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굿으로 반상이 함께 벌이는 소산동 마을굿(글/조정현)풍물굿으로 엮어 가는 양반골 동제
소산동이 안동지역에서 가지는 위상은 자못 크다. 이러한 위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종가와 동제를 논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마을이다. 안동의 종가를 얘기할 때 가장 오래된 종택이 있는 마을이 바로 소산동으로 안동김씨 비안공파와 상락김씨 판관공파 종가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보통 신안동김씨와 구안동김씨로 통용된다.
하지만 소산동을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바로 민중의 풍물굿을 가지고 양반들도 함께 참여하여 동제 즉, 마을굿을 벌이는 유일한 곳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안동의 마을굿을 살피는 데에 있어서도 소산동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산동의 동제와 풍물굿은 양반문화와 민중문화가 어떻게 대치하며 화합과 인정을 이루어냈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양반의 문화와 민중의 문화를 함께 바라보는 가운데 안동의 동제와 풍물굿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내에서 풍산읍내를 지나 하회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소산동은 위치하고 있다. 풍산 들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는 삼구정과 청나라를 멀리 하겠다는 다짐을 각인하는 청원루를 끼고 소산마을은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소산동은 행정구역상 1, 2동으로 나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큰마, 설못, 역골로 되어 있다. 이 세 자연마을 모두 배산임수의 닭이 알을 품고 있는형국을 이루고 있어 누대의 전통이 서려있는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소산동은 본래 금산촌(金山村)이었다. 현지인들은 여전히 시미마(쇠금, 뫼산, 마을에서 각각 앞글자의 뜻을 따서 부르는 이름)로 부르기도 하지만, 청음 김상헌이 소박하고 근검하게 사는 마을이란 뜻에서 소산이라고 개명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안동에서 내노라하는 양반세력 중 하나인 안동 김씨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안동의 자랑인 삼태사중 한 명인 김태사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김상헌, 김계행, 김삿갓, 김좌진, 김옥균 등의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마을이다. 또한 김선평 가문과는 맥을 달리하여 김방경의 후손인 구안동김씨 가문도 있다. 이 가문이 바로 상락 김씨 판관공파이며 백범 김구 선생의 가문이기도 하다. 김방경의 후손들을 구 안동김씨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주로 고려말로부터 조선중기까지 가문의 세력을 떨치다가, 조선후기에는 신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로 득세하게 되면서 신구로 구분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두 양반가문의 공존은 소산동 마을굿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또한 이런 양반 마을에서 푸진 풍물굿을 울리며 마을굿을 벌여 냈다는 사실은 우리를 조금은 당황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안동지역에서는 이와 비슷한 얘가 곳곳에 나타난다. 안동을 대표하는 양반 마을인 하회에서도 전국적으로 이름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전승되고 있으며 퇴계이황이 살던 도산면 토계마을에서도 대규모의 떠들썩한 마을굿이 벌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마을 모두 정월의 마을굿때와 음력 7월의 풋굿때 외에는 일절 풍물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동지역 마을굿의 특성을 배경으로 소산동 마을굿의 특수성을 양반과 상민이 풍물굿과 함께 연행하였다는 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안동 향촌의 재지사족들은 마을굿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거나 아예 연행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참여는 제의의 주도권을 잡아 그들의 문화인 유교식 제(祭)를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상민들에게 마을굿은 소란스럽게 떠들며 기분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일년 내내 양반에게 억눌려 지내다가, 며칠 동안은 마음껏 놀고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주술적인 방법으로 풍년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합리적인 농사기술이 등장한 후에도 굿이 계속 존속해 온 이유는 굿이 가지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런 기능 때문에 양반은 굿을 제로 대치하고자 했고, 상민은 양반에 맞서서 굿의 존속을 요구했던 것이다. 제냐 굿이냐하는 싸움은 양반이 상민의 자유로운 감정 발산까지 억제하느냐, 상민이 일년 중 어떤 기간 동안만이라도 언론의 자유를 갖느냐 하는데서 생겨났다.
제와 굿의 싸움은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오히려 제와 굿의 싸움이 없는 곳보다 있는 곳의 마을굿을 발달시키게 하였다. 왜냐하면 서로의 대치 속에서 양반은 굿의 후원자가 되고 상민은 유교식 제사의 참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양반은 갓쓰고 농민은 삼색띠 매고
양반들의 적극적인 마을굿 참여는 소산동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보통 양반골에서 벌어지는 마을굿은 양반들의 후원 속에서 농민이 주체가 되어 연행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양반들은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더욱이 독축고사형의 유교식 제의도 아닌, 걸판지게 풍물을 울려대며 벌이는 축제적인 마을굿에 양반이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안동지역에는 유난히 동성마을이 많다. 세거성씨를 중심으로 마을의 대소사가 꾸려지는데, 마을굿 역시 이들의 영향하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노라는 사대부가문이 세거하는 집성촌에서는 사대부가문과 각성받이들이 대립적 양상을 따고 있으며, 대부분 마을굿의 주도권을 각성받이들이 가지고 있고, 세거성씨는 보통 후원자로 나서는 사례가 많다. 또한 소산동에서는 상당과 하당이 구분되어 상당은 세거성씨가 주로 모시고 하당은 상민층 각성받이들이 모시면서, 마을굿을 함께 연행한다. 이러한 조율관계 속에서 대립되는 두 세력은 서로간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가지고 서로의 입장과 기득권을 유지해 나갔다.
본래 소산동의 마을굿은 정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면서 마을굿 경비를 모으고 마을굿을 절정으로 몰아나갔다. 그렇지만 근래 약 25년 전부터는 정월 13일쯤부터 지신밟기를 했고, 현재는 지신밟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굿 비용도 각 반에서 얼마씩 거출하고 동답에서 나온 소득을 합해서 지출한다.
지신밟기때 하는 사설이 있는데, 가창방식이 독특하다.
어허라 지신아 성주 지신을 누리세
어허라 지신아 조왕의 지신을 누리세
어허라 지신아 다래기 다래기 부꾸세
어허라 지신아 다섬지기를 부꾸세
어허라 지신아 열섬지기를 부꾸세
어허라 지신아 온동을 부꾸세
어허라 지신아 놋동을 부꾸세
어허라 지신아 이집가중의 대주님은
어허라 지신아 아들애기를 점지하소
어허라 지신아 아들이 나그덩 효자가 나고
어허라 지신아 딸이 나그덩 열녀 나소
어허라 지신아 소가 나그덩 우황이 나고
어허라 지신아 개가 나그덩 쌉쌀이 나고
어허라 지신아 닭이 나그덩 봉이 나소
어허라 지신아 천년지덕을 누리세
어허라 지신아 만년지덕을 누리세
소산동에서는 "어허라 지신아"하고 하서 반주 장단을 치고 난 후 "성주지신을 누리세"하고, 다시 반주 장단을 하고 후렴인 "어허라 지신아"를 하는 방식으로 지신밟기 사설이 이어진다. 이것 또한 소산동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지신밟기 사설이 "어허라 지신아 성주지신을 누리세"하고 반주를 넣은 후 다음 사설로 넘어가는 형식인 데 비해 보다 세분된 사설과 반주를 연행하고 있다.
풍물패가 집을 방문하면 집주인은 풍요의 상징인 쌀을 시루에 담아 내놓는다. 집을 창조한 신인 성주신에게 가문의 풍요와 안녕을 한껏 빌고 그 쌀을 유사가 와서 거출한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넉넉한 집이면 좀더 많이 거출하고 경제적 여건이 어려우면 조금 거출하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동제와 동네의 큰일에 쓸 경비를 마련했다. 끼니 때우기가 어려운 시절인 일제시대나 보리고개 시절에도 지신밟기를 하고 나면 약 3가마니 정도 모였다고 한다.
안동김씨 종택에서 벌이는 지신밟기 과정을 살펴보면 반상의 권위가 전도되는 축제적 상황이 잘 드러난다. 풍물패를 이끌고 다니는 상쇠가 종택 대문 앞에서 "야! 자네 있나?"하고 외치면 종가댁 종손은 공손히 "네"하면서 이들을 맞이한다. 마당에는 쌀을 한가득 담아놓은 큰 시루와 맛난 음식들을 종부가 준비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식으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액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인다. 풍물굿을 중심으로 연행되는 마을굿에서는 남녀노소도, 놀이꾼과 구경꾼의 구별도, 심지어는 반상의 구별도 없어진다. 일상과 달리 상민이 양반을 호령하기도 하고, 양반이 힘없이 굴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의 탈피 속에서 모든 사람이 가락과 놀이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일상의 구조를 벗어난 반구조, 즉 대동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만한 사실은 1940년대쯤부터는 풍물패의 일원으로 안동 김씨 문중 사람들도 직접 참여하여 풍물잽이나 잡색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은 마을 사회에서 양반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던 인물이 놀이적 성격이 강한 풍물패의 놀이에도 적극 참여하여 양반과 상민의 위치를 떠나서 마을굿에 동참한 셈이 된다.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양반들의 계급의 벽을 허물고, 전도된 위치가 아닌 현실적인 사회적 위치를 그대로 가지고 마을굿을 벌인 것이다. 이것 또한 소산동 마을굿의 대동적인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실이다. 보통 민중의 놀이인 마을굿에서는 민중이 양반탈을 쓰거나 양반변장을 하여 지배세력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과거의 형태이었으나 이제는 현실과 놀이가 크게 전도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 세거성씨가 주로 상제당 제관을 맡으며, 기타성씨를 중심으로 하제당 제관과 풍물패가 꾸려지고 있다.
본격적인 대보름 동고사 준비는 제관의 선출로부터 시작된다. 예전에는 상제당 제관, 하제당 제관, 음식도가, 굿도가 4명을 선출하였다고 하며, 현재는 음식도가와 굿도가를 그냥 도가로 통합하여 3명을 선출한다. 일주일 전에 제관을 선출하고, 사흘 전에 금줄을 친다. 10여년 전만 해도 금줄을 친 이후에는 마을안팎으로 출입을 금했다. 금줄을 치기 전에 들어온 사람은 마을굿이 끝나는 16일 아침이 되어서야 나갈 수 있었고, 금줄을 친 이후에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보통 정월대보름 마을굿은 14일 자시 경에 지내는데, 소산동에서는 15일 해시 경에 지낸다. 그 이유는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종가댁 어른이 정월 초에 별세하여 상기간과 겹칠 수 없다 하여 하루 늦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15일 해시 경에 지내는 것은 정월 대보름날을 넘겨서 마을굿을 드릴 수는 없기 때문에 대보름 자시 전에 마을굿을 끝낸다. 본래 대부분의 정월 마을굿은 14일 밤 15일이 시작되는 첫시간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을의 주도적인 세력인 안동 김씨 문중에 상이 나서 옮기게 된 것이다.
양반들의 상제당과 농민들의 하제당
소산동에서 섬기는 당은 상당인 산신당(주산당, 주산어른)과 하당인 골맥이당(수구맥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원적인 당구성은 한국농촌사회에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상당과 하당을 모시는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구별짓는 관행은 그리 흔하지 않다. 상제당 제관은 대부분 안동 김씨가 맡고, 하제당 제관은 타성씨가 주로 맡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경부터 상제당은 그대로 하고 하제당 제관으로 안동김씨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본래 상당은 밤나무가 신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밤나무가 6·25전쟁 수 년 전쯤 고사해 버리자 근처의 소나무를 신체로 섬기게 되었다. 상제당의 제물은 생닭 한 마리와 시루백편 그리고 제주이다. 하제당은 약 500년 된 큰 느티나무를 신체로 하고 있다. 수구나무 또는 동구나무라고도 한다. 하제당에서는 12골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제당에서 올리는 제물은 대부분 12개씩 구성되어 있다. 즉 생쇠고기 꼬지 12개, 명태 12마리, 청어 12마리, 그리고 멸치와 볶은 콩 두세 되이다.
하제관은 본래 삼구정 앞에 있는 느티나무였는데, 안동 김씨 가문에서 삼구정 앞에 있는 것이 번잡스럽다고 마을밖의 동구나무로 옮겨갔었다고 한다. 그랬다가 지나가는 한길가에 있어 부작용이 많이 생기므로 1950년경에 다시 지금의 삼구정 앞의 느티나무로 하제당을 옮겼다. 마을 세거성씨의 말 한마디면 상민들의 제당도 옮길 수 있었지만 역시 상민들의 의견을 다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지신밟기가 끝나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해질 무렵부터 풍물꾼들이 굿도가에 모인다. 여기서 대보름굿을 준비하고 먼저 풍물을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이 때는 마을의 우물을 만나면 샘굿을 한다. 굿도가에 돌아와 쉬면서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다시 풍물을 치며 마을을 한바퀴 돈다. 이렇게 두 번을 돈 후 세 번째 차례에는 "불을 끄시오"하면서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금기를 지키며 정성을 다할 것을 알린다. 또한 사람을 보내 상·하제당 제관을 모셔오라고 한다. 마을을 세 바퀴 돌고 나면 보통 10시쯤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풍물패와 제관들은 도가집에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마을을 세 바퀴 돌아 부정을 가시고 정성을 들인 뒤, 본 굿을 지내기 위해 출발한다. 제관과 제물을 지게에 진 유사, 그리고 풍물패들이 함께 마지막 네 바퀴째를 돈다. 이 때에는 특별히 마을의 12골마다 정지하여 인사를 드린다. 상제당에서 축을 읽기 시작하면 풍물패는 얼른 달리다시피 하며 풍물을 치며 내려가 하제당에 도착한다. 때를 맞춰 상제당과 하제당이 함께 소지를 올린다. 이 때 반드시 소지를 함께 올려야 마을 전체가 복을 받는다고 한다.
소산동의 마을굿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제문(축문)을 한글로 작성하는 것이 이러한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소산동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화를 통해서 마을굿을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2000년 정월 대보름에 지낸 제문은 다음과 같다.
소산동신제문
유세차경신정월계사삭십오일정미유학김호규는
목욕제계하고 절하며 감히 주산신령께 고하나이다
학가산이 서쪽으로 내달아 정산의 높은 산봉우리 정기받은 소산이로소이다
이곳에 사는 소산동민은 신의 도움에 의지하여 밝고 착하게 위엄과 복을 이루어 그 덕을 받고 있음이오이다
이제 새해를 맞아 법도에 따라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려 간절히 소원을 비나이다
신령께서 강림하셔 우리 동민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덕을 흠뻑 입게하여 주시고
우순풍조되게 하여 오곡백과 풍성하고 사람마다 집집마다 근심걱정 없게 하고 작은 꿈도 이룩하여 태평성월이 사방에 미치도록 상서로움 드러내어 우리 모두 복을 받고 우리마을 나날이 융성발전토록 하여 주소서
신령께서 들으시고 영기발양하시어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 한뜻으로 바른 사람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저희들의 조그마한 정성을 표해 맑은 술과 약간의 음식물을 올리오니 굽어 살피시고 음향하소서
제문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산동 역시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보다 능동적으로 이를 극복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풍물패는 열두 골맥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면 제자리에 서서 흥겨운 장단으로 새해의 시작을 고한다. 하제당에서 올리는 12개의 제물들도 바로 이들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마을을 둘러싼 12골을 두루 두루 지신밟기하면서 하제당에 이르고, 마침내 대동소지, 우마소지, 개인소지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당주집에 다시 모인 마을사람들은 당주를 중심으로 다시 제사에 차린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동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때 대부분의 마을사람이 참여하지만 혹여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별도로 음식을 싸서 반드시 맛을 보도록 한다. 과거에는 음식이 귀하고, 특히 제사에 올리는 음식은 일반인 평소 먹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음복은 나누는 마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또한 멸치와 볶은 콩은 조금씩이라도 마을 사람 모두가 음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였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소산동 마을굿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은 "열심히 달리는"데 있다. 풍물을 치면서 마을 전체를 감싸고 뛰어 다니는 마을굿 형식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들이 이렇게 뛰는 이유는 아무래도 정성을 들이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 양반들의 유교식 상당 제사와 시간을 맞춰 소지를 올리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지 올리는 시간의 통일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잇다. 즉, 재액을 물리치고 복록을 받는 데에는 반상이 구별이 없음을 뜻하고, 또한 상하관계에 있는 마을 주민 모두가 정성을 합해야 마을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지는 마을의 대동소지, 우마소지, 개인 소지 순으로 올린다.
물론 양반들은 뛰지 않는다. 그러나 상민들은 그들까지 포함한 마을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달린다. 함께 소지를 올려야만 마을신을 감동케 하여 마을전체가 재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때 치는 가락은 길굿을 단순화한 것으로 보이는 "더덩 덩"이다. 숨차게 뛰다시피 움직이는 이 마을의 특성에 맞게 가락도 단순화된 것이다.
소산동에서는 마을굿을 위해 원래 음식도가와 굿도가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굿도가에서는 마을굿을 진행하는 풍물꾼들을 대접하고 잽이들이 손을 맞추어보는 등의 일을 하였다. 풍물패는 농기, 상쇠, 부쇠, 징, 북, 장고, 소고, 사대부, 각시, 떡달이, 절름발이 곱사 등 20~40명 정도로 구성되며, 상쇠, 부쇠, 소고는 행매(상모)를 쓰고, 징 북 장고는 고깔을 쓴다.
예전 풍물패의 복색은 주로 농민복에 두건(수건)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옷을 꾸며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 쓰고 돌리는 부포나 상모를 전립또는 행매라 부르며, 상쇠는 부들상모를 사용한다. 악기는 매구(꽹과리)와 징 치배가 다른 지역보다 2배정도 많으며, 장구가 중요한 악기로 인식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치배들이 서는 순서에서도 매구→징→북→장구→벅구(소고)의 순으로 장구와 북이 다른 지역과 달리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산동의 풍물 가락은 투박하다. 세련된 기교를 부리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쇠가락 및 꽹과리 역할이 가장 중시되는 곳이다. 얼마나 쇠소리를 좋아했는지 민요에 쇠가락을 후렴구로 만들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쾌지나 칭칭나네, 캥마쿵쿵 노세등이다. 대부분의 가락 전승이 쇠소리장단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북치는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북 치는 것을 다른 악기 치는 것보다 더 신명나 한다. 영남지역의 춤이 덧뵈기가 주를 이루듯이, 풍물가락에서도 덧뵈기 가락, 세마치, 잦은 마치 등이 중심이 되며, 일·놀이가락과 제의가락의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져 있고 제의 가락이 발달하였다. 또한 소산동의 풍물 가락은 한 가락을 내면 이것을 점점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고 잔가락으로 변주하는 일이 드물다. 빨리 몰아가는 속도가 다른 지역 풍물가락보다 빠르며 박진감이 넘친다.
소산동 풍물굿 가락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쇠가락 중심이다. 이것은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 다른 악기가 없이도 매구(꽹가리)만 있으면, 또는 매구와 징만 있으면, 신명나게 춤추며 놀 수 있는 것과 관련된다.
둘째, 복잡한 순서나 정교한 이음새 등을 중시하지 않고 흥과 신명을 올리는데 열중하는 가락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즉 삼채와 이채를 중심으로 빠르게 몰아가는 가락을 선호하며 삼채에서 이채로 넘어가는 이음새 또한 분명한 경계를 짓거나 넘어가는 가락을 쓰지 않고 가락의 빠르기에 따라 가락을 넘긴다는 것이다.
셋째, 제의악과 유희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노는 가락은 삼채와 이채 중심이며, 신과 상징적 교섭을 이룰 때에는 주로 템포가 느린 가락, 길군악과 같은 혼합박자형 가락, 무악장단과 유사한 가락, 제의적 구술과 일치하는 가락 등을 사용한다.
진풀이는 모든 풍물굿에 나타나는 보편적 형식이다. 이를 두고 군사들이 훈련하는 진법이라고 하여 진법놀이 또는 진법회라 부르기도 한다. 풍물에 진풀이가 등장하게 된 것은 확실히 정부에 의해 편제되고 진행된 진법훈련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집단적 군무를 통해 단순한 원진 등의 진풀이는 이루어졌을 테지만, 이것이 하나의 형식미를 갖춘 집단적 놀이로 연행될 수 있게 된 바탕은 진법훈련에 의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소산동에서도 몇 가지의 진풀이가 나타나는데, 원진, 장사진, 방울진, 좌우각진, 미지기, 바꿈진 등이 그것이다. 판굿이 발달하지 않고 지신밟기 중심이기 때문에 진풀이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세 시대의 왕이라고 왕 마음대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었듯이 민중의 생활터전인 마을사회에서도 재지사족(양반)이나 관청 마음대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통 억압받고 박해받는 계급이라 일컫는 민중 역시 자신들의 법도와 질서를 가지고 관청 및 재지사족과의 관계를 풀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 민중이 활용한 것이 바로 종교 즉 신의 권능과, 왕권 즉 지역의 지배자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진 국가라는 권위이다. 예를 들어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벌어지는 안동의 하회마을에서는 산주라는 별신굿 사제자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별신굿을 해야겠다고 할 때에 신의 현몽을 근거로 별신굿을 벌일 수 있었다. 또한 진법훈련을 한다는 구실을 삼아 마을굿을 마음껏 민중의 의지대로 각종 진풀이와 대동놀이로써 벌일 수 있었던 것도 국가라는 권위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풍물패가 주도하는 마을굿에서 의례의 중심부에는 신성한 배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례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그 주변부에서는 어릿관대적인 배역이 설정되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어릿광대적인 놀이꾼 및 잡색의 역할은 종합체로서의 의례를 보강하는 것이지 의례를 파괴하거나 신성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소산동에 나타나는 풍물굿의 잡색에서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일반적인 포수, 양반, 각시 말고도 떨달이나 곱사 등이 특별하다. 이러한 바보형의 인물은 특히나 의례의 진지함을 일소에 극복하고도 남을 웃음과 춤을 선사하면서 가무오신형의 마을굿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남아있는 잡색은 주로 대포수와 양반, 각시 등이다. 이 세 잡색은 전국 풍물굿 어디에서나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 추가되는 경북지역의 특색있는 잡색은 떡달이, 곱사 등의 바보형 인물이다. 이들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이매와 유사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으며, 양반과 세상을 풍자하는 인물이다.
대동을 향한 소산동 마을굿
소산동에서는 15일밤의 동고사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 음복과 함께 동회를 연다. 이때에는 마을의 한해 주요 사업 보고와 결산이 이루어지며, 이장이 임기가 끝나면 이장선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이번 해에 장정 1인당 노임을 얼마나 줄 것인지도 협의 했다고 한다. 잃게 동회가 끝나고 나면 동채싸움과 줄당기기를 벌였다고 한다. 또한 수동별신굿에서 초청 받아 걸립 풍물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1999년과 2000년 정월대보름 소산동제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제물 유사를 몇 년째 맡고 계신 안동김씨 김문회 어른에게 많은 제보를 들었다. 이 어른은 동제에 대해 "동제는 절대로 혼자 잘살기 위하여 지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잘살기를 희망하고 마을사람들이 평안하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지낸다. 나혼자 잘살기 위하여 지낸다면 제관이나 유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촌로들은 예전에는이란 말을 좋아한다. 풍물굿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민중삶의 총체적인 표현양식이었고 오락의 매체였듯이 민중은 신명을 일구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특히 좋았던 기억만을 되새기며 예전을 찬양한다. 이러한 예전에 대한 향수에는 공동체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함께 땀흘려 농사지으며 불렀던 노래와, 힘겨움을 달래기 위해 풍물을 울렸던 두레풍장 그리고 김매기가 끝난 후에 흐드러지게 놀았던 풋굿에 대한 추억에는 이들의 젊은 시절 꽃 같은 세월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에 성대하게 행해진 마을굿은 특히 생산의 주체였던 일반 민초들이 마을운영의 주도권을 잡는 마을 단위의 축제였다. 이 때에는 종교적, 사회적, 예술적 주도권을 민중이 차지하여 어엿한 마을의 주인으로 제를 올리고 대동판을 열어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신앙과 예술은 고도의 정치성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동성촌락이 발달한 경북지역의 풍물굿에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지역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민중이 주인이 되어 벌이는 잔치에는 늘 풍물굿이 뒤따랐으며, 풍물굿은 생활의 일부가 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풍물굿이 번성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양반과 농민이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함께 동제를 지내면서 마을 내부의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고 마을 전체를 위한 동신에 대한 섬김과 제축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대동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특질이 표현되어 있다. 물로 양반과 농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소산동의 마을굿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이원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들이 함께 마을굿을 연행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협화와 대도을 지향하고 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