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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본 안동과 밖에서 본 안동

그들은 안동에서 단순히 과거를 찾으려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다움이 급격히 상실되어 가는 그들의 사회를 재생시킬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는 열린 눈으로 안동을 바라보기 때문에 안동에 대한 그들의 가슴도 참으로 따뜻했다.

2000년 2월 18일부터 21일 사이 하와이에서 한국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한국학 학술대회는 새 천년 벽두에 한국학이 맞이한 주요과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36개 패널에서 발표된 논문이 140개였고 참가한 학자는 약 200여명이나 되는 매머드 학술대회였다. 한국학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해외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국력이 참으로 많이 신장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이렇게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외국에 대해 도무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부끄러움과 위축감이 들기도 하였다.

토론된 내용을 보면 역사학, 문학, 어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여성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뿐만 아니라 윤이상 음악에 대한 평가, 한국의 대중문화현상, 교육문제, 이산가족문제 같은 매우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다루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많은 학술회의가 열렸지만 그것은 대개 전공별로 열렸을 뿐 현실문제를 놓고 우리 학문이 총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학제간에 연계된 종합학술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갈수록 더 불확실해지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우리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인데, 우리는 정작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절실히 느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국학 학자들 중 반 가량은 외국인인데, 그들 중 중년 이상의 학자는 대개 평화봉사단(Peace Corps;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창설된 청년 자원봉사 조직으로 당시 주로 저개발국에 파견되어 2년동안 영어교육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출신이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애정과 관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한국어에 능통했고 지역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지역 사투리는 물론 독특한 지역정서까지 익히고 있었다.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은 이번 학술회의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을 익히면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에서 미진한 부분을 더 계속하는 기회였다. 이 기회는 특히 외국인 한국학자에게 자신들의 학문적 토대인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번은 내가 안동에서 왔음을 안 미국인이 다가와 "아! 안동사람이군요. 그럼 같은 고향 사람도 여기 왔는데, 만나봐요"하며 곧 소개해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안동사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가 소개하겠다고 데리고 온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그는 반색을 하며 유창한 안동말로 자기를 소개했다. 평화봉사단으로 안동에서 2년 동안 살았고 그 후 평화봉사단 동료와 결혼한 다음에도 안동을 수없이 드나들어 자기 고향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의 한국학자들 사이에 안동사람으로 통하고 있었고 그도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학술회의가 하루를 지나자 참석한 사람들과 거의 낯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 서먹하던 분위기도 차차 가라앉았고 대화내용도 어설프게 자기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농담까지 스스럼없이 주고받으면서 개인적인 관심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화제의 중심은 한국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도 대개 전통적인 한국의 이미지였다.

이튿날부터 이런 분위기에 젖어들자 이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한국학 학자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한국에 대한 공통의 이미지가 내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전통적 모습으로서 한국은 한마디로 '안동'이란 이미지에 그대로 압축되어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안동을 다녀가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안동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은 기본이었고 안동지역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웬만한 전통마을까지 답사한 사람도 여러 명이었다. 말하자면 외국인 한국학자에게 안동은 과거의 한국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안동은 한국학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었으며, 현재의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기준이자 변화된 한국의 여러 모습을 캐낼 수 있는 광맥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경주의 불교문화유산과는 너무 멀어 그 기억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안동의 유교문화유산과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는 경주보다는 차라리 안동에 더 친근하게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안동에서 수십 년 살아왔던 내 입장에서, 바깥에서는 아마 안동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이번 기회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안동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내가 안동에 대해 갖는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의미를 두고 되새기고 싶어하는 것은 서구사회를 정신없이 뒤쫓아오는 오늘의 한국모습이 아니라 서구화 이전에 갖추고 있었던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과 그러한 자연에 잘 조화되던 한국적 삶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서구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정작 놓치고 있었던 것, 즉 자연과 함께 하고 도덕을 중히 여기는 삶의 지혜를 한국의 전통에서 찾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듯이 복고적 취미나 인류학적 관심사 혹은 문화지배를 위한 정교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을 연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바깥 사람들이 안동이란 아주 생생하게 박제화된 조선사회일 것이며, 그 속에 사는 안동사람의 시대착오적인 고집과 허위의식을 호기심 반 안타까움 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안동에서 단순히 과거를 찾으려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다움이 급격히 상실되어 가는 그들의 사회를 재생시킬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는 열린 눈으로 안동을 바라보기 때문에 안동에 대한 그들의 가슴도 참으로 따뜻했다. 그것은 확실히 낙오자의 오기 같은 닫힌 마음으로 안동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과 달랐고 그래서 터무니없이 우쭐대는 뻣뻣한 우리 마음과도 달랐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내게 신신당부한 말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선생님! 안동에 돌아가시면 이제부터라도 안동의 개발을 하회마을처럼 만들지 마세요. 그것은 안동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지금 안동을 유교문화권으로 지정하여 문화관광의 차원에서 개발하려고 한다는데 정말 우려됩니다. 그것은 재임시 겉보기 실적을 중시하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지역경제의 근시적 효과를 위주로 하는 정책입안자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연장선에서 보다 넓은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서서히 다듬어가야지요.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안동문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섣부른 개발보다는 차라리 보존 위주로 하세요. 머지 않아 안동의 가치가 진정하게 평가되는 날 그 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를 것입니다.".

글. 이 효 걸(편집위원. 안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