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무용단 정숙희단장(글/임종교)20대의 열정과 40대의 성숙함이 안동과 만난다면...
5월에 3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계속되면서 늘어나는 짜증만큼 '이래도 되나' 염려가 더 드는 요즘이다.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것이 상식일텐데 상식이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위기감으로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날씨다. 그러나 상식이 허물지는 이런 경우없는 일이 어디 날씨뿐이겠는가.
그 즈음에 난 솔뫼무용단 단장이며 안동대 체육과 교수로 있는 정숙희씨(42)를 만나기 위해 안동대학교로 향했다. 대학은 역시 젊다. 더운 날씨 때문에 잔뜩 지쳐있던 나는 오후 2-3시의 바로 내리꽂히는 햇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햇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발갛게 달군 학생들의 젊은 열기 느꼈기 때문이다. 소리지르고 뛰고 응원하는 그들의 활기참이 사뭇 싱싱하다못해 아름다웠다고 할까. 아, 20대에 대한 나의 상식은 무너지지 않았구나 하는 기분좋은 유쾌함이 앞선다. 오늘부터 체육대회라고 한다.
이런 그들을 비켜 들어간 체육관 무용실에서 나는 또하나의 젊음을 발겨날 수 있었다. 한낮에 콘크리트 건물의 열기는 안팎이 다를바가 없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고, 10여명의 솔뫼무용단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그 한쪽으로 검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시선이며 몸동작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있다.
무용단원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지금 땀흘려서 별로 안 이쁘다며 싫은 내색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너네 지금같이 열심히 연습하고 땀 흘릴때가 제일 이쁘다." 하는 말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부추겨주고, 카메라를 든 내 손에도 힘을 실어준다.
현대무용으로 활기 불어넣어
정숙희씨는 안동에 온지 3년 정도 된다. 그동안 무심하다시피 흘러왔던 안동의 현대무용판에 근래 2-3년동안 지속적으로 여러차례 공연들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장본인이다. 안동은 안동인보다 오히려 외지인들이 더 많은 관심과 의욕을 가지고 예술분야나 문화분야를 주도해나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사실 본토박이로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발전적인 방향으로 자극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또한 자극이 되어 주고 잇는 사람중에 하나다.
그는 97년 6월에 솔뫼무용단을 창단했으며, 정숙희의 춤이라든가, 천소년을 위한 오월무용제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특히 무용단 하나없는 안동에서 솔뫼무용단 창단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게는 안동대에 무용전공이 생겼다는 걸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경북에는 포항이나 구미에 무용단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한국무용단이라 현대무용단으로는 대구를 제외한 경북에 유일한 셈이다. 그런 만큼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97년 2월, 교수공채가 있어 안동으로 오게 된 정숙희씨는 본래 가만히 못 있는 적극적인 성격탓에 체육학과 학생들 중에 무용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 아침저녁으로 연습을 시켰다. 이를 토대로 솔뫼무용단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해 무용전공 8명을 정시모집하게 된 것이다.
솔뫼무용단의 공연들
정기공연인 정숙희의 춤과 청소년을 위한 오월무용제외에도 97년 6월 솔뫼무용단이 창단되면서 바로 그해 안동시민예술제, 안동무용협회 정기공연, 무용순회공연, 경북무용제에 참가했으며, 98년에는 안동국악협회상설공연, 99년 제1회 전국대학현대무용제전, 제3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도 참가하여 공연을 해왔다.
"처음에는 안동무용협회 공연에 조인트해서 했었고, 98년부터 정식으로 무용전공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정숙희의 춤 공연을 크게 했어요. 작년에는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올려보자 해서 군무는 제가 안무를 하고, 나머지는 학생들 작품으로 오월 무용제를 하게 된 거지요,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건 무용수에 불과하거든요. 제자를 키우려면 자기가 만들어서 하는 능력을 키워야지요."
자주 공연을 가지면서도 긴 시안을 가지고 좀더 실한 무용단을 꾸리기 위한 그의 행보는 더 바쁜 듯 하다. 올 4월 30일 전국초중고등학생 무용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솔뫼문화관에서 전국초중고등학생 무용경연대회를 개최했어요.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전체 234개 팀이 참가를 했는데 첫해 치고는 굉장히 많이 온 거예요. 이 지역의 우수한 학생을 발굴하자는 의미도 있고, 대외적으로 학교 홍보도 되고요. 내년에는 보다 좋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무용전공이 있다는 걸 알고 들어왔으면 해요. 아무래도 재목이 좋은 학생들이 오면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거든요."
좋은 학생들을 바라는 만큼 무용전공을 하기에는 안동대만큼 좋은 조건을 갖춘 곳도 드물다고 자랑을 덧붙인다.
"무용을 하기에는 기숙사와 학교와 공연장이 필요한데 우리 학교가 지금 그래요. 다른 학교보다도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배움에 더 열성인 정숙희교수
그는 한양대 무용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무용교육학회 이사와 경북지부장, 한국현대무용협회이사를 맡고 있으며 안동대에 재직중이다. 처음에는 한국무용과 발레를 했다가 중학교때 이대콩쿨에 나가 상을 받으면서부터 현대무용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5살때부터 무용을 했다는 그는 어릴때부터 예술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것 같다.
"어머니가 노래를 하고, 동생이 피아노를 쳤는데 그러면 저는 옆에서 토시를 신고 응접실 걸어다니고, 춤추고 그랬었거든요. 어떤 때는 칼춤을 배웠다고 연습하다가 형광등을 깬 적도 있어요. 평소에도 껑충껑충 뛰어다녀서 늘 아까진끼로 무릎이 빨갰었어요."
학교 다닐때부터 새벽이나 밤늦게까지 연습하던 생활이 몸에 배여 있어서 요즘도 학생들과 아침마다 만나 연습을 한다. 개인적인 시간이 별로 없이 지냈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잘 반영해주듯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설악산 한번 가보지 못했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삶의 한 단면이겠지만 본디 하나를 가지면 나머지 갖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후회될 날도 있을텐데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단지 후회가 된다면 임신했을 때 못한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오히려 학생들보다 더 배움에 대한 열성을 드러내보인다.
"결혼해서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느라 4년 정도 빼놓고는 항상 무용속에 살았고, 졸업하고 대학원 나오고 일본 유학가고, 연수 있으면 미국, 프랑스, 일본 할 것 없이 열심히 배우러 다녔어요.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어디 배우는 일이라면 귀가 솔깃해져요."
겉으론 무대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내적으로 일궈가는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그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라기보다 기꺼이 받아안고 그 싸움을 만끽하고 즐기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반안동사람
처음에는 말도 잘 안통하던 것이 지금은 수업시간에 자신이 먼저 안동말을 쓰고 학생들이 서울말을 쓸 정도로 익숙해졌다. 서울사람반 안동사람반으로 살아가는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그는 일주일에 반은 서울에서 나머지 반은 안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반반씩 몸을 달리 두어야 하는 생활이지만 오히려 그에겐 이 생활이 삶의 활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생활인 것 같애요. 서울에만 있으면 너무 삭막하고, 감성적으로 안동은 자극이 많이 되지요. 그런데 또 여기에만 있으면 정보에 약해지잖아요."
안동에 내려오면 그는 학생들과 똑같은 처지가 된다. 가끔 가족들이 그립긴 하지만 대신 시간도 마음대로 할애할 수 있고, 안동에 와있는 동안은 모든 걸 잊고 무용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그가 지금까지 해낸 여러 성과들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이젠 정숙희씨 스스로 반안동사람이라며 안동사람되기를 자처하면서 안동사람들의 무용에 관한 선입견을 꼬집기도 한다.
"안동분들이 굉장히 끼가 많은 분들이예요. 어디 공연가서 뒷풀이 때 보면 알 수 있지요. 겉으로는 양반의식에 경직돼 있고 보수적이시죠. 특히 현대무용은 주로 몸의 선율 살리는 붙는 타이즈를 입으니까 아무래도 좀 외설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애요. 많이 보시면 달라지겠죠."
안동정서에 맞는 현대무용
그동안 그가 공연에 내놓은 작품들은 남자 무용수와 듀엣으로 펼친 안동대 김장동 교수의 소설 후포의 등대와 헌화가를 각색한 누가 이꽃을 나에게 주었는가, 그리고 원형2000을 들 수 있다. 특히 후포의 등대는 우현히 김장동 교수에게 책을 선물받고 아침에 읽기 시작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밤늦게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 여운이 깊이 남아서 만든 작품이다. 또 원형2000은 학생들과 해양훈련 8㎞를 갔다가 바다에서 2시간동안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무용가로서의 자질에 앞서 연출력에 후한 점수를 받기도 했다.
공연할 무대는 넓고 무용수들이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찾은 것이, 영상으로 뒷 배경을 깔아주고, 가로세로 10m의 실크천을 흔들면서 푸른 조명을 설정해 바다효과를 준 것이다.
"무용수들이 잘하고 지원이 어느 정도 되면 안무 이외의 것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가자 이상적이지요. 사실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대연출이라든가, 조명, 드라이아이스며 스크린... 저는 이것저것 다 해보니까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것 같애요."
그러나 무용전공 학생을 받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자신의 의욕만큼 학생들이 따라와주지 않을때도 있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그가 의도하는 제 역할을 못해내는 것이다.
"현대무용이라고 무조건 쭉쭉 뻣는 게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자기 감정을 가지고 자기안에 있는 철학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손만 내밀어도 춤이 될 수 있고, 뒷모습으로 서서히 걸어가는 동작만 해도 거기서 다 느낌이 나거든요. 스무살때는 그게 힘들죠. 정신집중이 제일이예요. 그걸 흐트러트리면 안돼요."
그는 앞으로 20대의 솔뫼무용단과 안동정서에 맞는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들을 해 보고 싶어했다. 현재는 처용에 돤한 것을 구상중에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올 가을쯤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안동 전통의 고가를 찾아서 그를 배경으로 전통과 현대무용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한다. 안동밖에 할 수 없는 그런 공연이 될꺼라며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또 다른 역사를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에겐 솔뫼무용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작년에는 대학간 학술교류협정을 맺어서 현재 제자 하나가 그의 추천으로 모교이기도 한 한양대 무용과에서 배우고 있다. 내년에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있으면 추천을 해서 좀 더 넓은 곳에서 1년간이지만 배우고 오도록 하고 싶다. 한해에 8명씩 들어오는 학생으로 공연을 올리기에는 무리가 따를 텐데도 그는 잘하는 학생 20명이면 훌륭한 무용단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동안 안동대에 무용전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랐었는데 이젠 전국에서 안동대에 무용전공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대외적으로 더 알려야죠. 좋은 학생들도 많이 들어오고, 기회가 닿는대로 다른 지역을 다니면서 순회공연도 하고 싶고 그러면서 기량도 닦아서 실력도 좋아지길 바라고요. 그리고 안동을 홍보하는 기회가 됐을 때 정말 잘하는 무용단이 돼서 공연하고 싶어요. 그리고 꿈이지만 해외공연도 하고 싶죠. 이게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개척하는 맘으로 해야지요."
꿈이라고 했지만 그는 실현가능하다는 걸 전제해둔 듯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서 현대무용전공인데도 한국무용도 같이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안동다운 것을 뮤용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서 한참 소재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는 앞으로 큰 행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화관광부 2000년 무대공연작품지원을 받게 되었다. 새천년 안동국제무용페스티벌을 열게 된 것이다. 탈춤페스티벌 기간에 열릴 예정이란다. 스페인, 네덜란드, 중국, 우크라이나 등이 참가한다고 하니 세계 무용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을 기회가 될 듯하다.
그를 만났을 때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던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돼서 8주 진단을 받았다. 아무래도 몸을 쓰던 사람이라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함이 클텐데 수없이 이런 일을 겪었을 터 기다림에 초연한 자기 나름의 해석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어떤 때는 의욕을 가지고 하다가도 절망하기도 하는데 기다림도 있어야 되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애요."
그는 은퇴할 때가 되면 제일 속상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용가의 생명이 그리 길지가 않다. 그러나 영국의 어느 유명한 무용가는 우리나라에서 회갑을 맞이했는데 그 당시 무대에 섰을때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과 몸매로 관객들을 압도했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웠다고 존경심과 부러움을 갖고 말하는 정숙희씨. 스무살 단원들과 섞여 있으면 마흔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늘 20대의 열정으로 무대위에 살아있기를 기대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