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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을 논의할 때는 지났다(글/류선경)

필자는 지난 글을 통해 유교 문화권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교의 의미와 유가의덕목을 도입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정신문화의 근간을 유가적 이념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같은 정신문화가 과연 지역개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아울러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시급한 처지에 한가하게 정신문화를 논할 수 없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화를 어떻게 지역개발과 소득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라 할 수 있겠다.<편집자주>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데...

백제 왕성으로 확실시되고 있는 유물의 지뢰밭풍납토성이 훼손됐다. 문화단체가 정부와 서울시의 문화적 맹목을 질타하고,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향후의 전개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급기야 정부가 나섰고, 정부는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개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주민보상방안과 매장문화재법에 대한 개정방안이다.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푸대접받던 문화가 조금씩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풍납토성이 세간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풍납토성이 있는 지역은 서울의 변두리로서 그저 고만고만한 논밭일 뿐이었다. 그런데 재개발의 과정에서 토성이 드러났고, 백제의 흔적을 담은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 등 자양한 주장이 제기되면서 풍납토성은 일약 백제는 물론 삼국시대의 초기역사를 바꿀 만한 역사적 유적으로 자리잡게 됐다.

학자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동안 지역민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앓이만 해야 했다. 그들은 알고 싶지도 않은, 그리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풍납토성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재개발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믿고 기다렸지만 개발주체의 부도로 시간은 계속 흘렀고, 급기야 유적 발굴비까지 각출해야 했다. 지금 이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뭔지도 모르는 문화유적 때문에 사유재산이 침해됐고, 이 억울한 사정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안동도 마찬가지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한 이후 하회마을 역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문화유적지로 떠올랐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을 간직한 곳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두가 하회마을을 분석하고 설명하느라 온통 분주하기만 하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주장의 한편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하회마을안의 민박집과 식당에 관한 비난이다.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주민의 무지로 하회마을이 훼손되고 있다고 난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정연한(?) 이론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당장 먹고사는 것이 급한 주민들에게는 밥숟가락을 빼앗을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들은 정작 모른다. 민박과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문화 예찬론자들의 주장대로 하회마을을 보전하는데 앞장선다면 마땅히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 주고 문화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옳은 일이 아닌가?

문화가 중요하고 문화재가 그렇게 귀중한 것이라면 그 문화에 의존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의 생활 역시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주민의 삶은 문화보다도 더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하회마을 사람들의 고민으로 대변되는 경북북부 지역민의 현주소, 오랜 세월동안 낙동강 상류라는 이유로, 또는 문화보전이라는 이유로 낙후 일변도의 생활을 해온 지역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누가 알고 있는가? 유교문화권 개발에 대한 북부지역민의 심정은 풍납토성 주민들의 심정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그래서 우리지역 사람들은 지금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다.

하회 유스호스텔 건립 추진위원회의 고민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을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들은 바로 하회마을 주민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반색의 이면에는, 정부가 추진해온 많은 계획이 사장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불안한 마음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개발계획이 사장될 수도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회마을 주민들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마음이 급한 지역민의 일부가 하회마을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바로 김창동씨 등 풍천지역민 대표 18명은 하회 유스호스텔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하회마을 관광객의 90%이상이 학생이지만, 최대 고객인 학생들이 하회마을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조하기만 하다. 그들은 그래서 하회마을 관광의 불안한 미래가 보인다고 말한다.

추진위는 이에 따라 사유지 5만평을 임대해 주도록 안동시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곳에 유스호스텔을 건립하고, 아울러 마을안의 식당을 끌어내 별도로 모을 수 있다면, 하회마을은 문화재로 보전할 수 있고 또한 주민들의 생계도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안동시는 용역결과를 토대로 한 개발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중복개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시의 재산을 개인들에게 임대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안동시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하회마을 주민들의 이 같은 요구의 이면에는 앞서 말한 바대로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개발과정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 있다는 것이다.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계획에 대한 또 다른 우려

문화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가운데 각 자치단체는 지역문화를 활용한 문화관광산업을 경쟁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각 자치단체는 지금 개발현장에서 야기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먼저 이뤄진 지역관광개발 선례를 보면, 이 같은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중에는 이 같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아직도 갈등과 반목이 상존하고 있는 곳도 많다. 개발과 보전논리의 해묵은 논쟁에서부터 문화와 생존권의 대립, 나아가 정신문화 논쟁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인 문제는 실로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북부지역에서도 다른 지역의 선례대로 개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대다수 시민들은 유교문화권 개발을 통해 낙후된 북부지역이 크게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당장 내 손에 뭔가 쥐어 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지역전체가 발전하면 뭔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반면에 하회마을 등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주민들은 보다 구체적인 생각을 한다. 개발이 이뤄지면 삶의 모습이 확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개발계획에 더 큰 기대와 우려를 갖고 있다.

일부 학자들의 문화파괴를 내세운 입장발표도 이어진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북부지역의 문화를 말하고 지켜왔는데, 정부가 관광개발을 들고 나오면서 문화가 이렇게 개방되고 나니 내가 지킬 영역이 없어졌다. 내가 그동안 애써 노력한 성과는 고사하고, 인정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만큼 느낀다."는 소위 문화지식론자들의 생각도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문화를 답사하고 알고 공부해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고급문화일 뿐이며, 서민들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문화는 그저 대중이 자기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과정에서 그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며, 일부 식자층의 논리나 궤변대로 꿰맞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식자층이 말하는 무지하다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 문화재를 아끼고 다듬고 지켜오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래서 유교문화권 개발계획에서 시급한 과제는 바로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자세일 것이다. 모두의 의견과 이익을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의 합의점을 도출하는 일 역시 문화를 지키고 전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은 당초 낙후된 북부지역을 개발해서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낙동강 상류지역에다 문화재가 많은 곳인 만큼 굴뚝산업보다는 이른바 굴뚝없는 산업을 육성해보자는 것이었다. 안동과 영주 등 7개 시.군은 지난 90년대 중반 8천만원의 용역비를 출자해 대헌 국토 도시계획학회에 개발용역을 의뢰했고, 이에 따른 용역결과를 중앙 정부요로 200여개소에 제출했다.

그러나 7개시.군의 염원과 계획은 중앙정부의 무관심으로 용역비 8천만원과 함께 사장됐다가, 정치권이 지난해 초 이같은 내용을 파악하면서 유교문화권개발계획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정치권의 노력덕에 안동 등 7개시군은 기획예산처로부터 문화재정비 보수용역사업비로 3억원을 지원받게 되면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역개발을 위한 정부용단을 촉구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당초 3억원에 지방비 3억원, 그리고 문화관광부 예산 5억원이 추가돼 유교문화권개발 용역이 발주됐고, 지난 3월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당초 7개 시.군지역에 상주와 문경, 영덕, 울진을 포함해 11개 시.군지역으로 개발대상을 늘리고, 모두 2조 4천억원이 투입되는 개발은 5개권역으로 나누어 추진한다는 것. 또한 유교문화권 개발에 따른 주거점인 안동댐 주변 59만평에는 종합 휴양단지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 문화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보전하는가, 그리고 그 문화재를 어떻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가, 아울러 문화재 주변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소득을 안겨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하회마을 등의 문화재는 당연히 있는 그대로 보전돼야 한다. 그러나 하회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하회마을의 주인이며, 이 마을의 땅과 집은 문화재이기 이전에 그들의 재산이다. 문화재보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계를 제한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이 전제돼야 한다. 이 마을의 민박집과 식당에 대해서도 이같은 조건은 마땅히 전제돼야 할 것이다. 이같은 조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칫 개발에 따른 갈등과 반목만 커질 수 있다.

둘째, 문화재답사와 관광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일부에서 문화관광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일 뿐이다. 문화와 문화재가 있다면 당연히 문화관광이 되는 것이며, 다만 관광객들이 돈을 쓸 수 있는 관광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관광이든 뭐든 관광객이 온다면 잠잘 곳이 있어야 하고 먹을 곳도 있어야 한다. 서구식의 호텔도 있어야 하고 전통호텔도 있어야 한다. 먹는 것 역시 양식과 일식도 있어야 하고 전통한식도 있어야 한다. 유교문화라 해서 모두가 전통문화 일색으로 간다면 관광객의 저변은 결코 넓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놀 곳도 있어야 하고, 즐길 곳도 있어야 한다.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해서 문화가 파괴된다는 단선적인 생각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셋째, 관광인프라의 확충도 시급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잘 보존하면서 동시에 관광효과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관광지의 성격은 여러 형태가 있다. 문화냐, 위락이냐, 나아가 산악형이냐 해변형이냐 등등. 북부지역은 말할 것도 없이 문화관광일 것이며 이 개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관광패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문화관광의 개념을 더욱 확대해서 문화답사와 위락 휴양의 기능이 집산된다면 독특한 패턴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주민의식의 변화가 특히 필요하다. 쓸데없이 말 많은 곳이 바로 안동이요. 북부지방이다. 행정당국이 기가 막힌 계획을 수립해도 주민의 말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고, 그 말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말한 개발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 역시 상당 부분은 바로 이같은 말에서 출발하고 잇다. 지금 필요한 것은 행정당국과 주민간의 상호협의와 협조, 그리고 주민간의 협조와 이해일 뿐, 문화에 대한 자과 현학을 일삼는 일부 식자층의 독선은 지역개발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