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도시미인들 속에 숨어 있는 시골처자(글/이은경)

-시인들이 함께 만드는 계간지 『시평』(바다출판사)-



 이제껏 내가 삶과 글을 읽어 온 초점은 옳고 그름이었다. 타고난 품성이 시비를 가리는데 치우쳐 있는데다, 그런 날 시험하듯 늘 내 앞엔 크고 작은 일들이 닥쳤다. 마음 쏠리는 일은 실컷 해봐야 미련이 없는 법. 한 사십 년 자로 재고 자르고 하다보니 덧정이 없다. 그런 나를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운명의 신은 이제 더 이상 내 앞에 숙제를 들이밀지 않는다. 대신 오래 잠들었던 감성을 불러일으켜 천천히 문학의 길로 이끈다. 


 지난 가을에 『시평』이 창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 전문지는 처음인데다 시인들이 시평을 했다니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자그마한 크기의 이 책은 하얀 바탕에 책 제목과 출판사 이름만 다소곳이 붙이고 가만히 있었다. 굳이 내가 가만히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책들이 세련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을 소리쳐 부르는 도시 미인 같은데 비해 이 책은 화장기 없이 수수한 차림으로 한 편에 다소곳이 서있는 시골 처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끌었다. 게다가 딱딱한 표지는 어떤 향수까지 불러일으킨다.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발려보던 낡은 문학 전집 겉장을 보는 듯하다. 또한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시류에서 조금 벗어나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시인들의 맑은 모습이 그려져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봐도 요만큼 예쁜 책은 없을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책을 본다면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 까닭을 이해할 것이다.


 『거미가 짓는 집』(창간호), 『햇살 공부』(2호), 『나는 나를 조율한다』(3호) 등 시적인 제목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겉장을 넘겨 목차를 보면 「권두언」, 「신작시」, 「숨어있는」, 「시집평」, 「이 신인을 본다」, 「비평 혹은 풍문」, 「시인이 평론가에게」, 「시론」, 「독자의견」, 「새로 쓰는 나의 연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러 북한 시인의 시와 외국인의 시에 대한 평론도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국내 시의 지평을 넓혀 가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북한 시인의 시를 소개함으로서 분단의 벽을 소리 없이 허물어 가는 옹골찬 모습과 외국시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고 함께 호흡하려는 탐구적인 모습은 우리 시의 장래를 밝게 할 것이라 믿는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들 스스로 시를 찾아 읽고 평하게 되었다.고 이 책을 만든 목적을 창간사에 밝혀 놓았다. 또한 시인들이 나뭇가지에서 새가 날아가는 듯한, 시원한 옷을 입고 나타나는 듯한 시평을 써서 시인들이 『시평』이라는 공간에 즐겨 모이기를 고대한다고도 했다. 삼십여 년 시를 써온 정희성 시인이 요즘 시는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는 데 동의를 하고 어떤 평론가 한 분이 요즈음 시 읽기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고 보면 독자들이 요즘 시를 읽으며 얼마나 막막히 것인지는 말을 안해도 될 것 같다.


 "첫 『시평』은 희망을 갖게 한다. 자신의 국어 능력에 긍지를 느끼면서, 시 읽는 것, 책 읽는 것을 삶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네가 틀린 게 아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는 한 독자의 글에서 보듯이 『시평』은 벌거벗은 임금님한테 거짓 찬사를 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나 시 읽는 재미를 맘껏 누리도록 도와준다. 더구나 시보다 더 시적인 평론을 읽을 때면 온 세상이 시로 확장되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시인들이 평론가들의 흉내를 내는 듯한 모습도 가끔 보인다. 평론가들이 외국 이론들로 자신의 문학 작품을 재단할 때 몸서리쳤을 법도 한데 말이다. 시집살이 해본 사람이 시집살이시킨다더니 일리가 있다. 또한 시보다 시평이 더 어려워 오히려 시 읽기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시평』 3호 「권두언」에서 밝혔듯이 소욕주의를 내세우고 진실에 다가가자는 의도가 자칫하면 더 좋은 솜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될까 우려된다. 시인과 시평을 쓰는 시인들 자신이 투구를 쓴 모습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우리는 모자를 벗은 사람이고 싶다. 조금은 수척하지만 단정한 시인의 모습을, 겨울을 통과해서 걸어오는 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성찰을 통해 첫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새로쓰는 나의 연보」란에는 시인들이 자신의 인생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로 울림을 주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하는 게 시인이지만 그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나 시를 쓰게 된 동기 따위를 산문으로 들려주는 모습은 더욱 따스하게 다가온다. 마치 함께 밤 지새며 듣는 듯한 재미 또한 있다. 이 난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한 시인의 시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이 될 것이고, 시인의 입장에서는 독자한테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소중한 공간이 될 것이다.


 『시평』은 까딱하면 중심을 잃기 쉬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앞에 고지식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동료들의 허물을 엄하게 지적하며 우리들에게 "세상은 정직하고 따뜻한 가슴들로 살려 나가는 곳이야"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그리곤 천진한 얼굴로 세상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가슴 두근대며 귀를 기울인다. 요컨대 시평이 갈라진 세상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길 빌어본다.<안동>





72호에 소개된 책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고려원 미디어)는 이미 절판되었으며 이후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아름드리)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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