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장 또순이 아지매 최연주씨(글/계화순)복중이라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해는 중천에 있고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안동관내에서 유일한 읍장인 풍산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장터를 세 바퀴나 돌았다. 여느 장터처럼 옷을 파는 난전이 가장 많고 특징이라면 다른 장터에서는 보기 어려운 짐승들 난전이 따로 있다는 거였다.
장 전체의 규모가 크지 않으니 짐승들의 난전도 보잘 것이 없지만 토끼, 오리새끼, 강아지, 칠면조 새끼까지 있다. 한여름이라 그 냄새가 많이 역겨웠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라 한참을 그 곳에 서 있었다. 시골 장터의 모습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더운 날씨 탓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나처럼 구경을 온 사람도 전혀 서두름이 없다. 호객하는 소리도 흥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건만 봉고차의 트렁크를 연 채 난전을 벌이고 있는 이불전에만 유난히 사람이 붐빈다.
내리쬐는 햇살을 피하기 위해 채소전의 차양 밑으로 들어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이불전을 지켜 보았다. 더욱 의아한 것은 이불전 주인 아저씨도 나와 같은 채전의 차양 아래서 다른 장꾼들과 너스레를 떨고 있건만 손님들은 거기까지 찾아와 물건 값을 치르고 간다. 하기사 3미터 내외의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묘한 풍경임에 틀림이 없다. 한참이나 농담을 주고 받던 아저씨가 느린 걸음으로 자기의 이불전으로 들어가자 난 그 아저씨와 말장난을 하던 아주머니께
"이불이 상당히 잘 팔리네요"라며 말을 건넸다.
"오늘은 그렇네. 저번 장 때는 술만 마싰는데… "
조그만 체구에,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아주머니는 손으로 재바르게 도라지를 칼로 연신 찢어대며 내 말을 받는다. 사과 궤짝 두 개, 커다란 고무 다라이가 두 개인데 하나는 빈채로 곡물을 대는 됫박만 담겨있고 한 곳은 소금의 결정이 그대로 묻어 있는 미역줄거리가 담겨져 있었다. 궤짝 위에 올려져 있는 고만고만한 투명비닐봉지엔 오뎅들이 채워져 있다. 둥근 것, 네모난 것, 넓적한 것…… 노란 비닐주머니에는 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무공해 비누가 담겼다. 다리를 벌린 사이에 든 조그마한 다라이엔 도라지가 쌓인다. 끊김없는 칼질로 도라지를 찢고 있었으니까.
어느 것이든 2천원, 3천원. 나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몇 사람이 다녀갔다. 안부를 물으며 덤으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더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도……
모든 정황으로 보아 벌써 풍산장을 다닌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이 짐작이 간다.
말도 마소. 내 살았는 이야기를 쓸라카마 책으로 써도 다 못쓸끼라. 첨에 시집을 오이께네 시어무이가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꼬, 그때 채소를 팔았는데 가만 보이 억수로 하고 싶더라고, 신랑은 생활능력이 없지. 아-들은 자꾸 생기지. 그래캤지 어무이요 내한테 장사배와주소.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하마 더 안나을리껴? 카이 니 그쿠로 해 보고 싶나? 카시더니 나를 장마다 델꼬 다니시더라고, 맨처음 장사 시작할때는 아는 사람 오면 고개를 숙이고 모른척 했는기라. 안동서 멀리 가먼 장사를 신나게 하지만 첨엔 남사시럽고, 부꾸러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기라. 그러다가 요새는 아는 사람 볼수록 좋다. 이제는 다 아이께네 더 마이 팔래주고, 우리 아저씨는 글도 잘 모리고 계산이 퍼뜩퍼뜩 안되이 내 혼자 할 수 밖에. 어른들한테 물려받은 거는 없지만, 덕을 마이 봤어. 장사도 날띠기로 하는 것보담은 어무이가 계시께네 훨씬 나았고,
그다가 어무이가 풍을 만냈는기라. 온데 다니면서 풍을 나샀지. 그치만 장사는 할 수 없으니 대신에 집에서 아-들은 키워줬지. 밥 해 먹이고 빨래하고, 첫 아는 내가 집에서 공부를 좀 봐주이께네 1, 2등도 하더라고, 그다가 이래 나와뿌이께네 밥이사 먹지마는 공부는 영 안되드라고. 요새 공부가 혼자 하는 게 아이쟎니껴? 옛날 말이지. 둘째 아-는 공부에 취미도 없고, 어마이가 봐주지도 못해서 공부를 마이 못했어요. 첫 아는 간호대학 나와갖고 간호사도 못해보고 시집을 갔는기라. 지가 벌어서 갔으마 좋지만 내 벌었는거 갖꼬 남하는 거 다 해가 보냈니더.
지금도 배왔는 공부 썩히고 있는 거 보면 속상하지만 어예니껴? 아-부터 키아야지요. 그런 것도 아바이는 모르니께 내 혼자 다 했니더. 아-들 다 키아놓고 어무이 한테 풍이 재발하디 안되디더. 내만큼 어른들 사랑 많이 받고, 귀염받고, 칭찬 받았는 사람도 없을께시더. 여-있는 친구들이 마카 카는기라. 니는 걸핏하면 시어마이 자랑한다고, 솔직히 그래요 친정엄마는 친정엄마지만 나는 시어무이 믿고 살았니더. 중매로 처음 와 보이 신랑은 생활능력도 없고, 어무이 혼자 장사해서 살아가더라고요. 시어른도 아들 아바이 같이 생활 능력이 없더라고요. 요새 아들 같으마 안 살지요. 나도 어무이 안계시고 아-들 없었으마 하마 벌써 보따리 쌌을끼라요.
그러이 어째니껴? 아-들은 있지. 어무이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무이 돌아가시고 명절되마 참 마이 울었니더. 어무이 돌아가시면서 니가 이쿠로 애바르게 하이께네 내가 제대로 눈을 감을따 그러시더라구요. 생신 때 동네사람, 친구들 불러가 음식도 마이 만들어 대접했어요. 내가 맏이고 손이 크거든요. 이제 한 10년 지나이 이제 말이라도 하지만 처음엔 자꾸 눈물만 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목이 메는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고운 옷 입고 밥 사먹고 돈 모아내니껴"
"새박 4시 반쯤 일나가 상회에 가가 물건 띠가 장차에 붙이고 밥 안치놓고 빨래 몇가지 하고 김치면 김치, 여유가 있으면 부침개도 굽고 해서 점심 싸갖고 오니더. 여 있는 사람들 아무도 밥 안 사먹니더. 운임한 5천원, 내 차비 1천 4,5백원, 어쩌다 기사 양반들 커피라도 한 잔 뽑아주먼 하루 7,8천원 휘딱 하는데 어예 밥을 사먹니껴? 그라고 사 먹는기 입에 안 맞기도 하고요, 기사양반들도 가지가진기라. 어떤 양반은 이기 트럭인가 카면서 성을 내기도 하고요, 하도 더러버서 내가 운전 배아가 차 살라고 면허증도 땄니더. 야-들 아바이는 면허증을 딸 수 없으이 내가 했지요.
그때만해도 장사가 잘 되고 차 때문에 하도 설움을 많이 받아 당장 차를 살라 그랬지요. 그다 요새는 장사도 전처럼 안되고 사고도 겁이 나고 차 밑에 너무 밑천이 많이 들어가머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좀 힘들어도 장차에 부치니더. 아침 한 술 뜨고 점심 싸와서 보따리 풀어 전을 펼치고, 새박부터 왔다갔다 하다 오후에는 또 안동 신시장에 재장을 보러 가니더. 거는 내 자리가 있으께네. 안동 장날에는 내가 구시장에 가고 딴 아지매가 내 자리에 앉고 그이 이웃이 없어요. 반상회를 해도 내가 고단하이 못 나가지. 새박에 나오고 저녁 7,8시나 돼서 들어가이. 여~ 장꾼들이 마카 친구시더. 첨엔 서럽고 힘도 들었지만 이만큼 세월이 흐르이 이 사람들이 훨씬 좋은기라요. 이 장 저 장 매일 같이 다니고 점심때 되마 갖고 왔는 그대로 펼쳐놓고 같이 밥 먹고 오늘도 아침에 김치 섞어가 한 포기 싸 왔니더. 이따가 같이 먹어야지요.
첨엔 어무이 하던대로 야채로 시작했지요. 그다가 오뎅을 하게 되었어요. 급식하기 전엔 오뎅 참 많이 팔았니더. 떡볶이 떡도 하루에 한 말 이상 판 적도 부지기수라요. 여름철에는 오뎅이 안 팔리니까 오징어 얼갖는거 그것도 했어요. 짝으로 띠다가 돌가루 푸대에 여 갖고 팔다가 덜 녹으라고 담요를 덮어두기도 하고, 보리며루치도 하고 별의별 것 다해 봤니더. 요새는 급식이 되면서 오뎅도 훨씬 덜 팔리고 건어물도 안되고 오늘 보리쌀을 좀 더 띠왔으마 좋았을텐데 지난 장에 안 팔리길래 쪼매 갖고 왔디이 하마 다 팔았네.
시장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의도를 들은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자기의 살아온 날들을 조곤조곤 들려 주었다. 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도라지를 째고 손님이 오면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보낸다. 나에게도 야쿠르트 한병을 권한다. 야쿠르트를 마셔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일텐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찡그리면 뭐 하니껴? 여-친구들도 내보고 그러지요. 집에는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웃어야 장사도 더 잘 되고 힘도 훨씬 덜 들어요. 일도 술술 풀리고....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지만 남의 돈 한푼 띠 먹지 않았으이 부러울게 없지요. 우리 어무이는 첨에 일수를 찍더라고요. 이상하다 자식들 공부도 마이 안시켰는데 왜 일수를 찍노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갑다 캤지요. 어무이 편찮으실 때 24만원 일수 내 다 갚아줬어요. 내 쓴 거는 아이지만 맹 살림에 썼겠지 싶어서…
난전에서 2, 3천원짜리 옷 사가 곤칠갱이가 되도록 입었니더. 아-들은 속도 모르고 엄마는 왜 맨날 그런 옷만 입노 그러지만 고운 옷 입고 밥 사먹고 돈 모아 내니껴? 어른들 사시든 집 보상받고 내 벌어 모은 돈 보태고 해서 남문동에 집 하나 샀니더. 집이야 안 좋지만 위치가 좋지요. 구시장도 가깝고, 신시장도 가깝고 역도, 상회도 가까우께네 또 용상에도 조그마한 한옥이 하나 있니더. 아들 장가가면 살든동 살기 싫으면 세를 주든동 할라꼬요, 집에는 아바이 혼자 있지요. 놀러 가만 개가 집을 지키고, 이제는 장사가 덜 되도 덜 답답지요.
아 -하나 시집 보내고 작은 아는 직장 구해 나가고 막내가 군대 갔는데 10월에 제대해 오니더. 복학시키고 장가도 보내고 집이라도 장만해 조야지요. 쓰는 게 없으이 장사가 안돼도 버텨나가는 기라요. 아직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하니더. 돈을 벌이고 못 벌이고를 떠나 이래 나다니던 사람이 집에 가마 있으면 답답해서 못살아요. 나이 6,70이 되어 장사를 할 수 없으면 도리야 없지마 짐이라도 줄가야지요. 이래 나오이 시간이 얼매나 잘 가는지 모르니데이 금방 초하루 보름되고, 월말되면 세금 막우고, 이제 50인데 더 해야지요. 저 짝의 형님들은 70이 되도 하는데요. 요새는 노래방에도 가고 놀러도 가니더. 여-친구들하고 내년에는 외국에도 나가볼거라요. 아-들 한테 손 안벌리고 내 벌어 내 가는데 아-들이 뭐라칼니껴?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녀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남편보다 시어머니께 더 많이 의지하고 덕분에 아이들 배 곯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공부도 시키고 크지는 않지만 그녀의 표현을 빌려 집을 두 채나 지니고 남의 집에 돈 꾸러, 쌀 꾸러 가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현실에 그녀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그녀는 모를 수도 있지만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장 저 장 장짐을 끌고 다니느라 까맣게 그을은 얼굴, 조그마한 체구,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표정, 그건 우리들이 흔히 또순이라고 부르는 여성의 모습이다. 그녀는 오전에는 시골의 장터를, 오후에는 신시장에 재장을 보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 같은 억척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고 우리들 대부분도 그렇게 살아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