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늘 위에서(글/김윤한)
상전벽해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변해서 바다가 된다더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우리 고향 산비탈에는 긴 뽕밭이 있었드랬다. 그러던 것이 1970년 대 초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그 뽕밭이며 마을이고 학교까지도 깡그리 물 속에 잠기고 말았다.
댐 수몰과 시작한 객지생활도 어언 30년이 지났다. 성묘 때문에 안동엘 1년에 한차례 정도는 다녀갈 기회가 있지만 우리가 살던 고향마을 근처로는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하기야 고향마을에 찾아간다고 한들, 검푸른 물 속에 잠겨 아무 인기척도 없는 고향을 찾아간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을 타향에서 보내다 보면 오전에는 차례준비 때문에 나름대로 분주하게 보내지만 좀 한가해지는 오후쯤이 되면 왠지 무언가 허전함 같은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어릴 적에는 명절 오후쯤이면 동네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자치기를 하거나 말타기 놀이 또는 깡통차기 놀이 따위로 명절날 오전보다 더 바쁘게 보냈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노?"
댐 물가에 앉아 삼겹살을 굽고있던 동무 오백만이 골똘히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바라보며 나무젓가락을 치켜든 채 이야기했다.
벌써 오백만의 머리카락도 반백은 되어 보였다. 나이 사십 중반에 들었으니 무리한 일도 아니지만 그 동안 세월도 참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백만이는 국민학교 다닐 적부터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었다. 국민학교 일학년에 처음 들어갈 때면 누구나 종이로 만든 명찰을 달고 다녀야 했다. 그 때 오백만이라는 명찰을 보고는 참 희한한 이름도 있구나 하고 혼자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동무들은 오백만에게 육백만이나 칠백만으로 불러대며 놀려먹기가 일쑤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났으니까 오백만을 다시 만난 것은 헤어진지 삼십 년도 더 된 것같다. 성묘를 왔다가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안동역으로 들어가다가 오백만을 만났고 그의 손에 이끌려 이곳 안동댐 상류 오백만의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곤 옛날을 생각하며 댐 물가에 자리를 펴고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앉아 있는 돗자리 옆으로는 그 옛날에 피었던 낯익은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어릴 적 국민학교에 다닐 때 반별로 가로변에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던 때가 다시금 생각이 났다.
"옛날에 꽃길에 물 주러 갔다가 내하고 싸웠던 기억 나나?"
내가 노릇노릇하게 잘익은 삼겹살 하나를 집어들며 오백만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임마, 그 때 니 코피 터져가지고 너 어무이한테 꾸지람 실컨 들었잖나, 자 한 잔 받아라."
오백만이 소주잔을 건네며 희멀겋게 웃었다. 댐 호수는 잔잔히 고여있는 것 같았는데 주위가 워낙 고요하다 보니까 파도처럼 물결이 찰싹이는 소리가 연신 귓가에 맴돌았다. 참 기분좋은 저녁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친구가 준비해 간 됫병 소주도 3분의 2가량 비워졌다. 오늘이 아마 보름쯤 되는 것 같았다. 어둑살이 끼고 있었지만 물 건너 커다란 소나무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사방은 휘영청 밝았다.
"우리 집 쪽으로 갈라카면 어디로 가야 되노?"
댐으로 수몰이 되어 옛날 길이며 집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려서 옛날의 기억만으로 주위나 위치를 짐작하기는 무리였다.
"여기서는 안 뵌다. 저 쪽 산무퉁이 지나면 토째빗골이니까 거기서 너- 집까지 딱 5리 아이가, 왜 가보고 싶나?"
"무슨 재주로 가겠노. 날도 저물었고 물도 저리 깊은데....."
"가마이 있그라 봐라. 내 잠깐 저 쪽에 갔다 오꾸마."
물가로 20여 미터 남짓 앞쪽으로 첨벙첨벙 걸어가더니 오백만은 작은 철선 하나를 끌고 왔다. 아마 농사를 위해 물 건너에 내왕하기 위해 만든 농선인 모양이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아직도 꽤 쓸만하니께 오래 걸려도 너- 집까지는 갔다올 수 있을 거다 아마"
오백만도 술에 취했는지 걸음걸이가 약간 비척거렸다. 술기운을 빌어 우리 둘 다 먹다 남은 구운 삼겹살과 소주병을 들고 배에 올랐다. 호수는 달빛을 받아 물결이 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찰싹찰싹 오백만이 노 젓는 소리는 인적 없는 조용한 호수를 가만가만 일깨우고 있었다.
"여기가 옛날에 석탄차 구부래졌던 데 아이가? 그 때 운전수하고 조수하고 다 죽었지 아마....."
오백만이 노를 앞으로 당기느라 몸을 뒤로 한껏 젖히며 이야기했다. 그때의 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겨버려 위치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지만 오백만의 이야기를 듣고 물가 모퉁이에 있는 공동묘지들을 보니 기억이 되살아났다. 푸른 달빛을 맞으며 지금 나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느리기는 했지만 오백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옛날 고향마을 쪽으로 천천히 배를 움직여 갈수록 그 때의 풍경들이 뇌리 속에 영화장면처럼 떠올랐다.
"여기가 옛날에 수열이네 집 있던 자리 아이가. 니 수열이 알지? 국민학교 때 교실에서 오줌을 쌌던......"
수열이는 우리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키가 작았었다. 국민학교에 들어서도 아직 애기 같았고 하필이면 공부시간에 오줌을 싸서 그 때의 오줌싸개 이미지는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사십 중반에 든 지금까지도 잊혀버리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말이 5라지, 2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작은 농선을 노를 저어 가기에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벌써 뭍을 떠난 지도 벌써 삼사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멀리 물 건너편 저쪽에는 어느 동화 속처럼 작은 집에서 빠안하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 어딘 줄 알겠나?"
내가 따라준 소주잔을 받아 마시며 오백만이 이야기 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꼭 생전 처음 와보는 데 긑은데......"
"이 사람아, 여기가 너그 마을 아이가? 여기가 바로 우체국 앞, 다리 있든데 아이가."
아, 여기가 바로 삼십 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다시 찾은 고향이었다. 비록 지금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이 물 아래에는 그 옛날 학교 마당이며 미끄럼틀이며 논협창고, 그리고 우리가 저년 이슥토록 야구를 했던 동네 앞 공터, 또 자장 볶는 내음이 코를 찔렀던 대중식당이며 수동식 싸이렌이 달려 있던 지서 자리,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옛날로 치면 그 때 고향마을의 하늘 위를 이 작은 농선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는 셈이었다. 머리 뒤쪽에 일순간 소름이 돋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향마을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비극이었다. 볼 위로 뜨뜻한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고향하늘 위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떠있었다.
"가자."
내가 먼저 침묵을 깨며 오백만을 재촉했다. 우리는 다시 소주 몇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왔던 물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주 됫병 한 병이 완전 바닥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몸을 가누기가 어렵도록 취해있었다. 빈 페트 소주병을 물 위로 휙 던졌다. 배가 움직일 페트 병도 찰랑거리며 물결을 따라 우리들 곁에서 멀어져 갔다.
오백만도 많이 취했는지 젓고 있던 노를 가끔씩 놓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윽고 우리가 출발했던 물가 산기슭이 멀찌감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물 위에 떠있은 지도 벌써 한 시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고향을 찾아 배를 타고 고향 하늘위에 노를 젓는 감상에 젖고 또 술에 취해 잘알지 못했는데 물가를 100여 미터나 남겨 두었을 만한 지점에 문득 발 밑에서 이상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뿔사 발 밑 배 바닥에는 새끼 손가락 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고 거기서는 수도꼭지처럼 연신 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 배 바닥에는 벌써 1센티미터 가량 높이로 물이 차 있었다.
고향에 대한 감상도 술기운도 일시에 홱 달아나는 것 같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달빛에 고향 구경을 하려다 결국은 물귀신이 되고 마는게 아닌가 싶어 와락 겁이 났다. 짐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 녀석의 얼굴이 뇌리를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손으로 물을 퍼내어 봤지만 배 안에 고인 물은 전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물귀신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물귀신이 되고 마는 것인가.
"이걸로 퍼내 봐라. 더 빨리, 더 빨리......"
오백만은 신고있던 고무신을 벗어 내게 내밀고는 정신 없이 노를 젓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지 마주 앉은 내게도 오백만의 체온이 확확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고무신을 받아 쥔 채 배가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도 아랑곳 않고 손에서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물을 퍼냈다. 오백만은 연신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쳐댔다.
오백만도 지치고 나도 한없이 지쳤다. 이윽고 배에는 물이 가득 차고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고향마을에 와서 목숨을 마감하고 마는구나 생각하며 조용히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을 불러댔다. 그 때부터는 물을 퍼내는 것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다. 이윽고 물은 허리춤까지 차 오르고 있었다.
"뭐하노? 퍼뜩 안 내리고....."
오백만의 외침 소리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배는 물 가장자리를 불과 5미터 가량 앞두고 가라앉은 것이다. 가라앉은 배에서 빠져 나오자 가슴팍 정도 깊이의 물이었다. 우리 둘은 지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가장자리를 향해 걸어나갔다.
고향에 와도, 고향 하늘을 노를 저어 다녀도 결국 고향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고향은 내 가슴팍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부질없이 더 이상 고향 땅 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