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에 사랑이 숨어 있었다-『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패리 애미니·리처드 래넌 지음/ 김한영 옮김-
『사랑을 위한 과학』을 만나기까지
누구든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나 체험에 대해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때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사랑을 위한 과학』이 그런 것 중 하나다.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사람의 마음, 감정, 사랑 따위에 골몰하게 된 건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낳을 때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내 평생 가장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또한 아이가 날 향해 보내는 온갖 신호에 응하면서 말 할 수 없는 충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몸 속에서의 태동과 태어난 직후 젖을 빨던 그 느낌은 지금 아이에게 보내는 애정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아기가 내 눈에 눈을 또렷이 맞추고 처음으로 옹알이를 할 때 그 소통의 감격은 13년 째 우리 모자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일이 두렵기까지 했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야만성-화를 벌컥 내거나 매를 드는 일-이 마구 터져 나와 아이를 공포에 떨게 할 때는 끝없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본능적인 모성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면 엄마에게 행복한 유년시절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없는 집에서 딸애 대학 교육을 시키느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받쳤던 부모님의 삶은 오랜 세월 날 짓눌러 왔다. 해바라기 하듯 따뜻함을 갈구하던 꼬마 여자애가 부모의 부정적인 모습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재연하는 것을 자각하고는 덫에 걸린 듯 막막하기만 했다. 평온한 듯하던 내 삶의 이면에선 눌려 있던 온갖 감정들이 들끓기 시작했고 아이는 여리고 조그마한 몸으로 민감한 폭탄 껍데기를 쉬지 않고 두드려댔다. 나는 서둘러 내 안에 새겨진 인생의 부호들을 해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깜깜한 우주에 홀로 버려진 듯 아득하고 별빛 하나 찾을 수 없었지만 내 살점 같은 아이들에게 암흑을 물려줄 순 없었기에 걷고 또 걸었다. 이 책은 그러한 혼돈의 세월 끝에 만난 귀한 벗이다.
2,100년 동안의 시간이 주는 지혜
이 책은 사랑하고 사랑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세 사람의 임상의가 쓴 것이다. 그들은 21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서구 최초의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를 만나 감정은 뇌에서 방출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나아가 그들은 생리학, 문학, 신경발달 이론, 진화 이론, 정신 약리학, 신생아학, 실험심리학, 컴퓨터 과학 따위의 분야들을 누비며 사랑의 기초원리들을 꿰뚫는다. 그리고 이것을 몇 년 동안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자신들이 겪는 정서상의 문제들에 적용하여 검토해 보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묶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과학으로 인간의 사랑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려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인간의 감정은 대뇌 변연계라고 하는 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대뇌 변연계는 포유동물에만 있는 뇌이다. 그들은 이 뇌에 손상을 입은 동물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며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실험을 통해 역으로 서로 돌보고 관계를 맺는 능력이 이 뇌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약간의 저항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를 대뇌 변연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자가 진단을 했다. 따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만남을 통해 대뇌 변연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다. 지금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대뇌 변연계 유인자는 달라질 것이며 그에 따라 내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또한 내 삶이 변화함에 따라 아이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
인류의 희망- 뇌 속에 숨어 있는 사랑
이 책을 통하여 오랜 세월 인류가 파충류뇌(영토 방어, 공격과 구애, 짝짓기 따위의 기초적인 상호 작용을 담당하는 뇌)의 활동에 머물렀고, 신피질(말하기, 쓰기, 계획, 추론 등 대개 인식이라고 알려진 추상화를 담당하는 뇌)을 기형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 변연계는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에 의해 통제되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술의 위대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하위에 자리한 채 사치품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소유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뉴욕 사태는 온갖 과학 기술과 지식을 동원하여 만든 첨단 방위체계로도 인간의 폭발적인 감정은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이 사건은 아무리 높이 쌓아올린 황금탑도 주변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마음이 세상을 움직여 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나는 대뇌 변연계가 잘 발달되어 즐겁게 서로 돌보며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신종 인류에게 지구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확신한다. 세 가지 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갈 때 인류의 문명은 새롭게 건설되리란 희망을 갖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주목하고, 관계로부터 힘을 이끌어내며, 그 지혜와 능력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들의 간곡한 바람을 받아들인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모든 사람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은 채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나날이 기쁘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들의 희망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렇다. 역시 깊은 감동은 글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