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를 넘어 새로운 삶의 세계로, 문경새재박물관(글/권두현)


문경새재가 워딘가이?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은 박물관이나 그곳에 가고싶어 하는 사람에게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시멘트 건물이 빽빽한 도심속 박물관도 나는 좋다. 근접성을 높여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박물관이 해야할 가장 큰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쉽다. 오디오 속에서 듣는 음악보다는 아무래도 현장에서 생생한 소리를 듣는 것이 감동의 폭이 크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우리들 주변에서 꼭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박물관, 그 중 하나가 문경새재박물관이다.


전라도 고흥 고흥노인정에서 민요을 조사할 때였다. 들노래가 불리워지고 술잔이 오가는 등 제법 분위기 무르익자 진도아리랑이 튀어 나왔다 후렴구가 돌아가고 선소리를 기운차게 메겼다.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그런데 선창자가 갑자기 노래를 끊고 정색을 하면서 말씀하였다. "참! 그란디 문경새재가 워딘가이, 문경에 있는 것을 알겠는디 이 문경새재가 얼매나 유명하길래 이 고흥땅, 아녀 전라도 지역에 이 가사 안붙이는 데가 업을 것이여, 학생은 아는가? 이 문경새재가 워쩌 이렇코롬 이렇게 유명해저부렷는지 학상을 아는가 이말이여, 잉"


그러고 보니 문경새재가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의문이 간다.
아직도 의문으로 남지만 아마 모른긴 해도 재를 넘어가는 것은 그 재의 높이 만큼 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리라.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재를 넘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에서 재가 가진 그 아련한 사연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넘나들던 서른굽이 큰재였던 문경새재. 고향을 찾고, 고향을 등지며 오가는  문경새재, 그래서일까 진도아리랑은 "구비구비가 눈물이로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한양으로 가자면

경상도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길은 크게 추풍령과  죽령, 그리고 문경새재이다.  그 중에서 영남권 선비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재는 문경새재이다. 문경이란 말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문경(聞慶)!, 말 그대로 경상도 말씨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는 고장이란 뜻이다. 문경에서도 새재는 그 경계점에 위치한다.  사실 여행을 다녀보면 강이나 산, 재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정한 것은 자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용한 것이라는 긍정적 사연이 있다.


새재라는 지명유래는 새들도 날기 어려워서, 억새풀이 많아서,  하늘재와 이화령사이(새)의 재,  새로 난 재등 여러가지가 있다. 새들도 날기 어려운 험하고 힘든 재, 억새풀이 많은 서정성, 서울로 올라가는 새로운 재 등 유래담의 모두가 새재의 특징을 담고 있어 새재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김하게 한다.


현재 새재에는 주흘관(主屹關), 조곡관(鳥谷關), 조령관(鳥嶺關)등 3개의 관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관문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쌓았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고시니 유끼나가(小西行長)가 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쳐들어오자 신립장군이 충주에서 배수진을 쳤는데, 그때 만약 새재협곡을 이용하였다면 새로운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평가 때문에 1594년에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쌓았던 것이다.  이후 병자호란을 겪은 후 1708년(숙종 34) 1관문인 주흘관과 3관문인 조령관을 쌓았다.


최소한 왜군이 이용할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문경새재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람이 다닌 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이 험하고 위험하여 많은 사람들과 물자를 이동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국가에서 관리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왜군 이동경로 이후 군사적, 문화적 요충지로 부각되면서 국가에서 관문을 설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고, 또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민중의 목소리는 새재를 넘어

새재 관문만큼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집이다. 서낭당, 여신각이라 불리우는 이 당집은 주흘관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집 상량문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만들어진 연대는 1700년경이었고 1844년에 중수되었다. 상량문에는 "새는 날개짓하고 꼬리달린 짐승들은 서로 뒤썩여 아름다움을 이루기를… 아침저녁으로 나는 꽃다운 향기는 오가는 나그네가 드리는 정성, 초하루와 보름에 나는 향불은 마을의 늙은이와 동네 아낙들의 기도…" 등  당집을 건립한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있어 보는 사람을 훈훈하게 한다.  당집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인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직도 이곳에서 큰굿을 지내는 등 그 영험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당집에 좌정한 신은 여신으로 최명길과 관련된 당신화가 있어 흥미로움을 더한다. 간략하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최명길이 어릴 때 안동부사인 그의 외숙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밤이 깊어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고 길을 나선 목적을 물으니 자신은 새재 당집에 사는 서낭신인데 안동에 사는 모 좌숙집에서 자신의 당에 걸린 옷을 딸에게 입혀 이를 단죄하러 가는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최명길은 사람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라고 타이르면서 자신이 그 좌수댁에 가서 잃어버린 옷가지를 찾아줄테니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이에 서낭신이, 최명길은 장차 영의정에 오를 것이라 예언하면서 중국 만주쪽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인데 명이 망한다고 하면서, 부디 만주국인 청과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을 보전하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 뒤 돌아갔다. 안동에 온 최명길은 그 좌수댁을 찾아가 딸을 구하였다. 이후 최명길은 서낭신과 맺은 인연으로 병자호란시 청과 화친을 주장하였다"


새재 서낭당에 전해오는 이 이야기는 동일하게 죽령 서낭당 신화에도 나온다. 지역만 같을 뿐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이야기가 영남을 지나는 고개에 전해오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최명길은 안동을 찾아온다. 안동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이 피난을 온 곳이다. 그리고 당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 선비들은 김상헌 주장에 어느정도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 주전론의 김상헌과 주화론의 최명길은 청명교체기 조선의 외교노선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된 인물이다. 이들의 당시 판단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새재와 죽령에 전해지는 신화는 당시의 묘한 민중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임진왜란을 경험한 민중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새재 서낭신은 국가적 싸움에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병자호란의 내막이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야기된 싸움인만큼  국가의 이익이 창출되는 싸움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 탐탁잖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재 혹은 죽령을 통하여 서울로 전달되는 민심에 민중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서낭신의 바램은 이 신화를 통하여 아주 곡진하게 전달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새재와 죽령이 가진 문화적 위상에 걸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덧붙혀 필자는 아직 김상헌의 척화론 주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김상헌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안동땅에 와서 살았으며 이에 반해 최명길이 안동에 왔었다는 기록이 없음을 볼 때 새재 서낭신은 많은 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공간과 인간이 만날때

제 1관문을 넘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경북 개도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6년에 세운 타임캡슐이다. 1996년 경북을 대표하는 100품목 475종의 물품을 넣어 첨성대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캡슐은 경북개도 500주년이 되는 2396년 10월 23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자가 시간에 대한 의문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란 당대 문화를 알기 위한 것이므로 시간 그 자체에 이해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시간에 대한 문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현재를 중시해온 필자는 최근에 들어와서야 나의 시간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나의 삶과 규정된 시간을 연결시키면서 시간이 가진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주어진 삶의 시간에서 나의 나이,  내 자식놈에 대한 나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프로그램,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강박감, 사회적 존재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것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헤겔은 동양철학이 공간은 있고 시간이 없다는 비판하였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느끼면서 오히려 동양철학의 이러한 면이 너무나도 긍정적인 점이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을 예측하면서 산다는 것은 계획적일 수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문화가 형성시켜놓은 결집을 최대한 누리는 혜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란 이미 규정된 것이 다시 자신을 규제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면에서 몽테뉴의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면서 그것을 끊어갔다는 말처럼 시험대에 놓인 기분도 동시에 든다. 따라서 당면한 공간이 시간을 어떻게 쪼개어 가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은 생기지만 그 순간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성실한 자세인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동인가?


500년 전에 만들어놓은 인간의 여러 문화적 장치를 나는 본다. 그리고 500년전 인간의 문화를 논한다. 그러나 아무도 500년 전 그때 그 인간은 그 당시의 공간에 최선을 누렸는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간, 산술적인 500년 뒤에 이 타임캡술이 열린다. 물론 나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500년 후의 인간은 그 뒤 500년 후에 볼거리를 위하여 또 타임캡슐을 묻을 것이다. 500년 전이나 후나 시간의 변화에 대하여는 주목하지만 그 공간에 만족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긴 채 말이다.


산불됴심 합시다

타임캡슐에서 조금 올라가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사극 왕건의 촬영장이 나온다. TV를 즐기지 않은 관계로 왕건 드라마의 내용을 잘 모른다. 다만 그 촬영장을 둘러보면서 고려이전의 주거문화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고 현물로 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들리는 말에는 왕건 촬영장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문경새재로 몰린다고 한다.


조금 가면 전나무 고사목이 있는데 새재 수호목으로 600여년간 새재를 넘나드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러던 것이 20여년 전에 넘어졌고, 새로 전나무를 심어 그 의미를 이어간다고 한다. 고개마루에 커다란 공터를 만들며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 고개마루의 추억, 이만한 벗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문경새재에 있는 나무, 풀, 돌 모두가 그곳을 찾을 사람과 대화한다. 그래서 문경새재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박물관하면 으레 전시를 떠올리는 관념상 박물관 전시실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전통한옥의 멋을 살려 지어진 전시실 건물은 그런데로 헌앙한 모습이다. 마침 이곳에서 연구와 전시내용을 관리하는 안태현 학예사와는 각별한 사이여서 그의 안내로 박물관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몇 년전에 필자도 잘아는 후배와 혼인하여 최근 아들을 낳아서인지 안내를 하면서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 모습에 아들을 둘씩이나 가진 필자는 선배로서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어 한마디 하였다. "아는 지가 알아서 큰데이!"


실내전시장은 새재관문의 이름을 빌어 주흘실, 조곡실, 조령실로 구성되어있으며 야외전시장을 합하여 박물관에는 모두 4곳의 전시실이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산불됴심"이란 비였다. 한글 비로는 보기 드믄 이 비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붉은색의 글씨와 됴심이라는 문구가 강렬하면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한문으로 새겼으면 이러한 친근감이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편견인가?


문경을 가장 문경답게 알려주는 전시가 있다면 그것은 경상감사도임행차(慶尙監司到任行次)이다. 새재 용추폭포 옆에 세워진 교귀정(交龜亭)에서 거행된 이 행사는 임기를 마친 경상도 감사가 신임 감사에게 관인(官印)을 넘겨주는 행사이다. 말하자면 업무이관을 하는 의례인 것이다. 경상도 땅의 처음인 문경새재에서 이 행사를 했음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며 풍광과 지형적 위세가 좋고, 도임행차 규모가 300여인 이상이 참여한 점으로 보아 매우 장엄한 광경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전시실은 이어져 문경지역에 유명한 의병장인 이강년 선생을 중심으로 한 의병활동,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사람들, 신앙, 생활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문경은 특히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도자기 전시에 대한 각별함도 보였다.


전시란 영화라기 보다는 사진에 가깝다. 한 장에 사진이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문경새재박물관의 전시는 그러한 점에서 문경지역의 문화와 사람을 담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태현학예사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접하고 이해하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문경지역 문화에 대한 공부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생을 걸어갈 때 우리에게, 아니 나의 길을 갈 때 넘어야 할 재는 어디인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를 넘어갈까 아니며 새로이 재를 만들어 넘을까?  나는 어디를 가기 위하여 재를 넘고, 만들려고 하는지?  그러나 부디 새재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처럼 나의 삶도 저와 같아 재를 넘으면 맑고 깨끗해야 하는데…하는 되지도 않는 사념을 한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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