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야지! 왜 해먹든 놈이 또 해먹어야 되노?(글/임재해)
'해먹을 것'과 먹고 싶은 반찬
"너 커서 뭘 해먹을래?"
"김치!"
"그런 것 말고…." `
'그럼 된장국, 감자, 라면…."
"아니, 그런 것 말고 뭘 해먹고 살겠느냐 말이야?"
"그럼 멸치!"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시인이 조카와 나눈 대화이다. 삼촌이 조카의 장래 희망을 알고 싶어 장차 커서 뭘 해먹고 살겠느냐 하고 물었더니 조카는 먹고 싶은 반찬 이름만 잔뜩 늘어놓았다. 동문서답 같은 이 대답이 우습지 않고 서글펐던 것은 요즘 그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까스나 햄버거와 같은 그럴듯한 먹을거리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덧 살 먹은 어린 조카의 먹거리 목록에 어려운 생활형편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어서 마음이 저렸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안동에서도 '뭘 해먹을래?' 하면 밥과 더불어 먹는 반찬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더 자세하게 뜯어보면 안동에서는 '해먹을 것'과 반찬은 일상적으로 밥상에 올리는 밑반찬과 특별한 반찬으로 구별된다. 반찬은 청어나 고등어와 같은 생선, 새우젓이나 멸치젓 등의 젓갈, 그리고 닭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은 육류 등을 말한다. 따라서 된장이나 김치, 고추장, 나물무침, 나물국 등은 '반찬'이 아니라 밑반찬으로서 다만 '해먹을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반찬 중에서도 비린내가 나는 어물과, 기름기가 도는 육류에 해당되는 고기반찬만 반찬이라고 한다. 따라서 어른 밥상이나 손님 밥상에는 이런 반찬을 꼬박꼬박 챙긴다. 해먹을 것만 차리는 것은 주부로서 도리가 아니다. 반찬 없는 상차림은 어른이나 손님 대접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싱거운 사람보다 맵짠 사람
안동의 식문화는 접빈객의 양반문화와 이 '반찬'문화의 전통에서 잘 드러난다. 반가에서는 손님 접대를 아주 중요하게 여겨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과객에게도 밥을 대접하고 묵어가도록 배려하였다. 따라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항상 해먹을 것이 아닌 '반찬'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동은 내륙지방이 아니기 때문에 반찬용 생선을 늘 갖추어 두기 어렵다.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동 간고등어'가 유명하다. 고등어를 잡은 즉시 배를 가르고 굵은 소금을 쳐서, 제법 오래 두고 먹어도 상하지 않게 한 것이다.
간고등어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서 젓갈과 명태도 한몫 한다. 명태는 고추장을 벌겋게 발라서 구워 올리거나 보푸라기를 만들어 반찬으로 쓴다. 간고등어와 젓갈은 소금기가 많아서 짜고, 구은 명태는 고추장을 발라두어 제법 맵다. 안동 음식이 맵고 짠것도 이러한 접빈객의 음식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된장을 끓여도 맵고 짜게 끓인다.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까닭에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맛에다 비유하고 있다. 웃기를 잘 하되 말만 앞서고 무슨 일이든 맛득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싱거운 사람'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무개는 사람이 싱거워서 못 쓰겠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살림살이를 절약하며 매사를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부인네를 일컬어 '아무개는 사람이 짭질받다'고 하여 칭찬하는가 하면, 무슨 일이든 빈틈없이 분명하게 잘 처리하는 사람을 일컬어 '사람이 맵짜다'고 한다. 맵고 짠 반찬문화의 전통이 사람됨을 가늠하는 판단의 준거가 된 셈이다.
'먹을 것'의 자리를 차지한 '해먹을 것'
'해먹을 것'이 밥을 먹을 때 부식으로 먹는 반찬을 뜻하기도 하지만, 끼니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자기가 먹고 살 생업을 뜻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가면서 "오늘 저녁에는 또 뭘 해먹을고!" 하면, 사실상 반찬보다 주식인 끼니 걱정을 하는 말이다. '밥을 해먹을까, 국수를 해먹을까' 하는 것은 사실 호사스러운 걱정이다. 양식이 부족해서 무엇을 해먹어야 양식을 절약해가며 식구들을 굶기지 않고 오랫동안 먹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어머니들은 그 처지가 한층 심각하다.
날마다 같은 음식 차림만 내놓을 수도 없으니 주부로서는 뭘 해먹어야 할지 끼니때마다 걱정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마땅히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는 데도 하루 세 때가 꼬박꼬박 닥쳐와서 오늘 점심이나 저녁은 또 무엇으로 끼니를 마련해야 할지 몰라 땟거리 걱정을 하는 주부는 더욱 절박하다. 지금은 그래도 경제 사정이 나아졌지만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뭘 해먹어야 좋을지 땟거리가 없어서 끼니때마다 애를 태운 어머니들이 많았다. 이때 해먹을 것은 한갓 반찬이 아니라 끼니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해먹을 것'은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할 양식이자 생명을 이어주는 밥줄이기도 하다.
"너는 커서 뭘 해먹고 살래?" 하는 것은 이러한 밥줄의 뜻으로 장래 희망하는 직업을 묻는 말이다. 사실 살아가는 데는 먹고사는 문제만큼 긴요한 것이 없다. 따라서 '해먹을 것'이란 말은 부식으로서 반찬에서부터 주식으로서 음식, 그리고 밥벌이 생업으로서 직업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크게 확장되어 있다. 해먹을 것이 한갓 반찬 정도로 인식된다면 그래도 낫다. 그러나 그것이 끼니를 잇는 주식으로 이동되고 다시 평생의 밥줄이 달린 생업으로 확대되면 문제는 심각하다. 온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가 온통 '해먹을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실직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며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것도 바로 '해먹을 것' 곧 생업을 잃은 탓이다.
생업과 반찬 사이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사실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 속에 있다. 살림살이에 따라 일상적으로 먹는 밥은 별로 차이가 없되 밥과 함께 해먹는 반찬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소금반찬에서 진수성찬에 이르기까지 '해먹을 것'의 차이는 생업으로서 '해먹을 것'에 의해 결정된다. 고관대작이나 부유층들은 요리집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류 요리집일수록 먹을 것 즉 '밥'은 잘 안 준다. 이른바 요리라고 하는 '해먹을 것'만 끊임없이 내오다가 뒤늦게 밥 대신 누릉밥만 반 공기 주고 만다. 요리라고 하는 '해먹을 것'이 어느덧 '먹을 것'이라고 하는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늠 자슥! 고것도 모리나?
관공서에서나 사기업에서나 무엇이든 '잘 해먹는' 사람일수록 주식으로서 '먹을 것'보다 부식으로서 '해먹을 것'을 잘 챙겨 먹는다. '잘 해먹는다'는 것은 곧 부수입을 잘 챙긴다는 뜻이자 도둑질을 잘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식보다 부식의 비중이 큰 것처럼 '잘 해먹는' 사람은 월급의 주수입보다 월급 외의 부수입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눈독 들이는 자리는 부수입이 많은 자리이다.
부식을 주식으로 삼는 이들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잘 해먹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먹고사는 삶의 수준이 '먹을 것'인 밥에서 드러나지 않고 '해먹을 것'인 반찬에서 드러나듯이, 주수입보다 부수입이 우리들의 경제적 삶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직업으로서 무엇을 '해먹고 사는가' 하는 데 따라 주수입은 물론 부수입의 층차도 결정된다. 그러므로 결국은 '해먹고 사는' 직업보다 그 직업을 통해 부수적으로 '해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니가 뭣이든지 다 해먹고 살아도 좋은데, 고것만은 절대로 해먹지 말아래이!"
"고것이라니요? 고것이 뭔데요?"
"이늠 자슥! 고것도 모리나? 국회의원 말이다, 국회의원!"
어느 택시 기사 아저씨가 대학을 나와서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아들을 보고 훈계하는 말이다. 무엇이든 다 해먹고 살아도 국회의원만은 해먹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의원 해먹다가는 사람 다 버린다는 뜻이다. 우리 시대에 국회의원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로 보이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이야기이다.
총선연대의 낙천운동을 지지하는 한 시민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 낙천명단 발표를 '쓰레기 분리수거 운동'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국회의원 대다수를 쓰레기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쓰레기 가운데에서 재활용할 것도 있지만 특히 낙천 명단에 든 인물은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이므로 반드시 정치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낙천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낙천자들은 그들 스스로 정치적 쓰레기임을 입증하고 있다. 낙천자들끼리 정당을 급조하여 반김대중과 반이회창을 기치로 내세우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표방하는 정치적 이념도 없고 구체적인 정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김대중과 이회창을 반대하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니 한 마디로 알쪼다. 당도 만들기 전에 이당 저당의 퇴물들끼리 모여 최고위원과 당대표 등을 제각기 한 자리씩 제 멋대로 갈라먹는가 하면, 나라 살림을 거덜내고 물러난 김영삼을 줄줄이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반김대중 반이회창 친김영삼 정치를 하겠다는 것일까.
바꿔 봐야 딴 놈이 또 해먹을낀데 뭐?
대통령 자리에 앉혀 주어도 제 몫을 하지 못한 채 아들과 함께 외환위기의 나락으로 추락한 김영삼을 찾아가 새삼 줄을 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김심을 얻어서 부산과 경남표를 얻어보자는 지역주의 속셈이다. 그들은 아예 영남정권을 재창출하자거나 영도다리에 빠져죽자고 하는 등 지역감정을 꼬드겨서 득표를 하겠다는 저의를 숨기지 않는다.
김영삼도 이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을 할 때 나라 경제를 말아먹은 자가 이제 퇴물들을 앞세워서 뭘 하겠다는 것일까. 정치 쓰레기의 분리 수거는 물러난 대통령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어떤 시민들은 '쓰레기 분리 수거'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다.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외가 낙천운동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작은 시비를 벌였다.
"바꿔 봐야 딴 놈이 또 해먹을낀데 뭐! 바꾸면 뭐하노?"
"그래도 바꿔야지! 왜 해먹든 놈이 또 해먹어야 되노?"
"해먹든 놈이 해먹으면 전에 해먹은 것이 있으니 좀 덜 해먹을 것 아인가요? 다른 사람이 새로 당선돼가주고 해먹기 시작하면 얼마나 더 해먹을로? "
"이 사람 뭔 소리 하노? 어차피 누가 해먹더라도 해먹을 바에야 골고루 해먹어야지 왜 해먹든 놈만 자꾸 해먹도록 놔둘게 뭐 있노?"
"그건 글타(그렇다)!"
두 노인이 합의는 어느 놈이든 해먹는 것은 마찬가지되 골고루 해먹도록 하는 것이 그래도 낫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면 도둑질도 특정인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바꾸어가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정현의 '바꿔! 바꿔!'가 인기를 끌 만하다.
이때 해먹는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남의 돈을 도둑질 해먹는다는 뜻이고 둘은 국회의원을 해먹는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을 해먹으면서 나랏돈을 도둑질 해먹되 어느 한 사람만 독점적으로 해먹을 것이 아니라 바꾸어 가면서 골고루 해먹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국회의원만 되면 남의 돈을 해먹는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바꾸는 것이 안 바꾸는 것보다 낫다는 데 선거의 의의를 두고 있다.
택시 기사가 "뭣이든 다 해먹되 고것만은 해먹지 마라!"고 할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들을 모두 나쁜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낙선운동이 명예시민 혁명으로 확산되며 힘을 얻고 있는 데는 이러한 예사 국민들의 비판적 현실인식이 뒷받침을 이루고 있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시인의 조카처럼 커서 김치나 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모를까, 미리부터 갈비만 해먹을 생각을 하면, 사실상 누구든 '해먹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직자들은 '해먹을 것'이 없어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데, 정치꾼들은 거듭 해먹으려고 이당저당 줄잡기를 하며 표를 모으고자 거리를 누빈다.
해먹는 일이 무섭긴 무섭다.
임 재 해(편집위원.안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