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좋은 건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젊은 어물장수 김호준씨(글/김선주)해가 바뀌고 어느덧 싱그러운 1월의 햇살도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금방 돌아서니 1월의 끝자락이다. 아침나절에는 칼바람이 매섭게 분다. 삼한사온이라서 그런가, 포근한 날씨가 연 이틀 계속 되는 것 같더니 또 한파가 찾아왔나 보다. 곧 설 대목이 시작이라 장터에도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추위가 그나마 수그러들었다. 설 대목을 맞아서 사랑방에서도 대목장을 찾아 나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앗간 광경이 제일 먼저 눈앞에 펼쳐진다. 장터에는 깨 볶는 냄새가 그득하다. 깨 볶느라 한창 분주한 아저씨, 설 장터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니 흔쾌히 허락한다.
이제 곧 민족 대명절인 설이 다가온다. 대목을 맞아서 상인들의 표정이 밝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신시장 어물전을 찾았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다고들 하니, 시장상인들도 더욱 추워 보였다. 어물전에서 가오리며 문어를 파는 아주머니는 요즘 경기가 어떠냐는 물음에,
“장사가 너무 안돼. 오늘 지금까지 만원 팔았어.”
한숨을 쉬면서, 목도리를 머리까지 둘둘 말고 있다. 장사가 통 안 되니 날씨가 더 춥다 한다. 나는 옛 기억에 어물전하면 할머니들의 벌겋게 언 손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머니의 시려 보이는 손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옛날에는 어물전이 여기 몇 군데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사방에 여러 군데라, 또 불경기고 해서 장사가 안돼. 예전보다 못하지”
고등어에 소금치고 있는 아저씨, 한마디 거든다. 어물전 장사 시작한지도 45년이 지났단다. 45년이라는 세월을 듣고 보니 아저씨의 얼굴에서, 소금치는 손에서 장터에서의 연륜이 느껴지는 듯했다.역시 대목은 대목인가보다. 제수음식을 사러 온 할아버지 아주머니 몇몇이서 고등어며 조기며 값을 물어본다. 시장은 사람들 소리로 시끄러운 것이 당연한 처사인데 요즘에는 그렇지가 못한가보다. 상인들은 그나마 대목이니 장사가 좀 되기를 바래보는 형편이다.
어물전에는 가오리찜, 문어, 상어, 고등어, 조기 등등 놓여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못 보던 가오리찜이 신기해서 한참을 보고 있으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반찬해도 맛있다며 사가지고 가란다.
예쁜이름에 끌린 ‘공주네’ 어물가게
어물전을 기웃거리다가 어물전에 걸맞지 않은 간판에 끌려 들어선 가게에서 만난 사람이 김호준(37) 씨다. 제수용 어물 주문으로 한창 바쁜 전화를 끝냈다는 그는
“이 자리가 원래는 장모님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처갓집에 딸이 많아서 ‘공주네’라고 지은 거예요. 딸만 셋이니까 많죠. 딸 셋에 아들하나면 많은 건 아닌데… 장모님이 이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하셨는데, 7년 전부터 안하시고 그때부터 제가 맡아서 해요.”
이 일이 7년째인 그는 의성이 고향인데 안동으로 장가를 들었다. 딸만 셋인 집에 장가온 호준 씨는 올해 일곱 살 된 아들과 다섯 살 된 딸 남매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장모님 사업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런 그가
“저는 맏딸이랑 결혼을 했는데 뭐 꼭 대를 물려받은 건 아니고요, 장모님이 장사를 안 하시게 되니까 제가 장사에 뜻을 두고 가게를 새로 얻어서 들어오게 된 거예요.”
호준 씨는 이 장사하기 전에 마트 유통, 건설쪽 등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살다보니 장사쪽으로 마음이 돌아서서 시작을 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시작하고 얼마 안 되서 IMF가 터지고는 애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먹고 사는 게 빠듯한 형편이었을 것이다.
“경기가 아주 안 좋죠, 이제 대목이 시작돼서 되긴 되는데, 경기 자체가 너무 안 좋아요. 정확히 안동에 온 게 지금 한 7년 정도 됐거든요. 7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안 좋아요. 아침에는 뭐 옛날 같으면 새벽에 나오고 했는데, 요즘에는 손님들도 일찍 안 나와요. 그래서 8시나 돼서 나오죠 뭐.”
“저녁 7시 이후까지 있다 해도 시장 안에 다니는 사람을 못보니까요. 이런 추운데 서서 있으면서 멍하니 고기만 보고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없으니 더 안하게 되는거예요. 우리도 일찍 집에 가 쉬는 게 낫죠 뭐.”
거의 혼자 해도 예전만큼 바쁘지가 않다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부인이 와서 좀 거들어 준다고. 그때만 부인을 부른다는 호준 씨, 시장이 조용하긴 조용하단다.
시장 사람들 만나면 활력이 넘쳐요
낮동안 날씨가 많이 풀렸나보다. 대목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제법 훈기가 돈다. 제수음식으로 고등어, 조기, 상어고기 등을 파는 공주네에도 할아버지, 아주머니 몇 분이 다녀간다.
“아무래도 요즘은 고등어가 많이 나가요. 제수용으로 고등어 쓰는 데는 전국에서 안동 밖에 없어요. 제사상을 보는 게 기본으로 고등어, 조기, 돔배기(방어나 상어 토막고기)… 돔배기 같은거는 다른 지역에서는 별론데, 안동에서 소비가 제일 많이 되구요. 영천, 경주, 대구쪽으로 가도 돔배기를 꼬지로 해서 나가요.”
고기를 삶고 꼬지까지 다 해서 만들어주는 것이 원래 안동에서는 지금처럼 활성화가 안됐단다. 호준 씨는 고향이 안동이 아니다보니 안동에서 장사를 하기가 힘에 부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기획하여야만 했었다고. 그래서 호준 씨로 하여금 꼬지도 끼우고 삶고 하는 것이 활성화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엔 사람들이 전화로 주문을 많이 하세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직접 물건을 보고 직접 봉지에 넣어서 그런 식이였는데, 이제는 전화상으로 다해요. 그게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통마리 통덩어리 이렇게 팔았는데, 지금은 문화가 바뀌어서 꼬지도 다 만들어주는 관습이 되어 버렸어요. 집에서 안 씻고 바로 쪄서 제사상에 올릴 정도로까지 만들어주고 이제는 다 익혀서 위에 깨도 뿌려가지고 주기도 해요. 이렇게 한 지는 4년 정도 됐어요. 이제 대목장이라, 전화가 자주 와요. 보통 일찍 주문을 하거든요. 언제쯤 찾으러 갈테니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해요. 그러니 손님들은 옛날보다 많이 편해지고 상인들은 힘들어졌어요. 허허허”
그래도 시장 사람들 만나면 활력이 넘친다는 호준 씨다. 집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시면 웃는 인상으로 반기고 그러니, 시장사람들이 제일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제일 밝게 산단다.
“경기만 좋으면 장사가 재미있지요. 시장 다니는 사람들, 상인들끼리 부대끼는 게 사람 사는 것 같잖아요. 또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고 경쟁하고 그러는 게 말 그대로 사람 사는 건데 말이에요. 있다보면, 시장 사람들끼리 모여서 오후쯤이 되면 술도 한잔 먹고요. 그런 게 사람 사는 거지요.”
요즘 큰 마트가 생겨서 그 때문에 경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타격이 있긴 있는데요.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큰 마트 쪽 물건보다는 시장에 것이 신경을 좀 더 많이 쓰죠. 그 사람들은 받아오는 것이지만, 시장은 내가 팔아서 내 손님을 관리하는 거니까 물건도 좋은 거 가져오려고 신경을 많이 써요. 제사 때 되고 이러면 아직까지는 사람들도 시장을 많이 찾아요. 마트 쪽은 에누리도 없고, 시장문화 자체가 에누리하는 문화잖아요. 좀 깎아서 흥정하고 싸게 해 달래고…”
재래시장만의 흥정의 맛이 시장을 지켜가고 있는 비결인가 싶다.
젊어서 좋은건 젊으니까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아주머니 두 분이서 마침 공주네 앞을 지나갔다. 호준 씨를 미쳐 못보고 지나갔는지, 호준 씨가 냉큼,
“아줌마 총각도 좀 보고 다녀요.”
한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인사도 하고, 말도 건네는 게 좋은 것 같다는 호준씨.
“젊어서 좋은 건 젊으니까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아직 젊으니까요, 혼자해도 힘에 부치고
그런 건 없어요. 기운이 나죠. 다만, 명절이 아니면 거의 시장도 쉰다는 정도까지 조용할 때가 많아요. 바쁜 날은 좀 바쁘고 거의 조용하지요.”
공주네 어물집에는 단골손님도 적잖이 있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좀 전에 만나 뵈었던 녹전 어르신이 나머지 장을 다 보고 들렀다.
“자식 같아요. 장에 나오면 커피도 한잔씩 주고 좋지. 허허허.”
안동시장에서는 거의 단골장사라는 김호준 씨, 그동안 7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단골손님도 꽤 확보를 해 놓았나보다.
대부분 시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신데, 유독 젊은 사람이 장사를 하면 좋은 점도 있을터,
“있죠, 자식 같다고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계세요. 또 나이든 분들은 말 한마디 부드럽고 다정하게 하는 분들이 별로 없잖아요. 안동 말투가 툭툭하고 그런 스타일이니까요. 친절하다고, 그리고 젊은 사람이 이런 거 한다고 많이 팔아주세요.”
젊다는 건 아무래도 호준 씨 말마따나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장사는 계속 할거라는 호준 씨, 앞으로 경기가 어서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