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적 삶의 모습 담고있는 청송민속박물관(글/권두현)
청송민속박물관에는 4계절에 대한 청송민들의 순환적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제 생산과 계절에 맞춰 생활을 꾸려온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의 주기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 월요병을 고치고 일요일은 쉬는 날로 간다. 과거 1년이라는 시간에서 느끼는 삶의 흐름을 일주일만에 조으고 풀어야 한다. 그만큼 우리네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박물관하면 막연한 기대감이 앞선다. 그날도 청송박물관 나들이는 나에게 흐뭇함을 안겨주었고 따스한 날씨까지 겹쳐 이러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한다. 사실 청송박물관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주왕산 인근을 갈 때마다 마음은 언제나 박물관에 한참을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몸은 따라 주지 않았다. 박물관이 개관되지 않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스쳐지나갈 수 밖에 없는 조급한 나의 삶의 경솔함이 박물관을 늘 그리움으로만 생각하게 되나 보다.
시간에 대한 배려 - 세시풍속
박물관 전시는 주제가 있다고 했다. 청송박물관의 전시주제는 세시풍속이다. 세시풍속은 말 그대로 시간에 대한 인간의 삶의 형식이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흘러가지만 이러한 자연의 시간을 인간은 순환적으로 인식하였나보다. 하루를 설정하고 한달을 잡고 1년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해가 돋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계절 변화에 대한 주기성을 파악하고 이러한 절대적 시간에 단위를 매김으로써 삶에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생활의 깊이를 파악하였던 것이다.
청송민속박물관에는 이러한 4계절에 대한 청송민들의 순환적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봄을 알리는 전시에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농구들이 꽉 들어차 있다. 꽃이 핌으로써 봄을 알리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는 농사의 기원과 관련된 의례와 농사꾼의 새로운 다짐으로 봄을 시작하는 옛어른들의 삶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여름생활 전시에서는 복날, 수릿날 등 성장과 관련된 전시물이 주류를 이룬다. 작렬하는 태양은 젊음을 상징한다. 지금도 해변가에 늘어선 인파에서 비키니의 아가씨와 구릿빛의 총각을 주로 비추고 주목하는 것은 여름이 가져다주는 잠재의식은 결국 젊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족을 단다면 옛날 아버지들은 여름 한철 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김매기를 하고, 쉬는 틈을 이용하여 씨름과, 커다란 돌을 들어올림으로써 젊음의 계절에 젊음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가을은 역시 수확의 계절이다. 풍요의 계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힘써 일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다. 흔히 감사하는 천신 표현 우리네 아버지들의 말에서 천신이란 언제나 성실하고 노력한 사람에 대한, 그 생명체에 대한 막연한 지칭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겨울은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가장 고마운 계절이자 희망의 계절이었다. 농사가 끝나고 쉴 수 있는 계절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희망적인 것은 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정 쉴 수 있는 자는 성실하게 일한 자 뿐이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삶에 진실하지 못한자는 쉴 수 없다. 쉬어도 쉰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그 고마움도 모른다. 그래서 겨울은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겨울 이야기는 끝이 없다. 봄여름가을에 생활의 터전에서 꿈을 가꾼다면 겨울은 마음껏 자신의 상상속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꾸어가는 계절이다. 추운 계절이니 만큼 이야기에 담긴 서정과 해학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그리워하게 되는 계절이자 동시에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계절이다. 겨울은 그래서 많은 민속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보다 50배는 바빠졌다네
윤달에 대한 민속도 표현되어 있다. 별스런 시간인 윤달은 그래서 묘하다. 정해진 순환의 반복을 거부한 윤달에 대하여 우리네 아버지들은 어떠한 인식을 하였을까? 문학작품에서도 25시, 제 8요일 등의 제목이 보인다. 그런 제목이 가져다주는 문학작품만큼 13월인 윤달은 흥미롭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사계절은 이렇게 계절과 생산을 주로 하여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럼 우리네 아버지의 아들의 삶은 어떤가!
사계절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생산과 관련된 계절 순환은 이제 일주일(7일)로 바뀌었다. 월요병을 고치고 일요일 쉬는 날로 간다. 이제 우리네는 과거 1년이라는 시간에서 느끼는 삶의 흐름을 일주일만에 조으고 풀어야 한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과거 4계절 순환을 약 60년만 하면 삶을 관조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3천번을 해야 한다. 수치적으로 계산해도 한 50배는 바빠진 것 같다. 맞는지 모르지만......
지역민의 관심으로 커가는 박물관
멀리서 청송박물관을 보았을 때는 참으로 크고 멋있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서야 바깥에서 보이는 건물이 그냥 벽만 있는 조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물관을 관리하는 분의 자료에 의하면 청송박물관은 220평의 건축연면적에 총평수 4천574평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전시자료는 672종이며 99년 6월에 개관한 신생박물관이라고 한다. 건립장소를 현재의 위치에 정한 것은 주왕산 길목이라 선정되었다고 하며, 현재 박물관은 전기기능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분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만이 박물관에 근무하여 사정이 매우 안타깝다고 거듭 얘기하는 그분의 말씀에서 청송박물관의 현재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언젠가는 청송박물관도 청송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이름난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또한 그렇게 되기를 정말 간절히 소망한다.
주왕산을 들른 사람이 중국사람 주왕이 피난와서 주왕산이 되었다는 말보다 청송을 정말 아끼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청송의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돌아가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우주로 날아가는 시대를 살지만 20평밖에 안되는 자신의 집이 정말 소중하듯이, 은하계를 주름잡는 시절이 와도 내 고향의 작은 집, 그곳에서 바라보는 작은 산, 그곳에 목욕하던 강가의 피라미들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그러한 삶이 여전히 소중하다고 믿는다.
멀뜩한 솟대와 국적없는 바위탑이 박물관을 처음 찾는 우리를 반겼는데 돌아서 나올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스산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청송박물관에 대한 마음은 청송읍에 와서 몇사람의 문화일꾼을 만나면서 삭 가셨다. 그들은 청송박물관에 대하여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을, 그리고 약간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은 청송박물관이 향후 훌륭한 문화교육장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화는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소외된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박물관도 그것이 외양적인 건물로만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화석일 뿐이다. 지역민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박물관이야말로 생명력이 있는 박물관이다. 국보가 몇 점 있다고 박물관으로서 자기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름없는 돌들과 나무들이 볼품없이 전시되어 있어도 그것이 삶의 때를 간직하고 있고 여전한 문화교육적 가치가 그 지역민들에 의해서 재창출될 때 생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청송박물관은 지역민들에 의하여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전시된 이름없는 농구, 다 부러진 생활용구들이지만 이제 청송지역민들의 손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안동>
권 두 현(경북문화산업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