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엑스포와 안동차전놀이(글/정영준)필자는 대학시절 호주로 배낭하나 매고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다. 대체로 꼼꼼한 성격이라 자부해 온 탓에 여행일정을 비롯해 값싼 유스호스텔의 위치, 그리고 현지 교통사정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비행기를 탔었다.
하지만, 이번 하노버 엑스포에 공식 초청된 차전놀이팀의 일원으로 독일행이 결정된 이후 이상하리만치 여행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노버가 어디에 있는 도시인지, 그 곳에서 열리는 엑스포가 지금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대한민국 안동의 차전놀이가 아시아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고민도 없었던 것이다. 독일땅에 도착하고나서 한참이 지난후에야 이번 엑스포가 독일통일 10년과 뉴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행사로 기획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껏 엑스포라는 이름을 내건 행사는 2년 전 경주에서 열린 문화엑스포를 본 기억밖에 없는 필자로선, 우선 어림잡아 안동시가지 넓이만큼은 될 것 같은 행사장의 규모에 그저 머릿속이 멍해질 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투자된 것인가?"
천문학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자본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생산요소 중 자본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지식의 비중이 커져갈 것이라는 담론이 올바른 것인지 의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규모의 지나침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계 각국에서 온 팀들의 민속공연을 마치 대형극장에 TV스크린을 놓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초실하게 만들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전놀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탈춤페스티벌 행사장을 꽉 채우던 예의 스펙터클한 기운을 받은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차전놀이가 끝나고 상쇠의 쇠소리에 맞춰 서로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서양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우리의 대동놀이 문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 흐뭇했다. 그리고 300명이라는 안동사람들이 차전놀이의 상비군으로 육성도었다는 사실은 점차 박제화 되어가고 있다는 비찬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는 안동문화의 소생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문화인식 향상의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문화공연을 해 보고, 누각의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차전놀이는 6월 1일부터 4일까지 하루에 2회씩 총 8회가 공연되었다. 이동거리가 길어 육체적으로 상당한 피곤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시작되자 동채의 하늘솟음은 더욱 힘찼고, 풍물패의 징은 채가 부러지도록 울려댔다. 관객들 중 일부는 "전생에 한국에서 무당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스스로의 신명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다.
자신들의 새로운 기술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러시아관 도우미의 서투른 영어를 들으면서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기술과 생산성이 유일한 경쟁수단이 도었다는 사실, 그러하기에 조야한 토속품을 판매하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토네이도 바람을 만들어내는 서구의 차이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엑스포에 쏟아붓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듣고 공직자로서의 삶과 행정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안동>
글/ 정영준(안동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