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 관광, ′묻지마′ 관광으로 갈 것인가?(글/임재해).jpg)
관광지 주민은 관광객을 위한 접대부인가
안동이 유교문화의 중심지로 새삼 주목되면서 관광개발의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수많은 유교문화 자원을 이용하여 국제적인 유교문화 관광지로 개발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시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관광과 관련해서 생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공감대를 넘어 열렬하다. 마치 관광만이 살길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경향에 편승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문화적인 시각에서 사려 깊은 검토없이 눈앞의 경제적 이익만 염두에 두고 관광개발론을 펴고 있어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유교문화의 전통이 문화관광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들 문화유산들을 어떻게 문화관광으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데 대한 생각은 좀더 신중한 논의와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최근 안동에서는 관련 전공 교수를 모셔다가 이 문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한 일이 있다. 이른바 '전통문화자원의 국제관광상품화 전략'이라는 제목의 발표 내용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선 안동의 문화적 전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발표자가 주로 거주하는 강원지역의 관광 대책을 그대로 옮겨와 논의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교문화 자원에 대한 문화관광 전략으로서 독자적인 대안 마련 없이 어디서나 되뇌이는 상투적인 논의를 되풀이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어느 지역의 사람이라도 쉽게 찾아와서 보고, 놀고, 먹고, 쉬고, 즐길 수 있는 수용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 이와 같은 주장이 세 차례나 반복되고 있다. 이 주장은 다음 내용과 맞물리면서 상승 작용을 한다.
"안동지역의 관광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관광마인드, 국제화마인드를 갖고 안동지역으로 오는 관광객을 손님으로 맞아들여 극진히 대접하고 잘 놀고 쉬었다 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협력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른바 유교문화의 전통으로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태도 가운데 하나인 정중한 손님맞이와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접빈객의 전통을 고려한 주객의 인격적인 만남이나 친절한 손님맞이 예절의 실천과 상당히 어긋나 있다. 모든 안동의 구성요소들 곧 안동시민 모두는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었다 가도록 해야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경제적 이윤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은 관광지의 향락산업 경영주가 쉬어갈 손님을 끌어들이는 전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더러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향유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역의 모든 성원들이 관광객을 맞이하여 잘 먹고 잘 보고 잘 놀다 가도록 몸과 마음을 바쳐 극진히 대접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유교문화의 전통도 그러한 접대를 위한 한갓 수단일 뿐이다. 지역을 찾아오는 관광객을 잘 대접하여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잘 즐기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유교문화권의 전통문화자원을 관광상품화 하는 전략이라면, 그것은 지역의 전통문화 자원과 상관없이 유원지 중심의 향락산업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명 관광지였던 온천지역이 모두 향락산업의 온상지가 되어버린 것도 바로 이러한 관광전략 탓이다. 더 거칠게 말하면 관광발전을 위해서 관광지의 모든 사람들은 관광객을 위한 접대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관광개발이라면 이러한 관광개발을 왜 해야 하고 관광지로 발전하는 것이 지역주민의 삶을 질적으로 수준 높게 하는 일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동지역이 문화적 관심을 모으고 문화관광 대상지로 개발 가능한 것은 안동이 한국다운 문화적 전통을 가장 잘 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 가운데 하나가 유교문화이다. 유교문화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며 지역문화의 전통을 긍지 높게 유지하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여 주머니를 불릴까 하는 상업주의적 발상 탓에 유교문화의 전통이 위협받게 되었다. '돈 나올 모퉁이가 죽을 모퉁이' 라고 하더니 관광수입 때문에 유교문화가 숨죽게 될 판국이다.
* 문화관광이 문화강간이 될 수도 있다
유교문화 관광지로 발전하려면 우선 지역사회가 유교문화의 전통을 가장 잘 갈무리하는 것은 물로 새로운 유교문화를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므로 유교문화권의 관광전략을 모색하면서 유교문화의 정신을 이해하고 유교문화의 가치를 포착하며 유교문화의 전통을 익히려는 문화관광의 알맹이는 제쳐두고, 저급한 대중 취향의 편의적 유인책을 상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대단한 관광전략인 줄 착각하고 있다. 유교문화의 본질과 상관없이 편의시설과 즐길 거리를 두루 만들어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도록 하는 알량한 관광수입 늘리기 수법에 매몰되어 있어서는 문화관광은커녕 오히려 '묻지마 관광' 수준으로 관광문화를 퇴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묻지마 관광'은 누구와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 잘 먹고 잘 놀며 잘 보고 잘 즐기는 것이 이 관광의 최대 목적이다. 따라서 문화는커녕 도덕성조차 문제삼지 않는다. 관광 일반이 탈선과 행락의 온상이 되고 있고, 관광지가 퇴폐적 문화를 양산하게 된 현실도 이러한 천박한 관광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묻지마 관광'은 특히 퇴폐적 쾌락 추구에 몰입한다. 세간의 도덕적 지탄을 넘어 법적 제재를 받을 정도로 윤리적 타락을 조장하는 퇴폐산업이다. 이들 관광객은 온천으로 가든, 산으로 가든, 절로 가든, 명승지로 가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차피 관광의 핑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서 무엇을 보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잘 보고 잘 먹고 잘 놀면 그만이다. 이처럼 문화를 관광상품화 한다는 구실로 사실은 문화를 관광거리로 이용할 뿐 문화 자체를 관광의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면 문화관광이라 할 수 없다.
관광객이 되어 세계적인 문화유적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해 문화지식을 확충하며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관광지의 주민이 되어 세계 각지로부터 오는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되는 가운데 그들을 접대하는 일을 하며 그 수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으례 관광지에서 구경거리가 되며 살기보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관광객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문화관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나 관광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이 없으면, 문화관광이 때로는 문화유적지 주민의 긍지 높은 삶을 짓밟고 역사적인 문화유산들을 한갓 상업적인 구경거리 정도로 취급하는 문화강간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관광문화의 발전은 모색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문화관광이 문화강간으로 둔갑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 적어도 하회마을은 닮지 말자.
문화관광이 문화적 정조를 짓밟는 보기는 하회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근천년을 지켜온 하회마을의 문화적 전통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하회마을이라는 껍데기는 있되 그 알맹이는 사라졌다는 말이다. 하회마을이 전통마을로서 본디 삶의 양식이나 살림살이를 잘 지켜가기보다는 대부분 민박집과 밥집으로 바꾸어 손님 받기에 바쁘다. 한 마디로 접빈객의 전통은 접객업소의 손님 받기로 대체되었고, 농사를 지으며 글을 읽던 반촌문화의 전통이 숙박업을 하며 기념품을 파는 상가문화로 변질되었다. 아예 상업적으로 만든 용인민속촌보다 하회마을의 상업주의가 더 득세하면서 문화적 기능은커녕 온통 상업적 기능으로 바뀌고 말았다. 마을사람들끼리 장삿속 때문에 아등바등하며 갈등하는 것도 전에 없던 모습이다. 무엇이 유서 깊은 하회마을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가. 상업주의적 관광문화 탓이다.
하회마을의 이러한 변질을 지켜보고 있는 경주 양동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우리는 하회마을을 닮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회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급격하게 변질되어가는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동사람인들 왜 하회사람들처럼 관광객을 상대로 돈 버는 방법을 모를까. 관광객 상대하다가 마을의 문화적 생명력을 숨죽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회를 통한 반성적 성찰 덕분에 양동은 아직도 문화적 정조를 잘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와서 유교문화에 대한 현장 교육 장소로 이용할 정도로 양동마을은 훼손되지 않은 전통마을로 인정받고 있다. 마을문화의 알맹이가 아직 단단하다. 상업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용하게 버텨온 덕분이다. 우선 눈앞의 황금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꿰뚫어 알고 있는 셈이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관광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사실만 알았지, 관광산업 잘못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하회마을을 아끼고 문화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하회마을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긴다. 누가 뭐라 그래도 마을이란 사람 사는 동네이다. 그런데 하회에는 하회사람들이 없다. 하회마을은 처음부터 관광객에게 보여주고자 인공적으로 만든 민속촌과 다르다. 하회마을이 하회마을다우려면 하회마을 사람들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하회마을에는 하회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온통 관광객만 들끓고 있다. 하회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관광객을 접대하는 민박집 주인이거나 밥집에 밥 파는 사람들뿐이다. 관광객들은 자기들처럼 객지에서 온 관광객들끼리 서로 부대끼다가 돌아간다. 그러니 실망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유교문화를 배워갈 수 있겠는가. 오히려 객지사람들이 하회마을 사람들에게 도시문화를 퍼뜨리고 간다. 관광객이 하회마을 문화를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하회마을 사람들이 관광객의 행태를 배우는 판이다. 마을이 민속촌이나 상가처럼 바뀌는 것이 바로 관광객이 미친 영향이다. 이처럼 관광객이 문화유적지를 훼손하고도 문화관광이라 할 수 있으며 관광문화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잘 놀고 잘 먹고 잘 보고 잘 쉬며 즐기다가 가도록 관광객을 배려해야 하는가.
* 문화관광의 관광문화는 달라야 한다.
하회마을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물론,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문화관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도 관광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회마을의 문화적 상황에 적절한 관광문화를 새롭게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수준의 관광문화가 지속되는 한 하회마을뿐 아니라 어느 문화관광지도 문화적 전통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고 먹고 놀고 즐기는 따위의 천박한 유흥관광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체험을 통한 문화지식의 확충과 삶의 성숙을 위한 절제되고 체계적인 고품질의 관광문화를 고려한다면,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를 좋은 문화관광의 보기로 삼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지에 가면 순교한 성인들의 일생을 현지의 자취를 통해서 둘러보는 데 머물지 않는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성당이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어서 누구든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성체조배와 기도를 하고, 성지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반추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계기를 확보한다. 이른바 보고 먹고 놀고 즐기는 것이 관광이라고 하는 경우에, 기독교의 문화유적지인 성지 순례는 관광 차원에서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즐김의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교자의 신앙생활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지에서 마음껏 보고 먹고 놀고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고통받다 순교한 성인의 삶을 묵상하고 체험하는 것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 그러므로 성지는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성지로서 고유한 문화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문화 관광은 이와 같은 성인들의 유적지 관광을 말하며, 바람직한 성지 관광문화는 곧 성지순례문화인 것이다. 관광업자들은 순례와 관광은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코헨이 지적한 것처럼 "여행자에 대한 영적인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진지한 관광형태는 열광적인 순례형태와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성지가 아닌 왕궁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캄보디아 왕궁의 일부인 실버 파고다는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되, 궁내에서는 사진촬영에 일정한 제약을 둘 뿐 아니라 소란스럽지 않도록 통제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신발과 모자를 다 벗도록 되어 있다. 일본 교오토의 어소(御所)는 이러한 통제가 더욱 심하다. 구체적인 신분 확인의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러한 제약과 통제가 오히려 왕궁의 근엄함을 실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지의 순례문화나 고궁의 관람문화를 통해서 우리는 문화관광의 모델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 문화적 통제가 곧 문화체험이다.
예사 사람들이 성지에 가서 제멋대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기다가 기념촬영하고 돌아오는 것을 두고 기독교문화 유적지를 대상으로 한 문화관광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문화에 대한 일정한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 성지뿐만 아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교나 불교도들도 성지에 가면 일정한 종교의식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신앙생활의 성숙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히려 먹는 것이나 옷차림을 절제하고, 놀고 즐기는 일조차 삼갈 뿐 아니라, 때로는 고행에 해당되는 순례행사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이처럼 각 종교마다 일정한 수준의 순례문화 곧 성지관광문화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다. 종교적 성지들은 이러한 수준 높은 종교인들의 순례가 많을수록 성지로서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은 소비적인 관광문화가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문화유적지를 훼손하는 것과 달리 문화창조 효과를 내는 수준 높은 관광문화이다. 유교문화 유적지라 할 수 있는 안동의 반촌마을이나 서원, 정자 등도 이처럼 유교문화의 성지로 인식되고 그에 따른 관광문화가 창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관광객들은 현지에서 유교문화 전문가로부터 문화재 보호를 위한 통제는 물론 유교문화에 입각한 행신범절을 따라 실천하는 가운데 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관광객이라기보다 유교문화 순례자들이다. 순례자들은 문화적인 통제가 오히려 가장 훌륭한 문화체험의 하나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유교문화 관광개발은 안동의 주민들을 유교문화 지킴이이자 선비정신의 계승자로 거듭나게 하는 한편, 관광객들을 어느 정도 유교문화 순례자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관광개발을 인문학으로 보지 않고 경영학으로 보는 한 이러한 방향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영학은 문화체험을 통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상품을 통한 삶의 양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