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어머니다(글/김경동)
안동(安東) 내 고향은어머니다
잉태하고 탯줄 묻은 땅
젖 물리고 안아 길러 준 품
전쟁, 경제개발, 그리고 IMF
허황된 욕망 좇아 떠돌며 살다
의식(意識)에서 멀어진 존재
어느 순간 고달픈 일상에 지쳐
기대고 싶은 가슴 허전할 때
따사로이 다가오는 삶의 뿌리
안동은
우리들 마음의 어머니다
유년의 신라 고려 불교의 꽃 피우고
장년의 조선조 추로지향(鄒魯之鄕) 우뚝 서고
노쇠한 당국 시절 의병이며 독립운동 앞장서 일으키고
동방의 예의지국 꿋꿋한 선비 기풍
풍부한 문화유산 가득히 간직한 땅
안동은
우리 문화의 어머니다
조상님 산소에 성묘차 잠시 들른다든가, 또는 강연이나 회의 참석같은 공식 임무를 띠고 방문할 때면 으례히 일이 끝나기가 바쁘게 서둘러 발길을 돌리곤 하던 것과는 달리, 근년에는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지방문화재 탐방이라는 형식으로 친지, 동문들과 함께 고향 안동을 조용히 둘러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안동사범학교 병설중학교를 다니던 중 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난 지 실로 반 세기만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와 외국생활에 익숙해진 눈으로 바라본 안동은 솔직히 말해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온 나라가 경제성장이다, 공업화다 하며 정신없이 둔갑을 하는 판국에, 이렇다할 산업의 개발도 없이 초라한 시골 도읍의 무질서한 자태를 면치 못하는 외형이 언뜻 아프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한 요즘은 나의 고향 안동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우선 산천경개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곳들이 적지 않다. 비록 규모에서 국내외 명소들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관광지로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요소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을 풍부하게 지닌 고장이라는 점이다. 대개 안동은 유교문화의 본산(鄒魯之鄕)으로 알려져 있고, 또 그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 방면의 문화유산은 더욱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보존과 창조적 개발에 힘써야 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더불어, 불교 문화의 배경을 결코 무시하거나 가벼이 볼 수 없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불교유적이라면 주로 경주가 으뜸이라 하지만, 안동에도 신라와 고려의 불교유적 중 중요한 보물들이 다수 있음을 마땅히 강조해야 한다.
한가지 더 내세울 것이 있다. 안동 사람들을 보고 흔히 고지식하고 고집스럽다고들 한다. 그래서 답답할 수도 있지만, 오늘처럼 원칙이 무시당하고 의리도 망가지고, 가치도 무너지고, 방향감각도 잃어버린 시대에는 바로 그와 같은 기질이야말로 되살리고 장려해야 할 시대적 정신의 한줄기라 할 만하다. 그것은 새로 태어나는 고려조를 지키고자 삼태사를 중심으로 한데 뭉쳐 일어섰던 안동인의 의기, 대대로 이어오는 꼿꼿한 선비정신과 의병 및 독립운동가들의 기개가 물려 준 유산인 것이다.
안동은 그저 우리들 지친 육신과 메마른 영혼의 고향만이 아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묵묵히 이겨내고 민족의 역량을 숭고한 수준으로 꽃피우는 기상과 문화를 물려 준 어머니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이처럼 값진 유산을 지닌 고장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국문화의 또 하나의 본산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할 구상을 속히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힘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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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동 :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미시간대 석사, 코넬대 박사과정을 거쳐 노스캐럴라이나대 교수, 서울대 기획실장, 한국사회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정보사회학회 이사장, 미국 듀크대 겸임교수로 있다. 문단활동은 1982년 {세계문학}, 1983년 {한국문학}에 시 발표, 1987년 시집 {너무 순한 아이} 출간하고, '계성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