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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글/윤천근)

"현대속으로 너무 표류해있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삼아서 우리 속으로 돌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종가를 통해서 우리로 돌아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내가 3년여 동안의 종가탐방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종가의 가치의 발견이 아니라, 우리의 발견이었으며, 그 우리를 현대속에 당당하게 자리잡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의 발견이었다"

3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격월간에 3년이면 총 18회이고, 그 전에 한 회가 또 있었으니 총 19회, 19집의 종가를 취급한 셈이다. 그것은 안동지방에 산재하고 있는 연륜이 오랜 종가들을 전제로 한다면 많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안동지방 종가의 현상을 알기에는 충분한 규모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사실 전통사상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있었지만, 전통적인 삶살이의 실제적 양상과는 별로 친근하지 못하였던 사람이다. 나는 몰락한 가문 출신이 며, 전통적 삶을 지키기에는 현대가 너무 빠르게, 너무 깊숙히 영향을 끼친 지역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전통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안동의 종가 탐방은 나에게 있어서는 전통적 삶살이의 구체적 양상과 실제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최초의 사례였다고 하겠다. <안동의 종가를 찾아서>를 위해 여러 종가들을 방문하면서 나는 어떤 사상가의 문집을 통해서 익힌 것보다 더 많은 전통적 정신과 만날 수 있었고, 전통문화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이 취재를 맡을 수 있었다는 점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종가를 취재하면서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화두는 전통과 현대였다. 전통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고, 현대는 우리에게 있어서 또 무엇인가? 이 점은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종가는 그 주제가 마주치는 중심에 위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가의 문화는 조선후기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고, 조선후기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최후단계에 속하는 시기이다. 조선 후기 이후 우리는 단절의 시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과 현대는 조선후기를 관절 점으로 삼아 대립적 양상을 드러낸다.

현대가 전통과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왔으므로, 종가는 오늘 우리들과는 친근하지 못하다. 우리의 전통은 현대의 격류에 휩쓸려 다투어 우리 주변을 떠나갔다. 1세기를 넘는 현대의 격류를 통과해서 아직도 우리 주변에 살아남아 있는 전통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거의 없다. 그 중 하나, 그러니까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전통 중 하나로 우리는 종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종가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만신창이의 몰골을 하고 있다. 훈기없는 집 한채만으로 덩그란히 남아있는 종가, 현대생활과의 마찰을 견뎌내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종손,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채 후손들의 봉사를 요구하고 있는 묘소들, 그런 것들이 오늘 우리 주변에 들어와 있는 종가의 모습이다.

전통시대에는 절대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권능을 갖추고 있었으나 현대 속에서는 문밖에 물러서 있거나 외면되고 있는 것 중 가 장 대표적인 것이 종가라 한다면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현대의 표류하는 삶을 우리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하여 붙잡아 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수행해 내야만 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할 때, 종가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점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우리가 종가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종가의 시대는 여러 가지 근원적 약점을 안고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설령 종가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라고 하는 것의 정체성을 회복할 필요는 있고, 우리라는 것을 자긍심의 영토 위에 반듯하게 세워놓을 필요는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올바르게 현대와 만날 수 있는 자산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현대를 바르게 세워놓는 것이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바르게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서지 않고서는 현대를 만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어디에서도 마련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속으로 너무 멀리 표류해 있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삼아서 우리 속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 여전히 남아있는 종가, 만신창이의 몰골을 하고 있는 종가는 그 계기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종가를 통해서 전통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종가를 통해서 우리로 돌아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 다. 실제로 내가 3년여 동안의 종가탐방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종가의 가치의 발견이 아니라, 우리의 발견이었으며, 그 우리를 현대 속에 당당하게 자리잡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의 발견이었다. 그런 점에서 종가탐방은 나에게 많은 빛을 던져 주었는데, 독자들에게는 어떠하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3년여에 걸친 기획취재를 마치며, 나는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나의 취재에 응해준 많은 사람들과 이 글을 읽어 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