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사이에 감춰둔 작은 자연, 초간정(글/윤천근)

초간정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깊은 산, 순결한 자연 속에 들어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초간정을 둘러싸고 있는 키 큰 나무의 숲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능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물소리,

초간정 영역을 휘감고 도는 물소리이다. 물소리는 쉬지 않고 울어대며, 초간장 영역을 어디 산 속 깊은 계곡과도 같은 분위기 속으로 몰아넣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물소리. 내가 우렁차다는 표현을 하였지만, 우렁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기도 한 물소리. 그 물소리가 있으므로써 초간정 영역은 나름의 비의성을 갖추게 된다.


원류마을

초간정은 원류마을 앞에 있다. 원류마을은 금당실 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예천군 용문면 소재지인 상금에서 용문사 들어가는 길의 한 켠에 위치한다.


예천 주변의 산들은 나지막하다. 용문 근방은 더욱 그러하다. 산들은 멀찍이 물러나 구슬을 꿰어 놓은 듯 일선으로 옹위하고 서서 분지들을 만들어 낸다. 넓고 좁은 분지들. 그 중 하나 속에 원류마을과 초간정이 있다.


원류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분지는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다. 원류마을 앞에 서면 안계가 탁 트인다는 느낌보다는 산들이 적당히 물러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산과 시내와 도로가 용문사 쪽의 입구에서 한꺼번에 오무러졌다가 실타래처럼 풀리면서 각각의 진로를 모색하고, 얼마쯤 있다가 상금쪽의 출구에서 다시 한군데로 만나 돌아나간다. 그 사이에 놓여진 분지. 그곳은 온전히 독립된 하나의 세상이다. 원류 마을의 세상. 아니면 초간정의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시내는 분지의 한 가운데를 타고 흐른다. 산들은 양쪽으로 좀 물러나 앉아 시내와의 사이에 논과 밭을 풀어놓는다. 시내는 넓지 않지만, 여러 달 계속된 봄 가뭄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고 흘러내린다. 용문사 쪽의 댐에서 계속하여 물이 공급되는 탓이리라. 시내는 평지의 한가운데를 나직하게 파고 흐른다. 그런데도 시내 안으로 내려서서 보면 초간정 영역부터 그 아래로 시내 양켠이 일종의 절벽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 절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채롭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그 시내의 한켠에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다. 5월이 막바지에 들어서 있는 시기인데도 봄 가뭄은 주변 산과 들을 말라붙여 놓고, 피부에 와 닿는 대기는 건조하기만 하다. 한 여름과도 같은 무더운 날씨가 세상을 지배한다.


농부들은 애가 끓어 논과 밭에 물 대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도 원류 마을과 초간정이 들어서 있는 분지 안은 종요롭기만 하다. 이 수상쩍은 평화 속에 자연은 무엇을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


초간정 영역

밋밋하게 흘러내리던 시냇물은 초간정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긴장하기 시작한다. 물소리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돌돌 구르듯 몇 번 시내 안에 버티고 있는 작은 바위들을 휘돌아 나가는 훈련을 한 다음, 시냇물은 조금 기세가 높아져서 이번에는 큰 바위들이 여럿 겹쳐져서 이루고 있는 폭포를 향해 돌진해 간다.


그것을 폭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높이는 1미터 남짓 되고, 수직의 절벽 대신에 2-3층의 큰 바위들이 어울려 급한 사선을 그려낸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물이 단층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폭포라고 한다면, 초간정 입구, 시내 속에 마련된 바위들의 모듬과 그것을 타고 내리는 물의 급한 흐름을 폭포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것이 제법 우렁찬 물소리를 만들어 초간정 영역을 온통 흔들어 놓고 있음에 있어서랴!


과거의 초간정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초간정은 평지 속에 깊이 들어서 있는 정자이다. 이마도 원류 마을 앞에 열리고 있는 분지의 가운데쯤 되는 곳이 초간정 영역이리라!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 초간정 영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이 탈속의 비의성을 갖추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초간정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그것이 밭과 논들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잊는다. 마치 깊은 산, 순결한 자연 속에 들어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능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물소리, 초간정 영역을 휘감고 도는 물소리이다.


물소리는 쉬지 않고 울어대며, 초간정 영역을 어디 산 속 깊은 계곡과도 같은 분위기 속으로 몰아넣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물소리. 내가 우렁차다는 표현을 하였지만, 우렁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기도 한 물소리. 그 물소리가 있으므로써 초간정 영역은 나름의 비의성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물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간정의 초간정 다운 멋을 즐기기 어렵다. 우리의 청각세포가 그 물소리가 여는 비의성을 감지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미학의 비밀을 드러낸다. 물소리뿐만 아니라 그 물조차 맑고 깨끗하다면 초간정이 갖는 미학은 얼마나 멋드러질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네 삶터 주변에 들어와 있는 자연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초간정은 마을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들판 한가운데 있다. 초간정 앞을 흐르는 시내는 분지 위쪽에서 다른 마을들을 거친다. 그러니 그 물이 처음 계곡을 흘러내리는 것처럼 맑고 투명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초간정

물이 휘돌아 흐르기 위해서는 물길을 막고 나서는 바위가 있어야 한다. 초간정 앞에서 시내는 급하게 휘도는 작은 태극형상을 이룬다. 그 양켠은 바위밭과 바위절벽이다. 규모는 크지않다. 바위도 절벽도 가까이서도 한눈에 다 들어오는 규모이다.


초간정은 물쪽으로 고개를 내민 절벽바위 위에 서 있다. 절벽바위의 높이는 4미터 정도는 될까? 초간정의 절벽바위 앞으로는 반달형상의 소가 있고, 소의 건너편으로는 역시 4미터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 병풍바위가 버티고 서 있다.


병풍바위 쪽에서 보면 초간정이 서 있는 바위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파내고 그 안에 초간정이라는 글씨를 써넣은 것이 보인다. 그 위, 바위의 위쪽은 자연석 돌을 6층, 7층으로 쌓아서 대좌를 마련하였다. 초간정은 그 위에 지어져 있다.


"경북 문화재 자료 143호.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선조 15년(1582)에 초건된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 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중수를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선생의 현손이 중창한 것......초간 권문해(1534-1591)는 명종 15년 좌부승지를 지냈으며....."


초간정 앞에 서 있는 안내판의 기록이다. 안내판의 기록은 문장이 뒤틀려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안내문은 수정을 필요로 한다.


다른 관계자료에 의하면 초간정은 1582년(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도승지 박승임이 초간정사라는 현판을 썼다. 1592년에 병화로 소실되어 1612년(광해군 4년)에 재건하였고, 1636(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탔다. 그런 것을 초간의 현손이 지금의 건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이 초간정은 권문해의 종가가 있는 죽림리 166번지의 1로부터는 얼마쯤 떨어져 있다. 종가 앞에는 울릉도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향나무가 길 위로 허리를 굽힌 자세로 서 있다. 종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규모있게 갖추어져 있다. 밝은 갈색 나무들이 연한 황토색을 띈 벽면과 조용히 어우러지는 색감이 인상적이다.


종가의 사랑채는 권문해의 조부인 권오상이 지었다고 하고, 안채는 권문해가 지었다고 한다. 그 종가로부터 2-3킬로는 실히 떨어진 거리에 초간정을 지은 것은 권문해가 초간정 주변의 경치를 사랑했던 탓일 것이다.


초간정 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한 번 휘돌아 보면 그 점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을 2차선 국도가 막아서지 않고, 시내를 흐르는 물이 탁하지만 않다면 초간정 주변은 선경에 다름없을 것이다. 권문해 당시에는 초간정은 지금보다는 더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 터이고, 초간정을 휘돌아 흘러가는 물도 투명하게 맑았을 것이니, 권문해는 초간정 속에서 선경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초간정의 대문은 남쪽으로 나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세간의 일 자집이 담쑥 눈 안에 자리를 잡는다. 동쪽으로는 한간의 마루이고, 서쪽으로는 두간의 방이다. 방 쪽의 처마 밑으로 초간정사라는 한자 현판이 달려있다. 마루의 터진 곳으로는 오르내리는 섬돌이 놓여있는데, 그곳만 난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나머지는 사방 돌아가며 빠짐없이 난간이다. 난간에는 두 쪽 마루를 깔아서 어른이 천천히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 두고 있다.


마루로 올라보면 두 간의 방이 마루의 앞 쪽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간정은 측면으로 두간 넓이를 하고 있는데, 방은 정면 2간, 측면 한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방과 연결되어 있는 측면의 마루쪽 한간 부분에는 방의 벽과 일선으로 나무벽이 마련되어 있다. 나무 벽의 밑 쪽에는 판자문이 달려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고, 위쪽은 백토칠이 된 흙벽이다. 똑같은 형식의 것이 그 반대편, 그러니까 마루의 동쪽 끝 부분에 마련되어 있다. 마루의 서쪽 끝에 2간 길이의 나무벽 만이 일선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래쪽은 판자문이 달려있고, 위쪽은 백토칠이 되어있는 것은 서쪽 나무 벽에서와 같다. 서쪽의 나무벽이 방의 벽과 붙어있다면 동쪽의 나무 벽은 따로 떨어져서 일선으로 서 있다는 것, 크기가 서쪽의 그것보다 두 배라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나무 벽이 마련되어 있는 초간정의 마루 부분은 차단과 개방이 자유로운 공간이다. 물론 남쪽의 일부와 북쪽은 틔어져 있으므로, 나무 벽에 의한 차단과 개방이란 전면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 초간정의 마루방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초간정 마루방의 동쪽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곳으로, 반달형상의 소와 그 건너편을 막고 서 있는 병풍바위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마루방의 동쪽은 밋밋하게 흘러내리던 시내의 물이 몇 층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곳이다. 만약에 마루 양쪽으로 나무벽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물의 작은 폭폭와 휘돌아 나가는 물길이 만들어낸 소와 절벽바위에 시선은 온종일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가를 즐기기레는 좋은 공간일는지 몰라도 공부하는 곳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름에 마루방에 나앉아 책을 읽을 때에는 양쪽을 막고 서 있는 나무벽의 차단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초간정 나무벽의 차단과 개방은 이렇게 그 간단한 장치로 공부와 휴식 사이를 넘나든다. 아니면 귀로 자연응 즐기기와 눈으로 감상하기의 두 경지를 넘나들게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루 방의 북쪽 지붕 아래로는 초간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동쪽 지붕 아래로는 초간정 중수기 가 붙어있다.


초간정! 들판 사이에 작은 자연을 감춰두고 있는 곳이다. 오늘날에 그것은 또한 현대의 편의주의에 의해 소외되어 있는 자연, 현대의 산업화에 의해 더럽혀져 있는 자연이 내던져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현대에 포위되어서 힘겹게 작은 자연을 지키고 있는 초간정의 노력은 눈물겹기조차 하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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