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내용

갓부임한 영남초등학교 박명희 선생님(글/이광수)

"이제 저의 모든 관심은 아이들입니다"

지금의 다양한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다보면 어김없이 교육이라는 것이 화두로 자리잡게 된다. 과거 부모와 학교가 함께 맡아왔던 교육을 이제는 학교가 전담하고 있으며, 그런 만큰 학교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앞서서 죽이는 작업을 하고 있고,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대며 모자란 것은 쳐버리고, 모난 것은 잡아 뽑고 해서 어떤 틀 안으로 들어오기를 강요하는 것이 지금 학교교육의 현실이다. 얼마전 감사원은 일선 초·중·고교의 촌지수수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직접 운영하는 188신고전화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현실문제의 해결책으로서 기능해야 할 학교교육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얘깃거리란 것이 늘 그렇듯, 밝은 면 보다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되는 법이다. 결식학생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건네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어느 드라마에서나 발견함직한 것이라 여기는 우리들 주변에는 건강한 교육관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전에 부딪히면서 당혹스러웠던 순간

봄기운 느끼기란 여간해서 수월치 않은 안동의 칩칩한 5월 무더위 속에 찾아간 초년생 선생님과의 첫 대면은 우선 어스레한 우려감을 씻을 수 있는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5학년 믿음반. 40명 남짓한 아이들이 서슴없이 손을 들고 교단으로 올라가 문제를 푸는 모습에서 생경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이 막역하게 얘기 나누고 웃는 분위기 속으로 어느새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수업이 파하고서야 비로소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박명희(25)선생님을 아이들로부터 차지할(?) 수 있었다. 그는 안동에서 아버지 박성길씨와 어머니 권옥숙씨 사이에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나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영남초등학교로 부임한 지 석 달째 되는 새내기 교사다. 조용하고 평범하게 자란 성장과정 속에서 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건,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보면서 교사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져왔었고, 오히려 커가면서 더욱 교사가 되겠다는 결정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고 하니까 평소 살가운 편이 아닌 아버지께서도 마음속으로 뿌듯해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초보 선생님인 그는 더욱 바쁘다. 학교에서의 그의 일과는 8시 30분부터 시작한다. 3시까지 수업을 마치고 나면, 5시까지는 아이들로부터 해방된다. 5시가 퇴근시간이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업무에 익숙치 못해 다음날 수업준비, 아이들 신상관리 등을 하다보면 늘상 6시를 넘긴다. 가끔 같은 학년 선생님들간에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런 자리에서 초임으로써 힘든 점에 대해 조언도 듣고, 수업 방식이나 생활에 도움을 받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라든가 애들 가르치면서 드는 생각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얻어 응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대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실전의 문제에 부딪히는 당혹스런 경험도 하고 있다.

처음엔 이런 얘길 하면 아이들이 즐거워하겠지 생각하고 했는데, 아이들이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하는 말을 직설적으로 할때는 당황스러웠고, 처음엔 가슴에 상처도 많이 받았단다. 얼마전 체험학습을 하던 날, 몇 아이가 친구들이랑 놀러를 갔는데, 부모님이 그 사실을 모른 채 컴퓨터 게임방에서 큰애들을 따라 갔다는 얘기만 듣고 찾아 나선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것 외에도 신경써야 될 게 굉장히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갓 부임해서 일이 잘못되면 누군가는 해결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기도 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이 반의 주인은 나며,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신세대 교사에 걸맞게 말 꺼내놓기도 부담스러운 체벌 문제에 관해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다. 교대를 다니던 시절 감동적으로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만약, 네가 교직에 나가 체벌해야 할 순간이 오면 사표를 내라라는 말이었다. 말로 다스려서 아이를 감화시키지 못한다면 교사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 얘기는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가끔 "선생님, 왜 안 때려요?"라고 물어오는 아이들이 있고, "선생님 때리세요. 안 때리면 안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이미 선생님의 엄한 꾸중과 매에 익숙해진 상태인지라, 마냥 좋은 말로만 다스리려고 하니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교실 한쪽 커다랗게 엘로우 카드 규칙이란 것을 붙여두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적혀있는데, 그것을 어긴 아이에게 야단을 맞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확인하고 그에 합당한 체벌을 한다. 일방적인 지시나 징벌이 없는 것이다. 가까운 선생님으로부터 "애들은 선생님의 눈빛을 알아요. 눈빛에서부터 읽고 무서워하거나 그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하죠."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엄할 땐 엄하고 자상할 땐 자상한 선생님이 어떤 건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깊어지는 사랑

처음 부임해서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아이들 이름을 외우는 거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학생들 이름부터 외웠고, 가급적이면 평소 아이들 이름을 자주 부른다.

3개월의 시간동안 그는 수업시간, 엄격할 때와 조곤조곤 아이들을 대할 때를 서서히 구분하게 되었다. 학생 수가 40명이다 보니 깊이 있는 대화를 일일이 다 못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그는 일기장을 아이들과의 대화공간으로 이용을 한다. 빨간색으로 꼭 그날 일기에 대한 생각을 써 주는데, 간혹 겨를이 없거나 해서 확인 사인만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꼭 일기를 갖고 와서 "선생님 써주세요."그런단다. 이러니 아이들에게 소홀히 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 스스럼없는 아이들에게 사랑도 깊어가고 있다.

반면, 그에게서 편애는 경계의 대상이다. 혹시라도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길까봐 부임해서는 일부러 생활기록부에 쓰여진 필요이상의 내용은 보지 않았다. 요즘 한 아이 한 아이 모두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를 받은 뒤 자신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친근함이 다르다고 한다. 또, 부족한 아이들을 수업 후 남기고 그날 해야할 것들을 모두 하게끔 하는 이런 모든 것은 그의 제자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모습인 것이다.

"이제 저의 모든 관심은 아이들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있어서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다. 보통 1년쯤 지나면 특히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의 담임선생님을 똑같이 닮아간다고 한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닮아가듯이 아이들의 성장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면서 아이들은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 때문이라도 시야를 좀 더 넓혀야겠단 생각을 자주 한다.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갖는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에도 동기유발을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아는 만큼 아이들에게 침투되는 것 같아요. 제 수업에 자신이 있고, 자료가 많고, 들려줄 얘기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그 속에 빠져드는데, 제가 준비를 소홀히 하면 수업도 흐트러지는 것을 느껴요."

라고 말하면서,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는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의외로 아이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조용하면 얘기를 해 준다는 식으로, 가끔 악용(?)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지루해 하는 것을 덜면서, 주의를 집중시키고, 동시에 자신도 잠시 쉴 겨를을 가질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한다. 또, 영어교육과를 나온 만큼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교 영어는 관심만 갖게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기존의 비디오와 테이프를 틀어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박자에 맞춰 영어 노래를 하거나, 게임을 시키면서 영어에 흥미를 가지게끔 도움을 준다.

수학시간에는 모둠별로 점수를 준다거나 해서 적당한 경쟁심리를 유발케끔 한다. 그래서 학용품이나 선생님과 함께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 집에 방문할 수 있는 초대권도 써 볼 생각이라고 한다. 누구 하나에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해야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다. 이런 시도들은 지루한 수업보다는 학습내용을 좀 더 재미있고, 능동적으로 하길 원하는 그의 열의에서 나온 것들이다.

생일날에 아이들이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쓴 풍선을 달고 생일파티를 해 주었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엔 한 아이가 핸드폰 줄을 선물하더란다. 편지에는 "선생님, 메모리(선물가게)에 갔는데 갑자기 선생님 떨어진 핸드폰 줄이 생각나서요.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제가 맘에 드는 스타일로 샀어요.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선물을 받으면서도 이것을 받아도 되나, 내가 정말 애들한테 성의껏 하고 있는가, 해준 건 하나도 없는데하는 반성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으냐는 마지막 물음에 "초등학교 때가 아무래도 인성이 잡히는 시기니까 제가 그걸 잡아주고 싶고, 둘짼 애들 고민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같고 자상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셋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간에 그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있을 것이고, 전 그걸 발견해 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지면서, 집에 가면 애들 표정이 막 생각나요."

여느 선생님들 누구나 그런 생각으로 교직에 임하고 계시지만, 대화가 한참이나 계속되도록

"선생님 웃을 때가 제일 좋아요."라고 말하면서 선생님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살가운 웃음을 발견하면서 무더위 마저 살풋하게 느껴졌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