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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퇴계, 난은 이동표의 생애와 시(글/이원걸)

청렴·강직한 관료 생활와 효성의 실천
난은(懶隱) 이동표(李東標, 1644∼1700)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군칙(君則)이며, 호는 난은(懶隱)이다. 그는 예천군 금릉리(金陵里)에서 부친 처사 운익(雲翼)과 모친 순천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난은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행동거지가 단아하였다. 그는 14세부터 본격적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유교 경전을 독파하였으며, 17세 때에는 향교에서 {심경}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21세에 부친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흘러내린 피를 약에 타서 올렸으나 부친은 난은 형제에게 각고의 노력으로 입신출세하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하직하고 말았다. 이후로 그는 불철주야 학문에 정진하였다. 27세에 고산초당을 지어 거주지를 금릉에서 고산으로 옮겼으며, 30세에는 당시 안동과 예안의 명사(名士)들과 함께 학계(學契)를 조직하여 학문과 도의를 연마하였다.

난은은 애당초 벼슬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32세에 증광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이는 당시 아우 세표(世標)의 병사(病死)와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어 동당시(東堂試)에 응시하자, 시관(試官)이 '이번 과장에는 이모(李某)가 반드시 장원할 것이다'라고 예견하자, 난은은 당일 아침에 일부로 머리를 천번이나 빗어 시한을 넘긴 채 응시하지 않아 '이천소(李千梳)'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이어 34세에는 증광회시에서 장원하였으나 이내 파방(罷榜)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향리에서 독서하며 후학을 지도하다가 40세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증광급제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41세에 성균관학유를 임명받았으며, 42세 때에는 시조의 묘비를 세웠다. 44세에는 창악도찰방에 임명되어 직무에 충실하며 청렴한 생활을 실천하였다. 직임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에 역졸들이 그의 짐꾸러미에 종이를 몇 동(棟)을 넣어 주자 그는 엄중히 책망하고는 받지 않았다. 46세에는 성균관전적·춘추관기사관 등에 임명되어 특진을 정중히 사양했으나, 주상께서 윤허하지 않았다. 이어 사간원헌납에 임명되어 이른바 기사환국 당시 곤전(坤殿)의 폐위를 극간하고 당시 조정의 처분이 부당함을 직언간쟁한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이세화(李世華)·이상진(李尙眞) 등의 신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사헌납소(辭獻納疏)'를 올렸다. 이에 주상은 진노하여 엄형을 내리려고 하였지만 유신(儒臣)들의 신원에 힘입어 파출(罷黜)에 그쳤다. 이어 병조정랑·홍문관수찬직이 주어졌지만 그는 사직 상소를 올리고 귀향하여 군의 동,서쪽 냇가에 영천암을 짓고 도의를 강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부름은 이어져 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지만 그는 외직을 희망하여 양양현감직을 얻게 되었다. 이는 오직 난은의 효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직 상소문에 의하면 그는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홀로 상경하여 관료 노릇을 할 수 없기에 굳이 사양했으며, 부득이 주상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어머니를 몸소 모실 수 있는 외직을 자청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직에 근무하면서 몸소 모친의 시중을 드는 한편 강직한 관료로 불의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48세 때에는 사간원헌납의 명을 받들어 조정으로 돌아왔다.

이어 홍문관부수찬·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당시난은이 고관(考官)이 되자,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은근히 부탁하였다. 그러자 난은은 정색을 하며 거절하였다. 그해 9월달에 하늘에서 우뢰가 울리는 괴변이 있자, '우재수성소(遇災修省疏)'를 올려 주상이 심지를 바로 세울 것을 주청하였다. 이후 난은은 주상의 두터운 인정과 성총을 받았다. 주상께서 난은을 두고 문학과 경학에 뛰어난 인물로 평가했으며, 이듬해 봄에 모부인을 모시고 상경하라는 비답을 내렸다. 이어 사간원헌납·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49세 때 이조정랑으로 재직할 무렵, 이조의 실권자인 민암(閔　)이 류재(柳栽)와 이수인(李壽仁)이 권문세가의 자제임을 들어 추천한 것을 보고 부당함을 항의하였다. 그리고 이내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귀향하자, 주위 사람들이 '작은 퇴계(小退溪)'를 다시 보았다고 하였다. 낙향한 그에게 조정의 부름은 계속 이어져서 홍문관부교리겸교수·교리·사간원헌납·이조좌랑겸문학·의정부사인 등 무려 열세번에 걸친 임명을 받았지만,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에 거리의 아이들마저 상대방을 희롱할 때 '네가 이사인(李舍人)과 같은 덕망을 지녔느냐'라는 유행어가 생겼다고 한다.

난은은 더 이상 조정의 부름을 사양할 수 없었다. 사헌부집의로 재직할 무렵에 장희대 집안 사람이 횡포를 자행하자, 난은은 법에 따라 그를 엄하게 다스렸다. 50세에는 사간원사간에 임명되었지만 상소하여 사양하였다. 다시 의정부사인을 거쳐 집의로 장희대의 전횡을 응징하였으며, 시정(時政)을 논하였는데 숙종이 가납했다고 한다. 이어 성균관사성·승정원동부승지·춘추관수찬관에 임명되어 사직 상소를 올렸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에 난은은 어쩔 도리가 없어 외직을 희망하였다. 조정에서는 그를 전라도관찰사로 내정했으나, 난은은 모친 봉양을 위해 작은 고을을 희망하여 광주목사로 임명되어 모부인을 모시고 부임하였다. 52세에는 호조참의·지제교에 임명되어 사직을 원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53세에는 외직으로 삼척도호부사로 재직하면서 삼척 고을의 각종 민폐를 개혁하며 세금을 감면토록 조치하여 칭송을 받았으며 어사 정호(鄭澔)는 그의 치적이 훌륭하다는 장계를 올렸다.

54세에 모부인을 부임지로 모셨으며, 이듬해 모부인이 돌아가시자, 그해 가을에 춘양현 어노동으로 반장(返葬)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난은은 모친상에 지성으로 애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석으로 빈소를 찾아 몸소 예를 다하고 장례 후에도 날마다 상묘(上墓)하되, 비바람이 몰아쳐도 예를 그만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인해 그는 겹친 피로와 급성 위장병으로 인해 모부인의 삼년상도 채 종료하지 못한 채 57세가 되던 1700년 7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후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난은은 평소 너무나 청렴하게 살아온 터라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난은의 정감 어린 시
{난은집} 권1·2에는 시 217제 260여수가 실려 있는데, 5언·6언·7언 및 고체시·악부시 등 다양한 시체가 보인다. 이렇듯 다양한 시 형식 속에 난은의 문학적 역량이 반영되어 있다. 전반적인 시풍이 밝고 명랑하여 청신한 정조를 이루고 있다. 후반부에 일부 작품들이 다소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은 아니라고 본다.

대개의 시가 농촌 자연 경관이나 산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대상물을 취하여 그것의 변화, 추이하는 여러 형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묘사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정적미(靜寂美)와 동적미(動的美)가 혼합되기도 하며, 시각과 청각의 감각이 어우러져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악부체 형식을 빌려 여성의 정감을 시에 수용하여 남녀의 애정 양상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도 돋보인다.

江光山色媚新晴 강물빛이랑 산빛 산뜻하고 맑은데
十里桑麻一望平 십리길 이어진 뽕나무 삼나무
何處崇朝人打麥 이른 아침 어디선가 보리 타작하고
家家唱起太平聲 집집마다 태평성가 부르네.

<次先集韻戱呈權遊餘以發>

踏著瓊瑤十里沙 고운 백사장 십리
繞村江水侵人家 마을 휘감은 강물 집 둘레 흐르고
陽坡側畔眠黃犢 양지 언덕엔 누렁소 조는데
一樹寒梅正放花 매화 한 그루 활짝 피었구나.

<戱呈權上舍雨中著蓑笠還家>

海天飛雨細無聲 바닷가 소리 없이 보슬비 내리고
十里棠花照眼明 해당화 십리길 뻗어 눈부시게 피었구나.
漁店閉門人語寂 문 닫힌 어촌 주막엔 인적이 없고
隔林時聽午鷄鳴 숲 건너 간간이 대낮 닭 울음 들리네.

<洞山道中敬次先祖韻>

세 편의 시에 향토적 소재의 시어들이 담겨 있다. 첫째 시에서 맑은 개울물에 대비되는 상큼한 산빛의 농촌 정경이 포착되고 있다. 뽕나무와 삼나무는 우리 농촌 정서를 흠씬 느끼게 해준다. 이어 들려오는 보리 타작은 절로 흥을 일으킨다. 이는 결구의 태평성가를 위한 반전이다. 둘째 시는 색채감과 시각미가 돋보인다. 백사장·누렁소·매화에서 정겨운 색감과 포근한 농촌 정서를 감지할 수 있다. 누렁소가 졸고 있는 평화감과 매화의 고결미가 서로 어우러져 있다.

셋째 시는 시·청각적 심상이 조화된 시이다. 만개한 해당화의 자태와 낮에 울어대는 닭울음이 그것이다. 보슬비 내리고 인적이 없는 어촌 주막에서 정적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정서를 반영한 [목동요(牧童謠)]에도 누렁소에게 풀을 먹이는 아이들의 일상 생활 모습이 담겨 있다.

烏夜啼 까마귀 밤에만 울어요.
夜夜烏啼人不眠 밤마다 울어 잠 못 이루게 하네요.
烏啼不必便有情 까마귀 우는 게 나와 상관없지만
使我如何雙涕懸 이처럼 눈물 쏟아지는건 왠일일까요?
不恨夜啼烏 밤에 까마귀 우는게 상관없다 해도
但恨秋宵苦難曉 가을밤 지새우기란 참으로 어려워요.
繡枕鴦衾共君語 원앙비단 이부자리 펴고 당신이랑 속삭인다면
烏夜啼啼亦好 밤마다 까마귀 울어도 나는 좋아요.

<烏夜啼>

[오야제(烏夜啼)]에서 까마귀는 애당초 길조가 아니다. 밤마다 울어대기에 여인은 잠을 이룰 수 없고 급기야 임과의 이별한 서러움이 강하게 밀려든다. 애써 까마귀 우는 것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여인 홀로 가을밤을 지새우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고 고백하고 말았다. 그리운 임과 함께 하는 밤이 오면 평소 밤잠을 설치게 했던 까마귀의 심술도 탓하지 않겠다는 데서 임에 대한 그리움이 고조되고 있다. 아울러 임과의 재회를 가슴 설레이며 고대하는 여인네의 심정이 그려져 있다.

我面紅 볼그레한 제 얼굴
君面白 뽀얀 당신 얼굴
紅白雖不同 붉고 흰 게 달라도
總是靑春色 둘다 청춘의 얼굴이어요.
靑春易失人易老 청춘은 쉬이 가고 사람도 이내 늙으니
坐見落花心斷絶 떨어지는 꽃 보고 있으면 애간장 다 타요.
我有雲　爲君梳 구름 같은 머리결도 당신 때문에 빗었구요
我佩幽蘭爲君潔 난초향 뿌린 것도 당신 때문이어요.
百年苦樂長倚君 백년 고락을 당신께 의지하고자 했더니
君獨何爲不重別 당신은 이별을 그리도 쉽게 생각하셔요?
我面紅 볼그레한 제 얼굴
君面白 뽀얀 당신 얼굴
我心正如面 제 마음 변함 없지만
君心不可測 당신 마음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我面紅>

붉고 고운 얼굴의 여인과 미소년의 애정 갈등을 표현하였다. 여인이 수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청춘이 쉬이 흘러가는 아쉬움과 임의 애정도가 자못 식어져 감에 대한 불안 심리가 깔려 있다. 시종 여인은 남성에 대해 헌신적이며 희생적 자세를 지향하고 있다. 작중에 남성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여성의 독백 속에 님의 애정 유발 촉구와 이별을 염려하는 불안감이 드러난다. 난은은 위의 시에서 여성 독백조의 표현을 통해 남성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의 지속 추구 의지를 표현해 내었다. 이외에 동일 계열의 작품으로 연꽃을 따며 임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는 심정을 몰라준다고 원망한 [채련사(采蓮詞)]와 떠난 님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모상사(暮相思)] 등이 있다.

난은이 [작은 퇴계]로 불리워진 이유
난은은 강직하고 청렴한 생활 철학을 실천하며, 출처 대의에 올곧아서 당시에 '작은 퇴계'라는 평판을 받았다. 그의 관료생활과 목민생활의 행적을 살펴보면, 불의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깐깐한 선비 형상을 지녔던 인물이었다. 국가적 대의를 위해 일신의 안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리에 따라 출(出과) 처(處)를 결단하였기에 당시 세인들에게 이러한 칭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묘갈명}에 의하면, 그는 출사 16년 동안 입조(入朝)한 일수가 합산해도 채 200일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벼슬살이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난은은 벼슬을 거듭 사양했을 뿐 아니라, 마지 못해 응하더라도 누구나 선망하는 중앙 요직을 마다하고 외직을 자청했다.

그 이유는 노모 봉양을 위한 강한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걸군소(乞郡疏)]에 의하면, 그는 사남매 중 유일한 생존자로, 자신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떠나면 노모를 봉양할 도리가 없기에 굳이 외직을 자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정으로부터 외직의 명을 받고는 모친을 모시고 임지에 부임하였다. 그는 부임지에서 어진 목민관의 소임을 다하는 한편 어머니를 직접 받드는 효자였다. 이러한 난은의 효심은 임종까지 지속된다.

그의 생애에서 보았듯이, 난은은 모친상에 지나치게 애도하며 예를 다하다가 몸져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이처럼 모친에 대한 효성이 뛰어났으며 가족애가 강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학의 진흥을 위해 일련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러한 글에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난은의 유학적 사유를 담은 여러 논문인 [태극변설(太極辨說)]·[심경주해(心經註解)]·[역도론(易道論)]·[예설변(禮說辨)] 등은 소실되어 버리고 현재 제목만 남아 있다. 아울러 그는 가족애 못지 않게 애민 의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는 외직에서 해당 고을 백성들의 고충 해소를 위해 조정에 해결책을 건의한 상소문에서 잘 드러난다.

[삼척민막소(三陟民　疏)]는 장편인데, 난은이 부임할 당시 삼척 지방민들이 한해와 수해를 겪고 난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수령으로서 이러한 지경에 이른 백성들에게 조정에의 긍휼을 하소연하였다. 그리고 조정의 무책임한 방치는 결국 유민을 발생시키게 되므로 적절한 세금 감면의 혜택을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난은집}은 난은의 문학적 역량이 발휘된 문집으로 다양한 글이 실렸으며, 비교적 분량이 많다. 그러나 위에서 간략히 검토한 글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강인한 인간상을 보았다. 그는 이러한 인간애에 바탕한 감수성과 청신한 시풍으로 농어촌 정서와 여성의 정감 등을 시에 담아 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서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강직한 선비 형상과 문인적 기질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이원걸(경안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