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이 만나 꽃으로 피어난 땅, 하회 2(글/이완규)
* 설화(說話)
설화는 이야기다. 숱한 이야기 가운데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가졌거나 지금도 가지고 있는 옛날 이야기다. 한 민족 안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이야기로 신화, 전설, 민담을 포함하므로 그 속에는 그 민족의 가치관과 생활상이 담겨있다.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林在海) 교수는 [설화에 나타난 자연 친화적 성격과 한국인의 자연관]에서 "설화는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을 아무런 막힘 없이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열린 세계이다. 설화의 세계가 제멋대로 상상력을 펼치더라도 설화로서 존재하고 살아있게 하는 것은 그 설화를 하고, 듣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설화와 같이 구비(口碑)전승되며 공동작으로 형성된 구비문학 작품에는 전승공동체 전체의 공통된 생각이 담겨 있어 쉽게 한국인의 보편적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화의 성격을 설명한다.
우리나라 전래의 설화 가운데 상당 부분이 '풍수설화'이다. 이것은 곧 풍수적 사고가 우리 민족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사고방식이었음을 증명한다. 장장식(張長植)은 {한국의 풍수설화 연구}에서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민중은 풍수설을 깊게 믿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풍수논리가 우리 민족의 신앙과 생활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풍수는 무속, 점복 신앙과 함께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3대 축이다. 설화를 연구하는 사람들, 나아가 우리의 민속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절대로 풍수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양과 재미, 도덕적 교훈과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 풍수설화만큼 영향력이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설화는 풍수설화이다. 풍수지리설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식의 기층을 이루어 온 사상이며 속신(俗信)이다. 현세의 구복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간 신앙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나 신비 체험이 아닌 음양오행의 논리와 직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속, 점복보다는 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라고 신월균도 {풍수설화}에서 밝히고 있다.
* 풍산유씨 하회입향설화
하회는 절지(絶地)다. 강이 삼면을 빙 둘러싸고 있어 배를 타야만 오갈 수 있으며 풍산 쪽으로 나가는 길도 예전에는 절벽위의 오솔길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살면서 농사를 지을 만한 크기의 경작지도 없다. 그러므로 하회의 자연조건은 자급자족의 농경생활을 영위하기에 매우 불리하며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자면 하회는 피난지나 은둔처로서는 알맞지만 생활공간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즉 하회는 생활의 터전으로서는 그리 명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회는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매우 유서깊은 마을이다. 또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어느모로 보나 안동의 대표적 반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만한 역사와 인물을 낳은 곳에는 항용 그만한 신이한 이야기들이 함께 하는 법이다. 하회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그 땅의 세월만큼이나 얽혀있다. 부용대 위에서 하회마을를 내려다보면서 그 땅에 깃들인 설화(說話)를 음미해 보자.
하회와 관련된 설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마도 풍산유씨 하회입향설화일 것이고 이 이야기는 늘 "허씨 문전에, 안씨 터전에, 유씨배판(柳氏杯盤)."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임재해는 배판을 잔치판이라고 해석했고, 서수용은 배반(胚盤)이라고 보아 배아(胚芽), 배자(胚子)에서처럼 알눈으로 간주했는데 누가 맞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석하던지 결과는 비슷하다. 설화에 의하면 하회에는 처음 허씨가 정착을 했고 그 시기는 대략 고려 중엽으로 잡고 있다. 그 뒤에 다시 안씨가 터전을 잡았으나 영광을 보지 못하다가 유씨가 덕을 베풀어 이 땅을 차지한 후에 하회명당의 모든 발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하회유씨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잘 알려진 이야기를 통해 차근차근 살펴보자.
"하회의 입향시조는 공조전서(工曹典書) 유종혜(柳從惠)다. 그가 하회마을에 자리잡기 전까지 유씨들은 풍산읍 상리(上里)에 살았다. 상리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7대를 사는 동안 인구가 증가하여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후손을 위해 새로운 곳을 찾게 되었다."
고려 초, 최고 행정기관으로 여섯 관아를 두어 육관(六官) 또는 육부(六部)라 불렀다. 그 뒤 고려말에 이르러 육조(六曹)로 개명하고 조선조에는 거의 육조로 통용되었다. 전서는 고려말 충렬왕 때 상서(尙書)를 고친 이름으로 육조의 책임자를 일컫는 벼슬이다. 그러니까 공조전서는 지금의 건교부 장관에 해당된다. 하회의 입향시조인 전서공은 행적과 생몰연대 등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벼슬 이름으로 미루어 고려말의 인물로 추정된다.
이미 살던 곳이 여러가지 이유로 적합하지 않아서 삶터를 옮긴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이주설화(移住說話)에 등장한다. 한 가지 의문점은 풍산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주한다는 것이다. 풍산은 안동 부근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 있는 곳으로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는 최적지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풍산에서 이주를 했다는 것은 풍산들에 생산기반을 갖추지 못한 까닭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전서공은 이미 풍산의 대부호였다는 것이 정설이고, 뒤에 나오는 적선설화(積善說話)를 보면 상당한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을 했음이 드러나니 이주를 하게되는 동기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닌 듯 하다.
"전서공은 3년 동안 매일같이 하회마을 뒤에 있는 화산(花山)을 오르내리면서 터가 좋은 곳을 찾았다. 홍수가 날 때 마을이 얼마나 잠기는지, 논밭은 충분한지, 산에 땔감은 충분히 있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한 뒤 현재의 하회마을에 정착했다. 화산의 중턱에는 이미 허씨와 안씨가 살고 있었는데, 전서공은 일반적으로 마을이 많이 자리잡는 산중턱보다는 강가의 조그만 언덕을 택했다. 그곳은 원래 절터였는데 폐허가 되어 다래 넝쿨로 덮여 있었다."
화산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면 풍산들을 제외하고 사람이 살 만한 곳은 하회뿐이다. 이미 허씨와 안씨가 살고 있는 하회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풍요롭게 살기에는 땅의 크기가 너무 작다. 하회에는 부농이 경영할 만한 논밭이 없다. 비록 갑술년(甲戌年, 1934) 대홍수 때 상당량의 농경지가 유실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경작지는 어차피 만수 때 수몰되는 댐 주변의 논밭처럼 믿을 것이 못된다. 아마도 허씨와 안씨가 살기에도 좁을 것이다. 그 좁은 곳에 다시 유씨들이 비집고 들어갔다는 것은 은둔이나 피난이 아니라면 풍수명당발복사상 이외의 다른 논리로는 명확히 설명할 길이 없다. 더군다나 작은 언덕이라고는 하나 누구나 선뜻 살기를 꺼려하는 강가에 삶터를 정한 것은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일반적인 마을형태는 배산임수(背山臨水)다. 마을뒤에 있는 산에 기대고 앞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지며 그 멀리 바깥으로 물이 감아 흐르는 것이 기본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당연히 허씨나 안씨가 자리잡은 산중턱에 집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회는 이 일반적인 터 잡기 방식을 무시하고 강가에 바짝 붙어서 마을이 이루어져 있으며 농경지도 마을 뒤쪽 산에 있다.
비록 3년을 살폈다고는 하지만 홍수에 강이 범람하여 인명과 삶터를 몽땅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3년의 관찰로 해결될 문제인가? 강가는 도대체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서공이 강가에 삶터를 정한 뒤로 수 백년 동안 마을이 잠기는 수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앞에서 살펴본 부용대와 화천(花川)의 절묘한 물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그 강가의 언덕이 바로 풍수학상 돌혈(突穴)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야말로 하회다움의 백미다.
"전서공이 절터 옆에 나무를 베고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집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집이 무너졌고 다시 집을 지었으나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어 고심하던 중, 어느 날 꿈에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이런 좋은 터의 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 년 동안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아야 한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전서공은 고개 밖의 마을로 나가 원두막을 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밥도 주고, 신발도 주고, 잠도 재워주며 적선을 하였다. 그러기를 3년, 다시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이제 되었으니 가서 집을 지어라고 하여 지금의 종가인 양진당(養眞堂)을 완성했다."
{주역} [곤괘] 문언(文言)에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안은 반드시 앞날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 구절의 일부분을 옮겨보자.
"땅의 길이 진실로 유순하도다! 하늘의 베풂을 받들어 철 따라 알맞게 쓰는도다. 착한 일을 오래 하는 집안은 반드시 앞날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며 모진 일을 많이 하는 집안은 반드시 미래에 재앙을 입는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어버이를 해치는 것은 어느 날 별안간 하루 아침저녁에 일어나는 변고가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난 연유가 점점 쌓였기 때문이거늘 밝히기를 일찍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에 서리를 밟으면 곧 단단한 얼음이 어는 철이 온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점점 나아가게 됨을 말한 것이다. [坤道其順乎! 承天而時行.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 漸矣 由辨之不早辨也. 易曰 履霜堅氷至 蓋言順也.]"
그렇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며 바늘 도둑 소 도둑 되는 법이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아야 한다는 이 명제는 당위로서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공통적인 기본 도덕이다. 비록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다소 있을지라도 그 사실이 예나 지금이나 진리임에는 변함이 없다. 전서공이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선행을 베풀었다는 이 이야기는 땅이 스스로 사람을 가려 뽑았다는 뜻이다. 아무나 좋은 땅을 차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산 중턱의 안씨와 허씨 마을은 없어졌지만 전서공이 좋은 터를 잡은 덕분에 유씨는 이곳의 정기를 받아 집을 지은 지 8대째에 훌륭한 인물이 나왔으니 겸암(謙巖) 유운룡(柳雲龍, 1539, 중종 34∼1601, 선조 34)과 동생인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 중종 37∼1607, 선조 40)이다."
결국 좋은 터를 잡은 덕분에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이 하회설화의 결론이며 그것은 정확하게 풍수의 명당발복사상이다. 이런 종류의 다양한 풍수설화는 선행 → 명당 획득 → 명당 발복이라는 공통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명당 획득으로 인한 발복에 두기 쉽지만 기실 이런 설화의 가치는 선행에 있다. 요즈음은 선행과 발복의 인과 관계를 믿는 사람이 적어졌다. 하지만 풍수설화가 사실로 인식되어 성행하던 시절에는 분명 풍수사상이 일정 부분 사회적 도덕을 고양시키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풍수에는 역기능도 있다.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버리면 풍수의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지침이 된다.
언제 어느 사회에나 금기(禁忌)가 있다. 금기는 곧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지침이며 윤리와 도덕의 실체다.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안녕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금기는 그것을 준수하는 자에게는 복이, 어기는 자에게는 벌이 따른다고 가르친다. 풍수설화에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금기가 있다.
자연을 해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라는 농경 사회의 금기가 풍수설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혈(穴)을 지른 자리에서 피가 나왔다는 숱한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이해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회의 형국 이름에서 그와 같은 자연 동화의 금기와 희망을 읽어내지 못하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사람은 하회땅을 볼 자격이 없다. 아니 어쩌면 땅 위에서 살 자격이 없다. 사람이 어디서 나서 살다가 어디로 돌아가는가? 금기를 미신으로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성(理性)과 과학이 일군 현대 문명의 편리함은 과연 우리의 삶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들었는가? 임재해의 깨달음을 들어보자.
"나는 사람을 죽이는 합리성이나 인류를 멸망하게 하는 과학보다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주술 또는 인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미신이 더 바람직한 문화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풍수지리설이 미신이라고 해도 나는 좋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자연 이해 방식은 나에게 명당 고르는 법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철학을 일깨워 주었다. 다시 말하면 풍수지리설은 명당 잡는 법이 아니라 자연 친화적 삶의 방법이며, 좋은 터를 발견하는 술법적 이치가 아니라 생명 윤리에 맞게 성숙한 삶을 실천하게 하는 생태학적 이치이다."
- [풍수지리설의 생태학적 이해와 한국인의 자연관]
풍수를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갖는 수수께끼 중의 하나가 진짜로 명당에는 발복의 힘이 있어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는가? 아니면 훌륭한 인물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곳이 명당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 두 가지 의문은 상호보완적이며 상관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그러나 그것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는 없다. 다만 인물이 땅을 명당으로 만들기도 하겠지만 인물의 배출과 무관하게 명당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더욱이 훌륭한 인물이 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건강한 땅에서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는 대다수 민중들이 바로 인물이고 보면 어쩌면 명당은 그렇게 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물형론(物形論)
풍수 물형론은 형국론과 같은 뜻이다. 물형은 산천의 형세를 사물의 형태에 유비(類比)하는 것이다. 만물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곳의 모양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렇게 된 까닭이 있으며 또한 그 모양은 그 모양과 유사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좋은 모양[形, 象] 속에는 좋은 힘[氣, 精]이 있으므로 그 힘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여 생활의 활력과 위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물형론이다.
좋은 모양[명당]은 분명히 있다. 명당발복의 심리는 자연숭배 사상이며 정령신앙(精靈信仰, Animism)이며 또한 주술(呪術, Magic)이다. 정령신앙은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힘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파도가 치는 것은 그냥 제멋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치는 뜻이 있으며 그 힘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사나운 파도를 달래기 위하여 심청(沈淸)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주술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초인적 힘이나 불가사의한 초자연적 현상을 자기편으로 유도하고 조작함으로써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쳐 자연의 노여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이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믿음이며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인류의 기원과 함께 출발하여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믿음이며 모든 종교적 사유의 원형이다.
독일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에 따르면 그 나라는 12월 31일이 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전 국민이 거리에 나와서 폭죽을 터뜨린다고 한다. 그래야만 한 해 동안 있었던 재수 없는 일이 날아가고 새해에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단다. 폭죽 값으로 드는 돈이 가히 천문학적 숫자라고 하는데 폭죽을 터뜨리면 재수가 좋아지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다.
풍수 형국론은 유감주술(類感呪術, homeopathic magic)의 일종이다. 유감주술은 모방주술(模倣呪術, imitative magic)이라고도 하는데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키고, 또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는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뭄이 심할 때 민간에서 병에 물을 넣고 솔잎으로 주둥이를 막아 대문곁에 거꾸로 매어 달아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함으로써 빗방울을 상징하게 하여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것도 유감주술의 일종이다.
* 하회의 별칭. 그 둘, 행주형(行舟形)
강이나 내를 따라 형성된 지세를 형국론에서는 흔히 행주형이라고 한다. 부용대에서 오른쪽으로 하회를 내려다보면 하회를 가리켜 왜 행주형이라고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하회는 항구에서 이제 막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려는 뱃머리 모양이 분명하다.
배는 어떤 것과 유사한가? 항구에 정박했다가 떠나가려는 배에는 사람과 재물이 가득 실려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배는 자손의 번성함과 재물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행주형의 땅은 대개 배가 진행하는 방향 쪽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화산(花山) 중턱에서 시작된 허씨와 안씨의 정착이 실패로 끝나고 뱃머리에 터를 잡은 유씨에 이르러 그 땅의 소응(昭應)이 꽃을 피웠다는 하회설화는 행주형국(行舟形局)과 어울려 묘한 울림을 갖는다.
행주형국의 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우물을 파지 말라는 것이다. 배 모양의 땅에 우물을 파는 것은 배 밑창을 뚫는 것과 마찬가지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선박의 바닥이 뚫려 물에 가라앉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실제로 행주형의 땅은 퇴적 지형이 많기 때문에 그런 땅에서 나는 물은 대체로 맛이 없고 때로는 그 물 때문에 병을 얻기까지 한다. 이러한 경험적 사실은 현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강이나 하천에 접한 땅은 반드시 물의 공격[衝]에 노출된 침식사면과 물이 운반해온 것들이 쌓이는 퇴적사면을 가지게 된다. 침식사면에는 사람이 거처할 수 없으므로 퇴적사면에 살게 되는데 하천에 의해 운반되어 낮은 곳에 쌓여져 만들어지는 충적토(沖積土)는 자갈, 모래, 진흙 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땅의 성질상 농토로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퇴적되었다는 말은 곧 물이 범람하여 만든 땅이라는 것과 같은 뜻이므로 항상 수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사람이 살기에는 아주 부적합하다. 또한 그런 땅은 유기물이 풍부하여 물맛도 없고 물이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식수로 사용하면 자칫 병을 부르기 쉽다. 그러므로 제방을 쌓아서 홍수의 피해를 다소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강가의 퇴적지형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된다. 우리 나라의 집중 호우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회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하회는 범람의 위험이 없다. 그것은 곧 하천의 운반으로 퇴적된 땅이 아니라는 뜻이다. 낮고 평평하거나 우묵한 땅이 아니다. 가운데가 사방 어느 곳보다도 높아서 불룩한 땅, 즉 산이다. 강가의 하회 혈처는 주산인 화산이 자신의 기운을 흘려 보내어 강가에서 지기를 응결시킨 명당이다. 그곳은 엄연한 산(山)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하회가 천하명당의 반열에 오르게된 소이연(所以然)의 핵심이다. 이렇게 사방이 낮고 가운데가 불룩하며 평평한 땅이 혈형4대격 중의 돌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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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혈(突穴)
무수한 혈(穴)의 모양을 크게 나누면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와혈과 겸혈은 형제 사이며 유혈과 골혈은 자매 사이라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와겸이 서로 비슷하고 유돌이 서로 비슷하다. 물론 엄격한 구분 기준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와는 겸과, 유는 돌과 그 형태가 서로 비슷하다. 『인자수지』의 돌혈 그림과 설명이다.
"돌형은 솥을 뒤집어 놓은 같으니 그 산마루가 혈처다. 돌형의 다른 이름은 아랑(鵝卵, 거위알), 용주(龍珠), 자미(紫微,북두칠성), 왕룡(旺龍) 등인데 모두 혈성(穴星)이 평탄한 중에서 돌기 때문에 흙을 일으킨 것이다. 이 형은 편지나 고산(高山)에 다 있는데 평지에 더 많다. 놓은 산의 돌혈은 장풍을 요하므로 반드시 좌우를 싸주어야 하며 홀로 노출되어 바람을 맞아 생기가 흩어지는 것을 대단히 꺼린다. 평지의 돌혈은 홀연히 솟은 것이니 무엇보다도 득수(得水)가 중요하다. 수계(水界)가 명백하고 내맥(來脈)이 분명하며 물이 모이고 둘러싸 좌우가 다 평탄하면 더욱 좋다. 대개 평지는 바람이 지면을 따라 부는 것이므로 바람은 걱정할 것이 없다. 솟아오른 돌혈은 정기가 가운데서 엉켜 모이고 나머지 기운은 밖으로 널리 가득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굴이 크고 둥글어야 하며 형체가 빼어나야 한다."
그림과 설명을 십년동안 들여다 보아도 돌혈을 이애 할 수는 없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혈형을 그리고 설명할 때 딴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모형을 만들면 어느 정도는 근접하겠지만 역시 현장의 복잡하고 다기한 모습을 표현할 수는 없다. 열심히 현장을 다니는 수밖에는 없다.
위의 설명을 부연하면 돌혈은 가마솥을 뒤집에 놓은 것처럼 가운데가 높고 사방으로 점차 낮아지는 지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돌혈은 당판의 중앙이 가장 높아서, 당판의 가운데가 우묵한 와혈(窩穴)과는 서로 반대가 된다.
하회가 배 모양의 땅이므로 배를 가라앉게 만드는 우물을 파면 안된다는 것 이외에도 우물을 파서는 안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하회가 다리미형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리미에 물이 들어오면 불이 꺼질 것임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옛날의 다리미는 숯불을 담아서 그 열로 옷을 다렸는데 조금 긴 손잡이가 달려있다. 그 모양이 마치 북두칠성과 흡사하기 때문에 돌혈의 다른 이름으로 자미(紫微)도 등장하는 것이다. 즉 돌혈은 땅 모양이 북두칠성이나 다리미를 엎어놓은 것처럼 중앙이 높고 평평한 특징을 나타낸다. 부용대에서 하회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화산에서 내려오 내룡이 다리미의 손잡이 같고 강가의 하회마을이 다리미를 엎어놓은 것처럼 평평한데, 중앙[穴處]이 조금 불룩한 형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하회의 풍수형국명 중에는 금두형(金斗形)도 있다. 금두란 다리미의 별칭이다.
높은 산의 돌혈은 반드시 장풍을 필요로 한다는 말은 고산은 바람은 맞기 쉬운데다가 돌혈은 또 중앙으로 높으므로 장풍이 되지 않으면 풍살(風殺)을 맞을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평지 돌혈은 바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평지에 부는 바람은 그 기세가 사납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주며 또한 지면을 따라 불기 때문에 사방 보다 더 높은 돌혈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하회는 득수를 한 돌혈이며 동시에 주위의 산에 둘러싸여 있어 장풍까지 겸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용대에서 하회를 오랫동안 내려다보면 초등학교 건물의 뒤쪽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회에 들어가면 그 사실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은 돌혈의 당판은 위가 심하게 불룩한 것이 아니라 거의 평탄하다고 느낄 정도로 경사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회는 아주 큰 대돌(大突)이다. 작은 돌혈, 예를 들어 정자나 산소 자리같으면 한눈에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지만 하회처럼 넓은 땅에서는 그 안에서 전체적 형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부용대가 하회에 있다는 것은 마을사람뿐만이 아니라 풍수학인에게도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돌혈 당판
돌혈의 중심부, 즉 당판이 어떤 형태인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김두규의 『한국풍수의 허와 실』에 있는 돌혈당판도와 설명을 살펴보자.
"돌이란 평지돌출(平地突出)의 돌(突)로서 혈의 중심부분이 사방주변보다 높고 평평하다. 거북의 등이나 엎어놓은 가마솥형상이다. 돌유현침(突有懸針)이니 거북의 다리처럼 사방에 지각(肢脚)이 뻗어 있으면 더욱 확실하다."
현침이란 침처럼 작게 달려있다는 뜻으로 현침사(懸針砂)를 말한다. 혈이 이루어지면 그곳이 혈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증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일정하 시잔이 지나서 혈을 보는 눈이 EM이게 되면 그런 증거들을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혈의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실제 땅의 그림이나 손안의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것도 아니며 더구나 절대로 그림처럼 단순하고 선명하지 않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땅의 모양을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다.
돌혈당판에는 당판을 지지하는 다리, 즉 지각(肢脚)이 있다. 그 다리가 전체 땅의 크기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침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거북이의 몸 전체 크기에서 네 개의 다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연상하면 왜 현침이라고 표현했는지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 땅이 침처럼 생긴 것은 아니다. 현침사의 위치는 당판의 모퉁이에 있다. 모틍이란 동서남북의 정방(正方)이 아니라 북동쪽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방향은 싱제릐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판의 중심에서 볼 때 지각이 뻗어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현침사가 네 개 다 있는 곳을 아주 드물고 대개는 두 개 정도가 있으며 하나도 없는 곳도 많다. 높은 산에 형성되는 유혈(乳穴)도 지각이 있는데 돌혈의 현침과는 다르다. 그것은 구별하기가 매우 까다로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하회는 현침사가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위의 돌혈도와 돌혈당판도를 아무리 보고 있어도 돌혈을 이해할 수는 없다. 실재하는 돌혈의 땅을 찾아다니면서 느낌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답산을 하는 수 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실제의 땅을 이해하게 되면 그림도 이해하게 된다. 유혈도 돌혈과 비슷한데 돌혈에 비해 더욱 동글동글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그 차이를 아는 것은 상당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체험하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하회의 별칭. 그 셋, 연화부수(蓮花浮水)
하회의 풍수적 형국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이 연화부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아주 좋기 때문일 것이다. 석존이 연꽃을 들었을 떄 두타제일(頭咤弟一) 마하가섭(摩言+可迦葉)이 미소를 지은 이후로 연꽃은 곧 불교의 진리이자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한다. 그 뒤로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의 이미지는 다른 그 어떤 꽃보다도 더 강렬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 국화나 매화가 거기 비견되겠지만 느낌은 서로 다르다.
하회에 들어가서 사방을 둘러보면 오똑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주산인 화산이 동쪽에 솟아있고 서쪽의 서애(西厓) 남쪽의 남산(南山)과 북쪽의 부용대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사방의 산들은 높은 산을 조금 멀리 있고, 가까운 산은 상대적으로 조금 낮아서 하회의 중심에서 산들을 보면 실제로 느끼는 산높이는 서로 비슷하게 된다. 실로 절묘한 천지의 조화다. 그 산 하나하나가 꽃잎에 해당되며 하회는 그 꽃잎의 중앙, 즉 화심(花心)이 된다. 하회는 돌혈은 바람을 꺼리므로 사방을 산이 감싸주어야 한다는 『인자수지』의 설명과 일치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 땅을 한 송이 꽃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사방을 물이 돌아 흐르므로 물위에 핀 꽃, 즉 연꽃이 물에 떠있는 연화부수현의 형국이 된다. 연화부수형 명당이 주는 소응은 꽃과 연꽃의 이미지를 연상하면 된다.
사방을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곳은 많다. 그러나 중앙에 돌혈이 아닌 다른 혈상(穴象)이 있는 경우에는 대체로 꽃과 관현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돌혈은 평지돌출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판이 사방 어느 곳보다도 높다. 가끔 유혈도 그런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그 강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꽃 모양으로 비유하지는 않는다.
꽃잎 같은 산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모양의 돌혈이 물가에 있지 않고 산 속이나 편지에 있을 때는 어떤 이름을 얻는가? 바로 매화가 땅에 떨어져 있는 형상의 매화낙지(梅花落地)다 매화도 사군자의 하나로 눈을 맞고 크는 그 절개를 기리어 숱한 소인(騷人) 묵객들이 매화를 찬미하고 그렸으니 연꽃의 이미지에 뒤지지 않는다. 매화낙지의 땅이라고 알려진 곳이 많이 있는데 그런 땅에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후손을 매화처럼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내가 사는 바로 이곳이 배화의 기운을 가진 길지라 여기며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희망으로 채운다. 왜 매화낙지라 불리는지 이유를 알면 그 이름을 붙은 땅의 진가도 판별할 수 있다.
경북 성주군 월향면 인촌리 서진산(棲鎭山, 742m) 기슭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염10찰 중의 하나이며 직지사의 말사인 선석사(禪石寺)가 있다. 선석사의 서쪽 약 200m 거리에 태봉(胎峰)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봉우리가 있다. 그곳에 세종대왕의 왕자 13위의 태실(胎室)이 있기 때문에 태봉이라고 한다.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을 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이다.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려한 것이라고 인정되어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태실은 일반적으로 태옹(胎甕)으로 불리는 항아리에 안치하는 것이 보통이나 왕실의 아기 태는 전국에서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태실은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예천 용문사에도 있다. 전국의 태실 중 선석사의 태봉이 가장 유명한데 그 자리가 바로 천하의 돌혈 명당이다. 우뚝 솟은 돌혈 당판의 사방을 꽃잎 같은 산이 호위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매화낙지형의 대명당이다. 태실은 일반적인 산소와는 완전히 다르다. 선석사도 구경하고 태실이 어떤 곳인지도 알 겸해서 한 번 들러 보기를 권한다.
돌혈을 사물에 비유할 때 연화나 매화보다도 훨씬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이 거북이다. 실제로 산중이나 평지에 있는 돌혈은 대개 거북같이 생겼으며 현침사가 다리처럼 당판을 받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곳 그런 돌혈을 만나게 되겠지만, 우선 하회처럼 물가에 돌혈이 형성되어 있는데 사방에 꽃잎같은 산들이 호위하지 않을 때는 주로 금귀부해(金龜浮海)나 금귀입수(金龜入水)라고 표현한다.
*하회의 별칭. 그 넷, 사선기국(四仙基局)
이상향(理想鄕)은 없기 때문에 유토피아이며 동시에 사람이 영원토록 동경하는 대상이 된다. 풍수에도 이상적인 땅이 있다. 그 땅의 형국을 어떤 이름으로 표현하든지 간에 대표적인 이상향은 오행의 산이 오행의 정방위에 포진하고 있는 곳이다. 즉 동쪽에 목성, 서쪽에 금성, 남쪽에 화성, 븍쪽에 수성의 산이 호위하는 중앙에 토성이 좌정한 곳이 풍수적 이상향이다. 그곳은 오행정방(五行正方)의 순수한 기운을 받은 오성(五星)이 상생(相生)의 기운을 일으켜 만물이 창조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하회는 사방을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방에 산이 있는 곳이 이 땅 어딘엔들 없을까마는 있다고 다 유정한 산은 아니다. 하회의 동쪽에는 주산인 화산, 서쪽에는 서애, 남쪽에는 남산, 북쪽에는 부용대가 있다. 그 산들은 꽃잎으로도 비유하자면 사람으로도 비유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영묘(靈妙)하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지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빗댄 형국명도 많다. 옥녀(玉女) 천녀(天女), 장군(將軍), 선인(仙人), 호승(胡僧), 어옹(漁翁) 등으로 표현되는 형국명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하회를 가리켜 사선기국형, 즉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네 명의 신선이 하회 땅을 바둑판 삼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상의 땅이라고 형용함은 그 땅에 어린 선기(仙氣)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신선은 속세를 벗어난 존재다. 그들은 단로(丹爐)와 선학(仙鶴)을 벗삼아 불로장생의 선계(仙界)를 이루는 동천(洞天)의 주인들이다. 나는 하회가 그런 느낌의 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회의 주인은 서애(西厓)라 하기보다는 언제나 겸암(謙巖)이다. 그 땅은 속세를 떠난 은자(隱者)들의 터전이므로 세속의 명리를 구하는 자가 찾아들 땅이 아니다. 요새 이 하회에 넘치는 사람들이 그 땅은 자신들이 그냥 획 둘러보고 떠나갈 땅이 아니라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하회는 어떤 땅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하회를 하회의 바깥에서 조망했다. 즉 거시적으로 관찰한 셈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본 하회는 우선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이 동해를 따라 흐르다가 태백산에서 내륙으로 몸을 돌려 나아가는 대간 중의 문수산에서 시작되는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낙동강을 만나 그 흐름을 멈추어 마지막으로 솟구쳐 놓은 산이 하회의 주산인 화산(花山)이고, 낙동정맥의 보현산에서 갈라진 세 개의 산줄기 가운데 하나가 힘차게 북서쪽으로 치달리다가 낙동강의 흐름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둥글게 하회의 사방을 호위하는 백호봉(白虎峰)들을 솟구치는데 그 끝이 부용대다. 그러므로 하회는 태백산에서 이별한 용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천리는 휘몰라 다시금 지척에서 만나 서로를 감싸안는 열락(悅樂)이 서리서리 감겨있는 땅이다.
그 열락의 땅 하회는 산태극수태극, 행주, 연화부수, 사선기국의 형국 이름처럼 음양이 교감하는 태극의 땅인가! 이제 막 떠나려는 뱃머리처럼 젖과 꿀리 흐르는 풍요의 땅인가! 자신이 달구어 남을 바르게 하고자하는 불같은 염원이 서린 땅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어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회향(廻向)의 발심(發心)이 어린 땅인가! 저 은한(銀漢) 너머 살던 신선이 잠시 노닐다 가는 적소(謫所)인가! 그 모두인가 아무 것도 아닌가? 이제는 고착될 대로 고착된 이 자본의 땅에서 하회는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으며 남을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하회땅을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일과 그 땅을 의지하여 살던 사람과 그들이 그곳에 남긴 삶의 이야기들을 생각해볼 차례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회 모습과 하회마을 사람들이 갖는 삶의 의미를 물어 보는 일이다. 그리고 하회와 비슷한 돌혈과 아직 만나지 못한 유혈(乳穴), 겸혈(鉗穴)의 안동 땅들을 살펴야 한다. 이 남은 이야기들은 『안동』지의 편집방향이 바뀜에 따라서 더 이상 『안동』지에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곧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만나 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동안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풍수 이야기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안동>