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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과 오산당, 그리고 퇴계 이황(글/윤천근)

자연을 찾아나서는 마음

전통시대에서 지식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과는 아주 달랐으리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지식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여유와 휴식을 반납하는 일이다. 꽉 짜여진 일상, 분 초를 다투는 경쟁, 흘러넘치는 정보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지식인은 여유와 정서를 폐기할 필요가 없었다. 여유와 정서는 그들의 공부를 이끌어주는 유력한 동지였던 탓이다. 그리하여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의 훈기를 완상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 지식의 성격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지식은 수리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식은 분석되고 정리되며, 그 결과는 삶살이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 하에 매양 투자되기에 바쁘다. 그리하여 지식의 크기는 욕망의 크기를 키우고, 욕망의 크기는 이익의 크기를 키우는 확대지향의 노선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전통시대의 지식은 성찰과 반성의 의미를 갖는다. 지식은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마음속의 욕망을 비워내게 하고, 마음을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어내게 한다. 따라서 지식이 크면 클수록 마음은 자잘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이익가치를 떠난 여유로운 삶을 떠올리게 된다.

전통시대의 우리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을 이익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공부는 선인들의 말씀을 배우고 학습하기가 중심에 놓여지는 것이었다. 선인들의 말씀을 통하여 도리를 닦고, 선인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반성하고 성찰하기가 공부하기의 가장 중요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 외에 또 하나 중요한 공부하기 방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부터 배우기이다.

자연, 그러니까 풀과 나무, 흙과 돌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는 생존경쟁의 엄혹한 환경 속에 놓여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은 모든 것의 실제적 양상을 붙잡아낼 수 있을 정도의 밝은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을 본다.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을 보는 인간의 눈에 비친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용하고, 담담한 모습.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태도. 조화롭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 이러한 것들이 인간에게 보여지는 자연의 모습이다.

인간은 그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사회 속에 묶여 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갈등의 크기는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어떤 관계 속에서든, 갈등을 갖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갈등. 긴장, 조바심, 답답함…… 그것은 인간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인간은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울려 삶의 논리는 인간을 일정하게 구속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하는 탓이다.

인간사회 속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갈등관계, 긴장된 마음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약화된다. 자연은 우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의 어떤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있어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앞에 두고 신경 곤두세우고, 어떤 관계를 지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혼자이다. 혼자일 때 이익과 성공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자연 속에서 혼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방 안에서 우리가 혼자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방은 인간사회라는 바다 속에 띄워진 아주 작은 조각배와 같은 크기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방은 잠시의 휴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는 있으나, 인간사회로부터 우리를 차단시켜 주지는 못한다.

자연은 인간사회로부터 일정하게 우리를 차단시켜 준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은 바다같이 큰 영역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는 그 자연의 바다 속에 띄워진 아주 작은 조각배 하나가 될 뿐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느냐, 심리적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자연 속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도 기본적으로는 태도와 의지의 문제라고 하겠다. 우리가 결정적인 태도와 의지를 갖는다면, 조금만 자연 속으로 들어가도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깊이 차단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간사에 연연한다면, 아무리 깊이 자연을 찾아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차단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심리적 측면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의 경우에도 전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으로부터 차단되는 정도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인되기 어렵다. 이 점은 우리 옛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연을 매개로 하여 공부하기의 차원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이다. 깊은 산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은 깊은 산이 그만큼 세상 잡사로부터 벗어나고, 마음을 맑게 하는데 유효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고, 자연 닮기의 교화력 역시 깊은 산 속 자연이 보다 크게 행사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자연은 그렇게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는 스승이면서 벗이었다.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자연 가까이두기와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를 통하여 스스로를 여유롭게, 정감적으로 닦아나갔던 것이다. 이 점은 이황 같은 사람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이황은 늘 자연과 함께하기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친근한 자연, 가까이 있는 자연. 평범한 자연은 이황에게 있어서는 일상의 교사였고, 깊고 멀리 있는 자연은 이황에게 있어서는 가까이 있는 자연을 배움에도 불구하고 더께가 지는 세속의 먼지를 크게 한번 떨쳐내게 하는 특별한 교사였다.

청량산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것과 찾아 나서서 만나게 되는 것의 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전자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후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있다.

이황의 경우에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자연은 온혜와 도산 주변에 펼쳐져 있었고, 찾아나서는 자연은 청량산이 대표적이었다.
청량산! 이 산은 옛날에는 안동부의 재산현에 속한 것이었다. 지금은 봉화에 속하여 있다. 이 산은 옛날 이름이 수산, 그러니까 물의 산이었다고 하며, 청량이라는 말은 이 산 속의 암자에 붙여졌던 것이라 한다. 청량암이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었고, 이 사찰 주변의 경치는 이 산에서 제일이었다고 한다. 청량암 주변의 풍광이 산을 대표할만 하였으므로, 청량이라는 말이 이 산을 뜻하는 말로 확대 사용되었고, 청량암은 이름이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청량암은 외청량의 움직이는 바위(동석) 아래에 있다. 앞에는 천길 절벽이 있고, 뒤에는 돌의 봉우리가 층층으로 쌓여 있으며, 아주 깊은 곳에 있어서 머물러 쉬면서 책을 읽을만한 곳이다. 절은 신라 때 지어진 오래된 것이며, 위 아래 두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다만 하나의 작은 암자만이 남았다."
<<청량지>>에 나오는 청량암 설명 부분이다.

이 청량암이 지금도 있는지, 없어졌다면 어디에 있었는지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고 연구해서, 언젠가 분명하게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쨌든 이 산이 수산(물의 산)이라고 불리워졌던 것은 이황 이전시대의 언제인가였다고 할 수 있고, 이황시대에는 이미 청량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이 청량산은 이황의 삶터인 온혜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안동부의 청량산은 예안현의 동북쪽 수십리 거리에 있고, 황의 선대의 집은 그 노정의 중간쯤 되는 곳에 있다. 아침에 길을 나서면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고 배에 찰 정도로 올라와 있을 때 산에 오르게 되니, 비록 경계가 나뉘어져 다른 지역에 있는 것이기는 하여도 실제로는 우리 집 산(五家山)과도 같다고 하겠다. 황은 젊었을 때 아버지나 형을 따라 작은 바구니를 등에 지고 이 산에 오가며 책을 읽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황이 주세붕의 <청량록>에 붙인 <발문>에서 쓰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 집 산과도 같다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황은 청량산에 대한 친애감, 정서적 연대의식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만큼 이황의 발걸음은 이 산에 자주 미쳤던 것인데, 그것은 청량산이 이황이 살던 온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빼어난 절경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량산은 안동부 재산현에 있는데, 실로 태백의 한 자락이 날아내려 그 정기가 응결된 것이다. 그 끌어안고 등에 진 충만한 기운들은 한데 뭉쳐서 험준함을 경쟁하듯 다투어 차가운 색감으로 솟구치고, 멀리서 보면 마치 푸른 대나무 순이 어지러이 목대를 뽑아올린 것만 같으니, 늠름하기가 가히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커다란 냇물이 그 발치를 휘도니, 황지로부터 흘러내린 물이다. --- 대저 이 산은 주위가 불과 백리에 지나지 않지만, 봉우리가 층층이 쌓여서 절벽이 절벽을 이고 있는 형상이고, 구름과 이내가 나무숲 사이에 걸려있는 것이 마치 그림같기도 하고, 산이 시렁 위에 올려진 것 같기도 하니, 진실로 조물자가 별달리 기량을 펼친 것이라고 하겠다."

주세붕이 <청량록>에서 적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주세붕이 청량산에 바치는 찬사는 대단하다. 주세붕은 중국의 산 중에서 5악이 빼어나기는 하지만 작은 산이 신선이 사는 것 같은 풍경을 품고 있는 것을 들라면 반드시 천태를 말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명산을 말할 때에는 묘향산, 구월산, 금강산, 삼각산, 두류산 등 5산을 손꼽지만 작은 것으로써 신선이 사는 경치를 품고 있는 것으로는 반드시 청량을 말하여야 한다고 못박는다.

주세붕의 평가는 아주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이 수직의 높은 절벽으로 끊어지고, 그 절벽의 발치를 물길이 넘실대며 훑고 지나가는 산, 그래서 오래도록 절벽과 물길이 동행하는 산을 어디서 따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그 청량의 발치를 적시며 흐르는 물길은 비교적 깨끗하다. 그런데 옛날에는 얼마나 깨끗했을 것인가? 그 물길을 건너서 산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중국식 산수화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도 같이 바위 절벽을 휘돌아 또 그 위의 바위절벽으로 올라서고, 그 위의 바위절벽을 휘돌아 또 그 위의 바위절벽으로 오르는 산이 또 어디 그렇게 흔할 것인가? 멀리 걸어서 서서히 오르는 산이 아니라, 수직벽을 타듯이 급격하게 올라가야 하는 산, 그러면서도 조금 가파르게 치솟다가 완만한 경사길을 걷게 되고, 완만한 경사길을 걷다가 또 조금 가파른 경사길을 타고 오르곤 하여서, 그렇게 산타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산, 그것이 바로 청량산이다. 그런 점에서 청량산은 한국의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나름의 독특한 품격을 갖추고 있는 산이라고 하겠다.

오산당

이황이 그 어디보다도 사랑했던 산, 그래서 스스로 청량산인이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으며, 계상서당을 옮길 궁리를 할 때 최우선적으로 적지로 고려하기도 하였던 곳, 그러나 그 빼어남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 평범함의 자연이라 할 수 있는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에 밀려나고 마는 것이 청량산이다. 그러나 그 속에 집 짓고 앉아 제자들과 공부하는 곳으로 선택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황의 청량산에 대한 사랑, 청량산에서 이황이 배우고 익힌 것이 어디 사라지는 것이겠는가? 청량산은 이황에게 있어서 삶터 주변의 자연일 수는 없었으나, 노년에 이르도록 특별하게 찾아나서는 자연으로서 기능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황의 청량산 사랑, 청량산과 이황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이황의 후인들에게는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황의 후인들은 이 산 속에 이황이 들어가 앉아 자연과 벗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집을 이황 사후에나마 만들어 앉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산당이다. 그것은 물론 이황이 이 산과 가졌던 친연성을 되새기고자하는 목표만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이황의 후인들이 이 산 속에서 이황이 그러하였듯이 자연과 벗하고, 자연을 배우고,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기를 꿈꾸었던 의식도 전제되어 있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정은 김도화가 쓴 <오산당중건기>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 청량의 당은 (이황의) 후인들에 의해 세워졌으니, 이른바 시는 이루어졌으되 집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건릉 임진년에 일부 뜻있는 선비들이 원근 각 지역의 인사들과 상의하여 비로소 3칸의 당을 자운봉 아래 세워 선생의 유지를 미루어 이루어서 여러 선비들의 여망에 부응하고 도리를 강의하고 학문을 일으키는 곳으로 삼았으니, 편액하여 오산당이라 하였다."

이황의 후손 이만여가 쓴 <오가산지>의 <후기>에 의하면 오산당이 지어진 건릉 임진년은 순조 임진년, 그러니까 서기 1832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처음의 오산당은 병화로 소실되어 버렸으니, 지금 우리가 보는 오산당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하겠다. 처음의 오산당이 불타 없어지는 것은 고종 병신년(1896년)의 일이고, 오산당이 중건되는 것은 고종 경자년(1900년)의 일이다.
이황의 후인들은 왜 두 번씩이나 오산당을 짓는 것인가? 오산당을 통하여 그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이의 36동천은 세상에 유명하니 회암(주자) 선생은 정사를 짓고 노래해 말하기를 나의 샘과 바위에서 살리라 하였다. 청량의 12봉우리는 해동에 이름이 높으니 퇴도(이황)선생은 산놀이의 기록(주세붕의 청량산에 대한 글의 <발문>)에서 우리 집 산이라고 하였다. 아! 저 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짓고 땅이 펼쳐내어 원기를 안고 지고 무릇 천년 백년 후를 기다리는 것이니, 그 뜻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이에 우리의 두 선생(주자와 퇴계)이 나와 노닐고 감상하는 여가에 경치 좋은 곳을 차지해서 그 인자함과 지혜로움의 끝없는 즐거움을 의탁하였으니, 안개와 구름 밖에 솟고 거듭 쌓이고 뾰족하게 된 것이 다 우리의 책상 위 물건인 것이다. 만세에 전할 우리 도리를 맡길만한 것이 이 산이 아니면 또 어디에 있는 것이겠는가?"
김도화의 말이다.

김도화의 이 <오산당중건기>라는 웅변적인 글을 통하여 우리는 퇴계의 학문적 후인들이 주자의 무이정사를 모방하여 오산당을 처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주희와 이황이 깊은 산을 찾아들어 노닌 것은 그저 즐김의 차원이 아니라 인자함과 지혜로움이라는 유학적 덕목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의식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학적 도리를 떠난 즐김이 아니라 유학적 도리를 성숙시키는 즐김, 유학적 도리를 담아내는 즐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유학적 즐김의 차원에서도 퇴계의 학문적 후인들은 그의 스승인 퇴계를 조선 유학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주자와 같은 경지에 올려 놓기를 소망하였다. 그리하여 주자에게 무이가 있듯이 퇴계에게는 청량이 있고, 주자의 무이에 정사가 있었듯이 퇴계의 청량에도 정사가 있어야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자에서 퇴계에로 이어지는 학문적 역사의 흐름을 자신들 역시 상속받고자 하는 문화적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산당의 건립은 이렇게 주자의 무이와 퇴계의 청량을 한 묶음으로 이해하는 유학적 의식을 바탕으로 하며, 주자가 무이에서 향유하고 퇴계가 청량에서 갖추었던 자연 속 공부, 또는 자연과 합체가 되는 즐거움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길 위의 단상

청량산은 이제 나에게는 낯선 산이 아니다. 청량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자락의 한쪽 에 누추한 삶터를 정한 나로서는, 청량산은 내 삶터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량산을 통과하여 안동으로 나오기도 하며, 여름에는 청량산을 통과하다가 그 중간쯤의 시원한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청량산을 남 보듯이 스쳐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자연히 내가 청량산을 보는 눈도 전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와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산, 나의 일부가 되어 있는 산 - 이런 의식은 나로 하여금 유달리 살가운 시선으로 청량산을 바라보게 한다. 이황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러니 감히 우리집 산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청량산을 점유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황의 의도는 점유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친애감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런 탓에 청량산에 즐겨 들르면서도 절집 같은 데에 머물며 즐기고 독서하고 하였을 뿐, 스스로의 집을 따로 가지려 하지는 않은 것일 터이다. 생각이 있었다면 허름한 집 한채를 지을 힘이 없었겠는가? 그 속에 있는 것들로 충분하였기 때문에 새 집을 지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황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였지만, 이황의 후인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청량산이 자신의 학문적 스승인 퇴계 이황과 가졌던 상징적 관계를 구체화하여, 그것에서 힘을 얻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오산당이 지어지는 것이다.

청량산을 동 서로 가로지르는 길, 그 길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조금 휘돌아 오르기의 연속이다. 정문에서 들어와 그 길의 초입부분이 끝날 때 쯤, 청량사 올라가는 길 표시를 지나쳐 조금 더 오르면 길의 한쪽에 웅크리고 서 있는 바위가 보인다. 이름하여 입석. 다른데 있었다면 꽤 크게 보였을 것이지만, 좌도 우도 높은 산 봉우리 바위절벽에 둘러쌓여 있는 청량산 한 가운데서는 아주 작아보인다. 그러나 주변의 높은 절벽바위들은 이름을 얻지 못했거나, 오늘날 제 이름을 잃고 있는데, 이 바위만은 아직도 제 이름을 당당하게 내붙이고 있다. 길 가에 나서서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는 탓이다.

입석에서는 산쪽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펼쳐진다. 좁기는 하지만 오르기에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고, 그리 가파르다는 느낌도 없다. 오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층층바위들이 높게 둘러서서 병풍을 이루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평탄함은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다. 가파른 절벽바위들과 그 밑을 휘돌아 가는 평탄한 길, 이러한 이중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이곳의 바위들을 살펴보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이곳의 바위가 층층바위라는 것은 누차 말한바 있다. 낙천을 따라 뻗은 이차선 도로에서 청량산 쪽을 바라보면 시루떡을 엎어놓은 것 같은 층암절벽이 사열하듯 연이어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서 보는 탓에 그 층을 이룬 바위의 단면들이 분명히 눈에 들어온다. 산 속에서 보면 바위의 층은 그렇게 분명하게 눈에 돌아오지 않으나 바위면 가득 잘 탁마된 둥근 강돌들이 빠짐없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퇴적암이 지각작용으로 솟구쳐 올라 높은 산을 이룬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비교적 무른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의도하는대로 길을 내는데 커다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가 비교적 오르기에 평탄한 길일 것이리라는 말이다.

청량산은 다층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수직형 산이다. 따라서 층과 층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경사길을 거쳐야 하지만, 층을 바꾸지 않는다면 별 힘들이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다. 이 점은 특히 노년의 이황에게는 매력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입암으로부터 오솔길을 타고 산을 오르면, 병풍바위의 옹위를 받으며 좁직한 길이 완만하게 휘돌아 산 안쪽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간다. 길은 너럭바위가 온통 깔려있는 곳도 있고, 소나무 뿌리가 이리저리 몸을 눕히고 있는 곳도 있다. 바위 밑 나무들에는 무명실타래가 걸려있는 것도 두 셋 눈에 보이고, 오솔길 양 옆의 나이먹은 소나무 중에는 언제적 것인지 송진채취 흔적을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이 여럿 눈에 보인다.

길은 나신으로 무심하게 누워있다. 소나무뿌리와 바위발치 같은 것들과 뒤엉켜, 길은 천년동안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여기 나무뿌리를 보아요."
김복영씨는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나무뿌리가 여기 이렇게 뻗어서 사람들 발길에 밟히기를 자청하지 않는다면 길이 되지를 않아요. 나무는 길 위로 뿌리를 뻗고, 오가는 사람들에 밟히게 하면서 위태롭게 길 한쪽을 지키고 서 있지요. 사람들은 이것을 배워야 해요."

과묵한 것이 천성이 되어버린 경상도 사내, 그가 이번에는 전에 없이 수다쟁이로 돌변한다. 자신이 깨달은 나무뿌리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수첩을 펼쳐 그의 말을 기록하고, 반드시 문자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그의 열정은 수그러들었다.
밟는 것이 아니라 밟히는 것을 자청하는 철학, 밟힘 속에서 의미를 찾고, 밟힘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철학. 이 나무뿌리의 철학은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물론 우리 중 누가 나무뿌리나 길 바닥을 이루고 있는 바위, 길 그 자체처럼, 밟힘 속에서 만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은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길은 이황시대에도 이랬을 것이다. 이황도 나무뿌리와 바위바닥을 밟으며, 소나무와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바라보며, 그렇게 길을 올랐을 것이다. 그의 제자들도 그랬을 것이고, 그의 후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길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길 속에는 이황의 발바닥으로부터 전달되었던 온기라도 조금쯤 남아있을까? 그 후인들의 이황 흔적찾기, 이황 따라배우기 열정의 한 자락이라도 길은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오산당의 하늘

절집에서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독경소리는 목탁소리와 함께 섞여 멀리까지 들려온다. 요즘 절집에서는 왜 마이크에 대고 독경을 하는 것일까? 절집 사람들은 주변에 큰소리로 울려퍼지는 독경소리가 무슨 위대한 권능이라도 행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일까? 그것이 소리공해이고, 원래 주인인 산의 주권을 해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불교신자이지만, 이런 확성기 독경소리, 산속의 고요를 깨트리고 소슬한 산바람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횡포는 정말로 싫다.

우리는 응진전 쪽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을 택했지만, 아랫쪽 길을 걸어 오다보면, 산굽이를 지나며 바로 청량사와 오산당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청량사와 오산당 사이는 아주 가깝다. 청량사는 오산당에서 서쪽으로 수십걸음을 걸으면 닿게 되고, 오산당의 동쪽으로는 또 하나 색다른 집이 붙어 서 있다. 이름하여 초막산방, 산꾼의 집이다. 산꾼의 집을 왜 오산당에 붙여 세우도록 했을까? 나로서는 의아하기만 했지만, 이 산꾼의 집 사람이 오산당의 열쇠를 가지고 관리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 산꾼의 집 사람은 자기나름의 멋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독특함을 자랑하는 장식물들이 집 안 구석구석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산꾼은 오산당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방 뒷벽, 그가 받은 편지 같은 것들을 붙여놓은 벽의 아래쪽에서 나는 오산당과 관계되는 복사물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한편의 번역된 시였다. 여기에 옮겨본다.

당호가 오산이라 도학이 보존된 곳
선생께서 가신 뒤에 누가 있어 논할건가?
천길이라 솟은 대석 품격높은 암혈이요
이 고장의 맑은 강물 생명수의 근원이 되시었네.
지난날 유학의 액 차마 어찌 논할손가?
끼친자취 되찾으니 어느덧 석양일세.
이 산을 어찌하면 무이곡과 같이 하여
도가 합한 천년세월 온 세상에 받들건가?

《석당유문》에서 <오산당유허>라는 시를 복사해 붙여놓은 것이었다. 마침 산꾼에게 《석당유문》이 있다고 해서 살펴보았다. 석당은 봉화 법전 사람인 강세원으로, 자가 응필이고, 또다른 호는 모재였다. 그는 고종 6년(1869년)에 낳아서 37세를 살았다. 그의 발길이 여기 미치는 것은 처음의 오산당이 불타버리고 아직 중건되기 전, 그러니까 1896년에서 1900년 사이였으리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오산당 중건에 동참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강세원의 시대만 하더라도 오산당이 상징하는 문화는 위태로움 속에서나마 살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산에서 가장 큰 절인 청량사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입석 가까이에는 간혹 관광버스가 서고, 열심히 신심높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내려놓는다.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청량사를 향해 가는 것이다.
오산당도 과거에는 그랬을 것이다. 영남 일원의 선비들이 책 읽고 자연과 벗하고 퇴계를 느끼기 위하여 발이 아프도록 이 길을 통하여 찾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량사를 찾는 발길은 그 때와 같을 터이지만, 오산당을 찾는 발길은 그 때와는 달리 거의 전무하다. 세월이 흐른 탓이고, 세상이 바뀐 탓이다.

김도화는 이미 유학이 권위가 무너지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런 위기감이 그로 하여금 이곳에 오산당을 중건하는 일을 서두르게 하는 것일 터이다. 아니, 오산당이 불타버린 것 자체가 유학의 위기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옥석이 다같이 불타 없어졌다. 김도화가 오산당의 소실을 안타까워 하며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김도화는 하늘이 어찌 사문(유학)의 사라짐을 바라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김도화에게 있어서 유학은 불타 없어져서는 안되는 옥이고, 여전히 하늘의 수호를 받는 학문이다. 김도화는 오산당을 새로 지음으로써 유학공부가 제대로 행해지고, 선비들이 많이 길러져서, 거대한 산처럼 높고, 거대한 산처럼 오래도록 유학이 역사 속에서 빛을 낼 수 있기를 바랬다.

그의 꿈은 꿈으로 그쳤다. 세월은 그의 꿈을 배반하고 다른 방향으로 치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꿈으로서도 오늘 우리들의 것일 수 없다. 우리들의 현대는 이미 유학적 선비들의 시대와는 엄청나게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 묻혀서 이익에만 목매다는 세상의 모습이 소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유와 평화를 찾아나설 필요는 과거 전통시대의 선비들에게보다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으로 주어져 있다. 주말만 되면 사람들은 전국의 산과 물을 찾아 대이동을 하는 것일게다. 등산은 이미 현대인이 휴가를 즐기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 있다. 산을 찾기, 산을 오르기의 외양만을 보면 우리들 현대인은 이황이나 이황의 후인들보다 더 철저하고, 더 적극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산에 갔다 올 뿐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오는 피로를 풀려고, 그저 단숨에 산에 올라가서 야호나 두어번 외치고 돌아올 뿐이다.

그런 우리의 산오르기는 이황의 그것과는 내용상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세상일로부터 잠시 피하는 산오르기이지만 이황의 경우에는 산의 정기를 가지고 오기 위한 산오르기인 탓이다. 그러니 그러한 산오르기는 돌아온 다음에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게 마련이라고 하겠다.

산놀이는 무슨 보탬이 있는 것인가?
농부와 같이 저절로 가을걷이가 있음이라.
돌아와 몸에 익은 서재에 앉아
향불 연기 번져나는 것을 고요히 바라보니
오히려 산사람의 힘든 일 견딜 수 있을 것만 같고
다행히 티끌 세상의 걱정에 휩쓸리지 않겠도다.

이황의 <집에 돌아와서>라는 시이다. 이황의 산 오르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에게 여전히 세상일로부터의 자유를 준다. 우리의 산 오르기는 산기슭을 벗어나면서 그만이다.
오산당! 그것은 자연을 배우고, 자연 속에서 배우고, 자연이 되고, 자연의 마음이 되고자 하였던 옛 선비들이 역사를 통해 그 문화와 그 정신을 계승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물이다. 3칸의 작은 배움마당. 무이정사의 3칸집과 도산서당의 3칸집을 취한 결과라고 한다. 집은 작지만 제대로 규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도산서당보다는 크고 넓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마루 끝 추녀 밑에는 청량정사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는 방이 하나씩 들여져 있다. 오른쪽 방의 앞쪽 마루 끝에는 지숙료, 곧 머물러 잠 자는 곳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왼쪽 방의 앞쪽 마루 끝에는 운서헌, 즉 구름이 깃든 곳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마루의 안쪽 천장 아래에는 오산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오산당의 마루방은 상당히 깊다. 지숙료의 마루쪽 밖으로는 청량산에 관계된 이황의 시 몇편이 새겨져 있다. 오산당과 이황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알려주는 물건이다. 오산당의 깊은 마루방에서는 시선은 사방으로 차단된다. 뒤편과 좌 우측은 자연이 차단을 하고, 오산당의 방과 벽이 중첩적으로 차단을 한다. 앞쪽은 열려 있지만, 좁은 마당 끝에 자리잡은 나직한 담에 의해 또 어느정도 차단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열려있는 것은 남쪽 방향의 담 위쪽 하늘 뿐이다. 그 사각의 각진 하늘을 통하여 우리의 시선은 비상을 거듭한다. 모든 것이 다 자리를 바꾸더라도 여전히 남는 하늘, 오산당의 하늘도 거기 그런 모습으로 열려있다. 그 하늘과 동행하면서 여전히 무심의 풍경을 펼쳐내고 있는 자연, 퇴계가 사랑하였던 청량산의 자연은 여전히 깊이 자기를 감추고 그 속에 들어온 우리를 감싸 안아준다.

퇴계가 이 청량산의 자연 속에서 배웠던 것은 무엇일까? 이 청량산의 자연이 슬며시 바람소리에 섞어서 들려주는 퇴계와 우리 선인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각은 질문 사이를 맴돌고,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깨달음만이 남는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살아가는 지혜야 바뀔 수 있는 것이겠는가? 유학이 이미 낡아빠진 외투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현대는 또 다른 사상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의 아름다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야 어디 나무랄 것이 있겠는가?

생강나무가 싹눈을 키우는 청량산의 봄기운을 가슴 깊이 호흡하며, 나는 퇴계 이황이 그러하였듯이, 이 깊은 자연의 기운 한자락을 저 아래 인간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있기를 소망하여 본다. 그래서 나 스스로 여유롭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내 속에 들어선 청량산의 자연을 느끼며 허허로워 질 수 있다면, 그 보다 행복한 일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2000년 2월의 청량산! 그것은 여전히 수직의 높이로 고개를 뻗고 멀리 어딘가를 내다보고 있다. 산 밖 길을 통하여 청량산 경계로 들어오고 있는 누군가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가? 청량산의 빳빳한 고갯짓이 예사롭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안동>

윤 천 근(안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