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고향생각(글/권기성)누군들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없겠는가마는 내 고향 안동은 보다 각별하고 자랑스럽다.
안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忠 孝 人일게다. 멀리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고려초 국난극복, 개국공신의 충의와 조선조 하루가 멀다한 외침과 내란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적 헌신과 의연한 대처, 그리고 오늘날 각계각층 요소요소에서 국가 및 사회발전을 위해 불철주야로 매진하는 안동인들까지... 이것이 바로 국가와 나라에 대한 충절이 아니겠는가.
안동을 자고로 예향(禮鄕)이라고 한다. 안동이 낳은 많은 성현들은 예(禮)를 숭상했다. 그분들은 자연을 사랑함에 앞서 사람을 사랑했으며 또한 사람에 대한 올바름이 우선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는 배웠다. 겸손하고, 양보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것이 바로 예의 마음씨이고 또한 몸가짐이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보듬고 귀여워하는 것은 아래로 향하는 예(제, 悌)이고,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저 조잘대며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재롱을 부려,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는 것 또한 위로 향하는 예(효, 孝)이다. 이러한 예(悌, 孝)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난세라 할지라도 거듭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필자 자신 또한 부끄러울 때가 한량없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거칠고, 무례하고, 혼란스럽다. 오륜지도(五倫之道)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예는 접어두고라도, 인의와 권력을 훔치는 무리들이 득세하는 판국이 개탄스러우며,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자도 일찍이 이를 우려하여 권력의 언저리에 진을 치는 위정자가 많을수록 세상은 항상 어둡고 백성은 목말라 신음하게 마련이며, 정쟁은 그치기 어렵다고 했다. 더욱이 권력을 쥔 사람은 백성을 볼모로하여 감언이설의 거짓말만 해댄다고 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흔히들 "한반도의 인재의 반은 영남인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안동인이다"라고 한다. 정말 그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되어질 때가 많다. 이렇게 우리 안동인은 정계, 관계, 학계, 재계, 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명현서각(明賢碩學), 백세사표(百世師表)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은가.
고려시대의 삼태사를 비롯,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농암 이현보, 송암 권호문, 역동 우탁, 호양 권익창 선생 등..., 학문과 덕행을 갖춘 명현석학 그리고 일제 항일투사 석주 이상룡, 동산 류인식, 일송 김동삼, 애국시인 이육사 선생 등..., 오늘날 현직에서 후진양성에 정진하고 있는 대학교수만 해도 천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를 보더라도 안동은 추로지향(鄒魯之鄕), 인재의 고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나라가 어렵다. 바로 안동인의 선비정신이 절실히 요구될 때이다. 우리는 늘 이렇게 면면히 우리의 학풍과 기질을 자랑해왔고, 스스로 호국하는 선비라고 말해왔다. 이 나라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IMF충격을 보다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도 우리는 뛰어야 하고, 그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안동인은 늘 이를 극복하고 치유하는데 큰 보탬이 되어 왔다.
자고로 치자(治者)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두루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치자가 되려거든 학문을 널리 배워 자기를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기를 엄격히 관리하고 다스려야 한다. 치자는 전문직업인이 아니다. 정치인이 전문직업인이 되면 정치는 정상배의 소굴이 되어 버리고 백성의 호주머니엔 구멍이 나고 나라의 금고 속에는 먼지만 앉게 되어 오늘날 환란세태(換亂世態) 이상의 충격을 초래함은 명약관화한 일이며,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선현들은 두루 살피고, 두루 사랑하며, 두루 올바르게 사는 군자가 된 치자가 되길 노력하였다. 오늘날 우리 국가의현실, 어렵게 국가의 운며을 떠맡은 이상 무엇이 무섭고 두려울 것인가. 신명(身命)을 바쳐 더 이상, 불쌍한 국가와 국민을 시행착오의 대상이나 시험대에 올려놓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우리 국민은 물론 우리 안동인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명문세족이 많은 우리 안동은 문화유적 또한 많다. 어디를 가 보아도 정묵온아(靜默溫雅)한 유교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어 전국적으로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안동웅부의 위용을 자랑할 만하다. 우리 안동문화는 사대부의 의식을 반영한데다가 역사적 길이나 사회적 폭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어, 민중들의 문화적 창조력이 더욱 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대표적으로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개목사, 영호루, 태사묘, 제비원, 우유당, 임청각 등을 들 수 있다. 이 문화유적의 밑받침은 대쪽같은 유림의 선비정신과 일반 서민들의 자기를 지켜 나가는 자존정신에서도 충분히 그 혼을 찾을 수 있다.
더욱 우리 안동문화는 상·하층 문화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가운데 문화의 깊이와 폭을 확보하면서, 비판적 현실인식과 자존적 지역의식의 토대 위에 문예적 창조역량을 넉넉하게 발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우리나라 문화발전의 정신적 지주와 선도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여기에다 전통민속문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차전놀이, 놋다리밟기,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들 모두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두루 스며있고, 그 얼이 면면히 이어 내려와 우리 후손들의 마음과 정신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다.
천혜의 배산임수로 자리잡은 우리 안동, 선비의 고향, 그들은 소박하면서도 은근하고, 가난하지만 예를 논하고 양반의 맥과 혼이 이어지는 유림의 고장... 그러기에 아름다운 풍습과 이야기도 많다. 역사이야기, 유교이야기, 내간문예, 권선징악 등으로 인간의 사람의 진실을 확인하고 민중적 공감대를 획득해왔다.
이러한 것과 연유해서 안동지방을 혹자는 명당의 고장이라고들 한다. 특히 용계 은행나무, 제비원 석불 등은 많은 국운의 전설을 갖고 있고, 지금은 그 이미지가 변해버린 우리 '책거리 문화'의 미풍 등..., 곳곳에 서려있는 아리따운 안동의 풍습 등이 우리 후대에까지 전파되고, 또 전수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고향을 찬미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필자는 안동을 예찬하고 안동을 사랑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이곳 안동에 푹 빠지고 싶어진다.
오늘날 우리 안동인에게는 이 아름다운 길상지 안동이 있기에 뽐내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 모두 다시 고향을 생각하며 우리 영가 안동을 더욱 안동답게 가꾸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될 때라고 여겨진다.<안동>
글/ 권기성
41년 안동출생이며 안동사범중고등학교와 성균관대 서울대학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객원교수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국레미콘연합회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74년과 98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으며 「外國人投資環境의 硏究」를 비롯한 여러편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