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으로 가는 트럭(글/김윤한)집안내력
뜀박질을 잘 하지 못하는 건 우리 집안의 오랜 내림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적이면 모처럼 온 집안 어른들도 함께 운동장에 모여 집안 아이들을 응원하곤 했는데 우리 집안의 아이들은 3등 안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뛰어라. 달려라."며 큰 소리를 내며 응원을 했지만 그 흔한 공책 하나 타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두고 집안의 어른들은 적잖이 실망하기가 일쑤였다. "핏죽도 한 그릇 못 먹었나? 발에 혹이 달렸나?"며 아이들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힐난하곤 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체력장을 하는 날이면 8명이서 함께 오래 달리기-1,000미터인지 아마 그랬을 거다.-를 했는데 200미터 트랙을 다섯 바퀴인가를 돌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골인 지점에 가서는 항상 딴 아이들 보다 한 바퀴 가까이 쳐지기가 일쑤였다.
선생님께서 유심히 보지 않으실 때에는 남보다 한 바퀴를 덜 돈 채 훌륭한 성적으로 오래 달리기를 마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선생님께 발각이 되어 그 벌로 혼자 운동장 바퀴를 돌았던 적도 있다.
하여튼 그랬다. 달리기라면 단거리든 장거리든 남보다는 월등히 뒤떨어진 탓에 아예 포기를 했었다. 그래서 체력장이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된다고 했을 때도 연습조차 포기했을 정도이다.
이런 현상이 우연이 아닌 것이 뜀박질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바로 아래의 여동생도 막내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달리기는 우리 집안 전체 모두와 인연이 없는 그런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 갔다가 오는 길이면 버스를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지름길로 다니기도 했는데 지름길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멀리 200미터쯤 전방에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행여 그 버스를 놓칠 새라 정신없이 달렸다. 나도 힘껏 달렸지만 앞서 달리는 아이와의 거리는 30미터나 실히 되었다. 딴 아이들은 모두 버스를 탔지만 나는 아직 버스까지 가려면 20미터쯤은 더 가야 되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야속하게도 그 버스는 나를 버린 채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버스는 막버스였다. 나는 그 때부터 20리도 더 남은 길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갔다. 집까지 한 오 리 찜이나 남았을까? 어느덧 해는 지고 어디선가 부엉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생각에 정신없이 내 달렸다. 나는 왜 이리 달리기를 못할까?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트럭을 타지 못한 나
"우리, 오뎅 사 먹고 걸어갈래?"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내리 한 반이고 나와는 둘도 없는 단짝인 갑출이의 제안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삼십 리나 되는 만만찮은 거리였지만 오뎅이라는 말을 듣고는 우리 다섯 명 일행은 모두 입맛을 다시며 동의를 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게 되면 그 요금만큼 오뎅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삽십 리 장거리를 걸을 각오를 하고 함께 자주 걸어 다녔다.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고 버스 정류소 대합실 한 구석에서는 오뎅 국물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한 사람이 다섯 개씩 오뎅과 함께 뜨거운 국물을 들이켰다. 뜨거운 기운이 온 몸 가득 전해져 왔다. 역시 정류소집 오뎅은 언제 먹어도 그렇게 항상 맛이 있었다.
오뎅을 다 먹고 나자 우리 앞에는 삼십 리라는 먼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차비로 오뎅을 사 먹었다는 후회를 하면서 삐거덕거리는 정류소 대합실 문을 밀치고 나왔다. 토요일 한낮이라고 하지만 벌써 12월 초, 밖에는 제법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손이 시렸다. 장갑을 책가방에서 꺼내 끼고는 교모를 벗고 고깔모자를 뒤집어썼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면 소재지를 빠져 나오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학교 앞을 지나다가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 다섯 명은 일제히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너희들 왜 걸어가노?"
"버스 기다리기가 지겹어서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 걸요."
교감 선생님 말씀에 재호가 대답했다. 우리가 차비를 털어 오뎅을 사먹고는 할 수 없이 걸어가는지를 교감선생님은 모르실 것이었다.
"그래? 춥다. 빨리 가그라."
교감선생님께서 검은 뿔테 안경을 추켜 올리며 우리를 향해 손짓을 했다. 바람 한 자락이 교문 앞을 쓸고 지나갔다.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 다녔다.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면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우리 마을까지 가려면 아마 두 시간 가까이 걸릴 것이다. 움골 마을 앞개울 돌다리를 건넜다. 벌써 도랑물은 꽁꽁 얼어 있었다. 아이들 볼도 한층 붉어져 있었다. 먼 데 베티재가 올려다 보였다.
학교가 있는 곳에서 우리 마을까지 딱 중간 지점에 베티재가 버티고 있었다. 참으로 지겨운 오르막이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이 베티재가 십 리는 족히 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산골짜기를 따라 길을 내다가 보니까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오르막 오 리쯤은 그냥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리막길에서는 한 번도 페달을 밟지 않아도 베티재가 끝나는 지점까지 갈 수가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베티재 입구에 다다랐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하여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거리로 따지자면 지름길은 큰길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였다. 봄철이면 이 지름길에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산딸기를 한 웅큼씩 모아서는 한 입에 털어넣곤 했다. 그 생각을 하니까 괜히 입 속에 침이 가득히 고였다.
베티재를 한 삼분의 일 가량 올랐을 때였다. 뱀골 입구를 막 지나려는데 저 아래쪽에서 트럭 한 대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급한 경사에다가 길이 워낙 꼬불꼬불해서 트럭은 마치 굼벵이가 기어오는 것처럼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트럭에는 흰 부대로 보아 소금인지 쌀인지를 싣고 가는 것 같았다.
"우리 저거 타고 가자."
제호가 트럭을 타고 갈 것을 제안했다. 이 베티재를 지나는 트럭은 100 퍼센트 면 소재지에 있는 우리 마을로 가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이 트럭을 올라타기만 하면 집까지는 공짜로 편하게 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운전기사의 꾸지람을 각오하고 텔레비전에서 본 특공대 군인 아저씨들을 흉내 내며 운전 기사 모르게 트럭을 타고 가곤 했다.
달리는 트럭에 올라타려면 가장 험한 이 뱀골 입구가 제격이었다. 이곳은 길이 워낙 험한 까닭에 트럭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이들이 뜀박질해서 올라탈 수 있는 속도 정도는 되었던 까닭이었다. 아이들은 트럭에 올라타기 위해 신발을 고쳐 신고 허리춤을 추켜 올렸다.
이윽고 트럭이 우리 앞을 지나고 있었다. 성기가 재빨리 트럭 뒤 꽁무니에 매달렸다. 전 속력을 다해 달리던 성기가 트럭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춘동이가 트럭에 탄 성기를 향해 자기의 책가방을 던졌다. 그리고는 춘동이도 트럭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책가방 빨리 던져"
트럭에 탄 성기와 춘동이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갑출과 재호도 책가방을 차에 먼저 던져 올리고는 트럭에 매달렸다. 재호는 곧 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트럭에 올랐다. 이제 트럭을 못 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도 책가방을 미리 집어던지고 트럭에 올라타려고 했지만 그 순간 트럭은 오르막길을 지나 평탄한 길에 접어들었다. 갑자기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젖먹던 힘까지 내며 달렸지만 트럭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윽고 트럭은 뽀얀 먼지를 날리며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트럭을 타지 못한 사람은 나 뿐이다. 달리기를 못한 탓에 오늘도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집안의 내력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미워졌다.
이윽고 배티재 정상에 다다랐다. 찬바람이 정상에 홀로 서 있는 상수리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쓸쓸한 기운이 내 몸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혼자 외롭게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토끼 한 마리가 놀라 도망가는 게 보였다.
아무리 걸어도 집까지 가는 거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등에 땀이 돋도록 달려도 보았지만 아직 집까지의 거리는 십 리도 더 남았다. 재 아래 마을 앞을 지났다. 추워서 그런지 길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혼자 길을 걸으니 다리도 더 아픈 것 같았다. 등재 마을 앞 긴 도로를 지나 모퉁이로 접어들었다. 이 모퉁이를 돌아 개울을 건너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우리마을 교회당이 보였다. 이제 마을은 한 오 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서자 곧은 길 끝 언덕배기 끝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무슨 연기일까? 궁금했지만 그곳에서 연기가, 그것도 시커먼 연기가 올라갈 리는 만무했다. 천천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기는 언덕빼기 아래쪽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고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인파들 앞에 다가섰다.
그때였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어머니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하고 막무가내로 나를 얼싸 안고는 얼굴을 비벼댔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구 이 눔아. 안 죽고 살아 있었구나."
어머니의 손을 놓고 언덕 아래 쪽을 내려다보았다. 아, 언덕 아래에는 아까 뱀골에서 만났던 그 트럭이 완전히 뒤집혀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금인지 쌀인지 모를 그 부대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연기는 그 때까지도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의용 소방대원들이 소방 펌프로 불을 끄고 있었다.
그 때 달음박질쳐 트럭에 올랐던 제호, 성기, 출동, 갑출 네 사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만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