어가니, 그는 뒷방에 누워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전상(戰傷)의 후유증으로 조금만 피로하면 이렇듯 누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국가 유공자로 지정이 되었다면서 대한민국 상이군경 회원증과 국가유공자증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행적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에는 풍수지리서 -그는 한때 지관(地官) 노릇도 했다- 를 가지고 와서 펼쳐 놓았고, 가계를 알리고자 할 때에는 족보를 한아름 안고와서 조상의 내력을 손으로 짚어 주었다. 살아온 내력을 전하는 이는 주로 그의 아내 정종임씨였다.
"이 양반 살아온 내력을 소설로 쓰면 지게로도 몇 짐은 될 걸요."
이렇게 운을 띤 그녀의 이야기는 미질 시절을 넘어 임동 시절로 이어졌다.
임동에 이삿짐을 푼 그들 내외는 보상비로 밭 다섯 마지기를 사고, 임동 장터에 난전을 터서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 유기, 스텐 등 주방 기기를 주로 취급했다. 장공일에는 농사도 짓고 남의 집 날품팔이도 해가면서 정종임씨는 억척스럽게 일을 해 나갔다. 남편 신우선씨의 몸은 보름을 편케 넘기지 못하는 고통의 연속이어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빤하다 싶다가도 시름시름 몸져눕는 것이 평생을 두고 이어온 저 양반의 삶이시더."
밤낮을 일에 파묻혀 살아도 아이들 학교 시키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학교를 다 시키질 못한 것이 지금도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단다.
가장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일이 무엇이냐니까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가고 싶다고 할 때 못 보내 준 일이고, 첫째 아들이 서울 돈 벌러갔다가 사고로 뇌를 다쳐 돈 한 푼 없이 허둥대며 안동과 서울을 넘나들며 눈물 흘리던 일이라 했다.
임동에서 12년을 살면서 터를 잡아 좀 살 것 같다 싶은 찰나에 또 한 차례의 환란이 이 집안을 찾아들었다. 임하댐 건설로 임동이 물에 잠기게 된 때문이었다. 물에 쫓겨난 사람이 또 물에 의해 피난을 해야 할 판이 되고 말았다. 보상금 2천3백만 원을 손에 들고 쫓겨나게 되고 보니, 그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번엔 왕건세트장?
이주처를 찾아다니던 중에 장태용이란 이를 만나 성곡동 윗터골 들어오게 되었다. 모두 뙈기 땅뿐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몇 차례 들러 보면서 가진 돈도 많지 않고, 산세가 좋아 보여 죽으면 묻힐 곳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신우선은 이 곳을 마지막 거주지로 정했다 한다. 윗터골 들어와 논 세 마지기와 밭 일곱 마지기를 보상비로 마련했다. 그러나 논이 일곱 뙈기로 나뉘어져 있는 천수답이었다. 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지 정리를 하여 옥답으로 만들어 놓았다. 풍족하지는 않았으되, 집이 있고, 굶지 않을 만큼의 전장을 가진 까닭에 윗터골에서의 삶은 참 안정적이었다. 신우선씨는 이 곳에서 회갑을 조촐히 치루게도 된다. 자식들도 대처로 나가 직장들을 잡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낸 시절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신우선씨를 안존하게 붙잡아 두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들락거리던 어느 날, 드라마 왕건 세트장을 짓게 되었다며, 토지를 수용하겠으니,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신우선씨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집도 마련하기 전에 포크레인이 들이닥쳐 집을 짓뭉개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신세를 진 것이 컨테이너이다. 보상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었다. 집과 과수(果樹)에 대한 보상비로 6천만 원을 받았다. 토지는 평당 3만 원의 보상비를 제시하고 있어 거부해 버렸다. 아직 토지에 대한 보상비는 받지 못한 처지이다.
"서울, 상주, 태백을 다 돌아댕겨 봐도 한 평에 3만 원짜리 땅은 없어."
신우선씨의 말이다. 그래 뛰도 걷도 못하고 컨테이너에 갇혀 지내는데, 시청 담당 직원이 생활 정보지를 보고 소개해 주어서 찾게 된 것이 지금 살게 된 와룡면 태리 새터 마을이었다.
이제 이곳이 내 사는 동안 마지막이 돼야 할터이나…
우선 와룡에다 집은 마련하고 이사는 했어도 토지는 아직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곳이 내 살 동안 마지막이 돼야 할 터이나, 면사무소에 전입 신고하러 갔더니, 담당 직원이 거기 또 도로라도 나면 어쩔 것이냐며 농담을 해, 허참."
허망하다는 투로 신우선씨는 혀를 찼다. 아닌게 아니라 이 마을도 안동댐 수몰민들이 옮겨와 사는데, 마을 앞을 지나가는 퇴계로가 확장을 하게 되면 신우선씨의 집이 또 언제 헐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까지 그 질긴 운명에 놀아나겠냐며 허허롭게 자위하는 신우선과의 만남은 여기서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부부를 좁은 마당에 세워 놓고 사진을 찍으려 하니, 신우선씨가 내외하듯 엉거주춤 떨어져 서 버린다.
"평생 뻘쭘하게 살았는데, 가까이 좀 서요."
아내가 옷을 잡아당기자, 남편은 그제야 주춤주춤 다가선다. 신우선 씨의 피난살이 인생 유전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기는 순간이었다. 신우선씨 여생의 정착지는 어디일는지? 물음표 하나를 남기며, 그들 부부와 헤어지는데 긴 산 그림자가 발에 밟혀 들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