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민폐, 모곡(募穀)(글/류선경)

과거 농촌마을 이장은 글을 모르는 주민의 민원 심부름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했다. 주민들은 월급도 없이 애쓰는 이장에게 쌀과 보리를 모아 수고비조로 전달했는데 이것을 모곡제라 한다. 그러나 농촌의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지금은 현금모금으로 대체되었고,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이같은 모곡제는 미풍양속이 될 수 있었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금은 양속이 아니라 민폐가 되고 있다.


모곡 무용론 등장

과거 농촌마을 이장은 각종 민원 심부름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하고 주민들은 월급도 없이 애쓰는 이장에게 쌀과 보리를 모아 수고비조로 전발했다. 그러나 이장의 역할이 즐어들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당이 지급되는데도 곡식대신 현금으로 내는 모곡(모곡)제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 모곡제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해가면서 모곡제의 존재를 처음으로 접한 귀농인들의 반발이 가세하면서 모곡제는 이제 농촌지역의 민폐가 되버렸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이해 활기가 넘쳐야 할 경북북부지역 농촌 마을에는 수심만 가득하다. 겨우내 떨어진 농산물 값은 다시 오를 기미가 없고, 영농에 필요한 자재비는 자꾸 오르기만 할 뿐 도무지 내리지 않는다.


지난 겨울 쌀을 팔고, 사과를 팔아 겨우겨우 목돈을 모았지만, 농협빚을 갚고, 자녀들의 학자금을 내고 나니 남은 건 거의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지역에 극심한 가뭄까지 겹치면서 곳곳에서 한숨이 절로 배어 나온다.


모곡 폐지한 이장님

영주시 부석면 임곡1리 주민들은 모곡에 대한 부담은 없다. 임곡1리 82가구의 주민은 지난 95년까지만 해도 마을의 대소사를 돌보는 이장의 수고비조로 가구당 연 3만원의 돈을 냈다. 그러나 이 마을 이상익 이장이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수고비를 받지 않기로 하자 주민들은 이장의 결정이 고맙고 미안하다.


모곡제는 매년 봄과 가을 일정량의 쌀과 보리를 모아 이장에게 전해주던 일종의 모금제도이다. 과거 농촌마을 이장은 글을 모르는 주민의 민원 심부름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했다. 주민들은 월급도 없이 애쓰는 이장에게 쌀과 보리를 모아 수고비조로 전달했는데 이러한 모곡제는 농촌의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지금은 현금모금으로 대체된 것이다.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이같은 모곡제는 미풍양속이 될 수 있었지만, 교통과 토ㅇ신이 발달한 지금은 양속이 아니라 민폐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장이 하는 일은 마이크 방송뿐이라며 공공연히 불평을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모곡제의 폐해

안동시의 한 중간간부가(김현승) 쓴 논문을 보면 모곡제의 폐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경북북부지역에 대한 전수조사에서 나타난 가구당 부담액은 연간 2만원에서 5만원. 마을당 평균부담액은 연간 160만원에 달한다. 이를 전국 3만3천여개 마을로 계산하면, 연간 농민이 부담하는 모곡비용은 무려 530억원이나 된다. 결국 마을당 평균부담액은 연간 160만원이고, 전국적으로 따지면 530억원이나 된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이장들은 이 모곡과는 별도로 시·군에서도 수당형태로 연간 160만원을 받는다. 시·군 조례에 따라 지급되는 이 수당은 주민을 위해 애쓰는 이장의 수고비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의 자녀 학자금 등의 지원이 있고 농촌지역 이장들에게는 별도로 농협에서도 4만5천원씩 주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지급하는 수당 역시 전국적으로 따지면 530억원에 이른다.


심지어 일부 이장들은 장애인이나 생활보호 대상자에게도 모곡을 물리고 있어 더 큰 불만을 낳고 있다. 영주지역 한 마을의 이장은 모곡을 내지 않겠다고 말한 주민에게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제는 이 분만이 아니다. 도시 지역의 통장은 농촌 마을의 이장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통장들은 정부 수당만 받을 뿐, 농촌지역처럼 가구당 얼마씩의 모금은 받지 않는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이장과 통장의 역할이 비슷한데도 농촌에서 관행처럼 내려오는 모곡제 때문에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의 불만은 급기야 농민들 사이에 불신까지 야기하게 되었다. 취재중 만난 한 농민은 이장이 농사용 전기를 주민의 동의없이 자기 밭쪽으로 놓고, 마을 상수도 설치비도 지나치게 많이 거두며, 생활보호대상자도 독단적으로 판단해 선정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곡제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모곡제를 폐지하는 대신 행정리를 줄이면서 정부 수당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장의 일이 과거 주민보조에서 면보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부가 이장 수당을 책임져야 하는데 농민이 대신 내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특히 농촌 인구가 줄면서 과거의 행정리에 따른 구분에 모순이 있는 만큼 행정리를 줄이는 대신 이장들의 수당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이런 지적도 있다. 농촌 이장들의 역할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장들은 주민자치의 최일선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장들의 이런 순기능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실제 해야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이장들도 많고 이장을 서로 하지 않으려는 마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수 십 년간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일종의 제도를 한꺼번에 모드 바꿔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제도의 변화도 요구하는 것이다. 이장들이 주민자치의 상당부분을 수행하고 있다면 마땅히 이들의 역할에 걸맞는 대우를 해야 하고, 또한 그 대우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안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