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코타로 첫 개인전 연, 조각가 신동국씨(글/임종교)텅 비어버린 들판에 그 허허로움을 감싸주고 있는 건 겨울 오후의 낮게 내리쬐는 햇볕 한줌이다. 그 햇빛을 받고 있을 시간이 너무 잠깐이라 때론 아쉽지만 겨울 햇빛은 짧아서 더 고맙고 좋은지 모르겠다. 이미 자연은 그 몸뚱아리를 우리들 앞에 버젓이 내놓으며 미처 준비못한 마음을 단도리시키고 있다. 지금은 고운사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나는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맡겨져 시골에서 자랐다. 별다른 장난감없이 하루종일 흙장난하며 노는 것이 전부였지만 돈벌이에 바쁜 엄마의 품 말고 부족한 건 없었던 거 같다. 그래 그런지 동년배들처럼 화려한 네온불빛보다 역광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 하나하나에 더 뭉클해진다.
물론 필자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흙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났다. 고운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네, 일직면 망호2동이다. 시멘트 길이 없어지고 흙길이 그대로 드러난 구불텅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그 흙길도 길을 잃어버릴쯤에 하얀 조립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바로 11월에 첫개인전을 열었던 조각가 신동국씨(41)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조립식 건물 아래로 넓직한 마당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텃밭이 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조각상 하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주거공간과 작업실로 꾸며져 있는데 신동국씨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이곳에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놓았다.
이곳에 이리저리 자신의 조각품을 세운 작은 조각공원을 만들 꿈을 꾸는 것 같다. 작업실을 만든해가 97년이라니 그때부터 뻔질나게 이곳을 드나들며 그의 손때를 묻힌 흔적이 역력하다.
어린시절 필름 한 장
신동국씨는 밀양이 고향이다. 어린시절부터 흙과 같이 자란 그는 아주 선명한 어린시절 필름 한 장을 간직하고 있었다.
"봄이나 가을쯤 된 것 같은데 아버지는 청마루에서 신문을 보시고, 그 와중에 내가 땅바닥에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그걸 보시고는 굉장히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낙화산 타고 내리는 그런 모습을 그렸었는데 그때부터 양지바른 곳에 앉았다카믄 그림을 그리는게 낙이었어요."
유년시절의 기억이라 잊어버릴만도 한데 그는 아주 생생하게 그 장면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칭찬해주시던 아버님도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되셨건만 그는 그때부터 미술과는 뗄 수 없는 그런 인연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아버님이 아들의 능력을 예지하셨던 것인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내 사생대회를 비롯해서 늘상 미술부 활동을 했었다. 그는 스크랩 하나를 꺼내놓는다. 학교때 다니면서 받은 상장들이다. 주로 서양화부문, 조각부문에 관한 상들이다.
그가 고향인 밀양을 떠나오게 된 건 안동대학에 들어오면서 부터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는 안동대 송기석 교수의 눈에 띄여 본격적으로 조각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친구들의 아뜨리에에 가면 나머지 가능성을 접어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조각에 대한 그의 마음에 비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마련한 작업실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성희여고의 미술실을 오가며 틈틈이 자신의 또다른 분신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흙을 선택한 이유
창조성을 담보해야하는 예술작업 그 어느것 하나 쉬울리 있을까마는 조각은 특히 힘든 분야중에 하나다. 순전히 작품을 구상하고 어떤 조형성을 일구어내는 작업 그 이외의 군더더기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장비도 필요하고, 작업공간도 넓어야 한다. 육체적으로도 힘이 많이 드는 건 물론이고 경제적인 부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말해주듯 조각을 끝까지 전공해가는 예술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가 흙을 선택한 건 아마도 이런 악조건들을 그나마 극복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조각을 계속하는 방법을 구하던 중에 나온 것 같다.
"저는 돌이나 금속을 못다루는 조각가라고 할 수 있겠죠. 나무도 거의 못다뤄봤고, 주로 흙으로 하는 작업에 많이 매달렸는데 학교에서 할려면 일단은 소리가 많이 나는 작업은 불가능하고, 테라코타를 하게 된 것도 일단 재료비가 적게 들어서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우리 지역 정서에도 딱 맞는 것 같더라고요. "
이런 경제적 이유 말고도 흙으로 하는 작업이 다른 어떤 작업보다 자신에게는 맞는 것 같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테라코타의 경우는 안동에서 작품을 구워낼 수 있는 곳이 많다. 가톨릭상지대를 비롯해서 금소도예, 청송옹기 등이 있는데 특히 전통가마에서 구워내는 작품들을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들어했다.
전통적인 소재에 기반한 기하학적 작품
그는 이번 첫개인전에서 테라코타 작품 38점을 전시했다. 물론 신동국씨 첫개인전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안동에서 조각 개인전을 접할 수 있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다. 작년에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물고기로 형상화 시켜 설치미술의 일면을 보여준 전시회가 한번 있었고, 그 이후로 두 번째 개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개인전을 마치고 만난 그는 큰 용기를 얻은 듯 자신감에 차 있어 보였다.
"조각을 애호하는 층이 좀 약하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대형작가로서 커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그 재료를 흙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쇠의 느낌이 더 강했다고나 할까. 흙에서 느껴지는 푸근함이나 따뜻함을 그의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나의 느낌에 대해
"전 스타일이 좀 강한 편이예요. 그래서 작품도 좀 힘이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부드러움이 있으면 강함도 있듯이 전 흙으로도 얼마든지 강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흙에 강함을 불어넣기 위해 철분이 많은 옹기 흙물을 덧씌우고, 아주 고온 상태에서 구워내는 방법을 택했다. 가스가마에서 이런 시도를 하다 자연가마에서 구워봤는데 그 색깔이 개인적으로 너무 맘에 들어서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전 작품을 모두 자연가마에서 완성해냈다. 불길이 지나간 곳과 그 반대쪽의 색깔의 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맘에든 것이다.
그러나 흙을 구워내는 테라코타 작업을 아예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99년 그해 한가마를 다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테라코타에 대한 적응력은 상당히 빨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금소도예 김재철 선생과 가톨릭상지대학 이희복 교수에게서 자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흙을 다루는데는 도예가가 더 능숙할 터다.
이런 방법적 측면 말고도 그는 주제면에서도 전통적인 것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있다. 신기원이나 우주와의 대화등 그는 장승이나 솟대 등에서 아이템을 찾아 자기적으로 해석해 기하학적인 작품으로 형상화해놓고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이미 경험해왔던 이런 것들은 체질에 맞는 거고, 살아가면서 어디에 기대고 싶은 귀착심이 있는 것 같애요. 원초적으로 찾아보니까 샤머니즘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장승이랄까, 솟대, 사슴이라든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의 개인전 팜플렛의 말을 잠시 인용해본다.
"전통적인 조형성을 조명하고자, 재료적인 면에서 흙이란 질료가 주는 테라코타 고유의 원초적인 아름다움, 주제적인 면에서는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미의식을 기저로 하여 기하학적인 선과 형의 단순화로 재해석하여 신비의 세계를 드러냈다. 나의 작품은 전통성에 입각한 우주와 신을 향한 신비의 세계에 대한 외경심과 무한의 공간속에 우리의 꿈과 희망을 기원하는 영원한 상징성에 있다"
물론 그 스스로 이런 개인전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테라코타의 질감문제라든지,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가마에서 구워내고, 틀없이 바로 하는 작업이니까 아무래도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점에 만족이 큽니다."
아무래도 그는 한동안 테라코타와의 열애를 그만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의 스승 문신선생
특히 그의 이런 작품경향은 영남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았던 조각가 문신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에 크나큰 영향을 준 분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것에서 아이템을 찾은 면이나 기하학적인 면에서 그렇다. 현재 올림픽 조각공원에 올림픽 1988이란 문신선생 작품이 세워져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유학했으며 좌우대칭 작가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다. 그리고 잠깐동안이지만 그가 귀국했을 때 잠시의 인연을 맺은 적도 있다. 조각을 전공하는 애숭이 학생이 대가와 잠시라도 인연을 가진 것 자체만으로 그는 대단한 자긍심을 스스로에게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같다. 그리고 문신선생을 통해 자신의 미래상을 세운 것도 같다.
첫신고식
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 보인다. 첫개인전을 그는 입문기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신동국 작품 신고식이라고 해야할까. 그럼으로써 그는 앞으로 그가 해나가야할 많은 숙제들을 그 스스로에게 던져두었다. 그의 인생에 집요한 무게가 될 지도 모를 작업에 앞서 이미 맘을 다잡는 법을 터득한 듯 하다.
"이젠 실패를 해도 마음을 추스를 줄 아는 마음의 자세가 주어지는 것 같애요. 실패를 하면 할수록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여유가 생긴 거지요."
그리고 현재의 입장에서 가야할 작품의 방향성도 분명히 하고 있었다.
"흙을 재료로 하지만 색깔이 진하고 강하다던지, 날카롭게 나온다던지, 작가 성향이라고 생각하고 꼭 굳이 흙이 아니라 나무를 소재로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기하학적이고 전통적인 소재들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더 보태어 현대적인 조형성도 갖추고 싶습니다."
마흔에 신고식을 올린 신동국씨, 무한한 공간속에서 그의 조각품이 펼치는 꿈과 희망처럼, 그또한 그렇게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테라코타 작업은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분량만큼을 작업한 후에는 흙을 굳혀야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가 있다. 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듯한 구도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던 그의 말마따나 오늘도 신에게 바칠 제물을 정성들여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