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글/권두현)광산촌의 백열등
95년 여름, 나와 함게 사는 사람과 가은에 있는 어느 무너지는 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다. 광산촌과 그들의 삶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어줍잖은 교만심으로 그 마을을 찾았던 것이다.
광부들이 살았다는 그 아파트의 층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붉게 녹슨 철제 잔해들이 보이고 꽃들이 장식되었을 법한 베란다에는 잡초들이 여기저기 높게 때로 낮게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깨어진 유리창으로 보이는 집안은 더욱 어두워 보이고 청색 페인트는 벗겨지고 꼬뿔치고, 그 속에서 검은 빛의 이끼가 간간이 보인다. 대부분이 부서지고 넘어진 창문, 1층 아파트의 잡초는 사람만큼 자라 집 안쪽을 가로수처럼 차단한다.
슬펐다. 때로 산고양이들만 낲선 사람들에 놀라 후다닥거리고, 그 소리에 함께간 3살짜리 나의 아들이 놀란 목소리를 하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 유일한 움직임이다.
석탄을 캐내던 그 사람들의 살림이 궁금한 나는 2층 한 집안에 들어가 보았다. 어두운 계단의 그 낯설고 차가움이 가슴까지 차고 들어온다. 대문은 마구 무너져 있었고 이사간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집에는 아직도 새우깡, 바나나킥 과자봉지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린다. 뜯겨진 벽지와 바닥의 장판지는 한아름씩 싸여 그 따스했던 기억들의 마지막을 애써 잡고 있지만 그것이 더욱 아프다. 어떤 집은 합판으로 만든 장롱이 무너져 내린 채 있었고 그 곳에서 붉은 나이롱 이불이 마지막 바랜 빛을 내고 있다. 손만 대면 나약하게 무너져 내리는 붙박이 창과 싱크대들, 그 속에는 간간이 부러진 숟가락과 젓가락이 틈새에 매달려 있다.
한때 그들을 비추었던 30촉짜리 붉은색 전등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저녁 무렵의 창백한 백열등이 더욱 사람을 애잔하게 한다. 아직 전기가 들어와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어느집에 불빛이 보였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그 폐허의 아파트 어느 집 창문에 불빛이 보였다.
"어 사람이 사네"
3살짜리 아이와 함께 사는 여자도 놀란 듯 걸음을 멈춘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모두가 떠나간 석탄 노동자들의 마을에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불이 켜진 집은 모두 두 집이었다. 사방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가운데 깨어지지 않은 창문으로 중학생 남짓한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나이드신 어른이 저녁 노을 속 백열등 불빛에 그림자를 늘이고 있었다. 돌아나오면서 우리는 서로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죽음보다 가슴아픈 것은 삶
그 후 다시 가은의 그 광산촌을 가 본 적이 있다. 변해있었다. 아파트는 이미 무너지고 없었고 입구에 무슨 공장이 하나 들어서 가은면 사람들의 생계에 도움이 된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석탄박물관이 들어선다고 하였다. 그들의 삶이 떠나간 자리에 들어서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는 나지만 박물관이란 단어가 왜 그렇게 아프고 생소하게 들리는지!
처음으로 박물관이란 단어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문경에는 박물관이 2개 있다. 새재박물관과 석탄박물관이 그것이다. 사랑방 편집기자와 함께 어떤 박물관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석탄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석탄박물관은 초행길이다. 위치를 정확히 몰라 대체적인 느낌으로 가은에 도착하였다. 가은은 나에게 인연이 조금 있는 곳이다. 견훤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문화지표조사를 한 적이 있고 또한 91년 여름방학을 기하여 교사들과 함께 풍물교실을 열었을 때 가은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이 나에게 풍물을 배운 인연도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박물과 표식을 따라 가은면 외곽도로를 가는데, 왠지 낯설지 않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허물어져 가는 다리가 보였다. 나는 알았다. 그 여름날 언젠가 왔던 그곳이라는 것을, 그 답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어느곳이 분명하였다.
박물관의 처음 느낌은 산뜻하였다. 석탄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건물에 다소 덩그렇다는 생각을 하면서 석탄박물관을 들어섰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석탄박물관에는 안동문화지킴이 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엄원식 학예사가 있다. 듬직한 풍채에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굳어있지 않은 생활과 해학적인 말솜씨로 사람사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다.
엄학예사의 안내 덕분에 체계적으로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석탄이 형성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정면의 전시와 석탄을 캐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기구들 그리고 광산촌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물들이 보였다. 광석 전시대 앞에서는 참으로 묘한 광석의 세계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점차로 석탄의 채탄과정과 광산노동자들의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무거워진다. 진폐증 환자 이야기가 나오고 광산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픈 사연들이 나온다.
실내를 나와 야외전시장으로 향했다. 엄학예사는 야외전시장을 광부들이 타던 자전거로 체험코스를 만들어 한바퀴를 돌도록 하겠다고 한다. 문화행사에 앞장서 온 엄학예사다운 생각이다.
야외전시장에는 과거 석탄 채굴막장을 그대로 이용한 현장전시관이 있었다. 은성갱이라고 쓴 글씨가 선명한 이 갱도를 가기 전 "문경지역진폐순직자위령비문"이 있었다. 석탄을 채굴하면서 먼지를 너무 마셔 돌가루가 폐에 쌓여 폐 기능을 잃어버리는 무서운 병으로 세상을 뜬 광부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이다. 비문은 문경지역 석탄산업이 막을 내리게 되었고 광부들의 희생으로 산업사회를 앞당길 수 있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문장을 그대로 적어보면 "막장일에 찌든 고질/ 한스럽게 뜨시어도/ 몸바쳐 이룬 자취/ 아리땁게 빛나리니/ 기리어/ 두 손을 고이 모아/ 명복을 비옵니다"라고 마친다. 비는 일반적인 비문처럼 오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곱게 단장되어 있었다. 글씨도 예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 고운 글시도 마음에 안들고, 돈들여 조각한 비석도 싫다. 꼭 집어 무엇이 싫은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거칠고 힘들게 살아온 광부들의 살믜 언저리에 비해 너무 품위있는 모습이 싫었다고나 할까? 광부들의 삶은 그냥 그대로 아픔인데 폼잰 시비가 격에 어울리지 않아서 일까? 어쨌든 글과 글씨 비 모두가 정성과 성의가 있는데 광부들의 삶에 까닭모를 안타까움이 이 비를 밉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기차처럼 굴장으로 광부들을 싣고 나르던 기계들이 보였다. 지금은 깨끗하게 단장이 되었지만 그 기차에 몸을 기대고 지하 800m를 내려가는 광부들에게 이 기차는 어떠한 의미가 있었을까? 나이가 들어 아버지 생각이 더욱 난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는 태백 광산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이사를 그곳으로 갈까하고 고민하셨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보이는 그 차를 타고 800m의 막장으로 내려가는 기계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갱내 사무실에는 당시의 상황에 손에 잡히듯 육성이 들려온다. 붕락현장이 보인다. 생각하기 싫은 사고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광산사고는 언제나 대형사고이므로 학창시절 심심치 않게 들려온 비보이다.
죽음보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삶인가보다. 붕락현자을 지나 갱내식사장면을 재현한 전시가 보인다. 온통 검은탄이 가득한 가운데 채탄의 힘든 노동을 잠시 잊고 식사하는 광경은 가슴 속까지 뭉클하다. 그들,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은 무엇을 위하여 검은 먼지에 쌓여 저렿게 아픈 식사를 마다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잃은 것은
텔레비전 명화극장이라는 프로에서 영국의 석탄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 "브래스드 오프"가 상영된다고 하여 모처럼 TV영화를 보았다. 그도 시간을 놓쳐 후반 약 40분 정도 보았다. 영국의 어느 탄광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석탄산업의 경제성이 없어지자 2년동안 치밀하게 노동자를 매수하여 결국 폐광시키는 과정을 배경으로 탄광노동자들의 삶의 피폐와 희망을 노래한다.
영국 곳곳에서 탄광이 폐광되고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갈등이 곳곳에서 터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탄광노동자는 밴드부를 조직하여 꾸준히 연습한다. 그들에게 밴드는 유일한 희망의 노래였다. 진폐를 앓는 지휘자와 폐광이라는 위기 앞에서 나팔을 분다는 이유로 처에게 박대받는 노동자,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기감에서 발생하는 갈드의 다양한 모습이 보여진다. 현실적인 위기에서 희망은 언제나 집중 포격을 맞는가 보다. 어쨌든 밴드부는 영국최고의 밴드 경연대회 본선 진출권을 획득한다. 그러나 그날 탄광은 예정대로 문을 닫고, 갈등을 지속하던 부인도 떠나고, 진폐증의 지휘자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폐광과 본선 진출 경비문제로 결국 밴드는 해체를 결정하고 진폐증 지휘자가 누워있는 입원실 아래에서 광부복장을 하고, 안전모에 불을 켠 채 마지막 연주를 한다. 간호사가 조용히 하라고 부산을 떠는 사이 음악이 멈춘다.
그러나 단원 중 한사람의 희생으로 본선여비를 마련하고 마침내 밴드 경연대회 참여하여 감동적인 연주로, 정말 감동적인 연주로 대상을 받는다. 진폐증 환자인 지휘자는 뒤늦게 도착하여 그 트로피를 받기 위하여 무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트로피를 받지 않고 대신 광부들의 삶에 대한 한마디 절규를 내뱉는다.
"…그들이 잃은 것이 직장뿐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른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이 빰으로 그냥 흘러내렸다. 한참을 울었다.
폐광
언제나 사람의 삶은 아픔이 있다. 그것이 탄광 노동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석탄노동자들의 삶만큼 한국 현대사를 대변하는 것도 드물다. 석탄산업은 한국산업 부흥의 기간산업으로 매우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탄광노동자들이 화려하게 대접받는 적은 없다. 석탄산업의 경제성이 떨어지고 다른 산업이 대치되었어도 석탄노동자들의 삶이 보상되지 않았다. 그 가치도 조명되지 않았다. 언제나 인간을 위하여 시대가 존재하여야 할진대, 문명의 이기에 인간이 묻혀가는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산업한국의 아픈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연탄이 모두 타 희게 변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버린다. 광부들의 삶은 한국현대사에서 연탄은 아닐는지,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개차가 감속을 날라 붓던 버력 더미 위에
민들레게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우리 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빈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대서
칸데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 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 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