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전골목 신시장 장의사(글/이향미)
터줏대감 취재를 위해 신시장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그릇점을 찾아갔다. 터줏대감을 취재하면서 사랑방 정보통이 이번처럼 안맞은 적은 없었다. 신시장에만 그릇점이 10여군데는 되는데, 찾아간 곳마다 서로 안동에서 원조 그릇점은 "저 집"이라며 양보(?)를 하는 것이다.
다리품만 팔다 당도한 곳은 베전골목. 베전골목은 장의사(葬儀社)가 모여있는 곳이다. 이 골목을 지나면 왠지 심산스런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장례용품을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얼마전 '행복한 장의사'가 상영됐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장의사의 여파를 누를 수 있을 만한 기사를 만들어야 할텐데, 심적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소재의 물건을 뒤늦게 내놓는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까.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행복한 장의사'는 허구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영상매체를 보는 것이 사람들에겐 더 재미있을 수 있다.
반면에 필자는 취재를 통해 기사로써 말한다는 원칙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놓을 생각이다. 좀 재미없더라도 이점을 독자들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베전골목 1호 장의사 이이호씨
베전골목에서 발길이 닿은 곳은 '신시장 장의사'이다. 바깥에서 보자니 연세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들 두어분이 앉아 계신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의나 상복을 비롯해 장례와 관련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선반이 있고, 선반위에는 삼베와 장의용품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주인인 듯한 좌장이 분홍색 천에다 은분으로 뭔가를 정성들여 쓰고 있다. 숨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글씨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근조유인 안동권씨 지영(謹弔孺人 安東權氏 之靈)"이란 한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조기'를 적는데 이게 산사람으로 치자면 명함이라 할 수 있지요. 초상집에서는 항상 흰글씨를 쓰지요, 그래서 은분이 나오기 전에는 간장에 덧분을 개서 사용했어요."라고 설명하셨다. 좀전까지 붓을 들고 있던 이 사람은 이이호(70세)씨다. 이곳에서 장의일만 30년째 하고 있다. 얼마 후 몸빼 바지를 입고, 머리에 쪽을 진 할머니가 와서 조기를 찾아갔다. 아마도 누가 돌아가신 모양인데, 상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호상-초상집 일을 거드는 사람-이거나 돌아가신 분과는 별로 친분이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베전골목은 언제 생겼나?
본래 이이호씨는 삼베를 팔았다. 예천이 고향인 그는 농사일이 끝나면 베를 짜서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예천엔 농사철이 끝나고 한철 동안만 삼베장이 흥했는데, 안동에 와보니 철이 지나도 삼베장사가 잘 되는 것이었다. 안동포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동장날 난전에 삼베를 가져다놓고 팔다가 현재의 베전골목에 세를 얻게 됐다. 장의사는 70년대초, 정부에서 삼베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 장의업 허가를 내주자, 이이호씨는 본격적으로 예천에서 '신안 장의사'와 안동에 '신시장 장의사'를 해를 걸러 차렸다. 그 무렵, 삼베장사에게 세를 놓던 집주인들도 덩달아 장의사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베전골목이 형성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삼베이야기
미닫이 문을 연 두 번째 손님은 한 젊은 아낙네다. 그녀는 베갯닛으로 쓸 삼베를 사러왔다고 했다. 삼베를 놓고 늙은 좌장과 젊은 아낙이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결국 이이호씨가 가격에서 양보를 한다. 젊은 아낙이 가고나자 가게에 같이 있던 아들이 왜 그렇게 싸게 파냐는 듯 이이호씨에게 눈치를 준다. 이이호씨는 그 아낙은 예전에도 거래를 많이 한 사람이라 싸게 줘야 한다며 한수 위인 장사수완을 보여준다.
여기선 주로 안동포를 취급하고 있다. 이이호씨는 안동포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승에서 실컷 못입어 저승까지 입고 가는 옷이지요."라고.
삼베도 좋고 나쁜 게 있다고 한다. 삼베에는 6세니, 8세니 하는 세라는 단위를 쓴다. 올의 가늘고 굵음을 말하는데 날실 1세는 80올로, 같은 넓이에 한세를 더 넣을려면 그만큼 올이 고와야 한다. 즉, 세가 많을수록 삼베가 곱다.
요즘은 중국산 저마로 짠 베가 삼베로 둔갑해 시중에 돌기도 한다.
"중국산 베가 들어오니까 우리 농산물처럼 안동포도 싼 가격에 슬슬 밀리는 거 같아요"라며 이곳 장의사에서도 어쩔수 없이 중국산 베를 취급하고 있다며 이이호씨는 솔직히 밝혔다.
사그러드는 장의업
요즘은 장의업에도 자율화바람이 불어 베전골목 장의사와 같은 소매업은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런 추세는 농협이나 병원에서, 혹은 전문 장의업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부터다.
"배고픈 시절을 살아와서 그런지, 경제를 이만큼 살려놓은 박대통령 때가 좋았지. YS가 몽땅 자율화시켜놔서 엉망두데기가 됐어요."
독재정권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는 박정희 향수론이라지만, 뒤죽박죽이 된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전통적인 장례식은 시골마을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죽은 시체에 습과 염을 하는 일은 상상만해도 소름돋는 일이다. 그러나 이이호씨 말대로 장의업이란 직업도 특별할 게 없다. 죽음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떠안은 직업이라 마냥 신비감만을 느껴왔으나 장의사들에게는 그저 삼시 세끼 밥먹는 일과 같은 일상이자 생업이다.
"이제 반졉쳐서 서른다섯이에요. 아들 셋중에 한사람이 이일을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많으면 거길 안갈 수가 없으니, 누구 하나는 전수받아야지요."
인간이면 누구나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는 듯 삶의 행로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이지만 자신의 삶 전부였던 이 장의사를 아들대에까지 꼭 물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점점 전문 장의업체에 밀려 사그러드는 이 장의사가 그의 바램대로 될지... 한켠 무거운 마음이다.<안동>
이 향 미(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