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야 회담을 하건 말건 북한은 적이다(글/최창명)처음 예비군 훈련을 다녀와서
봄이 한창 피어나던 지난 4월.
노란 개구리 계급장을 달고,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현역 시절 그 얼마나 바라던-노란 이파리 피어난 나뭇가지 둘이 절묘하게 어울어져, 가까이서 보면 월계간 같기도 하고, 좀 멀리서 보면 사무 개구리가 웅크린 듯한-개구리마크인가.
현역 군인들에겐 언제나 '휴가는 꿈이요, 전역은 망상이다'라고 할 만큼 휴가의 날은 멀고 전역은 생각지도 못하기만 하였는데 그 지긋지긋한 26개월이 막을 내리고 나도 이제 예비역이 된 것이다. 그리고 또 1년이나 훌쩍 지나버렸다.
전역증을 받으며 당당하기만 하던 멋 모르던 사내는 취업시에 부여된다던 군가산점이 없어지면서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물로 가산점이 부여될 만 한 곳에 취업을 할리도 없다. 몸이 아파 안 다녀온 남자나, 보통의 여자들이 미워서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속좁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몸 멀쩡하게 뻔질대면서 부모 잘 만나 '뺑이'안 돈 그런 사람들이 미워서고, 26개월의 '뺑이'를 그 꼴난 '개구리 마크'하나로 보상받기는 민간인이 된 나로서는 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바쁜 직장인 불러모아서 이렇게 또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거이 미워서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난 총선기간에 군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럼 뭐해, 또 이렇게 몇 년을 푸른 옷을 입고 '뺑이'를 돌아야-조금 더 나이들어 민방위 의무까지 마치면- 대한민국 남자로서 진정한 '졸업'인걸.
사는 곳이 대구인 나는 안동으로 가는 길목의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칠곡 50사단 모모부대에서 훈련을 받는다. 올해로서 1년차인 나는 4시간 소집점검 훈련이다. 장롱속에 엄청난 공간을 차지해가며 존재하는 나의 군복. 현역시절 죽을 때 뭐 싸갈꺼라고, 휴가나올 때, 복귀하면서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입지 않아 내가 가지고 있는 옷중에서는 과히 가장 새 옷이다.(정태춘 박은옥씨의 시집올 때 가져온 '양단 몇마름'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버스에서 내려 훈련장으로 가는 길. 찌든 도시 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며 지나치던 나무에서 이제 막 피어오르는 새잎들의 신선함을 본 것이 이번 훈련에서 유일하게 얻은 것이다. 흙먼지 피어나는 연병장으로 입성, 벌써 서툴러져 버린 줄서기를 하며 간단한 인원점검을 하고, 강당에 교육인가 뭔가 하는 것을 듣기 위해 간다. 3열 종대로 줄을 서서 말이다.
한시간은 예비군의 임무이고, 다른 한시간은 안보교육이란다.
"여러분은 정예자원입니다"로 시작하는 부대장의 설명 뒤에는 아직 '너희들은 전쟁만 터지면, 내 아래서 굴러야 해' 하는 듯한 묘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것 같아 기분이 많이 상하였다. 여기에 극치를 이루는 것은 안보 교육시간이다. 비디오 시청이 원래 방식인데 사정으로 인하여 다시 한번 부대장의 설명으로 진행되었다. 뭐 초등학교 안보 교육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은 그런 시간이었다.
"현재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하지만 우리들은 여기에 숨겨져 있는 북괴군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북괴(부대장은 북한이라는 표현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우리가 지원한 싸로가 비료를 오직 전쟁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길에는 거지가 넘쳐나고, 모든 군용장비는 휴전선쪽으로 전진배치하고 있습니다(수십년전부터 전진배치를 하였는데 아직도…) 여기서 우리는 북괴가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하고 사회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늙은 부대장의 80년대식 교육과 훈련에 참석한 20대후반 30대 초반의 학생들, 월급쟁이들, 시장 상인들, 영업사원은 들은 듯 만 듯 잠에 겨워 있고, 군용엠프에서는 '안보와 통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화두가 찍찍대는 소리와 함께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